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hapter 421 - Chapter 430

558 Chapters

제421화

해인은 의료진이 지나가도록 길을 비켜 주었다. 그러면서 핸드폰에 담아 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 화면을 조용히 꺼 두었다.해인은 예철진이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예철진은 끝까지 악랄했다. 죽기 직전까지도 누군가를 함께 끌고 가려고 했다.하지만 해인은 예철진이 죽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팔아넘길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까지 진심으로 모질 리 없었다.의료진은 예철진에게 진정제를 놓았다.예철진은 침대 위에 누운 채 잠잠해졌다.하지만 피범벅이 된 두 다리는 병실 안에 있는 모두에게 똑똑히 말해 주고 있었다. 예철진의 두 다리는 이제 완전히 망가졌다고.뒤를 돌아본 태상은 해인이 보이지 않자, 병원 안을 이리저리 찾아다녔다.마침내 병원 본관 아래에서 누군가와 통화 중인 해인을 발견했다.해인 앞에 선 태상은 죄책감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말했다.“해인 씨, 죄송합니다. 제 아버지를 대신해서 해인 씨께 사과드립니다. 또... 해인 씨 어머님께도요.”해인은 걸음을 멈추었다. 태상의 얼굴에 닿은 해인의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사과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미 상처는 남았고, 어머니는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해인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방금 통화는 경찰에게 건 전화였다. 해인은 병실 밖에서 찍은 영상을 경찰에게 넘겼다. 그 영상은 예철진의 몸에 아무 문제가 없으며, 법의 심판을 피하려고 일부러 멀쩡한 몸을 망가진 척 꾸며 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었다.예철진 같은 사람에게 가장 좋은 복수는...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는 게 아니었다. 스스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망가진 육신을 끌고, 하루하루 늙어 가는 자신을 지켜보며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감옥에서 살아가게 하는 것.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완전한 파멸이 될 터였다.해인이 차갑게 말했다.“제가 예 대표 댁에 가서 엄마 유품을 정리하겠습니다.”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Read more

제422화

15분 뒤, 해인이 방에서 나왔다. 발치에는 커다란 여행용 캐리어 하나가 놓여 있었다.주여진의 물건은 많지 않았다. 캐리어 하나에 충분히 담고도 남았다. 이 집에서 거의 10년을 지냈지만, 주여진은 오래전부터 언젠가 떠나게 될 날을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언제든 짐을 꾸려 나갈 준비를 해 둔 듯했다.예씨 집안 남매는 줄곧 문밖에서 다투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태상과 지안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해인을 바라보았다.해인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문밖에서 오간 말들을 전혀 듣지 못한 사람 같았고, 설령 들었다 해도 마음에 담아 두지 않는 듯했다.그리고 캐리어 손잡이를 잡고 두 사람 곁을 지나가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좀 비켜 주세요.”지안이 눈썹을 찌푸리며 뭔가 말하려고 했다.그러자 태상이 급히 지안의 팔을 잡았다. 여기서 더 예의를 잃지 말라는 뜻이었다.지안이 불만스럽게 외쳤다.“오빠!”태상은 고개를 저었다.지안은 화가 치밀어 가슴이 크게 오르내렸다.“우리 집이 강해인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오빠는 아직도 남 편을 들어?”태상이 낮게 말했다.“이 일은 해인 씨하고 상관없어. 지안아, 앞뒤 사정도 모르고 말하지 마.”“내가 앞뒤 사정도 모른다고? 난 오빠처럼 그렇게 고상하지 못해. 난 앞으로 내 삶이 얼마나 망가질지만 알아.”“이제 우리 집안 이름만 꺼내도 사람들은 우스갯소리처럼 떠들겠지. 이 모든 게 강해인이랑 주여진 때문이잖아!” “주여진이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거야! 우리한테 계속 독을 먹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 집까지 망가뜨렸다고!”그 말을 듣고 해인이 걸음을 멈추었다.해인 자신을 비난하는 건 상관없었다. 하지만 살인자의 자식에게 어머니가 모욕당하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해인의 시선이 얼음처럼 차갑게 지안의 얼굴에 내려앉았다.“예씨 집안이 갑자기 잘살게 된 돈이 깨끗한 돈이라고 생각해? 내 가족들의 피 위에 쌓아 올린 돈으로 여기까지 온 거야.”해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또렷했다.“예지안,
Read more

