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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hapter 381 - Chapter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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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1화

진태웅의 말에 이민지도 화가 조금은 누그러졌다.강지현을 괴롭히는 것은 고작 분풀이에 불과했다.이씨 가문이 재기해야만 그 천박한 년에게 제 분수가 어떤지 똑똑히 각인시켜 줄 것이다.남의 돈을 가로채고도 무사할 줄 알았나? 그러고도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아?강지현의 전화는 불통이었지만, 그나마 백하린과는 연락이 닿았다.집에 도착한 이민지는 곧바로 백하린에게 전화를 걸었다.받지 않으면 다시 걸고, 집요하게 통화를 시도한 끝에야 겨우 연결이 되었다.“별일 아니기만 해 봐.”통화가 연결되는 순간, 휴대폰 너머로 노기 섞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이민지는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렸다.“일이 있으니까 전화했겠죠? 설사 용건이 없더라도 우리 집 식구가 됐으면 내가 전화할 때 바로 받는 게 기본 아닌가? 말하는 본새하고는...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인지, 참.”수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고, 백하린은 혼자가 아닌 듯했다.하지만 이민지는 그녀의 사정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그저 백하린이 기분 나빠하는 모습에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백하린은 당장이라도 전화를 끊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말했다.“용건 있으면 빨리 얘기해. 질질 끌지 말고.”며칠 밤낮을 업무에 매달린 그녀는 지금도 회의 중이었다.당연히 이도운이 조급함을 견디지 못해 자신을 애타게 찾을 줄 알았다.하지만 그는 이혼을 설득하는 연락 몇 통을 끝으로 완전히 입을 닫아버렸다.어제 서이정에게 듣기로는, 이제 아예 그녀의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정말 이혼에 사활이라도 건 모양이었다.“우리 오빠 어젯밤에 클럽에서 싸움 나서 지금 돌봐줄 사람이 없어요. 대체 어디예요? 당장 가서 오빠부터 챙겨요!”이민지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그녀는 아직 백하린과 이도운이 이혼 문제로 다투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단지 백하린이 먼저 꼬리를 쳐서 오빠를 꼬드겼다는 말을 떠올리자, 다시금 울화가 치밀 뿐이었다.여섯 살이나 연상인 노처녀가 집안 어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빠와 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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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2화

더욱이 놀라운 점은 두 사람이 과거에 이미 마주친 적이 있다는 사실이었다.6개월 전, 백하린이 해원시에서 전시회를 관람할 때였다.당시 그녀는 취향이 겹치는 바람에 한 남성과 똑같은 그림을 점찍게 되었는데, 그 상대가 바로 서운혁이었다.작품은 보육원을 소재로 기발하면서도 파격적인 색채를 통해 아이들이 느끼는 고독을 극적으로 묘사했다.백하린이 독특한 미감에 매료되었다면, 서운혁의 이유는 전혀 달랐다.그때, 남자가 읊조리듯 내뱉은 말이 여전히 기억이 생생했다.얼굴조차 모르는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왠지 모르게 이 그림에 마음이 끌린다고.과거 보육원에 맡긴 여동생을 찾는 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었기에 이곳 해원시까지 찾아왔다고 했다.하지만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 거대한 도시에서 아무런 단서도 없이 사람을 찾는 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몇 번이나 헛걸음하며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던 서운혁은 친구의 전시회에서 이 그림을 마주하고 묘한 감회에 젖어 소장을 원했다.남자의 절절한 사연은 백하린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녀는 흔쾌히 그림을 양보했다.그런데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당시 그림을 양보했던 사람이 서경시 최대 에너지 기업 ‘해성 그룹’의 부회장이자, 명실상부한 최고의 명문가 자제였을 줄이야.서운혁의 집안 배경은 실로 대단했다.대대로 외교관을 배출한 서씨 가문은 3대째 관직을 이어오다 그의 아버지 세대에 이르러 사업가로 변신했다.하지만 이 또한 국가의 요청에 따라 신에너지와 과학 기술 분야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이러한 배경 덕분에 해성 그룹은 국가가 지분을 보유한 가족 경영 기업이 되었고, 서경시는 물론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백하린의 부모님 또한 연구소에서 퇴직한 후 줄곧 해성 그룹에서 근무해 온 터였다.마침 해성 그룹은 해원시 지사를 설립할 계획이었으나, 아직 구체적인 프로젝트는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백하린은 부모님의 인맥을 동원해서라도 이 기회를 거머쥘 생각이었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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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3화

