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apítulo 171 - Capítulo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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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화

해인의 가느다란 허리가 불쑥 끌려갔다. 유호는 해인에게 반응할 틈조차 주지 않고, 그대로 해인을 자기 무릎 위에 앉혀 버렸다.해인은 몸이 갑자기 허공으로 들리는 느낌과 함께 어느새 유호의 팔 안에 안겨 있었다.유호가 눈을 내리깔자 속눈썹이 눈 밑에 살짝 그림자를 드리웠다.해인이 본 유호의 검은 눈동자는 밤안개를 품은 것처럼 아득하고 묘한 느낌이었다. 자꾸만 그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눈이었다.두 사람 시선이 맞물렸다. 유호 눈에는 진지한 기색이 서려 있었지만, 해인은 조금 전 유호가 내뱉은 말 때문에 뺨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유호의 손이 해인의 드레스 자락에 닿자, 해인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유호가 못마땅한 듯 말했다.“그 옷 누구한테 보여 주려고 그렇게 입은 건데?”해인이 태겸과 커플룩 차림으로 나란히 서 있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유호는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유호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차갑게 말했다.“벗어.”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호의 손은 이미 해인 드레스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해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하세요? 변태처럼 굴려고요?”그 말과 함께 해인 머릿속에는 어젯밤 장면이 불쑥 떠올랐다.침대 위로 거칠게 내던져졌던 일. 캄캄한 밤, 유호는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짐승처럼 해인을 거세게 몰아붙였다.해인이 멍하니 굳어 있던 사이에 유호의 손은 이미 드레스 지퍼에 닿아 있었다.스르륵-드레스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더니, 해인의 희고 가는 발목 언저리에 툭 떨어졌다. 해인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자기도 모르게 몸을 감싸 안았다. 등 쪽으로 도드라진 날개뼈가 고운 곡선을 만들었다.그런데 마음속에서는 수치심과 분한 감정이 점점 더 짙어졌다.다행히 다음 장면은 해인이 상상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유호는 기다란 담요를 꺼내 해인의 몸을 빈틈없이 감쌌다.하지만 그 보드랍고 따뜻한 감촉은 오래가지 못했다.곧이어 유호는 연고를 꺼냈다. 한 손으로 해인의 가는 발목을 붙잡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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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유호의 숨결이 목덜미에 닿았다. 뜨거운 기운이 스치자, 해인은 본능처럼 고개를 살짝 돌리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유호가 해인을 안은 채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단지를 순찰하던 경비원이 맞은편에서 걸어왔다.경비원은 손전등을 이쪽으로 한번 비췄다.해인은 얼른 얼굴을 유호의 가슴팍에 파묻었다.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밤중에 옷도 제대로 못 갖춰 입은 채, 이런 식으로 안겨서 들어오다니.‘아, 너무 창피해... 진짜 못 살겠다.’경비원이 먼저 유호에게 인사를 건넸다.“한 대표님.”“네.”경비원이 어색하게 시선을 내리깔았다.“이건... 아, 저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해인은 속으로 기가 막혔다.‘무슨 큰 오해를 하고 계신 거야?’‘경비 업무나 잘 볼 것이지, 왜 혼자 멋대로 상상해?’해인은 유호의 셔츠 단추를 손끝으로 꼭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눈빛으로 얼른 가자는 뜻을 보냈다.‘빨리 가요. 진짜 이러다 얼굴 못 들고 살겠어요.’그런데 유호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면서 조용히 웃었다.“아내랑 막 결혼해서요. 아직 조절이 잘 안 됩니다.”그 말을 하며 유호는 품에 안긴 해인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담요 사이로 해인의 곧고 흰 다리가 드러나 있었다. 두 다리는 허공에 들려 있었고, 맨살 위로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런데도 하이힐은 발끝에 그대로 걸려 있어서 더 민망한 장면이 되어 버렸다.나이 지긋한 경비원조차 귓불이 붉어졌다.이건 자기가 보고 있어도 되는 장면이 아니라는 듯, 경비원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유호의 말에 얼른 맞장구를 쳤다.“아, 예, 예. 젊은 분들이 뭐... 그럴 수 있죠. 그럼요.”해인은 말도 못 하고 유호 품 안에서 손끝만 움찔거렸다.집에 도착하자마자 해인은 하이힐부터 거칠게 벗어 던졌다. 