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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hapter 371 - Chapter 380

476 Chapters

제371화

이도운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쇳소리처럼 갈라졌다.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소란을 보고 달려오는 종업원도 안중에 없었다.오직 강지현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앞을 가로막았다.실랑이가 길어지자 인기척에 룸 안의 동창들이 하나둘 쏟아져 나왔다.“도운아, 너 왜 이래!”“강지현?”잇달아 달려 나온 동창 부부는 아연실색했다.이도운이 술에 취해 애꿎은 손님과 시비라도 붙은 줄 알았는데, 그 상대가 다름 아닌 강지현이었다.뒤따라온 동창들 역시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발견했다는 듯 몰려들었다.다들 강지현과 이도운의 과거를 알고 있었기에 하나같이 의미심장한 표정이었지만 선뜻 나서는 이는 없었다.상황을 중재하려던 남편 쪽도 누군가 팔을 붙잡아 만류했다.그때, 강지현의 짝꿍이었던 여동창이 한발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지현아! 세상에, 이게 얼마 만이야? 나 기억나?”지인이 나타나자 이도운은 그제야 파멸이라도 불사할 것 같던 서슬 퍼런 기세를 조금 꺾었다.그러나 붉게 충혈된 눈동자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야수를 연상케 했다.여동창은 처참하게 망가진 이도운의 몰골을 보며 은연중에 동정심을 느꼈다.과거 그가 강지현을 얼마나 끔찍이 아꼈는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아무리 오해가 쌓였다 한들, 사람을 이 지경까지 몰아넣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싶었다.강지현은 제 앞을 막아선 여자를 훑어보았다.낯이 익다 싶더니 한참 뒤에야 예전에 같이 수업을 들었던 동창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하지만 지금은 동창과 옛 추억을 나눌 기분이 아니었다.그저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나 싶었을 뿐.“이도운, 너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나랑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발칙한 생각을 하지? 잘 들어, 넌 나를 속이고 2년 동안이나 사기 결혼을 했어. 난 이제 너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어. 사랑은커녕 증오조차 아까울 정도라고.”“너 진짜 비열하고 이기적인 거 알아? 그냥 평생 백하린이랑 그렇게 살아! 나중에 이혼하든 말든 나랑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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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2화

김태하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뒤따르던 하원영이 그의 팔에 부딪힐 뻔했으나, 이내 김태하의 시선이 머문 곳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그곳엔 강지현이 한 남자에게 붙들려 있었다.상대방이 억지로 그녀를 끌어안으며 무언가 하려던 찰나, 다행히 주변의 손길에 의해 저지당했다.대여섯 명의 보안 요원이 이도운을 에워쌌지만, 그는 좀처럼 포기하지 않고 발버둥을 쳤다.옷이 엉망으로 흐트러져 꼴이 말이 아니었음에도 집요하게 강지현을 향해 몸을 날렸다.강지현은 내심 경악했다.이도운이 이토록 바닥까지 보이며 폭주할 줄은 상상조차 못 했으니까.언제나 번듯한 가면을 쓰고 예의를 차리던 사람.체면과 자존심을 제 목숨보다 귀히 여겼기에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 앞에서 그토록 긴 세월 ‘완벽한 남편’을 연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이도운, 나 이미 결혼했어. 그리고 너? 당연히 진작에 정 뗐지.”조소 섞인 강지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구경꾼들 앞에서 이도운의 자존심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잔인한 선언이었다.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이도운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아직도 사랑한다고?누가 봐도 여자의 마음속에 그는 이미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이도운은 심장을 칼로 후벼 파는 듯한 통증을 느꼈고, 본능적으로 현실을 부정했다.“말도 안 돼! 네가 결혼했을 리 없잖아. 이렇게 빨리 남자를 구했다고?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결혼해?”단호한 부정과는 달리, 뼛속 깊이 스며드는 불안감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언젠가 강지현이 누군가와 함께 구청 앞에 서 있던 뒷모습이 머릿속을 스쳤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건 상관없었다.“강지현! 설령 나한테 복수하려고 홧김에 한 결혼이라도 상관없어. 그러니까 우리, 이걸로 비긴 셈 치고 다시 시작하자. 응?”이도운의 눈빛에 번들거리는 광기가 서렸다.옆에 있던 동창들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그를 진정시키려 다가왔다.하지만 이도운은 아랑곳하지 않고 강지현을 향해 소리치며 몰아붙였다.“지현아... 설마 네가 했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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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3화

