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hapter 191 - Chapter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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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1화

지안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그녀는 꿈에서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늘 마음속으로만 우러러보던 태겸이 먼저 자신에게 입을 맞춰 오는 날이 올 줄은...술에 젖은 태겸의 숨결마저 지안에게는 유난히 달고 위험하게 느껴졌다.“해인아, 역시 너도 나한테 마음이 있었구나. 날 두고 못 가는 거잖아...”하지만 술에 너무 깊이 취한 탓인지, 태겸은 두어 번 입을 맞춘 뒤 더이상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그대로 다시 잠에 빠져든 것처럼 보였다.지안의 마음 한편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허무함이 번졌다.기껏 손에 들어온 것 같은데, 금세 빠져나가 버릴 것만 같은 공허함이었다.지안은 마른침을 삼켰다.‘이건 기회야. 이렇게 찾아온 기회는 붙잡아야 해.’지안은 갑자기 대담해졌다.지안은 팔을 뻗어 태겸의 허리를 안았다.“태겸 씨, 기회는 원래 스스로 만드는 거예요. 전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태겸 씨가 다시 붙잡은 거잖아요.”말을 마친 지안은 몸을 바짝 붙였다.허리를 끌어안은 채 먼저 입을 맞추고, 태겸에게 매달리듯 다가갔다.“태겸 오빠...”지안은 해인이 말하던 어조를 흉내 냈다.천천히 태겸의 셔츠 단추를 풀고, 가슴에 손을 얹고는 조심스레 훑었다.애써 눌러 왔던 마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했다.지안은 태겸을 너무 오랫동안 좋아해 왔다.태겸은 지안에게 늘 손에 닿지 않는 사람, 바라보기만 하던 사람이었다.“나 해인이야.”태겸은 잔뜩 취해 의식이 흐릿한 상태였다.누군가 자꾸만 자신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태겸은 어떻게든 눈을 뜨려고 했지만,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희미하게 들려오는 건, 귓가를 스치는 낮은 목소리뿐이었다.“오빠...”그 한마디에 태겸의 머릿속은 완전히 해인으로 가득 찼다.태겸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조용히 외치면서 여자의 몸을 안고 아래로 눕혔다.“난 그런 아는 오빠 하기 싫어. 네 남편이 되고 싶어. 해인아, 사랑해... 난 언제나 널 원해...”...다음 날 아침.눈을 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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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화