그러고는 곧장 계단 쪽으로 뛰어올라갔다. 온몸이 분홍빛으로 달아오른 상태였다.해인이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었다고 해도, 유호가 이렇게까지 자기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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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침실 안. 해인은 씻기를 마치고 머리까지 다 말렸다.잠옷으로 갈아입은 해인이 욕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유호의 모습이 보였다. 유호 역시 잠옷 차림이었다.유호가 자기 방까지 올라와 있을 줄은 몰랐던 탓에 해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해인은 화장대 앞으로 걸어가 스킨케어를 얼굴에 바르기 시작했다. 목소리에는 별다른 감정이 실리지 않았다.“잠이 안 와서 올라왔어요?”유호가 웃는 듯 아닌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너 뭐 잊은 거 없어?”“네? 뭐를요?”“우리 약속.” 유호의 시선이 해인의 매끈한 등 위에 머물렀다. 갓 씻고 나온 해인의 몸에서는 은은하고 달콤한 바디워시 향기가 났다. 꼭 시트러스 계열의 향기 같았다.입술을 꾹 다물고 있던 유호의 울대가 천천히 움직였다.“같은 방에서 자기로 한 거, 약속했잖아.”해인은 거울 너머로 유호를 봤다. 그저 담담한 눈길이었다.“너무 늦었어요. 지금 옮기기 귀찮으니까 며칠 뒤에 할게요.”‘어제는 베개만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않았어?’유호는 곧장 말을 받았다.“네가 옮길 필요 없어. 내가 올라오면 되니까.”몇 초쯤 지났는데도 해인이 아무 말이 없자, 유호는 괜히 덧붙였다.“원래 남자 물건이 더 적잖아. 네가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내가 움직이는 게 편해.”해인은 스킨케어를 마친 뒤 느긋하게 빗을 들고 머리카락을 빗어 내렸다.유호의 시선은 해인의 머리끝에서 하얀 목덜미로 천천히 내려갔다. 거울 너머로 보고 있는데도, 해인의 이목구비에서는 흠잡을 곳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유호의 울대가 다시 한번 움직였다. 이유 없이 몸 안이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그제서야 해인이 눈을 들어 말했다.“그래요.”그 말에 유호는 속으로 안도했다.“그럼 짐은 내일 옮기고, 오늘은 일단 자자.”말을 마친 유호가 이불을 제치고 침대에 누우려고 했다. 그런데 해인이 눈을 내리깐 채 불쑥 말했다.“누가 바닥에서 잘지 정하죠.”유호는 눈을 깜빡였다.“바닥이라니?”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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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아마도 그동안 늘 침대에서 자는 데 익숙해져서였을까? 한밤중이 지나도록 유호는 바닥 위에서 몇 번이나 몸을 뒤척였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유호는 천장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멍하니 누워 있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나 지금 좀 웃긴 거 아냐?’멀쩡한 큰 침대를 두고, 뭐 하러 굳이 해인의 방에 올라와서 바닥에서 자는 건지 유호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게다가 한 번 이렇게 되기 시작하면, 앞으로도 이 방에서는 계속 바닥에서 자게 되는 것 아닌가 싶었다.어차피 잠도 오지 않아서 유호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대충 화면을 넘겼다.대현에게서 메시지가 두 개 와 있었다.[친구야, 오늘 너 진짜 개멋있더라.][언제 제수씨 데리고 와. 우리 친구들한테도 제대로 소개 좀 해.]유호는 핸드폰을 쥔 채, 원래는 ‘며칠 안에’라고 답하려 했다.그런데 막상 답을 하려다가 멈췄다. 자기가 어디서 잘지조차 말할 권한이 없는 처지라는 생각이 들자, 방금 썼던 문장을 전부 지워 버렸다.해인의 생각부터 먼저 물어봐야 했다....다음 날 아침.유호가 눈을 떴을 때는 몸이 여기저기 뻐근했다. 목까지 살짝 결린 느낌이었다. 유호는 굳은 목을 한 번 움직여 풀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침대 쪽을 올려다봤다.침대 위는 이미 텅 비어 있었다.유호는 다시 아래층 자기 방으로 내려가 옷을 갈아입었다. 정장을 챙겨 입고 아래로 내려왔을 때, 해인은 벌써 아침을 먹고 있었다.유호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해인 쪽으로 다가갔다.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해인이 고개를 들었다.몸에 잘 맞는 수트 아래로 유호의 단단한 근육선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넥타이를 매는 손짓이 이상하게 해인의 시선을 끌었다. 절제된 분위기 속에 묘한 매력이 배어 있었다.해인이 먼저 유호에게 인사를 건넸다.“좋은 아침이에요.”유호의 시선이 해인의 콧대에서 분홍빛 입술로 천천히 내려갔다. 입가에는 가벼운 웃음이 걸려 있었다.“너한테 상의할 게 있어.”