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hapter 291 - Chapter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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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1화

“아니, 유호야. 내 걱정은 안 하고 왜 제수씨 행방을 그렇게 신경 써? 아침에 헤어진 거 아니었어? 벌써부터 제수씨가 그렇게 보고 싶냐?”유호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해인이 어젯밤에 집에 안 들어왔어. 한밤중에 희정이가 내 사무실에 있는 걸 봤으니까, 아마 질투한 것 같아. 내 전화도 안 받았거든.]그 말을 듣자 대현은 바로 흥분했다.“와, 야, 잠깐만. 너 한밤중까지 집에도 안 들어가고, 예쁜 여자 감독이랑 사무실에서 숨어서 뭐 했는데?”“유호야, 아무리 우리가 절친이라도 이건 내가 네 편을 못 들겠다. 네가 알아서 지옥문 열고 들어가서 불구덩이에서 굴러 봐.”유호의 입꼬리가 팽팽하게 굳어졌다.통화는 곧 끊어졌지만, 막 대현에게 커피를 타던 승아가 그 대화를 고스란히 듣고 말았다.승아는 대현 쪽으로 조금 몸을 기울였다. 친한 친구 대신 캐물을 생각이었다.‘아침부터 해인이 기분이 가라앉아 있던 게 이것 때문이었네.’“그 예쁜 여자 감독은 어떤 사람이에요?”대현은 승아의 속내를 한눈에 읽을 수 있었다.대현이 손가락을 까딱했다.“궁금해요?”승아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쑥 들이밀고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대현이 얄밉게 웃었다.“히히, 안 알려 줄 거예요.”승아는 말문이 막혔다.이렇게 사람 애간장을 태우는 짓은 정말 너무했다.승아는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지만, 그렇다고 대현을 정말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한편 대현의 병실에서 막 나오던 해인은, 오수찬의 부축을 받으면서 바람을 쐬러 나온 태겸과 마주쳤다.태겸과 대현은 둘 다 VIP 병실을 쓰고 있어서 병실이 가까운 편이었다.그저께 태겸은 높은 곳에서 떨어진 물건에 머리를 맞은 데다가 밤새 비까지 맞았다. 그래서인지 태겸은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듣기로는 어제 하루 종일 열까지 났다는데, 지금은 열이 내린 듯했다.해인의 모습을 보자 태겸은 걸음을 멈췄다.태겸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해인이가... 나 보러 온 건가?’태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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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해인이 막 택시에 올라 회사로 가려는데, 주여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해인아, 네가 신고한 거니? 지안이는 네 동생이야. 일을 그렇게까지 몰아붙이지는 마.]어젯밤 해인의 핸드폰은 배터리가 다 돼 꺼져 있었다. 승아가 쓰는 충전기는 규격이 맞지 않아서, 해인은 병원을 나서면서 겸사겸사 승아에게 보조배터리를 대신 빌려 달라고 부탁해야 했다.전원을 켜자마자 주여진의 전화가 들어왔다.‘예지안이 경찰에 끌려갔으니, 예씨 집안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겠지.’‘하긴, 어려서부터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자란 집안의 딸이 왜 경찰서까지 가겠어?’해인은 생일연회 이후 연락도 없었던 엄마가 이번에 전화를 걸어서, 지안을 몰아세웠다고 해인을 탓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해인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신고한 건 우리 회사지, 제가 아니에요. 그보다 예지안 씨는 화분을 위에서 던져서 저를 죽이려고 했어요. 저는 운 좋게 피한 거고요.”전화기 너머의 주여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주여진은 그제서야 처음 진상을 들은 듯했다.곁에 있던 예철진이 입을 열었다.[지안이가 분명 실수한 거겠지. 회사 핑계 대지 마. 네가 부추기지 않았는데 회사가 신고까지 하면서 일을 이렇게 키웠겠어? 누가 그걸 믿어.]주여진은 예철진을 한 번 바라본 뒤 뒤이어 말했다.[회장님이 많이 불쾌해하신다. 그러니까 네가 회사 쪽에 말해서...]주여진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해인이 바로 주여진의 말을 자르면서 말했다.“다른 사람이 기분이 나쁘든 말든 제가 알 바 아니에요. 제가 기분 좋으면 그걸로 됐어요.”[당신이 키운 딸 좀 봐! 자기 동생한테도 이렇게까지 독하게 구는 거야!]예철진은 안색이 잔뜩 굳은 채 윽박질렀다.[이제 한씨 가문이 뒤에 있다고 아주 막 나가네!]해인이 비웃듯 말했다.“네, 저는 바로 한씨 가문 믿고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어쩔 건데요? 정 억울하면 한씨 가문 사람들한테 그렇게 비위 맞추러 다니지나 말든가...”[너...!]