하지만 태겸의 마음에는 해인밖에 없었다. 어젯밤 있었던 일도 전부 태겸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었다.아마 흐릿한 정신에 사람을 잘못 봤을 것이다.지안을 해인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도 지안이 원하지 않았다면 태겸이 뜻대로 할 수 있었을까? 더구나 태겸은 몹시 취해 있었다.예주의 일로 한차례 크게 데인 뒤였기에 태겸은 훨씬 더 날카로워져 있었다.태겸은 셔츠와 바지를 집어 들고 몸에 걸치면서 말했다.“이 일은 제가 예지안 씨한테 빚진 걸로 하겠습니다.”지안은 훤칠한 태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한동안 멍하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빚진 걸로 하겠다는 게 무슨 뜻인데요? 그래서 저한테 어떻게 보상하실 건데요?”“예씨 집안은 지난번 여론 때문에 주가도 크게 떨어졌고, 한씨 집안과의 협업도 놓쳤습니다.”눈 깜빡할 사이에 태겸은 이미 말끔하게 옷을 다 갖춰 입었다. 어젯밤의 흐트러지고 술에 취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태겸은 무심하게 눈썹 끝을 들어 올렸다. 말투는 철저히 업무적인 데다가 지나치게 반듯했다. 태겸은 마지막 셔츠 단추를 채우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하지만 우리 집안은 예씨 집안과 손잡을 수 있습니다.”지안은 회사 일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못마땅한 기색이 번졌다. 지안은 입술을 깨물었다.“전 그런 거 싫어요!”태겸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그럼 예지안 씨는 뭘 원하십니까?”“저 태겸 씨 여자친구 할래요! 태겸 씨랑 연애하고, 결혼도 하고 싶어요! 태겸 씨, 저 태겸 씨 여자가 될 거예요!”“예전에 강해인 씨한테 해 주셨던 것처럼, 저한테도 그렇게 해 주세요! 저도 그렇게 아껴 주세요!”태겸은 바로 선을 그었다.“그건 안 됩니다.”‘예지안이 어떻게 강해인하고 같을 수 있어?’지안은 얼어붙은 듯 태겸을 바라봤다.태겸의 시선은 지안에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 여전히 일 얘기를 하듯 건조한 목소리였다.“원하는 게 뭔지 정해서 말씀하십시오. 따로...”태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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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원래도 넉넉하지 않던 공간에 두 사람이 더 타면서 한층 더 비좁아졌다.공기가 묘하게 뒤틀린 가운데, 먼저 해인에게 말을 건 사람은 우경수였다.“제수... 아, 아니다. 해인아, 진짜 우연이다. 너도 밥 먹으러 왔어?”태겸 친구들 가운데에는 해인과 제법 가깝게 지내던 사람도 있었는데, 경수가 딱 그런 쪽이었다. 경수는 이 바닥에서 소문난 순한 성격이었고, 지난번 예씨 집안에서 벌어진 일도 다들 알고 있었다. 해인과 태겸이 헤어졌다는 사실 역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호칭은 하루아침에 바로잡히지 않는 법이었다.해인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경수 오빠.”최상위 재벌가 사람들이 드나드는 자리에는 따로 마련된 전용 룸이 있었다. 사생활 보호를 중시해서 일반적인 비즈니스 접대층과는 분리되어 있었다. 비즈니스 접대층에 도착하자, 해인은 영배와 함께 그 층에서 내렸다.엘리베이터는 계속 위로 올라갔다. 경수는 그제야 태겸을 한 번 더 살폈다. 태겸은 주먹을 꽉 움켜쥔 채였다. 눈가는 벌겋게 달아오른 채, 이를 악물고 온몸으로 버티는 기색이 배어 나왔다.경수가 달래듯 말했다.“태겸아, 너도 좀 마음 풀어. 사람 살다 보면 헤어지는 일 몇 번쯤은 다 겪는 거잖아.”태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태겸의 머릿속은 경수 말과는 전혀 다른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나랑 해인은 헤어진 게 아니야. 빼앗긴 거지.’‘한유호만 끼어들지 않았어도 해인은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오늘 밤 이 자리는 태상이 만든 자리였다. 태상은 오랫동안 해외에서 연구만 하며 지내느라 태겸과는 특별한 친분이 없었다. 대신 경수와는 꽤 가까운 편이었다.지안은 어젯밤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아침이 되자 울면서 태상에게 전화를 걸어 도와 달라고 했다.태상은 여동생이 너무 제멋대로라고 여겼다. 감히 태겸에게까지 수를 쓰다니, 그건 분명히 선을 넘은 일이었다. 그런데 지안은 끝까지 태겸이 술에 취한 채 먼저 자신에게 들이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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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화

태상은 딱히 반대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둘이 한 번 잤으니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고 여기는 고지식한 사람도 아니었다. 감정이 얽힌 일은 결국 서로 마음이 맞아야 하는 법이었다. 태상은 지안이 오랫동안 태겸을 좋아해 왔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이런 식으로 정리하는 편이 그나마 나은 방법일 수 있다고 여겼다.태겸은 비웃듯 입꼬리를 비틀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태상아, 네 동생이 내 마음속에 딴 여자가 있어도 괜찮다면 난 상관없지. 어차피 나만 손해 보는 일도 아니니까.”태상은 입가를 한 번 움직였다.‘저 말이 마음에 들 리가 없지.’그래도 태상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안이 직접 태겸 곁에 있으면서, 스스로 다 보고 포기하게 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었다.태상은 곧장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그 이야기를 전했다. 지안은 듣자마자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태겸 씨가 진짜 나하고 만나 보기로 한 거야? 오빠, 오늘 어디서 밥 먹고 있어? 나 거기로 갈게!]...한편 식사 자리로 들어오는 사람이 해인이라는 걸 본 조진규는 적잖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해인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조 대표님, 엄 팀장님 아내분이 둘째를 출산하셔서 배우자 출산휴가를 쓰게 됐어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제가 맡게 됐습니다.”사람을 다루는 데 능한 조진규는 바로 웃는 표정을 지으며 해인을 치켜세웠다. 새 회사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맡은 걸 보니, 강 팀장 능력이 대단하다고 치켜세웠다.식사 자리에서도 조진규는 한층 더 자세를 낮췄다. 차를 따라 주고 술을 권하면서, 말끝마다 해인 눈치를 살폈다. 당장 계약서만 내밀면 무릎이라도 꿇고 서명할 기세였다.해인은 웃는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조 대표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급하게 넘겨받은 거라 아직 프로젝트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어요. 내일 회사로 가면 자료를 다시 꼼꼼히 보고 결정하겠습니다.”돌려 말했지만 뜻은 분명했다. 오늘 바로 서명할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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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5화

