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apítulo 281 - Capítulo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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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1화

해인이 번호를 잘못 누른 게 아니었다.유호의 번호가 분명히 맞았다.‘비서가 받은 건가?’해인은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번 KH그룹에 유호를 찾아갔을 때, 대표이사실 주변에는 남자 직원들뿐이었다.‘새로 들어온 여자 비서일까?’해인은 미간을 좁혔다.그래도 쓸데없이 혼자 애를 태우진 않았다.해인은 전화기 너머의 여자에게 곧장 자기 신분을 밝혔다.“누구세요? 제 남편 전화가 왜 당신 손에 있나요?”해인은 이미 대표이사 부인이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정말 오해라면, 상대가 바로 해명을 해야 맞았다.그런데 전화기 너머의 여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조용히 말했다.[그쪽에서 이걸 생각해 보셔야겠네요. 남편이 왜 한밤중에도 집에 안 들어가고, 저랑 같이... 데이트를 하고 있는지...”그 말이 끝나자마자 통화는 끊겼다.해인은 눈썹을 찌푸렸다.‘지금 나한테 시비를 거는 건가?’해인은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골목에 선 채 30초쯤 생각을 정리한 뒤, 곧장 길가로 나가서 택시를 잡으려고 손을 들었다.KH그룹으로 직접 가서 어떻게 된 상황인지 확인할 생각이었다.유호가 야근 중이라면 아직 회사에 있을 터였다.상대가 누구든, 직접 눈으로 봐야 믿을 수 있었다.몇 분 뒤 승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목소리를 듣자마자 술이 제법 오른 상태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말끝이 풀어져 있었다.[해인아, 뭐 하는 거야? 나한테 밥 사 준다며. 근데 왜 혼자 슬쩍 빠져나가?]“갑자기 일이 좀 생겼어. 아, 맞다. 너한테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한유호 주변에 그동안 여자가 없었던 거 확실해?”해인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승아는 정말 많이 취해 있었다.승아는 테이블에 엎드리다시피 한 채 한참을 끙끙거렸다.거의 30초쯤 지나서야 혀가 꼬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기자들 사이에 도는 얘기로는 그렇긴 한데... 근데 말이야...]‘근데?’그 한마디에 해인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해인도 모르게 긴장이 배어 나왔다.승아는 트림을 한 번 하고는,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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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유호는 회의를 마치고 회의실 밖으로 나왔다.대표이사실 앞에 이르자 주헌이 입을 열었다.“대표님, 대표님 뵙겠다고 찾아오신 분이 있습니다.”그 말을 들은 유호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누구?”“차희정 씨입니다.”유호는 미간을 좁혔다.“이 시간에 걔가 왜 왔지?”“차희정 씨가 볼일이 좀 있어서 사옥을 잠깐 빌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안에서 꽤 오래 기다리고 계십니다.”“그래.”유호는 담담하게 대꾸한 뒤 대표이사실 안으로 들어섰다.차희정은 사무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밤이 깊은 시각이라 기다리다 지쳤는지, 소파에 기대어 잠이 들어 있었다.희정은 몸에 붙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매끈하게 이어지는 선이 몸의 굴곡을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었다.고요한 심야의 사무실에서, 비스듬히 소파에 기댄 채 잠든 여자의 모습은 쉽게 시선을 떼기 어려운 묘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하지만 유호는 힐끗 보고 난 뒤에 곧 시선을 거뒀다.유호에게는 별다른 흥미가 없어 보였다.유호는 일부러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작지 않은 소리가 사무실 안에 울렸다.그제야 소파에 있던 희정이 몽롱한 눈으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미안. 며칠째 계속 일만 했더니 너무 피곤했어. 네 소파가 너무 편해서, 나도 모르게 잠들었네.”방금 잠에서 깬 희정의 눈가에는 아직 잠 기운이 살짝 남아 있었다.사무실 안은 난방이 잘 돌아가고 있어서, 막 잠에서 깬 희정의 뺨에는 자연스러운 붉은 기가 돌면서 안색도 무척 좋아 보였다.의자에 앉은 유호가 책상 위에 놓인 자기 핸드폰을 한 번 내려다봤다.방금 회의실로 들어갈 때 핸드폰을 사무실에 두고 나갔던 모양이었다.화면에는 따로 들어온 메시지는 없었다.유호는 핸드폰을 책상 위에 다시 내려놓았다.“그래서 무슨 일인데?”희정이 곧장 본론을 꺼냈다.“이번에 내가 연출하는 드라마가 있는데, 배경으로 쓸 사무실이 필요해. 