예철진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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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그 말을 끝으로 통화가 끊어졌고, 해인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엄마가 방금 한 말... 무슨 뜻이지?’‘다른 사람은 중요하지 않다니.’‘그 말은 예지안을 두고 한 말일까?’하지만 주여진은 예씨 집안에 들어간 뒤로 줄곧 지안에게 잘해 왔다.거의 친딸처럼 아끼고 챙겼고,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같이 주여진을 좋은 새어머니라고 말했다.해인은 자꾸만 주여진의 말에 다른 뜻이 숨어 있는 것만 같았다.‘돌려서 짐작만 해서는 답이 안 나와.’해인은 더는 혼자 추측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주여진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서 분명하게 물어보려고 했다.신호는 갔지만, 주여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예씨 가문 저택.주여진은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전화가 걸려온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주여진의 눈시울은 붉게 충혈된 채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해인아, 엄마가 그동안 너를 일부러 버려둔 게 아니란다.’‘엄마한테도 말 못 할 사정이 있었어.’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낀 주여진은 급히 표정을 가다듬었다.주여진이 입을 열었다.“태상아, 지안이 보러 경찰서 가는 거니?”지안은 고의 상해 혐의로 당분간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와세라나 태겸이 먼저 고소를 취하하지 않는 이상, 지안은 사흘에서 보름까지 구류될 수도 있었다.예씨 집안에서 보석을 요구했지만, 경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태상이 말했다.“어머니, 지안이는 여태 집 밖에서 지내본 적이 없잖아요.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가 보려고요.”주여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이틀 동안 제대로 못 먹었을 거야. 내가 지안이가 제일 좋아하는 갈비찜을 해 놨어.”“보온도시락에 담아 놨으니까, 내가 지금 주방에서 가져다 줄게. 네가 가져가서 꼭 다 먹으라고 전해줘.”태상은 주여진이 건네는 보온도시락을 받아 들었다.“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갈비찜은 정말 최고예요. 맛이 워낙 좋아서 저도 정말 좋아하거든요.”태상이 그렇게 말했다.주여진이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너희가 좋아하면 됐다. 냄비에 아직 남아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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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해인은 유호를 향해 웃어 보였다.“그러니까 아내로서 저도 꽤 다정하고 배려도 있는 편이죠?”유호는 어딘가 불편한 기분을 느꼈다.해인이 유호를 붙잡고 크게 화를 내거나, 성질을 부렸다면 오히려 대화의 여지가 있다고 여겼을지도 몰랐다.그런데 해인의 반응은 너무 덤덤했다.너무 덤덤해서 달래려고 해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태겸에게 배신당했을 때도 해인은 지금 같지는 않았다.유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 팀장님.”그 소리에 유호가 고개를 돌렸다.몹시 어려 보이는 남자였다.많아야 스무 살이 좀 넘어 보였고, 깔끔한 흰 셔츠 차림이었다.가늘고 긴 눈매는 부드럽고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단정한 턱선에는 또래답지 않은 팽팽한 힘이 배어 있었다.섬세하게 다듬어진 듯한 이목구비가 오히려 그 긴장감을 더 도드라지게 했다.해인이 조용히 불렀다.“우진 씨.”우진이 말했다.“오전 내내 사무실에서 기다렸는데 안 오셔서요.”해인이 가볍게 웃었다.“개인적인 일 때문에 좀 늦었어.”와세라는 탄력근무제를 시행하는 중이다. 출근 시간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자기 몫만 제대로 해내면 됐다.우진은 곧바로 이해한 듯했다.우진의 시선이 유호에게 향했다가 가볍게 스치듯 머물더니 금세 시선을 거뒀다.우진이 다시 해인에게 말했다.“오늘 아침에 소 대표님이 저를 찾으셔서, 강 팀장님이 출장을 한번 다녀오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서류는 전부 정리해 뒀고, 비행기 표는 오후 3시 편으로 예약해 뒀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불편하시면 바로 바꾸겠습니다.”배우진은 해인이 이틀 전에 새로 뽑은 비서였다.오늘이 첫 출근하는 날이었다.인턴 수습 중인 대학생인데, 해인이 우진을 뽑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진의 능력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우진은 대학에 들어간 뒤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았고, 1학년 때 이미 국가장학금까지 받았다.