“이미 지나간 과거일 뿐이에요.”강지현은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하듯 차갑게 말을 잘랐다.그녀의 서늘한 기색에 하원영도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참, 김태하 대표님도 오셨어요. 방금 두 사람 같이 있는 거 보신 듯한데, 지금쯤이면 아마...”그 이름을 듣는 순간, 강지현은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뭐라고요? 태하가 여기 왔다고?”“네, 지현 씨가 휴대폰을 두고 가서 제가 대신 전화를 받았거든요. 지현 씨 데리러 왔대요.”“나 먼저 갈게요!”하원영이 사실대로 설명했다.그러나 강지현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클럽을 뛰쳐나갔다.방금 이도운이 그녀의 팔을 붙잡고 늘어지던 장면이라도 본 걸까.‘설마... 화가 났으려나?’김태하가 휴대폰을 가져가는 바람에 연락할 수도 없었다.입구에서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강지현은 다시 주차장을 향해 달렸다.아니나 다를까, 어스름한 그늘에 한 남자가 그녀의 차 옆에 서 있었다.어둠조차 가리지 못한 꼿꼿한 실루엣.다만 음영 속에 비친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태하야.”그를 보자마자 강지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내 김태하의 이름을 부르며 서둘러 뛰어갔다.남자는 큼직한 코트를 입고 있었다.며칠 사이 부쩍 야윈 몸이 그 안에서 더 왜소해 보였지만, 자태만큼은 여전히 곧고 당당했다.김태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강지현을 보는 순간, 살기 어린 눈빛이 금세 부드럽게 변했다.그가 손을 뻗자, 강지현은 마치 새끼 고양이처럼 품으로 파고들었다.“뛰지 마.”김태하는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어디 안 가니까.”“언제 왔어? 방금...”강지현은 김태하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물었다.“얼마 안 됐어. 이도운이 너한테 질척거리는 거 보긴 했지.”김태하가 강지현의 말을 자르며 대답했다.무미건조한 목소리에는 이렇다 할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하지만 그 지나친 평온함이 오히려 기묘한 불안을 자극했다.이도운을 마주친 이상 당장이라도 응징하러 나설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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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4화

“나 질투 나. 그것도 아주 많이. 지금도 속이 부글부글 끓어.”“하지만 그건 이도운이 일방적으로 그런 거잖아. 그런 사람 때문에 질투할 필요 없어. 걔가 어떻게 너랑 비교가 돼...”강지현의 목소리는 갈수록 잦아들었다.김태하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온 탓에 서로의 입술이 거의 닿을 듯했기 때문이다.“그 자식이 나보다 못한 게 뭔데?”“전부 다... 머리카락 한 올조차 너한테는 안 돼.”강지현은 어둠 속에 잠긴 김태하의 이목구비를 홀린 듯 응시했다.빛 한 점 들지 않는 그늘 속에서도 그의 얼굴은 넋을 잃을 만큼 아름다웠다.하지만 평소의 다정하고 반듯한 모습과는 달랐다.지금 이 남자에게선 숨결마저 지독한 포식성이 배어 나왔다.마치 꾸벅꾸벅 졸던 사자가 마침내 사냥감을 데리고 노는 것을 멈추고 본격적으로 잡아먹으려 드는 것 같았다.“더 해줘.”김태하가 그녀의 입술을 스치듯 지나가더니 뺨을 툭 건드렸다.그의 손은 허리에서부터 서서히 위로 올라왔다.“나만 사랑한다고, 얘기해줘.”“난...”강지현은 괜스레 쑥스러웠다. 이런 말을 어떻게 대놓고 하지?“어서.”김태하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며 재촉했다.“난 너만 사랑해.”강지현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내 이름 불러줘.”김태하가 다시 말했다.“김태하...”“그거 말고.”“태하야...”“난 너한테 어떤 사람이야?”“남편...”강지현은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단어였기에 어색하면서도 콧소리 섞인 애교가 묻어났다.“그럼 날 뭐라고 불러야지?”김태하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지독하게 매력적인 저음은 강지현의 마음을 미친 듯이 뒤흔들었다.분명 같이 서 있을 뿐인데, 깊숙한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열기가 불꽃처럼 번져 나갔다.강지현은 귓불이 화끈 달아올랐다.“...여보.”이쯤에서 그를 달래 자리를 뜨려 했다.하지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턱을 잡아챈 손길에 고개가 꺾였고, 깊은 입맞춤이 이어졌다.남자의 도드라진 목울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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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5화