제423화

다만 태상은 소문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퍼질 줄은 몰랐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안이 핸드폰을 손에 쥔 채 급히 태상 뒤로 다가왔다.[오빠, 회사 주가가 폭락했어.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을 대량으로 던지고 있고, 밖에서는 우리 YM호텔 곧 망한다는 말까지 돌아.] [은행에서는 아빠랑 연락이 안 된다면서 나한테까지 독촉 전화가 왔어.]“나 먼저 회사에 다녀올게. 주주들을 만나 봐야겠어.”태상은 그렇게 말하며 차에 올라타려 했다.[나도 같이 갈래.]지안이 태상의 뒤를 따라붙었다.남매가 YM호텔 본사에 도착했을 때, 정문 앞은 이미 취재진과 연예부 기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태상은 지안과 함께 지하주차장을 통해 겨우 안으로 들어갔다. 회의실에는 회사 임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우리가 안 도와주겠다는 게 아닙니다. 예 대표도 그때 병원에 있었잖습니까? 우리는 진작부터 회장님께 물러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그래야 최소한 회사라도 지킬 수 있다고요. 그런데 회장님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셨고, 기어코 이 지경까지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방법이 없습니다.”“맞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도 피해자예요. 그동안 쏟아 부은 노력이 전부 허사가 됐습니다.”“은행 대출도 경영난 때문에 전부 운영자금으로 들어갔고, 지금은 회수된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 회장님이 구속됐으니, 이 돈은 대체 누가 갚습니까?”“...”몇몇 임원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말의 속뜻은 분명했다. 자신들도 억울한 피해자라는 것이었다.예철진을 가장 오래 보좌했던 임원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저는 돌려 말하는 성격이 아니라 솔직하게 얘기하죠. 예 대표, 이 호텔이 계속 예씨 집안과 연결돼 있다는 인식이 남아 있으면 소비자들은 절대 돌아오지 않습니다.”“오히려 불매운동이 더 거세질 겁니다. 지금 회장님 상황상 직접 결정을 내리실 수도 없으니, 아들인 예 대표가 대신 발표하시죠.” “예씨 집안은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난다고요. 회사를 우리에게 맡기면, 마지막 승부라도
Read more

제424화

병원에서 태상은 깁스를 한 뒤, 창백한 안색으로 병상에 누워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정형외과 의사는 병원에 도착한 시간이 너무 늦어서 치료의 골든 타임을 놓쳤다고 했다. 앞으로 회복이 어떻게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고도 했다.지안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하룻밤 사이에 아버지는 구속됐고, 집안에는 감당하기 힘든 빚이 생겼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빚을 갚기 위해 팔아야 할 가능성이 컸다.게다가 오빠의 손까지 골절됐다. 외과 의사인 태상이 손을 다쳤다는 건, 의사로서의 앞날이 벌써 절반 이상 무너진 것과 다르지 않았다.지안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랐다. 눈물범벅이 된 눈으로 태상을 바라보며 물었다.“오빠, 이제 우리 어떡해? 은행에서 집 압류라도 하면 우리 어디서 살아?”“월세로 구하면 돼.”“월세? 오빠 지금 장난해? 우리가 월세 산다고? 그 얘기가 밖에 퍼지면 사람들한테 웃음거리만 될 거 아니야?”태상은 지안을 바라보았다.“지안아, 월세 사는 게 뭐가 부끄러운 일이야? 더구나 지금 예씨 집안 사정이야 이미 남들 입에 오르내릴 만큼 올랐잖아.”지안은 입술을 깨물었다.태상이 이어 말했다.“집안에 일이 생겼다고 네가 젊은 나이에 아무것도 안 하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 나가서 일자리 알아봐. 그리고 먼저 집에 가서 가사도우미분들 전부 정리해.”지안이 놀란 눈으로 태상을 보았다.“가사도우미들을 내보내면 누가 우리를 챙겨?”가사도우미들은 오랫동안 집에서 일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태상과 지안이 어릴 때부터 지켜봐 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게다가 지안은 이제 겨우 20대 중반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친구들과 쇼핑이나 다니고 여행을 하며 지냈다. 유일한 업무 경험이라고 해 봐야, 몇 달 전 해인 곁에서 흠을 잡으려고 며칠 동안 비서 노릇을 했던 것이 전부였다.‘내가 나가서 일을 한다고?’지안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밀려왔다.태상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지안아, 우리 지금 형편으로는
Read more