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진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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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해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유호에게 등을 떠밀리듯 조수석에 앉게 됐다.우진도 곧바로 따라 타려고 했지만, 유호가 매정하게 가로막았다.“이 차에는 자리 없어. 택시 타.”우진은 무의식적으로 롤스로이스를 힐끗 바라봤다.5인승 차량 안에 해인 한 사람만 타고 있었다.‘자리가 없다고?’우진은 묻는 눈으로 해인을 바라봤다.해인이 입을 열고 ‘안 돼’ 한마디만 하면, 우진은 곧장 손을 써서라도 해인을 차에서 빼낼 기세였다.해인은 유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유호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기 전에는 절대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지금 여기서 버티면 더 피곤해질 뿐이야.’해인이 우진에게 말했다.“우진 씨, 공항까지는 따로 택시 타고 가. 영수증 꼭 챙기고, 나중에 회사에 청구해.”해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롤스로이스는 눈앞에서 빠르게 튀어 나갔다.그 자리에는 우진만 홀로 남았다.우진은 자동차가 사라진 방향을 한동안 바라보며 맑고 투명한 눈을 가볍게 깜빡였다.‘계약결혼이라고 했지.’‘그래도... 두 사람, 싸운 모양이네.’...롤스로이스는 공항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운전대는 유호가 직접 잡고 있었다.“어디로 출장 가?”“Y시예요.”“며칠?”“정해진 건 없어요.”“둘만 가?”“네.”유호는 잠시 침묵하다가, 한 번에 말을 쏟아냈다.“희정이는 영화감독이야. 요즘 독립영화를 준비하면서 촬영 장소를 KH그룹으로 쓰고 싶다고 찾아왔어.”“어젯밤에는 그 얘기를 하러 온 거였고, 내가 거절했어. 우리 사이는 그게 전부야.”유호는 말을 마친 뒤 해인의 기색을 은근히 살폈다.해인의 시선은 차창 밖에 머무른 채 유호를 보고 있지 않았다.유호는 주먹을 꽉 쥔 채 솜뭉치를 내려친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내 말을 안 믿는 건가?’유호는 차를 길가에 세웠다.곧바로 손을 뻗어 해인의 얼굴을 돌려 세웠다.해인이 억지로라도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어젯밤에 나는 회의실로 회의를 들어갔고, 핸드폰을 책상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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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머지않아 공항에 도착했다.해인이 차 문을 열고 내리려고 했다.유호는 차를 세워 둔 채 곧바로 뒤따라가면서 해인의 손목을 붙잡았다.“여보, 나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 없어?”공항까지 오는 내내 해인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유호 혼자 줄곧 설명했을 뿐, 해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발 떨어져 지켜보는 사람처럼 굴었다.해인은 유호를 향해 가볍게 웃어 보였다.“말할 수 있는 건, 당신이 이미 다 말한 거 아닌가요?”‘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내가 묻는다고 해서 이 사람이 정말 입을 열까?’‘게다가 스스로 털어놓는 것과 내가 따져 묻고 나서야 말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야.’‘한유호는 그저 내 협력 상대일 뿐인데...’‘한유호를 그냥 협력 상대로만 두면, 마음도 덜 아프겠지.’‘어차피 남은 시간은 고작 9개 월이니까.’그 9개 월 동안이라면, 해인도 혼자 힘으로 YD그룹을 떠받칠 수 있는 경영자가 되는 연습을 해 볼 수 있었다.해인의 태도는 너무나 담백했다.그녀의 눈가와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는데도, 유호는 그 미소가 자꾸만 거슬렸다.유호가 다시 무언가 말하려던 때,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렸다.해인은 유호의 핸드폰 화면을 힐끗 봤다.저장된 이름은 ‘정이’였다.해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전화부터 받으세요. 저는 이제 탑승하러 가야 해요.”‘안 친한 사이라면서 이름은 ‘정이’라니...’그 정도면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유호는 해인에게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말을 마친 해인은 돌아섰다.유호는 화면을 확인하자마자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전화를 끊어 버린 뒤, 반사적으로 해인을 다시 붙잡으려고 했다.그런데 그때, 우진이 돌처럼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소년의 눈은 맑고 또렷했다.