해인은 걸음을 옮겨 자리를 떴다. 한참 떨어진 곳에서 보니, 복도 끝에서 지안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지안은 그대로 태겸의 품 안으로 파고들면서 태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태겸 씨...”그 뒤로 무슨 말을 더 했는지는 해인에게 들리지 않았다. 다만 엘리베이터 문은 투명 유리로 되어 있었다. 해인은 지안이 발꿈치를 들어 올린 채, 태겸에게 키스를 바라듯 다가서는 모습을 똑똑히 봤다.태겸은 지안을 밀어내지 않았다.해인의 입가에 비웃음에 가까운 기색이 스쳤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하예주랑 얽혀 있었으면서, 벌써 새 여자가 생겼네.’그제야 해인은 새삼 깨달았다. 태겸은 정말 가리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어쩌면 그게 태겸의 본래 모습이었는지도 몰랐다. 앞선 20여년 동안은 혼약이라는 줄에 묶여 있어서, 함부로 굴지 못했을 뿐이었다.그런데도 태겸은 해인과 지안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다 알면서, 굳이 그런 지안과 얽혀서 해인의 기분을 뒤틀어 놓고 있었다.하필 태겸이 전후로 엮인 두 여자 모두 해인과 깊게 얽힌 사람들이었다.‘소꿉친구는 무슨!’해인은 이제 그 말에 대해 더는 할 말도 없었다.하지만 해인과 태겸은 이미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태겸이 누구를 만나든, 누구와 연애하든 그건 태겸 마음이었다.해인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유호도 아직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침대 옆에는 베개가 하나 더 놓여 있었다. 해인이 유호를 위해 따로 준비해 둔 것이었다.침대에 누운 해인이 이리저리 뒤척였지만,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이어서 옆에 비어 있는 베개를 가만히 바라봤다.유호에게는 사람 기분을 확 끌어올리는 묘한 힘이 있었다. 해인은 가끔 마음이 축 처질 때면, 유호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왜 이렇게 신경 쓰이지?’해인은 유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주헌에게 전화를 걸었다.“한 대표님 아직도 야근 중이세요?”주헌이 공손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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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화

지안은 태겸과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다. 정말 딱 삼십 분만 더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이대로 보내기 싫어. 조금만 더, 정말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어.’“난 차 안 가져왔어. 태겸 씨, 집까지 데려다주면 안 돼?”태겸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지안을 잠시 동안 바라봤다.지안은 태겸이 거절할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태겸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래.”얼마 지나지 않아서 차가 한 약국 앞에 멈춰 섰다. 기사는 차에서 내렸다가, 잠시 뒤 봉투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태겸은 그 봉투를 건네받더니 안에 든 물건을 직접 꺼내 포장을 뜯었다.분홍빛 포장이 눈에 들어오자 지안이 무심코 물었다.“그게 뭔데?”“피임약.”태겸은 알약을 손에 집은 채, 직접 지안의 입가로 가져다 댔다.“내 말 잘 들어. 입 벌려.”태겸 말투는 지나치게 다정했다. 너무 부드러워서 지안은 마치 홀린 사람처럼 태겸의 말에 그대로 따르게 됐다. 지안은 별다른 생각도 못 한 채 입을 벌렸다.씁쓸한 기운이 입안 가득 번지고 나서야 지안은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태겸은 지안이 자기 아이를 가질까 봐 미리 막고 있는 거였다.그 약이 여자 몸에 좋을 리 없었다. 지안의 마음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강해인이었어도 저렇게 했을까?’‘고태겸은 강해인한테도 직접 이런 약을 먹였을까?’지안이 약을 삼킨 걸 확인한 뒤, 태겸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한 번 당겼다. 그 태도는 꼭 커다란 골칫거리를 이제야 하나 치웠다는 듯했다.“장 기사님, 예지안 씨 집으로 모셔다 드리세요.”지안은 다급하게 태겸을 바라봤다.“태겸 씨, 난... 떨어지기 싫어. 나 태겸 씨 집에 데려가 주면 안 돼?”태겸은 고개를 돌려 지안을 봤다. 눈빛은 여전히 부드러웠다.“내가 방금 뭐라고 했는지 벌써 잊었어? 난 얌전한 쪽이 좋다고 했잖아.”태겸은 말을 끊지 않았다.“그리고 난 우리 관계가 너무 떠들썩해지는 건 원하지 않아.”지안은 믿기 어렵다는 듯 되물었다.“뭐야, 나랑 비밀연애를 하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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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화