김태하의 눈동자에 명백한 당혹감이 스쳤다.이 한마디는 잔잔한 수면 아래로 던져진 돌멩이처럼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암초들을 건드리며 거센 파장을 일으켰다.“왜 그렇게 생각해?”한참이나 굳어 있던 김태하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불쾌함이 서린 미간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설마 지난번 스캔들 때문에 여태 마음 쓰고 있는 거라면...”“아니야.”강지현은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저었다.“어제저녁에 네가 잠꼬대하는 걸 들었어.”“내가 뭐라고 했는데?”김태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순식간에 안색이 창백해진 그는 살점을 파고들 만큼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서지아, 그 이름을 불렀어.”말을 마친 강지현의 시선이 김태하의 손에 머물렀다.차창 밖에서 스며든 빛줄기에 드러난 손등은 힘줄이 돋아나 있었고, 그 사이로 자잘하고 붉은 상처들이 얼룩덜룩했다.“손이 왜 그래?”그녀는 즉시 김태하의 손을 잡아챘다.자세히 살피고 나서야 그가 손톱으로 피부를 할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손바닥 옆면을 따라 붉은 상처 세 줄기가 선명하게 드러났다.피가 배어 나올 정도는 아니었으나, 보는 것만으로도 쓰라린 통증이 전해졌다.“아무것도 아니야.”김태하는 서둘러 손을 감추었다.강지현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자해에 가까운 통증에 기대어 간신히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사정을 그녀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강지현은 시선을 피하는 남자의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했다.무언가 필사적으로 감추려는 듯 어두운 표정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쪽이 아릿해지며 자책감이 밀려왔다.사실 그는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매 순간 서지아와 선을 그었고, 그녀를 위해 직접 해명까지 했다.게다가, 서지아는 어디까지나 과거형일 뿐이었다.김태하처럼 정이 깊고 책임감이 투철한 남자라면 가슴 한구석에 미련을 남겨두는 것쯤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머리로는 다 이해하지만, 감정이라는 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아무리 이성적인 척하려 해도 가슴 한구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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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6화

그러나 서지아가 단 한 번도 자신을 진심으로 선택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순간, 김태하는 오히려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어쩌면 처음부터 그녀는 사랑이 아니라 ‘온 힘을 다해 지켜내야만 하는 존재’였는지도 모른다.그 책임감에 매몰되어 정작 자신의 진심은 늘 뒷전이었다.서지아를 향했던 복잡한 감정이 과연 사랑이 맞긴 했는지, 제대로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알았어. 이번엔 말 좀 예쁘게 하네?”강지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살짝 내리깐 눈동자에 기쁨이 서려 있었다.“못 믿겠다면 하늘에 맹세라도...”김태하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이내 입을 열려던 찰나, 강지현이 그의 입술을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렀다.“아니야, 믿어.”신조차 믿지 않는 남자가 맹세 운운하는 게 우스우면서도 기특했다.손바닥을 타고 남자의 뜨거운 숨결이 번져 나갔다.강지현은 여전히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그를 바라보며 나직이 덧붙였다. “앞으로 주의해. 꿈에서도 만나지 말고, 이름도 부르지 마. 안 그러면... 나 정말 심술부릴 거야.”“알았어. 네가 질투해 주는 게 내심 기쁘기도 하지만, 널 속상하게 만드는 건 더 싫어.”김태하가 낮게 읊조리며 강지현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두 사람의 몸이 시트 깊숙한 구석으로 밀착되자, 차창 밖을 스치던 빛과 그림자가 시야에서 멀어졌다.“그러니까 반드시 고칠게.”“...읍!”강지현이 입을 떼려던 찰나,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매번 그녀에게 약속할 때마다 남자는 마치 명령을 내리는 군인처럼 엄격하고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하지만 눈매와 표정을 가만히 뜯어보면 딱딱한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그저 사람을 서서히 중독시킬 듯 달콤하고도 치명적인, 만성 독약 같은 다정함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신호등 앞에 차가 멈춰 섰을 때, 운전기사는 백미러 너머로 뒷좌석의 움직임을 포착하고는 당황하며 급히 시선을 회피했다....새벽 3시, 이민지는 전화를 받자마자 혼비백산하여 진태웅을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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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7화