“아니에요.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괜찮아요. 하린 씨 부모님께 내가 직접 말씀드릴게요. 어차피 한 가족인데, 돌아온 마당에 서로 마음 터놓고 얘기 못 할 게 뭐가 있겠어요?”서운혁의 말에 백하린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마치 그녀와 부모 사이의 해묵은 갈등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말투였다.“우리 집 사정을 알고 계셨나요?”서운혁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평판 조사는 거쳐야 하니까요. 형식적인 절차로 두 분을 뵙고 간단히 대화를 나눴을 뿐이에요. 별말씀은 안 하시더군요. 그저 철부지 딸이 집을 오래 떠나 있었다며, 하린 씨 채용 문제를 신중하게 고려해달라고만 하셨죠.”집안의 치부를 밖으로 드러낼 부모는 없기에 그들도 딸의 일을 떠들고 다니지는 않았을 터였다.하지만 아무리 말을 번지르르하게 포장한들 입장만으로 이미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었다.지난 세월 동안 백하린이 보여준 냉정함은 부모의 마음을 싸늘하게 식게 했다.백하린이 돌아와 화해를 청하자 일단 딸과 손자를 받아주긴 했지만, 어느 정도는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지금이야 이씨 가문에 쫓겨 돌아왔다지만, 며칠 뒤에 또다시 화해하고 자신들을 바보로 만들지도 모를 일이었다.그건 둘째치고, 회사에까지 피해를 주는 일은 결코 용납이 불가했다.부모의 진심을 확인한 백하린의 눈동자에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그녀는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저희 부모님이 워낙 엄격하신 편이라...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해요.”“집마다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는 법이죠. 내가 하린 씨라면, 부모님이 곁에 계시는 이 시간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길 것 같군요.”서운혁은 백하린을 바라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뱉었다.여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인 그에게 가족이란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였다.“부회장님께서 신경 써 주신 만큼 앞으로 부모님과 잘 지내보도록 노력할게요.”백하린이 고분고분하게 대답했다.“장소 보내주시면 시간 맞춰 가겠습니다.”서운혁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가 보기에 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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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화

심지어 아내를 데려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이민지는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집안 상황이 이 지경인데 다짜고짜 명함부터 들이밀다니, 대놓고 무시당하려고 작정한 꼴 아닌가.“들어가면 좌석 구역이 나뉘어 있잖아. 나도 오죽 답답하면 그랬겠어.”이민지가 멋쩍은 표정으로 변명을 늘어놓았다.하지만 눈앞의 수모에도 그녀는 결코 낙담하지 않았다. 설령 자신이 실패하더라도 엄마와 할머니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으니까.문수정은 왕년에 사교계를 주름잡던 유명 인사였다.지난 몇 년간 집에서 놀음이나 즐기며 한가로이 지냈다고는 하지만, 사적인 친분을 쌓아온 사모님들의 남편들은 여전히 업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력가들이다.사람들이 이씨 가문은 꺼릴지언정 그녀의 면전에서까지 박대하지는 못할 터였다.권미숙은 집안 체면을 세워줄 더 거대한 버팀목이다.과거 이철호가 사업의 기틀을 닦을 당시, 그는 해원시의 수많은 투자자와 교류하며 덕을 쌓았다.워낙 성품이 너그럽고, 보답을 바라지 않는 선의를 베푼 덕에 업계 내 명망이 자자했다.그가 남긴 두터운 유산 덕분에 권미숙은 그 어떤 거물급 투자자와도 대등하게 대화할 위치에 있다....이민지가 행사장 밖을 초조하게 서성거리던 그때, 의전용 롤스로이스 팬텀 한 대가 미끄러지듯 시야로 들어왔다.압도적인 전장을 자랑하는 차체는 마치 움직이는 검은 궁전처럼 웅장했고, 그 위용 앞에 주변의 모든 차량은 순식간에 고물차처럼 초라해졌다.“세상에, 대체 어떤 거물이길래 저런 차를?”흥분한 이민지가 다급히 진태웅의 손을 끌어당겼다.진태웅 역시 시선을 옮겼다.차가 멈춰 서자, 사람이 내리기도 전에 수많은 의전 요원과 접대 인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이 정도로 대단한 스케일라니.진태웅은 미간을 찌푸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설마 주씨 가문인가?”이번 컨퍼런스에는 내로라하는 업계 인사들과 각 지역의 실력자들이 총출동했지만, 해원시에서 진정한 ‘거물’이라 불릴만한 존재는 주씨 가문뿐이었다.“주씨 가문? 설마 그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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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5화