여기저기 많이 봤는데 딱 맞는 데가 없더라. 네 회사 좀 빌릴 수 있을까? 비용은 맞춰 줄게.”KH그룹 사옥은 화려하게 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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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해인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주헌의 태도를 보니, 꼭 해인이 여기 오면 안 되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해인은 주헌이 아까 무심코 대표실 쪽을 돌아보던 움직임도 놓치지 않았다.해인은 손에 든 야식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우리 한 대표가 굶을까 봐 왔죠.”그 말을 남긴 채 해인은 곧장 대표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다.그때 주헌이 앞을 막아섰다.“사모님, 지금 대표님은 안에서 손님을 만나고 계십니다.”걸음을 멈춘 해인이 고개를 들어 주헌을 바라봤다.그리고 마음속에는 이미 어떤 짐작이 떠오른 뒤였다.괜히 서로 난처해질 수도 있어서, 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물었다.“무슨 손님인데, 이 밤중에 봐야 해요?”주헌은 입술을 다물었다.아무리 유능한 수석비서라 해도 지금 이 상황은 쉽게 정리하기 어려웠다.희정은 보통 사람과는 조금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유호가 안으로 들어간 지도 몇 분이 지났는데, 희정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주헌도 안에서 지금 무슨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일단 해인을 여기서 더 들여보내지 않는 편이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주헌의 난처한 표정은, 해인 눈에는 다른 뜻으로 보였다.해인이 일부러 질투를 하려는 건 아니었다.하지만 지금 눈앞에 놓인 상황은, 해인이 별생각 없이 넘기기 어렵게 만들었다.며칠째 늦게 들어오는 남편.깊은 밤, 남편의 전화를 대신 받은 여자.문이 닫힌 대표실 안에서는 희미하게 여자의 목소리까지 새어 나오고 있었다.해인은 뒤로 주춤 물러났다.오늘 해인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단순했다.유호에게, 두 사람이 한 번쯤 진심으로 가까워져 볼 생각이 있는지 묻고 싶었다.해인이 어느새 유호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그런데 막상 여기까지 와서 이런 일을 겪고 나니, 해인은 그쪽으로 내밀었던 마음을 도로 접어 버리고 싶었다.해인이 유호를 신경 쓰게 된 건 맞았다.그래도 유호가 아니면 안 될 정도는 아니었다.예전에 태겸이 바람을 피웠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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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해인이 이런 시간에 회사까지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여자가 갑자기 저렇게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일 때는 둘 중 하나였다.남자에게 마음이 기울었거나, 아니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겨 도움이 필요하거나.유호는 본능적으로 전자라고 느꼈다.가슴 한쪽이 괜히 들떠 올랐다.그때 주헌이 슬쩍 희정 쪽을 한 번 바라봤다.유호는 그 시선만으로도 다 알아차렸다.해인이 한밤중에 대표이사실 안에서 여자와 함께 있는 유호를 보고 오해한 게 분명했다.한편 희정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유호에게 거절당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그런데 주헌의 입에서 방금 그 여자가 다녀갔다는 말이 나오자, 희정의 표정은 눈에 띄게 굳어졌다.희정은 해인을 그저 유호가 감싸 안고 지켜 주는 온실 속 아내쯤으로 여겼다.그런데 뜻밖에도 해인은 가만히 속만 끓이는 타입이 아니었다.전화를 받더니 곧장 여기까지 달려와서 직접 확인하고 간 것이다.‘생각보다 훨씬 강단 있는 여자네.’희정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희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시간도 늦었으니까 나 먼저 갈게. 잘 있어.”유호는 당장이라도 해인을 뒤쫓고 싶었다.하지만 희정과 단둘이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싶지는 않았다.유호는 담담하게 대꾸했다.“그래.”그러고는 몸을 돌려 대표이사실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외투와 핸드폰을 챙긴 유호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해인에게 전화를 걸었다.통화 연결음이 갔다.하지만 해인은 받지 않았다.유호는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이번에는 두 번쯤 신호가 울린 뒤 연결됐다.수화기 너머로 바람 소리가 스쳤다.유호는 통유리창 앞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봤다.