지안은 멀어져 가는 차의 후미등을 바라보다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그래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자신이 정말 태겸과 연애를 하게 되다니.지안은 홀로 남겨졌다는 서운함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표정에는 들뜬 기색만 가득했다.‘진짜야. 나... 정말 고태겸이랑 사귀는 거야.’하지만 지안도 태겸도 눈치채지 못한 게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차 한 대가 줄곧 조용히 뒤를 밟고 있었다. 그 안에는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가 타고 있었다.남자는 온통 검은 옷차림이었다. 꼭 밤길을 떠도는 그림자 같았다. 여자의 뺨에는 누가 손바닥으로 후려친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예주가 아니면 누구겠는가?남자가 혀를 차듯 말했다.“하, 고태겸 진짜 매정하네. 저렇게 어린 여자친구를 길가에 그냥 두고 가냐.”남자는 비스듬히 담배를 물고 있었다. 입가에 번지는 붉은 불씨만 희미하게 살아 있었고, 그 불빛만으로는 얼굴 전체를 드러내기에 턱없이 부족했다.남자는 곧 비웃듯 덧붙였다.“널 안 데리고 논 이유도 알겠네. 예지안은 집안도 받쳐 줘도 고태겸은 별 반응이 없잖아. 하물며 너 같은 애는 더 말할 것도 없지.”예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손톱이 손바닥 살을 파고들 만큼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어젯밤 예주는 하마터면 끔찍한 일을 당할 뻔했다. 그때 우연히 지나가다 예주를 구해 준 사람이 바로 이 남자였다. 이름은 여효섭. 태겸과 같은 바닥 사람이라서, 예주도 몇 번 얼굴을 마주친 적이 있었다.다만 예전에 일이 하나 있었다. 효섭이 술에 잔뜩 취한 채 해인에게 추근댔다가 태겸의 주먹에 맞고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었다. 그 일로 효섭은 두 달이나 입원했고, 그 뒤로는 그쪽 사람들 사이에서 대놓고 밀려났다.예주는 아무 표정도 없이 입을 열었다.“제가 도와드려서 강해인을 당신 침대에 올려놓으면, 저한테 집 한 채 주시는 거죠?”효섭이 코웃음을 쳤다.“강해인은 이 바닥의 맨 위에 있는 두 남자가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아끼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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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화

서정란. 유호의 친모였다.서정란은 오래전, 유호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던 길에 실수로 유호를 잃어버렸다. 그때 유호의 나이는 겨우 5살이었다.그 일 뒤로 서정란은 깊이 가라앉은 채 지냈고, 몇 해 버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아무리 그래도 시어머니 기일이었다. 해인은 자신도 가서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아무것도 모르고 지나갈 수는 없지.’해인은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한씨 가문 본가로 향했다. 권영자는 일찍부터 진주를 보내서, 대문 밖에서 해인을 기다리게 해 두었다.해인이 한씨 가문 본가에 들어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택은 무겁고 고요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유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 바로 여기였다.지난번 운시사에서 진주는 해인과 한 차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때 인상이 꽤 좋았는지, 진주는 걸음을 옮기며 조심스럽게 말했다.“한씨 가문 사정이 좀 복잡해요. 집도 워낙 넓고요. 작은 사모님, 이따가 저를 꼭 잘 따라 오셔야 해요.”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눈앞에는 본채가 우뚝 서 있었다. 외벽에는 짙은 초록빛 덩굴이 촘촘히 타고 올라가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막 피어난 꽃 몇 송이가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그 덕에 건물 전체가 묘한 예술성을 띠고 있었다. 이름난 화가가 그려 놓은 유화처럼 보일 정도였다. 본채를 중심으로 둘러선 세 채의 별채도 만만치 않았다.오는 길에 해인은 미리 주헌에게서 한씨 가문 사정을 어느 정도 전해 들은 상태였다.한원랑은 한씨 집안의 가장이자 KH그룹의 최대 주주였다. 과거 유호가 친모 손에서 사라진 뒤, 한원랑과 서정란은 아이를 찾으려고 온갖 곳을 뒤졌다. 하지만 몇 년을 헤매도 유호는 돌아오지 않았다. 서정란은 죄책감과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겨우 서른을 조금 넘긴 나이에 삶을 접었다. 그 뒤로 서정란은 한원랑의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사람으로 남았다.그 뒤 한원랑 곁에는 세 여자가 더 있었다.한 사람은 왕단영이었다. 원래는 서정란의 간병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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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화