여자의 모습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지만, 눈썰미가 워낙 좋아 잘못 보았을 리 없었다.“강지현? 그 여자가 여기 있다고?”진태웅은 영문도 모른 채 이민지가 가리킨 방향을 보았으나, 그곳엔 보안 요원들뿐이었다.“아니! 방금 그 차에서 내린 사람, 분명 강지현이었어.”이민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진태웅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복수니 뭐니 하더니 아주 눈이 돌았네. 강지현이 여기 왔을 리도 없지만, 왔다 한들 저런 대단한 위세를 떨며 나타났겠어? 네가 헛것을 본 거야.”남편이 핀잔을 주자 이민지도 잠시 긴가민가했다.하지만 곧바로 몸을 돌려 방명록 작성 구역으로 달려간 그녀는 두 눈을 의심했다.강지현이 정말로 경호원과 수행원들을 거느린 채 서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강지현!”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상황에서 이민지는 목놓아 외쳤다.강지현은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다.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드는 순간, 인파 너머 맞은편에 서 있는 이민지를 발견했다.강지현의 이름을 대놓고 부르는 사람을 보자, 곁에 있던 수행원과 경호원들은 당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들은 즉시 공손하게 물었다.“아시는 분입니까?”강지현의 눈동자에 잠시 의아함이 스쳤으나, 이내 허리를 곧게 펴고 이민지와 정면으로 시선을 맞췄다.그때 진태웅이 급히 쫓아와 이민지의 어깨를 낚아채듯 붙잡았다.“민지야, 제발 그만 좀 해. 여기가 어디라고 소리를 질러...”“잘 봐, 저 여자 강지현이라니까?”이민지는 진태웅의 말을 단번에 끊어냈다.그제야 앞을 확인한 진태웅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정말로 강지현이었다.차갑고도 고혹적인 미모는 예나 지금이나 멀리서도 한눈에 띌 만큼 독보적이었다.하지만 그녀를 감싼 분위기는 이씨 가문에 머물던 시절과는 이미 판이해졌다.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새로 태어난 듯한 모습이었다.단순히 차림새만 바뀐 게 아니라, 사람을 압도하는 고귀한 분위기마저 풍기고 있었다.낯설면서도 익숙한 모습에 당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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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6화

진태웅과 이민지는 그런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때 강지현이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우아한 자태로 두 사람을 향해 걸어왔다.“지현 씨, 오해하지 마요. 민지가 잠깐 감정이 격해진 것뿐이에요. 사실 우리도 할 말이...”진태웅은 어떻게든 분위기를 수습해 서로 한발씩 물러날 명분을 만들어주려 했다. 어쨌든 그는 이씨 가문 사람이 아니었고 강지현이 지금 회사를 손에 넣고 대표 자리에 오른 것도 결국 그녀의 능력 덕분이었다.그는 이 원한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그저 한발 물러서서 좋은 사람인 척, 무사히 빠져나가고 싶을 뿐이었다.하지만 강지현이 눈짓 한 번 하자, 진태웅도 곧바로 뒤에서 나타난 누군가에게 양손을 붙잡혔다. 입까지 틀어막힌 탓에 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이민지,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지금 나한테 욕한 거야?”강지현은 이민지 앞에 멈춰 서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이민지는 경호원 세 명에게 억지로 눌린 채 입까지 막혀 있었다. 강지현이 말을 마치고 턱을 까딱하자, 이민지의 입을 막고 있던 사람이 손을 풀었다.“그래! 네 욕한 거 맞아. 이 나쁜 년아!”이민지는 강지현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곧바로 이를 악물고 또렷하게 내뱉었다. 목소리도 유난히 컸다.하지만 강지현은 마치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했다. 이민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칼날처럼 매서운 손바닥이 그대로 그녀의 뺨을 갈겼다.이민지는 극심한 통증에 눈앞이 새까매졌다. 순식간에 입안 가득 비릿한 피 맛이 퍼졌다. 경호원들이 그녀의 양팔을 억세게 붙잡고 있어 피할 틈조차 없었다.강지현은 가볍게 손목을 돌렸다. 그녀는 일부러 반지 두 개를 낀 손으로 때린 것이었다.큼직한 다이아몬드는 흉기나 다름없었다. 강지현은 손을 반쯤 비틀어 다이아몬드가 손가락 안쪽에 걸리도록 쥔 채, 그대로 후려친 것이었다.진태웅은 강지현이 이토록 거칠게 손을 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하지만 그 역시 꼼짝할 수 없었다. 그제야 그는 주변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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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7화