이미 밤이 깊었다.대표이사실 높이에서 내려다보니 사람은커녕 차들조차 개미처럼 검은 점으로만 보였다.그런데 해인 쪽에서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유호의 잘생긴 눈매 사이로 살짝 웃음기가 번졌다.해인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유호는 이상할 만큼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시무룩하고, 괜히 차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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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무언가 느낀 듯 희정도 택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두 여자의 눈길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희정은 천천히 길가 쪽으로 걸어갔다.택시 뒤에 고급 세단 한 대가 멈춰 서 있었다.운전기사가 먼저 내려서 뒷문을 열어 주었다.“희정 아가씨, 타십시오.”희정은 턱을 살짝 들어 올린 채, 해인이 타고 있는 택시를 한 번 훑어봤다.눈길 끝에는 업신여기는 기색이 살짝 묻어 있었다.‘무슨 처지길래 전담 기사 하나 없지.’‘유호가 아주 끔찍하게 챙기는 건 아닌가 보네.’금세 시선을 거둔 희정은 기사에게 웃으며 말했다.“기사님, 일부러 안 기다리셔도 된다니까요. 너무 늦었는데 저는 택시 타고 가도 돼요.”기사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그럴 수는 없습니다. 밤에 택시는 위험합니다. 회장님이랑 사모님께서 아시면 더 걱정하실 겁니다.”희정은 일부러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마치 누가 들으라고 그러는 듯한 말투였다.“그래요. 엄마 아빠가 저를 제일 아끼잖아요.”택시는 곧 출발했다.해인은 창밖을 바라본 채 생각에 잠겼다.‘한유호 사무실 안에 있던 여자가 ‘차’ 씨였구나.’‘한유호와 차씨 가문이라니...’해인은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 곧 승아에게 전화해 보려던 참에, 한 시간 전에 승아가 부재중 전화를 걸었다는 걸 발견했다.해인은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그런데 전화를 받은 사람은 승아가 아니라 남자였다.해인은 즉시 경계심이 발동했다.“누구세요?”해인은 승아와 오래 알고 지냈다.승아는 술이 들어가면 주사가 꽤 심했다.‘설마 식당에서 이상한 남자한테 걸려간 건 아니겠지.’수화기 너머에서 대현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말했다.[제수씨, 접니다.]대현의 앞에는 술에 곯아떨어진 승아가 누워 있었다.지금 승아는 대현의 사무실 소파에 누워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대현은 이 난리 치는 여자가 다른 손님들한테 민폐를 끼치지 않게 하려고, 한참 애를 써서 여기까지 데려온 참이었다.해인은 놀라서 되물었다.“심 대표님? 어떻게 심 대표님이 전화를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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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해인이 허둥지둥 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영업이 끝난 뒤였다.해인은 대현이 알려 준 대로 뒤쪽 문으로 들어갔다.평소라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겨우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숨소리마저 크게 들릴 만큼 고요했다.직원들은 전부 퇴근한 뒤였고, 안쪽 사무실에만 불이 하나 켜져 있었다.소파 위의 승아는 한쪽 다리는 바닥에 걸치고, 다른 한쪽 다리는 소파 등받이에 턱 올린 채 대자로 뻗어서 자고 있었다.너무도 막무가내인 잠버릇에 해인은 절로 이마를 짚었다.승아 몸 위에 덮여 있던 남자 재킷은, 아마 대현이 추울까 봐 챙겨 준 모양이었다.그런데 승아의 기막힌 자세 탓에 그마저도 이미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집에서 문 잠그고 잘 때야 어떻게 자든 상관없지.’‘그런데 여긴 밖이잖아. 그것도 심 대표까지 있는데 이게 무슨 꼴이야.’해인은 얼른 안으로 들어가 승아의 두 다리를 모아 주었다.곁눈질로 보니, 대현은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어서 이쪽을 보지 못한 듯했다.그제서야 해인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참 고생도 많네.’대현 같은 사람이 살아오면서 저렇게 불편한 자세로 의자에 기댄 채 잠든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싶었다.해인은 승아를 두어 번 불러 봤지만 승아는 도무지 깨지 않았다.대신 그 소리에 대현이 먼저 눈을 떴다.대현은 본능처럼 해인의 뒤를 한번 살폈다.아직 잠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제수씨, 유호는 같이 안 왔어요?”해인의 눈빛은 담담했다.“한 대표는 야근 중이에요.”대현은 해인의 표정이 평소와 조금 다르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오히려 감탄부터 흘렸다.