제425화

유호의 표정이 무거워졌다.“왜 하필 지금 다치신 거예요?”태상은 멋쩍게 코끝을 만졌다.“골절이에요.”“그 정도는 저도 압니다.”유호의 목소리에는 불편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저를 여기 며칠씩 놔두고 가더니, 돌아오자마자 손이 골절돼 있다니요. 어쩐지 일부러 그런 것처럼 느껴지는데요.”“그럴 리가 있겠어요?”태상은 부드럽고 해를 끼칠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어딘가 난처해 보이기까지 했다.“사정이 좀 길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수술 문제는 이미 방법을 생각해 두었어요.”“수술칼도 못 잡는 손으로 무슨 방법을 생각하셨다는 거예요?”유호는 이 날을 너무도 오래 기다려 왔다.그 때문에 유호는 출장 일정까지 앞당겼다. 머릿속에 박힌 칩을 하루라도 빨리 꺼내고 싶었다.나흘 전, 유호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정수의 추천을 받아 이곳을 찾아왔다.태상은 유호에게 정밀 검사를 진행했다. 더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마취까지 했다.유호는 그 뒤로 내내 몽롱하게 잠들어 있다가 이제야 겨우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장비에서 데이터가 나왔다. 유호는 수술 성공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당장 알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집도의의 손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태상도 난처했다. 다만 어떤 사적인 마음 때문인지, 해인이 자신의 손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유호에게 말하지 않았다.태상은 컴퓨터 화면을 한 번 바라보았다.“이 수술을 제가 직접 할 수 없지만, 외부 의료진을 부를 수는 있어요. 제 지도교수님 팀과 연락해 두었어요. 교수님 팀이 이미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유호가 미간을 찌푸렸다.“지도교수님 팀이요?”정수는 분명히 말했었다. 태상은 해외의 한 칩 연구소에서 근무했고, 뒤에는 막강한 연구팀이 있다고.그래서 정수는 유호에게 태상을 찾아가 칩 제거를 부탁해 보라고 권했다.다만 태상은 몇 달 전쯤 연구소를 그만두고 귀국한 뒤 가업을 잇기로 했다고 들었다.태상이 말했다.“제가 지도교수님께 직접 배웠어요. 교수님 팀의 기술은 믿으셔도 돼요
Read more

제426화

해인은 방 안쪽 베란다의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경영과 경제에 관한 책이었다. 처음에는 낯설고 막막했지만, 해인은 이해력이 좋은 편이었다. 몇 달 동안 꾸준히 읽다 보니 이제는 조금씩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기업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일도 생각했던 것만큼 불가능한 영역은 아닌 듯했다.감기가 나은 지 이틀째 되던 날, 권영자는 사람을 시켜 꿀생강차를 달여 보내왔다. 몸을 따뜻하게 해 주고 한기를 몰아내는 데 좋다는 이유였다.“작은 사모님, 큰 사모님께서 생강차를 다 드시라고 하셨습니다.”젊은 여자가 도자기 찻잔을 받쳐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권영자의 심복인 진주의 친손녀인 임영지는 해인보다 세 살 어렸다.영지는 해마다 겨울방학과 여름방학 때마다 여기에 와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다. 올해는 해인이 본가에 머물고 있었고, 곁에서 도와줄 사람이 마침 부족했다. 그래서 권영자는 진주에게 영지를 해인 곁에 붙여 두라고 지시했다.찻잔을 받아 들고 한 모금 마신 해인은 곧바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생강이 좀 많이 들어간 것 같아. 냄새가 너무 강하네.”영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날이 바뀌면서 점점 추워지잖아요. 생강이 몸을 데워 준다고, 큰 사모님께서 작은 사모님 몸이 약하시니까 일부러 더 넣으라고 하셨어요.”해인은 절반 넘게 마셨지만, 더는 넘기기 힘들었다.금세 알아차린 영지가 찻잔을 받아 들면서 해인에게 한쪽 눈을 살짝 찡긋했다.“이따가 큰 사모님께서 물어보시면, 제가 다 드셨다고 말씀드릴게요.”그쪽에서 영지가 찻잔을 부엌으로 가져다 놓자마자, 누군가 영지를 불러 세웠다.왕단영이 영지에게 손짓했다.“영지야, 방학한 거야?”영지는 천진한 표정으로 물었다.“여사님, 무슨 심부름이라도 시키실 일 있으세요?”왕단영은 영지 손에 들린 빈 찻잔을 한 번 내려다보았다.“별건 아니고. 네 엄마 몸은 요즘 좀 어떠니? 한동안 통 못 봤네.”영지의 어머니도 예전에 한씨 가문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한 적이 있어서, 왕단
Read more