옆에 있던 비서가 곧바로 대답했다.“대표님께서 한마디만 하시면 당연히 아무도 나서지 않을 겁니다.”“무엇보다 대표님이야말로 주씨 가문의 유일한 따님이시자, 주상 그룹의 유일한 상속자이시니까요.”비서는 제 주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일부러 한마디 한마디 또렷하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진태웅은 순간 숨이 턱 막혔다.설마 강지현이 바로 그 주상 그룹의, 천억대 유산을 물려받은 그 재벌가 따님이라는 건가?이민지도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강지현은 보육원 출신의 고아일 뿐이었다. 그런 여자가 무슨 재벌가의 딸이란 말인가.허풍도 정도가 있지. 사람 몇 명을 데려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시킨다고 해서 자신들이 겁먹을 줄 아는 건가?“...”하지만 이민지는 입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온몸으로 거칠게 저항할 뿐이었다.“이민지, 이제 내 신분을 알았으면 똑똑히 기억해 둬. 내가 이경을 파산시키는 정도로 끝내준 건, 아주 자비로운 처분이었다는 걸.”강지현은 차갑게 말을 이었다.“돌아가서 네 오빠한테 전해. 내 물건들 잘 준비해 두라고. 조만간 사람을 보내 가져갈 테니까.”그 말을 끝으로 강지현은 먼저 몸을 돌려 떠났다.한때 그녀는 이도운을 뼛속 깊이 증오했다. 한 번의 복수로는 도저히 성에 차지 않았다.그가 끝없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길 바랐다. 사업과 명예, 사랑과 가족이 눈앞에서 하나씩 무너져 사라지는 모습을 직접 보게 만들고 싶었다.이제 이경 그룹은 껍데기만 남았고 이씨 가문은 파산 직전이었다. 이도운과 백하린 역시 해원시에서 손가락질받는 신세가 되었다. 그녀의 복수는 이미 끝난 셈이었다.하지만 마음속에는 더 이상 복수의 쾌감이 남아 있지 않았다. 오히려 지겨움만 느껴질 뿐이었다. 이씨 가문도, 이도운도.그들은 애초에 그럴 가치조차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녀의 시간을 단 1분도 낭비하게 만들 자격이 없었다.앞으로 그들이 죽든 살든,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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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8화

그는 곧바로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쯤이면 상대도 이미 안쪽 행사장에 들어갔을 터였다. 주씨 가문 딸이 참석했다면 당연히 소개가 있었을 테니, 물어보면 알 일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연결됐다.이민지는 긴장한 듯 손에 땀을 쥔 채 먼저 손을 뻗어 스피커폰을 켰다.“대표님.”진태웅이 말을 꺼내자마자, 상대가 다짜고짜 따져 물었다.“자네 어디야? 아직도 안 온 거야? 오늘 회의 중요하다고, 늦지 말라고 했잖아!”“아... 제가 오는 길에 작은 사고가 좀 있어서, 아마 못 갈 것 같습니다.”혹시 몰라 진태웅은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만에 하나 강지현이 정말 주상 그룹 딸이라면 상사가 그 사실을 아는 순간 가장 먼저 그를 잘라낼 게 뻔했다.“자네도 참, 모처럼 견문 넓힐 좋은 기회였는데 하필 이런 때 일을 그르치나!”상대는 한마디 타박하고는 전화를 끊으려 했다.주변은 꽤 소란스러웠다. 거물들이 하나둘 입장하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인사를 나누려고 그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그 역시 서둘러 그 흐름에 끼어야 했다.“아, 대표님. 저, 저 그 주씨 가문 따님이 좀 궁금해서 그런데요. 혹시 오셨습니까?”진태웅은 더는 돌려 말할 여유도 없이 곧장 물었다.“자네는 오지도 않았으면서 그런 건 왜 물어?”전화 너머의 상대는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행사장 안이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중앙 구역으로 늘씬한 실루엣의 여인이 들어서고 있었다.그녀의 주변은 경호원들이 빈틈없이 둘러싸고 있었고, 향하는 방향은 VIP석 가장 앞자리 쪽이었다.옆에 있던 누군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분이 주씨 가문의 따님입니다. 현재 주상 그룹의 대표이기도 하고요.”“저렇게 젊다고?”한 대표는 목을 길게 빼고 몇 걸음 앞으로 나섰지만, 겨우 옆모습 일부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더 앞으로 가려던 순간, 질서를 유지하던 보안요원들이 그를 막아섰다. 함부로 이동하지 말고 먼저 착석하라는 뜻이었다.진태웅은 전화 너머로 들려온 말을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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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화