“우리 유호는 진짜 독하네요. 일할 땐 사람이 아니라 기계 같아요.” “하긴 그러니까 유호가 KH그룹 맡고 나서도 밑에 사람들이 다 찍소리 못 하는 거죠. 전 다른 건 몰라도 유호 그거 하나는 진짜 인정해요.”해인은 짧게 말했다.“오늘 고맙습니다. 친구는 제가 데려갈게요.”말을 마친 해인은 승아를 일으켜 세워 보려고 했다.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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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대현은 말 그대로 곱게 자란 도련님이었다.어깨에 뭔가 짊어질 일도, 두 손에 짐을 들고 뛸 일도 없었다.어딜 가든 차가 대기하고 있었고, 말 한마디만 하면 비위를 맞추려는 사람이 줄을 섰다.그런 대현이 이런 일을 겪어 봤을 리 없었다.그런데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대현이 바닥에서 겨우 몸을 일으켜 보기도 전에, 승아가 비웃듯 웃으면서 비틀비틀 그쪽으로 다가갔다.“허접한 자식, 다시 해 봐. 또 해 보라고! 어디 감히 나한테 손을 대? 내가 오늘 가만 안 둬!”대현은 할 말을 잃었다.해인이 놀라서 눈을 크게 뜬 사이, 승아는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정확히는 대현의 위에 온몸을 실어 앉아 버렸다.대현은 푹 삶은 새우처럼 몸을 잔뜩 웅크렸다.피라도 한 모금 토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승아는 대현 위에 올라탄 채 팔꿈치를 대현의 쇄골 쪽으로 겨눴다.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승아는 그대로 세차게 내리찍었다.으아악-대현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모든 일은 눈 깜빡할 틈도 없이 벌어졌다.해인이 그 장면을 보면서도 말릴 새조차 없었다.정신을 차린 해인은 황급히 승아를 떼어 놓으려고 했다.그런데 승아는 해인을 보자마자, 바로 대현을 놓아 버리고 와락 해인에게 안겼다.“해인아, 이 변태가 나 성추행했어! 내 가슴을 만졌어! 내 예쁜 가슴을 만졌다고!”“...”해인은 적어도 승아가 술김에 해인까지 못 알아보는 상태는 아니라는 사실에 그나마 안도했다.하지만 지금 승아는 여전히 취해 있었고, 술주정까지 제대로 시작된 모양이었다.해인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이거... 혹시 오해 아닐까?”승아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을 꼭 감은 채 해인을 껴안고 있더니, 그대로 다시 잠들어 버렸다.해인은 할말을 잃었다.‘사고는 사고대로 치고, 뒷수습은 나한테 다 떠넘기고 자면 끝이냐!!’정작 사고를 친 당사자는 잠이 들었고, 남은 상황은 전부 해인 몫이 됐다.원래도 대현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더없이 민망했다.해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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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어젯밤 승아는 식당에서 계산할 돈이 없어서 대현에게 설거지라도 하며 값을 치르겠다고 했다.그런데 대현이 먼저 자기 정체를 밝혔다.유호 친구고, 따지고 보면 승아와도 반쯤은 아는 사이라는 식이었다.승아도 뜻밖이었다.대현은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대현은 수리비는 80%만 받겠다고 했다. 어젯밤 식사값도 그냥 자기가 사는 걸로 하겠다고 했다.승아는 대현이 제법 괜찮은 사람 같다고 느꼈다.고맙다는 뜻으로 테이블 위에 남아 있던 술을 집어 들고, 반 넘게 남은 잔을 그대로 비워 버렸다.문제는 그 한 잔이었다.그 술 때문에 승아는 취해서 자기 집이 어딘지도 모를 지경이 됐다.그 뒤로 있었던 일은 전부 뚝 끊긴 듯 기억이 없었다.해인은 승아의 멍한 얼굴을 보자마자 깨달았다.승아가 어젯밤 일을 몽땅 까먹었다는 걸.해인은 승아가 기억을 좀 되찾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세수를 마친 해인은 화장대 앞에 앉아 승아가 쓰는 스킨케어를 손에 덜어서 바르고 있었다.해인이 거울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심 대표가 병원에 실려 갔어. 쇄골 골절이래.”승아는 눈을 크게 떴다.“뭐? 그렇게 심해? 왜?”해인은 거울 속으로 승아를 바라봤다.“너 아까 눈 뜨자마자 계속 팔꿈치 문지르던데. 아파?”승아는 본능처럼 자기 팔꿈치를 만졌다.확실히 욱신거리는 통증이 있었다.뭔가 단단한 데를 세게 부딪친 것처럼, 은근하게 아픈 느낌이었다.해인은 그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어젯밤 승아는 오른쪽 팔꿈치로 대현의 쇄골을 그대로 찍어 눌렀고, 그 바람에 대현은 구급차로 병원까지 실려 갔다.해인은 몸을 돌려 승아를 똑바로 바라봤다.해인의 맑은 눈빛이 또렷하게 빛났다.“승아야, 일어나면 바로 병원 가서 싹싹 빌어. 진짜.”해인이 생각하기에 대현은 너무나 억울했다.좋은 마음으로 술 취한 사람을 받아 줬고, 한밤중까지 깨어 있으면서 친구가 오길 기다려 줬다.