제427화

해인은 늘 기억하고 있었다. 최수나의 죽음에는 왕단영과 천하솜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그 빚은 언젠가 반드시 제대로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분위기가 지나치게 어색해지자, 왕단영은 얼른 말을 이어 갔다.“해인아, 지금 임신 중이고 곁에 의지할 사람도 없잖아. 무슨 일 있으면 꼭 말해. 우리도 한집안 식구인데,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왕단영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아, 맞다. 우리 한 대표는 아직도 너 보러 안 왔니? 듣자 하니 오늘 회사 온라인 회의에는 참석했다던데.” “네 엄마가 돌아가시고 이렇게 큰일이 있었는데, 유호는 마치 없는 사람처럼 굴면서 안부 한마디 없다니. 이건 정말 아니지 않니?”해인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유호 씨가 돌아왔다는 뜻인가?’주여진에게 일이 생긴 뒤 이틀 동안, 해인은 유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유호의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해인은 어머니의 죽음에 짓눌려 슬퍼하느라 다른 생각을 깊이 할 여유가 없었다.그 뒤 주여진의 장례를 마치고 나서는 심한 감기에 걸렸다. 해인은 정신이 흐릿한 채 이틀 동안 침대에 누워 잠만 잤다.조금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유호와 연락이 끊어진 지 꽤 됐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동안 유호에게서는 어떤 소식도 없었다.다행히 주헌이 돌아왔다. 그리고 F국에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유호가 무슨 비밀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혼자 사라졌다고 말했다.유호에게 사고가 난 것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 해인은 안도했다. 유호가 평소와 다르게 움직인 데에는 분명히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날 아침, 해인이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전화를 받은 사람은 희정이었다. 희정은 그동안 유호와 함께 있었다고 말했다.그래도 두 사람은 부부였다. 가장 기본적인 신뢰만큼은 지켜야 했다.해인은 며칠 동안 책을 읽는 데 집중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 애썼다. 바깥일을 지나치게 묻지도 않았고, 스스로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지 않으려 했다.모
Read more

제428화

영지는 전에 누군가에게서 해인과 조우 사이에 불편한 일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아직 어린 영지는, 궁금한 것을 마음속에 오래 감춰 두기 어려운 나이였다.지금 정원에 나오자, 영지는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조우 도련님이 방금 왜 작은 사모님 편을 들어준 거예요?”해인이 대답했다.“내가 조우를 내 편으로 돌렸거든.”영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네?”“조우가 요즘 농구 좋아하잖아. 그런데 잘 안 된다더라.”해인은 나뭇가지 끝에서 막 피어난 매화 한 송이를 바라보다가 가까이 다가가 향을 맡았다. 마침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해인의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었다. 해인은 한창 피어난 매화를 조용히 바라보며 말했다.“어제 저녁에 내가 조우 앞에서 한 번 시범을 보여 줬더니, 조우가 나더러 스승이 되어 달라고 하더라고.”그 나이 또래 아이들은 본래 자기보다 강한 사람을 쉽게 동경하는 법이었다. 게다가 해인은 여자였다. 그런 해인이 조우보다 훨씬 능숙하게 공을 던져 넣자, 조우는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듯했다.영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농구도 하실 줄 아세요? 농구는 남자애들이 하는 운동 아니에요?”해인의 시선이 멀어졌다. 오래된 기억을 더듬는 사람처럼 목소리가 낮아졌다.“어릴 때 오빠 둘이 집 마당에서 자주 농구를 했어. 오빠들 농구는 아버지가 직접 가르쳐 주셨고.”“나는 옆에서 그걸 계속 봤지. 그러다 나중에는... 나도 슛을 넣을 줄 알게 됐어.”해인은 딸이지만, 해인의 아버지는 아이가 한쪽으로만 치우쳐 자라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운동은 몸에 좋다며 해인이 공을 잡는 것도 막지 않았다.해인은 드리블 같은 동작은 그다지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슛만큼은 꽤 정확했다. 던지면 들어가는 일이 많았고, 조준도 나쁘지 않았다.해인은 아무 생각 없이 공을 던졌을 뿐인데, 공이 깔끔하게 골대로 들어갔다. 어릴 때 몸에 익힌 감각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에 해인 자신도 조금 놀랐다.지난날을 떠올리자, 해인의 눈가가
Read more