해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해인은 다시 몸을 피해서 흙을 간신히 비킬 수 있었다.해인이 허둥지둥 피하는 꼴이 우스웠는지, 남자아이는 배를 잡고 웃었다.“헤헤, 재밌다. 완전 재밌어.”해인은 미간을 찌푸렸다.‘대체 누구 집 애길래 저래?’앞서 걷던 진주가 뒤늦게 이쪽 상황을 보고 다급히 말했다.“작은 사모님, 저 아이는 조우 도련님이세요.”한조우. 한원랑의 혼외자식이자, 유호와는 아버지가 같은 이복동생이었다.해인은 이제 막 이 집에 발을 들인 참이었다. 괜히 처음부터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아, 진주를 따라 다시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런데 조우는 더 심하게 굴었다. 조우는 힘껏 몸을 날리듯 해인 쪽으로 달려들었다. 손에 든 삽에는 흙과 모래가 잔뜩 담겨 있었다. 얼굴에는 신이 난 웃음이 가득했다. 그 기세를 보니, 해인에게 몸을 부딪치는 척하면서 모래를 옷 위에 퍼부을 생각이 뻔했다.아무리 해인 성격이 무던한 편이라 해도 이번에는 더 참을 수 없었다.해인은 재빨리 주변을 한 번 훑었다. 아무도 이쪽을 보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한 뒤, 발끝을 슬쩍 내밀었다가 바로 거둬들였다.“아악!!”조우는 중심을 잃고 휘청하더니 그대로 잔디밭에 나동그라졌다. 삽에 담겨 있던 흙과 모래는 바람을 타고 도리어 조우 쪽으로 날아가서 얼굴과 입 안으로 들이쳤다.조우는 입안에 들어간 흙을 뱉어 내며 버럭 소리쳤다.“퉤퉤퉤! 아, 씨X!”조우는 한원랑이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이었다. 어려서부터 천하솜이 귀한 아들로 떠받들며 키웠고, 그 탓에 성격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제멋대로가 되어 있었다.그 고함 소리에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천하솜이 곧장 아들 쪽으로 달려왔다.“왜 그래, 우리 아들? 왜 넘어졌어?”흙투성이가 된 조우는 곧장 해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엄마, 저 못생긴 게 나 괴롭혔어!”천하솜은 해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해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서 묘한 적의가 먼저 피어났다.‘뭐야. 왜 저렇게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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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0화

팔찌를 절반쯤 빼내던 왕단영은 문득 해인의 손목에 찬 팔찌를 보고 손을 멈췄다. 옥의 빛깔과 결이, 자기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한눈에도 더 좋아 보였다.왕단영의 표정이 굳어졌다.“이건... 한씨 가문의 제일 소중한 보물 아니야? 큰 사모님이 이걸 너한테 바로 주신 거야?”한씨 가문의 이 보물은 딸에게만 전해지고 아들에게는 가지 않는 물건이었다. 예전에 서정란이 한씨 가문에 들어왔을 때 권영자가 서정란에게 건넸지만, 서정란이 병으로 세상을 뜬 뒤 다시 권영자 손으로 돌아갔다.그건 단순한 팔찌가 아니었다. 이 집에서 누구에게 무게가 실리는지를 보여 주는 상징 같은 물건이었다. 집 안에 있는 세 여자도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 견제하며 아등바등한 이유가 결국 그 물건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 팔찌는 해인의 손목에 걸려 있었다.한씨 가문 사정을 잘 알지 못한 채 오긴 했지만, 해인은 올 때 일부러 그 팔찌를 차고 왔다.해인은 왕단영 말투에 섞인 시기를 못 들은 듯,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저도 이 팔찌 참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가문의 소중한 보물이었군요. 이런 걸 제가 어떻게 받아요?”“단영 이모님, 얼른 할머니께 말씀 좀 드려 주세요. 이건 이모님이 받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왕단영은 반쯤 빼냈던 자기 팔찌를 다시 손목에 끼워 넣었다. 속으로야 당연히 그 가보를 탐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인이 한 말을 덥석 받을 수는 없었다.“그 팔찌 앞에서는 내 팔찌가 초라해 보이네, 해인아. 다음에 내가 다른 걸로 하나 챙겨 줄게.”“그 귀한 팔찌는 큰 사모님이 너한테 주신 거니까, 얼른 잘 끼고 있어. 누구한테 빼앗기면 안 돼.”해인은 순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왕단영은 괜히 찾아와 인사만 하고 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딴에는 해인을 챙기는 척, 해인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아까 정원에서 있었던 일, 나도 다 들었어.”왕단영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천 여사는 평소에도 자기 아들을 끔찍하게 감싸잖아. 눈에 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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