그런데 그 선의 때문에 오히려 뼈가 부러져서 병원 신세를 지게 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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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엄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아무리 그래도 우리 집안 체면이 있는데, 제가 어떻게 그런 짐승 같은 짓을 합니까?”대현은 정소림의 말을 급히 끊었다.“괜한 상상 좀 하지 마세요.”대현은 늘 유호와 어울려 다녔다.두 사람이 오랫동안 붙어 다닌 탓에, 주변에서는 은근히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말까지 돌았다.하지만 정소림은 자기 아들이 멀쩡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대현은 유치원 다닐 때부터 여자아이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애였다.누가 봐도 여자를 좋아하는 쪽이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커서는 주변에서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오히려 유호와 더 찰싹 붙어 다녔다.대현은 유호보다 성격도 밝고 말도 잘했다.정소림은 당연히 대현이 먼저 연애하고 결혼할 줄 알았다.그런데 유호가 말 한마디 없이 아내부터 들여놓으면서 한발 앞서 버렸다.정소림은 그동안 대현에게 맞선을 주선할 때마다, 대현이 늘 유호를 핑계로 뺐다는 걸 떠올렸다.유호가 자기보다 몇 달 더 많은데도 아직 혼자라는 이유를 대며, 대현은 번번이 맞선을 피했다.그런데 이제 유호가 떡하니 결혼해서 잘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대현도 속으로는 조급해졌을 거라고 정소림은 짐작했다.정소림이 타이르듯 말했다.“우리 집이 돈도 있고 힘도 있긴 해도, 그렇다고 남의 집 딸을 억지로 몰아붙이면 안 돼.”“네 아버지도 늘 그러시잖아. 사람은 근본을 잊으면 안 된다고. 네가 자꾸 윤준이랑 어울려 다니니까, 엄마는 혹시라도 그런 못된 버릇 배울까 봐 그러는 거야...”윤준은 이 바닥에서 여자 문제로 꽤 악명이 높았다.마음에 든 여자가 생기면 술부터 먹이고 손부터 대려고 한다는 말도 돌았다.한 번은 어떤 여자를 억지로 밀어붙이다가, 그 여자가 끝까지 버티며 경찰까지 부른 일도 있었다.윤준과 가까운 몇몇 집안 자제들도 비슷비슷했다.정소림은 그런 애들을 애초부터 좋게 보지 않았다.이런 일이 이쪽 세계에선 아주 드문 일은 아니라 해도, 정소림은 자기 아들까지 그렇게 되는 건 원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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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대현의 말은 반쯤 홧김에 튀어나온 것이었다.하지만 승아는 정말 못 들은 척 넘어갈 수가 없었다.어쨌든 사람을 다치게 만든 건 승아였기에, 승아도 속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컸다.승아가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손에 들고 온 과일과 꽃을 테이블 위에 한꺼번에 내려놓았다.“그게... 어젯밤에는 제가 술이 너무 취해서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게 할게요.”“심 대표님이 다 나으실 때까지 저를 그냥 가사도우미처럼 부리세요. 부르시면 바로 오고, 필요한 건 제가 다 챙기겠습니다. 불편한 거 없게 제대로 모시겠습니다.”승아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그런데 대현은 그 말을 그다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대현은 침대에 누운 채였다.목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서 움직일 수 있는 건 눈뿐이었다.“저를 돌보시겠다고요? 지금 부러진 건 쇄골 하나지만, 당신이 이틀만 돌보시면 온몸이 다 망가질 수도 있겠습니다.”승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왜 그렇게까지 말씀하세요?”대현은 바로 말을 되받았다.“왜 아닙니까? 제 신변 안전을 어떻게 보장하실 겁니까?”이쯤 되자 병실 안 공기가 탁 막혀 버렸다.승아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해인을 바라봤다.도와 달라는 간절한 눈빛이었다.해인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심 대표님, 흔히들 때리고 나서 정든다고 하잖아요. 승아도 심 대표님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에요.”“이번 일은 그냥 사고였어요. 이번 기회에 친구 하나 더 생긴 셈 치고, 며칠만 맡겨 보시면 안 돼요?”병원 오는 길에 승아는 이미 해인한테 솔직하게 털어놨다.지금 형편으로는 돈으로 배상하는 건 도저히 무리라고.그러니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었다.해인까지 나서서 말하자, 대현도 더 이상 매몰차게 굴기 어려웠다.“됐습니다. 저도 남자인데, 여기서 너무 따지는 건 모양새가 빠지죠. 어차피 다친 건 다친 거고, 지금 와서 바꿀 수 있는 일도 아니니까요.”승아는 자기 진심을 보여 주겠다는 듯 재빨리 움직였다.물도 따르고 과일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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