그 안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도 함께 어려 있었다.“더 늦으면 비행기 놓칩니다.”유호와 우진의 시선이 정면으로 부딪쳤다.유호의 눈동자는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유호는 해인과 우진이 탑승 절차를 밟고 출국장 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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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유호의 입술 사이로 차가운 한 마디가 떨어졌다.“네가 무슨 상관이야.”...[해인아, 나 심대현한테서 그 여자 감독이랑 한 대표 사이 얘기 알아냈어!]비행기에서 내려 호텔로 가는 도중에, 승아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택시 안은 넓지 않았다.우진은 해인 옆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간격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그 사이에 한 사람쯤 더 앉을 수 있을 정도였다.해인은 핸드폰을 반대편 손으로 옮겨 쥐고 조용히 승아의 말을 들었다.[진짜 뜻밖이더라. 두 사람 사이가 그렇게 오래 이어져 있었을 줄은 몰랐어. 그 여자 감독... 예전에 유호한테 고백까지 했대!]해인의 손끝이 가볍게 떨렸다.“그 여자 이름, 차희정이야.”승아가 말을 이었다.[차희정이 해외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돌아왔을 때, 한 대표는 아직 군에 있었대. 그런데 그 여자도 보통은 아니더라.] [아예 부대까지 찾아가서 장병들 다 보는 앞에서 한유호한테 고백했다더라. 다만 한유호가 그 자리에서 거절했대.]해인이 조용히 물었다.“그 얘기... 한유호가 심 대표한테 직접 한 거야?”부대 안은 남자들뿐인 곳이었다.희정이 고백하던 날, 주변이 얼마나 떠들썩했을지는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해인은 대현이 멀리 떨어진 B시에서 그 일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가 궁금했다.혹시 유호가 직접 말해 준 거라면, 유호에게도 그 일이 꽤 깊게 남아 있다는 뜻일 테니까.해인의 눈가에 실망이 번졌다.가슴 한쪽이 뭔가에 걸린 듯 답답했다.승아가 바로 해인의 말을 부정했다.[아니야. 심 대표는 정말 호구야. 그때 현장에 있었대. 심지어 차희정을 데리고 부대까지 간 사람도 그 인간이래!][술자리에서 게임에 져서 벌칙처럼 차희정을 한 대표 보러 데려가 주기로 했다더라. 심 대표도 그 여자가 고백하러 가는 줄은 몰랐대.]해인은 눈을 내리깔았다.가늘고 긴 속눈썹 아래로 옅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승아가 해인을 달래듯 말했다.[그래도 너무 깊게 생각하진 마. 그건 네 남편이 그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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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팀장님, 괜찮으세요?”우진은 계속 해인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친구와 통화를 마친 뒤부터 해인이 축 가라앉은 걸 눈치챈 우진은, 메고 있던 백팩에서 생수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우진이 조심스레 내밀었다.“좀 드실래요?”해인은 생수를 받아 들고 고맙다고 말했다.“잠시 후에 호텔에 짐 풀고, 바로 리셉션장으로 가실까요?”우진은 곧 이어 해인과 앞으로의 일정을 맞췄다.“소 대표님 말로는 고객이 꽤 큰손이라고 하셨어요. 우리 회사 차를 한 번에 여러 대 들일 생각이 있고, 이야기는 거의 마무리 단계래요.”“그런데 기술 쪽으로 몇 가지 궁금한 부분이 있어서 그건 팀장님이 직접 설명해 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우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컨디션이 별로면, 오늘은 비행기 막 내렸으니까 호텔에서 좀 쉬셔도 돼요.” “리셉션이 오늘 하루만 있는 것도 아니고 며칠 더 이어진다니까, 굳이 오늘 바로 나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그래.”해인의 상태가 나쁜 건 아니었다.다만 해인은 먼저 상대 쪽 자료를 훑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아무 준비 없이 바로 부딪혔다가... 괜히 상대가 꺼리는 부분이라도 건드리면 더 곤란해져.’해인이 차분히 말했다.“일단 호텔부터 들어가자. 고객 자료도 나한테 한 부 보내 줘. 고객 만나는 건 내일로 미루고.”우진이 곧바로 답했다.“알겠습니다.”...30분쯤 뒤, 우진이 해인의 방 문을 두드렸다.“팀장님.”우진은 문 앞에 반듯하게 서 있었다.단정한 눈매와 이목구비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그림처럼 보였다.“고객 자료는 제가 출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것도...”해인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이건 뭐야?”“호텔 아래층에 프린터 빌리러 갔다가 여자 손님 몇 명이 이걸 마시는 걸 봤어요. 팀장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서 오는 길에 하나 샀어요.”