아버지마저 그 모양인데 오빠까지 잘못된다면, 정말 이 집안은 풍비박산이 날 판이었다.그때 진료실 문이 열리며 일행들이 줄지어 나오기 시작했다.다들 재수 없었다는 둥 투덜대면서도 이도운의 상태를 살피며 한마디씩 걱정을 건넸다.이도운은 애써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려 했지만, 다리 통증이 너무 심해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이민지가 다급히 그의 팔을 부축했다.“오빠, 무리하지 마.”“도운아, 오늘 일이 이렇게 꼬일 줄 누가 알았겠냐. 진짜 다들 운이 너무 없네.”모임을 주도했던 동창이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마지막으로 걸어 나왔다.여자의 얼굴에는 허탈함을 넘어선 싸늘한 기색이 역력했다.이내 이도운을 빤히 바라보더니,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 굳게 다물었다.그녀는 현장에서 유일하게 손끝 하나 다치지 않은 사람이었다.괴한들은 여자에게 관심조차 없었고, 뒤늦게 비명을 지르며 남편을 감싸려 할 때도 그저 무력으로 떼어놓기만 했을 뿐이다.그녀는 이 모든 사달이 단순히 운이 나빠 벌어진 일이라 생각지 않았다.조금 전까지 이도운과 강지현 사이에 오갔던 그 파격적인 폭로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충격적이었다.‘이 사람들, 분명 이도운을 노리고 들어온 거야.’재수가 없었던 게 아니라 이도운이라는 폭탄 때문에 멀쩡한 사람들이 불똥을 맞은 것이다.양다리도 모자라 사기 결혼이라니. 보면 볼수록 정말 질 나쁜 인간이었다.이도운은 학창 시절 대인관계가 좋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인품, 집안, 외모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으니 그야말로 ‘신의 아들’이라 불릴 만 했다.강지현 역시 빼어난 인재였으나, 이도운의 곁에 서면 언제나 그녀가 과분한 행운을 거머쥔 것처럼 비치곤 했다.사람들은 자연히 이도운의 주변에 머물며 인맥을 쌓길 원했고, 그런 시선들을 견뎌왔을 강지현이 이제 와서 동창들을 외면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아내와 달랐다.이도운이 아무리 비난받을 짓을 했어도 그에겐 오랜 시간 함께한 ‘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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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8화

당시 이도운과 꽤 가까운 사이였던 친구가 있었다.한번은 백하린과 일행이 마련한 식사 자리에 불려 나갔는데, 이어진 술자리 내내 대화의 중심은 온통 이도운이었다.자리가 끝날 무렵, 그와 친구들은 백하린이 조만간 이도운에게 대시할 것이라 확신했다.자신들이 마치 이도운에 대한 ‘인간 설문지’가 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두 사람은 한동안 가깝게 지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흐지부지 멀어졌고, 결국 사귄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이후 이도운은 강지현과 연인이 되었고, 백하린은 지도 교수의 길을 걷게 되면서 이는 사람만 아는 은밀한 뒷이야기로 남았다.하지만 남자가 떠들어대는 말들은 지금 이도운의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대꾸하기조차 귀찮았고, 그저 천근만근 같은 몸을 끌고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바로 그때, 뒤따라오던 남자 동창의 아내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남자가 저지른 잘못을 왜 여자한테만 뒤집어씌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편의 날 선 호통이 떨어졌다.당사자가 아직 버젓이 앞에 있다는 경고였다.“손바닥 하나로 소리가 안 나긴 하겠지. 그런데 작정하고 짜놓은 판에 제대로 걸려들면 누구라도 못 빠져나오지 않겠어?”처음 말을 꺼냈던 남자가 납득이 안 간다는 듯, 실소를 터뜨리며 반박했다.“작정하고 짜놓은 판이라니?”이 말을 듣는 순간, 이도운이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고개를 홱 돌려 상대를 쏘아보았다.“방금 뭐라고 했어? 백하린이 판을 짜놓았다는 거야?”남자는 당황한 듯 주춤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백하린이 그 당시에 사람들을 들들 볶으면서 너에 대해 캐묻고 다녔거든. 솔직히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었지.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 굳이 뒤에서 몰래 조사하는 건... 딱 봐도 네 취향 파악해서 환심 사려는 작정 아니겠어?”역시 남자의 마음은 남자가 제일 잘 아는 법이다.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동조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하지만 이도운은 그들을 싸늘하게 쏘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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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9화