“혹시 바닥에서 자는 게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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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해인은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유호는 해인에게 한바탕 당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방식이 싫지 않았다.마치 따귀를 맞고도 기분이 묘하게 풀리는 것 같았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유호는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휘둘려 본 적이 없었다.출근 시간이 빠듯했던 탓에 해인은 서둘러 집을 나섰다.유호도 곧바로 뒤따라 나와서 롤스로이스를 해인 앞에 세웠다.“타. 데려다줄게.”해인은 거절하지 않았다. 조수석 문을 열고 몸을 숙여 차에 올랐다.유호는 핸들을 잡은 채 고개를 돌려 해인을 가볍게 바라봤다.“차는 왜 안 사? 무슨 브랜드 좋아하는데. 내가 사줄까?”해인 정도 되는 집안의 아가씨가 자기 차 한 대 정도 있는 건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해인은 택시를 타는 쪽이 더 익숙해 보였다.유호가 다시 물었다.“아니면 면허가 없어? 원하면 기사 붙여 줄 수도 있어.”해인은 손을 뻗어 창문을 반쯤 내렸다. 아침 공기가 살짝 스며들었다.왜 직접 운전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해인에게는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와 오빠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일은 해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오래도록 상처로 남아 있었다.게다가 해인은 정말 면허도 없었다.해인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목소리에는 맑고 달콤한 느낌이 어려 있었다.“유호 씨가 제 남편이잖아요. 설마 저 운전해 주기 싫으신 건 아니죠?”그 말을 듣자 유호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이제야 내가 남편인 게 기억나나?’‘어젯밤 침대에서 못 자게 할 때는 그런 말이 머릿속에 하나도 없었던 것 같더니만.’유호는 혀끝으로 볼 안쪽을 가볍게 눌렀다. 옆을 돌아보니 해인의 표정은 더없이 순수하고 무해했다.유호는 자기가 더 깊이 붙잡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기는 쪽에 가까웠다.“그래. 내 아내인데 내가 직접 데려다줘야지.”해인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면서 꼭 유호를 배려하는 사람처럼 말했다.“그래도 너무 번거로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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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해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유호는 정말 연애에 능숙한 사람 같았다. 보통 여자들은 저런 식으로 다가오면 아마 정신을 못 차릴지도 몰랐다.다만 해인은 태겸과 헤어진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서, 마음은 여전히 상처를 회복하는 중이었다. 스스로를 지키려는 본능 때문인지, 지금은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는 편이었다.두 사람이 겨우 떨어졌을 때까지도... 해인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가 눈에 핏발을 세운 채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태겸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집에 누워 몇 번이고 뒤척였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해인의 모습만 가득했다. 웃는 얼굴과 말투, 그리고 눈길도 자꾸 떠올랐다.연회장에서 벌어진 일은 태겸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밤새도록 태겸의 핸드폰은 끊임없이 울렸다. 전부 주변 사람들이었다. 어젯밤 그 일에 대해 묻는 연락뿐이었다.해인이 어떻게 유호와 엮일 수 있냐는 말이 대부분이었다.놀란 건 태겸만이 아니었다. 친구들 역시 태겸 못지않게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예전의 해인과 태겸은 어디를 가도 늘 붙어 다녔다. 항상 둘이 함께였고, 태겸 주변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해인을 제수씨라고 불렀다.그런데 갑자기 유호와 사귄다, 결혼했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 태겸은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 하룻밤 사이에 태겸은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되어 버렸다.계속되는 질문에 신경이 곤두선 태겸은 결국 핸드폰 전원을 꺼 버렸다.해인이 회사를 옮겼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태겸은 날이 밝기도 전에 와세라 건물 아래로 나왔다. 해인을 직접 만나서 유호와 대체 무슨 사이인지 똑똑히 확인하고 싶었다.그런데 그렇게 오래 기다린 끝에 마주한 장면이 고작 이것이었다.해인이 유호의 차에서 내리자 태겸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예전에는 태겸이 해인을 HJ그룹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해도 해인은 늘 사양했다. 그녀는 혼자 조용히 다니고 싶다고 했고, 괜히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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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화