서운혁이 떠나자, 백하린의 얼굴도 곧 차갑게 가라앉았다.문수정은 멀리서부터 백하린을 발견하고는 서둘러 그녀를 쫓아온 참이었다.애초에 이민지를 믿는 게 아니었다. 문 앞까지 마중은 나왔지만, 정작 보안요원들이 그들의 입장을 막아섰다. 이민지와 진태웅의 참석 자격이 이미 취소됐다는 이유였다.이유도 대충 들었다. 조금 전 밖에서 강지현과 충돌이 있었다고 했다.강지현이 이런 자리에 오는 것 자체는 그리 이상할 것도 없었다. 지금은 회사의 핵심 프로젝트를 빼돌려 자기 회사까지 차린 상태였으니, 이 안에 섞여 들어올 정도의 자본은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현과 충돌이 있었다고 해서 왜 자신들까지 막는단 말인가? 사람을 봐가며 대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들이 만만해 보인다는 뜻 아닌가.문수정이 당장이라도 소란을 피우려던 찰나, 눈썰미 좋은 이민지가 백하린을 발견했다.백하린이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몇 사람은 곧바로 그녀를 불렀다.“여긴 어떻게 오셨어요?”백하린은 빠른 걸음으로 그들 앞에 다가가며 무의식적으로 이도운의 모습을 찾았다.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이민지는 입가에 상처를 달고 있었다. 백하린을 본 그녀에게서는 예전처럼 날 선 기세가 느껴지지 않았다.“태웅 씨가 우리 데리고 왔어. 백하린, 너는 집에서 우리 오빠나 돌보고 있어야지, 여긴 왜 왔어?”이민지의 말을 들은 권미숙이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도운이가 왜? 무슨 일 있었니?”이민지도 사실 이도운을 부르려 했다. 하지만 몇 번을 걸어도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다친 몸으로 쉬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이민지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그녀가 권미숙과 문수정에게 말한 건 이도운이 다른 일로 바빠 오늘은 오지 못한다는 정도였다.그래서 권미숙은 당연히 이도운이 백하린과 이혼 문제를 협의하러 간 줄로만 알고 있었다.“오빠가... 어젯밤 술 마시러 갔다가 사람들한테 맞았어요.”더는 숨길 수 없게 된 이민지가 결국 사실대로 털어놓았다.권미숙과 문수정의 얼굴이 동시에 변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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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화

보아하니 백하린에게 드디어 운이 트인 모양이었다. 이렇게 금세 서경 자본의 지원까지 받게 되다니.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씨 가문이 해성의 배경을 등에 업고 빠르게 재기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이민지는 해성이 어떤 회사인지 잘 몰랐지만, 백하린의 말이 거짓은 아닌 듯해 보이자 드물게 입을 다물었다.“언니, 참석할 수 있으면 얼른 우리도 데리고 들어가요. 태웅 씨 상사도 안에 있단 말이에요.”“...”백하린은 입술을 살짝 다물었을 뿐, 이민지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잠시 후, 그녀는 손목시계를 힐끗 보았다.“저는 가봐야 해요. 안에서 친구가 기다리고 있거든요. 여러분이 오실 줄은 미리 몰랐고, 제가 모시고 들어가기도 곤란해요.”그 말을 끝으로 백하린은 몸을 돌려 가려 했다.진태웅은 마음이 급해졌지만 지금 백하린이 권미숙 일행에게 일부러 얼굴을 굳히고 있다는 것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이민지가 다급히 그녀를 불러 세웠다.“언니, 이제 와서 우릴 모르는 척하겠다는 거예요?”백하린이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권미숙을 바라보았다.“먼저 모르는 척한 건 이씨 가문 사람들 아니었나요?”그리고 차갑게 덧붙였다.“부탁을 하려면 부탁하는 태도 정도는 갖추셔야죠.”문수정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는 몰래 권미숙의 눈치를 살폈다.백하린이 이윤후를 데리고 집을 나간 일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문수정은 요 며칠 이규진을 돌보느라 다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만, 그래도 사용인들의 입을 통해 이도운이 백하린에게 이혼을 요구했다는 사실은 들었다.그 소식을 듣고 그녀는 속으로 반기기까지 했다.백하린이 계속 며느리 노릇을 한다면 자신은 삼십 년은 일찍 늙어 죽을 것 같았으니까.그런데 지금 보니, 이혼은 이도운이 먼저 꺼낸 게 아니라 권미숙이 나서서 압박한 모양이었다.강지현이 이씨 가문에서 한바탕 소동을 벌인 뒤로, 문수정도 감히 백하린과 정면으로 맞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여자가 독해지면 어디서 어떻게 당할지 모르는 법이었다.백하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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