우진이 내민 건 밀크티였다.얼마 전부터 인터넷에서 꽤 화제가 되던 브랜드 제품이었다.해인은 그걸 받아 들고 핸드폰을 꺼냈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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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차희정 감독 집안이 정계 쪽이라던데, 상대도 만만치 않은 집안 아닐까? 아마 서로 비슷한 급이겠지.”호텔 1층 로비에는 야식이 종류별로 가득 깔려 있었다.한쪽에서 스태프가 외치고 있었다.“차희정 감독님 지인이 촬영장에 응원 오셔서, 다들 드시라고 준비하셨어요!”그 말을 듣자, 아까 엘리베이터 안에서 수군거리던 두 사람은 얼른 먹을 걸 받으러 갔다.해인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음식을 나눠 주던 스태프가 해인을 촬영팀 사람으로 착각했다.스태프는 조그만 케이크 하나를 해인의 손에 쥐여 주었다.“자, 이거 드세요. 이것도 ‘RO’ 케이크예요. 줄 엄청 오래 서야 사는 건데.”‘RO’, Y시에서 꽤 이름난 디저트 브랜드였다.가격대도 높은 편이라, 작은 에그타르트 한 조각만 사도 적지 않은 돈이 들었다.디저트 업계의 에르메스라고 불릴 만큼 유명해서 한입 먹을 때마다 돈을 씹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그걸 보면, 그 지인이라는 사람도 제법 공을 들인 게 분명했다.백 명은 족히 넘는 사람들에게 이런 비싼 케이크를 돌리다니.“저는 촬영팀이 아닌데...”해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고개를 들었다.그때 호텔 밖에서 걸어 들어오는 유호가 보였다.해인은 눈썹을 살짝 모았다.곧 손바닥 위에 올려진 작은 케이크로 시선이 향했다.‘차희정이 촬영장에 응원 온 지인이... 설마 한유호야?’‘한유호도 Y시에 온 거야?’해인의 입가에 살짝 비웃음이 걸렸다.이제는 어딘가 돌아다닐 마음도 사라졌다.해인은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고, 곧장 위로 올라갈 생각이었다.호텔 안으로 들어선 유호는 단번에 해인을 찾아냈다.해인은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생김새도 빼어난 데다가 분위기도 남달라서, 사람들 사이에 서 있으면 자연히 먼저 시선이 갔다.유호는 걸음을 재빨리 옮겨 해인을 따라붙었다.해인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문이 닫히려고 했다.그때 유호가 손을 문 사이로 들이밀었다.천천히 닫히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렸다.해인이 눈을 들었을 때, 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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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샤워를 마친 해인은 호텔에서 준비해 둔 흰 가운을 걸친 채 노트북 앞에 앉아 기업 경영 관련 자료를 정리했다.해인은 우선 가볍게 훑어본 뒤, 전문가 강의도 찾아 들어 볼 생각이었다.자신에게 정말 회사를 이끌 재능이 있는지 한번 시험해 보고 싶었다.끝내 도저히 감을 못 잡겠다면, 그때는 다른 길을 찾으면 되니까.아홉 달이라는 시간은 아주 길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YD그룹을 넘겨받을 준비를 하기에는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어쨌든 해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기 능력을 키워 두는 일이었다.준비해 둬서 나쁠 건 없었다.해인은 톡을 열어 우진에게 자료를 보냈다.[내일 아침에 이거 출력 좀 해 줘.]우진은 근처 야시장에서 야식을 먹고 있던 중이었는지, 곧바로 ‘ok’라고 답을 보냈다.10분쯤 지나자 우진이 문밖에 나타났다.우진은 해인의 방문을 두드리면서도, 한쪽 눈길은 유호 쪽에 두고 있었다.해인이 아니라 유호에게 먼저 시선이 머문 건, 유호가 왜 여기 있는지 의아했기 때문인 듯했다.“팀장님, 자료 출력해 왔습니다.”해인은 문을 열며 되물었다.“이렇게 빨리?”해인은 내일 가져다줘도 된다고 말했었다.그런데 문을 열고 나서야 해인은 잠시 멈칫했다.거의 두 시간 가까이 지났는데도, 유호는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유호는 복도 벽에 기대어 있었다.코끝은 찬 바람을 맞은 탓인지 약간 붉었고, 옆에는 커다란 캐리어가 놓여 있었다.검은 옷차림의 유호가 복도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은 어딘가 묘하게 비현실적으로 보였다.벽등이 옆얼굴에 내려앉아 있었지만, 사람 사는 온기와는 조금 떨어져 있는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유호가 입을 열었다.“여보, 내 다리에 감각이 없어. 복도도 너무 춥고.”자세히 듣고 있으면 유호의 목소리에는 억울하다는 기색까지 묻어 있었다.해인은 무의식적으로 우진을 한 번 바라봤다.이제 막 들어온 신입 비서 앞에서 체면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해인이 물었다.“주 비서님은요? 방 안 잡아 줬어요?”유호는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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