태겸은 몸을 일으켜 세웠지만, 시야 끝으로 사라져 가는 롤스로이스의 후미등만 볼 수 있었다.태겸은 발끝으로 바닥의 자갈을 툭 건드렸다. 가슴 한쪽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거친 짜증이 들끓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정하영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고 대표님, 아직 회사에 안 들어오셨어요? 큰일 났어요. 빨리 돌아와서 확인하셔야 해요!]원래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던 태겸은 그 말을 듣자마자 미간을 깊게 좁히며 말했다.“뭘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떨어? 대체 무슨 일인데?”정하영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대표이사실로 사람이 찾아왔는데요, YD그룹 주인이 바뀌었다고 해요. 고 대표님이... 해임되실 수도 있다고요.]태겸은 그제야 뭔가를 알아차린 듯 두 눈을 크게 떴다.“주인이 바뀌다니? 누구한테 넘어갔다는 거야?”정하영이 대답했다.[성은 한 씨예요. 고 대표님도 아는 분이요.]태겸의 가슴이 거칠게 오르내렸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얼굴에 선명히 번졌다.“한유호?”[네. 맞아요.]‘이게 말이 돼?’태겸은 YD그룹에서 꼬박 7년을 버텼다. 그 7년 동안 YD그룹을 지금의 자리까지 끌어올렸다.지금의 YD그룹이 있기까지 그 공의 상당 부분은 태겸에게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해임이라니. 태겸은 YD그룹이 가장 힘들던 때 회사를 떠맡았다. 이제 막 제대로 궤도에 올려놓았는데 물러나라니, 이건 일이 끝나자마자 사람부터 내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해인이 이런 짓을 했을 리 없어. 분명 한유호 짓이야.’‘맞아, 한유호가 해인을 부추긴 거야.’그 생각에 닿자 태겸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유호가 해인에게 다가간 것 자체가 목적을 품고 있었는지도 몰랐다.‘아무 접점도 없던 두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알게 되었을까?’‘한유호는 YD그룹을 노렸고, 해인은 한유호에게 속은 거야.’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태겸의 속은 조금 가라앉았다. 적어도 그 사실은 두 사람 사이에 진심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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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회사는 저희 사모님 회사입니다. 고 대표님은 잘해 봐야 고액 연봉 받는 전문경영인일 뿐입니다.”“회장님께서 더는 고 대표님을 쓰고 싶지 않으시면 나가셔야 합니다. 여기 버티고 앉아 계셔 봐야 소용도 없고, 소문까지 나면 모양만 더 빠집니다.”태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고작 고액 연봉 받는 직원이라고?’‘거기다 내가 여기 눌러앉아 버티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다니.’“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주헌은 입가에 한 치 흐트러짐 없는 직업적인 미소를 걸고 있었다.그런데 입에서 나오는 말은 사람 속을 뒤집어 놓기 충분했다.“이쪽에서 이미 인사팀하고 법무팀에 자문을 받아 둔 상태입니다. 고 대표님 연봉은 2억 4천만 원, 월급은 2천만 원이고, YD그룹에서 근무하신 기간은 딱 7년입니다.”“관련 규정상 회사 측에서 먼저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경우에는, 근무 기간의 두 배에 해당하는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습니다. 계산하면 33억 6천만 원입니다.”주헌은 손목시계를 한 번 내려다봤다.“지금쯤이면 재무팀에서 이미 고 대표님 통장으로 입금했을 겁니다. 확인해 보시고, 이상이 없으면 이 계약 해지 합의서에 서명만 해 주시면 됩니다.”그 말이 끝나자마자 태겸의 핸드폰이 울렸다.태겸이 곁눈질로 화면을 확인했다. 입금 알림이 아니고 뭐겠는가?태겸이 책정한 연봉 자체는 높지 않았다. 연봉은 2억 4천만 원에 불과했다.하지만 연말이 되면 거액의 성과급과 배당이 따로 붙었다. 적어도 50억 원 이상은 챙길 수 있었다.태겸은 냉소를 흘렸다.“33억 6천만 원 주고 저를 내보내겠다고요? 저를 거지 취급이라도 하시는 겁니까? 지금 누구를 모욕하는 겁니까?”주헌은 태도 하나 바꾸지 않았다.“돈이 적다고 느끼시는 겁니까? 하지만 법에 정해진 기준이 그렇습니다.”태겸은 더 이상 주헌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태겸은 경비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뭘 멍하니 서 계십니까? 당장 이 사람들 내보내세요.”경비원들이 앞으로 움직이려고 했다.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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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화