제429화

말을 하다 만 희정은 유호가 핸드폰을 쥐고 있는 것을 보았다. 눈썹을 살짝 치켜세운 희정의 눈빛에는 경계하는 기색이 서렸다.“누구랑 통화 중이야?”유호의 목소리는 감정을 알 수 없었다.“해인.”그 대답에 희정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희정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유호를 바라보았다.어제 수술이 끝난 뒤부터 지금까지, 유호는 해인에 관한 이야기를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희정은 한때 유호가 정말 야마모토 교수의 말처럼 해인을 잊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유호가 지금도 해인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해인’이라고 부르고 있었다.‘진짜 본능인가?’‘아니면... 사실 유호가 잊은 게 아닌 걸까?’‘칩 업그레이드가 실패한 걸까?’...정원.전화기 너머의 해인도 희정의 목소리를 들었다. 해인은 부드럽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유호 씨, 갑자기 왜 이렇게 이상해? 차희정 씨랑 관련 있는 거야? 며칠 전에 차희정 씨가 당신 전화를 받았어. 차희정 씨가... 당신이랑 계속 같이 있었다고 했고.”해인은 계속 스스로에게 그 일을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그날 아침, 해인은 유호에게 전화를 걸었고 사실 한 번 연결이 됐다. 유호에게서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고 싶었다.하지만 유호가 입을 열기도 전에, 희정이 갑자기 유호의 핸드폰을 빼앗아 전화를 끊어 버렸다.끊어진 핸드폰 화면을 보며 해인은 미간을 찌푸렸다.해인은 신호 문제인가 싶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받지 않았고, 곧 차단을 알리는 ‘삐삐’ 소리만 들려왔다.영지의 번호도 차단된 것 같았다.해인은 미간을 더 깊이 찌푸렸다. 자기 번호가 차단된 것은 유호의 실수가 아닌 듯했다.해인은 핸드폰을 영지에게 돌려주었다.“고마워.”영지는 해인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어디 불편하신 거 아니에요?”“아니야. 배가 좀 고파서. 먼저 뭐 좀 먹으러 가자.”해인은 차분하게 말했다.영지는 더 깊이 생각하지 못한 채
Read more

제430화

저녁 식사 시간이 가까워지자, 주헌이 다시 대표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대표님, 회장님께서 전화하셨습니다. 오늘 저녁은 본가에 들어와 식사하시라고 하셨습니다.”한씨 가문 부자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었다. 한원랑이 유호에게 직접 전화하는 일은 드물었고, 대개는 중간 사람을 통해 말을 전하곤 했다.이번에는 유호가 꽤 오랫동안 모습을 감춘 데다, 장모의 장례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지나친 일이었다. 아버지인 한원랑 입장에서는 유호를 불러다 한마디 해야 마땅했다.막 밖으로 나가려던 유호는 주헌의 말을 듣고 걸음을 멈췄다.그리고 뒤에 서 있던 희정을 한 번 돌아본 뒤, 다시 주헌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목소리는 차갑고 담담했다.“오늘 저녁 약속 있다고 전해. 안 들어가.”주헌은 희정을 깊이 바라보았다.예전의 유호라면 희정과 단둘이 밖으로 나가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었다. 유호는 늘 선을 분명히 지키는 사람이었다.희정은 주헌을 보며 웃었다. 그 눈빛에는 주헌을 떠보는 듯한 기색까지 섞여 있었다.“왜요? 영화 투자 프로젝트가 하나 있어서 유호랑 얘기 좀 하려는 건데요. 주 비서는 뭔가 걸리는 게 있어요?”업무와 관련된 일이라는 말을 듣자, 주헌은 그제야 납득한 듯했다. 일 때문이라면 말은 됐다. 유호는 원래 일에 관해서만큼은 유난히 철저한 사람이었으니까.지하주차장에 내려온 뒤, 희정은 누군가 옆에 붙어 있는 게 거슬린다는 듯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유호야, 기사님이랑 주 비서는 먼저 퇴근하라고 하는 게 어때? 내가 차 갖고 왔어. 내 차 타고 가면 되잖아.”이건 업무 이야기를 하겠다는 말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주헌과 운전기사를 떼어 놓고, 유호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속셈이었다.유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기사는 먼저 퇴근해도 돼. 주헌은 남고.”희정은 멈칫했다.유호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업무 이야기라며. 그럼 비서를 데려가야지.”그 말을 마친 유호는 차 안으
Read more
PREV
1
...
4142434445
...
56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