이를테면, 설산에서 함께 버텼던 사흘 밤낮의 기억을 꺼낼 때마다 백하린은 단 한 번도 공감을 보인 적이 없었다.그저 수줍어하는 척 서둘러 화제를 돌리며 그가 더는 추억을 들추지 못하게 입을 막곤 했다.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귀 뒤에 있던 붉은 점이 어느 순간 감쪽같이 사라졌다.“하하하...!”머릿속이 띵 해나더니, 이도운은 웃음을 터뜨렸다.웃음소리는 점점 커졌고,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까지 맺혔다.이도운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남자는 겁에 질려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으며 자리를 떴다.영문도 모른 채 구경만 하던 사람들도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뒤따라 부랴부랴 흩어졌다.남자 동창이 이도운에게 무슨 말이라도 더 건네려 했지만, 아내의 손에 강제로 끌려 나갔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민지는 멀어지는 뒷모습에 대고 눈을 흘겼다.저런 게 무슨 친구라고, 결정적인 순간엔 하나같이 도움도 안 되는걸!이도운이 다시 한번 휘청거리자, 이민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의 팔을 붙잡았다.“오빠, 왜 그래? 괜찮아?”“내가... 다 틀렸어.”이도운이 이민지를 바라보았다.붉게 젖은 눈시울과 대조적으로 입가에 걸린 기괴한 미소는 보는 이의 심장을 찢어놓을 만큼 처절했다.이민지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오빠 잘못 아니야. 이건 다 백하린이랑 강지현, 그 독한 여자들이 나쁜 거라고!”“아니, 내 잘못이야.”이도운이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낯빛은 시신처럼 창백했고, 뺨을 타고 흐른 눈물 한 방울이 입술 사이로 스며들었다.입 안 가득 번지는 지독한 쓴맛이 전신을 타고 퍼졌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도운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뒷좌석에 기댄 채 멍한 눈으로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풍경만 응시했다.할머니께 이런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아 동생을 부른 것이었기에, 차는 본가가 아닌 그의 개인 별장으로 향했다.강지현이 떠나고 백하린마저 곁에 없게 된 데다 이씨 가문에 풍파가 닥친 이후로 집에서 일하던 가사 도우미들은 모두 정리된 상태였다.본가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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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0화

기껏해야 든든한 뒷배 하나를 잃은 셈이었다.그보다 큰 문제는 이민지에 대한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솔직히 객관적인 외모도 중상위권에 머물렀고, 능력은 더더욱 논외였다.전형적인 온실 속 화초로 자라 학교를 졸업하고는 단 하루도 제 손으로 돈을 벌어본 적 없는 여자였다.아이러니하게도 결혼 후, 진태웅의 마음속에서 강지현에 대한 호감은 나날이 높아져 갔다.예쁜 외모에 뛰어난 능력, 거기다 현명한 내조까지 갖춘 여자.처음 그녀가 이씨 가문과 등 돌렸을 때만 해도 진태웅은 그저 흔한 투정쯤으로 여겼다.하지만 지금 보니 강지현은 사랑도 증오도 선명한, 강단 있는 여자였다.이런 사람은 무섭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남자의 정복욕을 자극하기 마련이다.지금 저토록 처절하게 후회하고 있는 이도운의 모습이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진태웅은 가끔 남몰래 가정해 보곤 했다.만약 그때 이런 여자가 자기 곁에 있었다면, 가문의 배경 따위는 상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집안 조건은 영원할 수 없지만, 무능한 여자는 평생 짐이 될 뿐이니까.“진태웅, 너 진짜 한 대 맞고 싶어?”이민지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누구보다 진태웅의 속내를 잘 알았으니까.그는 지독하리만치 영악한 남자였기에 이씨 가문이 위기에 처한 지금 자신을 예전처럼 대접해 줄 리 없었다.한때 이민지에게 결혼은 인생의 전부였다.행여나 이혼이라도 당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진태웅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매달렸다.하지만 아이를 낳고 수없이 부딪히며 싸우는 동안 그녀도 똑똑히 깨달았다.사랑이니 결혼이니 하는 것들은 결국 다 이익으로 얽힌 관계라는 사실을.남자는 다 똑같다.변하지 않는 남자는 없으며, 그나마 제 자리를 지키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섣부른 행동 뒤에 따를 혹독한 대가를 각인시키는 것뿐이다.이씨 가문에 문제가 생기자마자 이민지는 진태웅에게 마지막 패를 던졌다.그녀는 일찌감치 자신의 명의로 된 자산을 모두 정리해 둔 상태였다.당장 이혼 도장을 찍는다면 진태웅 재산의 절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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