해인은 새 회사에서 반나절 넘게 바쁘게 움직였다.적응하는 건 생각보다 괜찮은 편이었다.와세라의 전체적인 업무 분위기는 좋았다. 새로 내놓은 제품의 판매량도 인터넷에 퍼진 해인의 악성 루머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다.요즘 소비자들은 점점 더 냉정해지고 있었다.자동차가 좋은지 아닌지는 직접 타 보고 느껴서 판단하는 것이지, 여론 몇 줄에 휘둘려서 결정하는 게 아니다.해인은 하루 종일 서류를 들여다보며 회사 온라인 제품군과 운영 절차를 하나씩 익혔다.퇴근 시간이 가까워졌을 무렵,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해인아, 바쁘니? 저녁 먹으러 집에 올래?]고민건에게서 온 전화였다.해인은 잠시 멈칫했다.점심때 유호에게 문자가 왔었다. 유호가 이미 YD그룹 쪽에 손을 썼다고 했다. 해인은 태겸이 회사를 떠났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해인이 아는 태겸이라면, 절대로 이대로 물러설 사람이 아니었다.YD그룹은 태겸이 오랜 세월 공들여 키운 곳이기도 했다.이런 때에 고민건이 전화를 걸어왔다면, 아마 그 일과 무관하지 않을 터였다.예주 문제로 한동안 고씨 가문 부자 사이는 꽤 틀어져 있었다.심지어 고민건이 태겸을 더는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까지 꺼냈을 정도였다.그래도 태겸이 예주와 정리를 끝냈다면, 고민건 역시 정말로 친아들을 내칠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하나뿐인 아들이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핏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 법이었다.해인은 잠시 말이 없었다.태겸과 해인 사이에 어떤 원한과 감정이 얽혀 있든, 고 회장은 해인에게 지난 세월 나쁘지 않게 대해 줬다.무엇보다 해인은 고 회장 부부 손에서 자라다시피 했다.고민건이 보자고 하면, 해인도 가서 안부를 살피는 게 도리였다.어떻게 보면 고민건은 해인에게 반쯤은 친정의 어른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퇴근 시간이 되자 해인은 택시를 타고 고씨 저택으로 향했다.해인이 온다는 말을 들은 이소정은 주방에서 직접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그런데 해인이 현관 안으로 들어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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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해인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 태겸은 곧장 걸음을 재촉해 거실 소파에 앉았다.아마 해인이 오기 전에 고민건이 이미 태겸을 한차례 다잡아 놓은 듯했다.그래서인지 지금 태겸은 한결 얌전해져 있었다. 해인을 바라보는 눈길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지나친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방금 고민건이 던진 질문은 태겸이 가장 듣고 싶어 하던 말이기도 했다.태겸은 해인의 대답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숨소리마저 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어제 이미 사람들 앞에서 유호와의 관계를 드러낸 만큼, 해인은 숨기지 않고 말했다.“나 한유호 씨하고 결혼했어. 법적으로도 이미 부부 관계야.”다만 해인은 굳이 유호와의 결혼이 계약 결혼이라는 말까지 꺼내지는 않았다.그 말을 듣자 태겸은 숨이 탁 막히는 듯했다.태겸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걔가 너 꼬드긴 거지? 맞지?”태겸의 감정은 단번에 들끓었다. 눈가도 벌써 붉게 젖어 들고 있었다.“해인아, 너희 둘은 언제 알게 됐어?”해인은 있는 그대로 답했다.“얼마 안 됐어.”태겸의 목소리가 갑자기 몇 톤이나 높아졌다.“얼마 안 됐는데 결혼을 했다고? 너 진짜 대단하다, 이제는 남들 하는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결혼하는 짓까지 따라 하는 거야?”“걔가 너한테서 뭘 노리는지도 모르겠어? 해인아, 넌 너무 순진해!”태겸은 초조함을 못 이기고 제자리에서 몇 바퀴나 돌았다.“너희 관계 드러나자마자 한유호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뭔지 알아? 날 YD그룹에서 쫓아낸 거야.”“너는 아직 모를 수도 있는데, 걔는 원래부터 나랑 끝까지 맞붙던 놈이야. 날 겨냥해서 일부러 너한테 접근하고 혼인신고까지 한 거라고!”태겸의 말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걔는 네가 힘든 틈을 비집고 들어온 거야! 나 괴롭히려고! 해인아, 한유호는 YD그룹을 통째로 삼키려는 거야!” “넌 걔 손에 들린 도구일 뿐이야! 너 왜 이렇게 바보 같아!”그렇게 말을 쏟아 내던 태겸은 다시 주저앉듯 소파에 몸을 던졌다.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팔꿈치를 무릎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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