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hapter 431 - Chapter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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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1화

서로 눈이 마주치자, 유호의 눈매가 누그러졌다. 결국 유호가 한발 물러섰다.“그래. 그럼 먼저 먹자.”희정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세 사람은 한식당 안쪽 룸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상 위에는 정갈한 한식 반찬과 가벼운 요리들이 놓여 있었고, 전반적으로 기름지지 않은 담백한 음식들이었다.희정은 옆에 앉아 있는 주헌이 볼수록 거슬렸지만, 대놓고 뭐라 할 수도 없었다.희정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알아차린 듯, 유호가 오미자편 한 조각을 집어 희정의 앞접시에 올려 주었다.유호의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워졌다.“먹어 봐.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유호가 직접 음식을 집어 주었다. 게다가 다정한 말투까지 더해졌다. 희정은 처음엔 뜻밖의 호의에 마음이 들떴다. 그러나 유호가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걸 듣자, 희정의 표정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희정은 오미자편을 좋아하지 않았다. 신맛이 나는 것은 전부 싫어했고, 희정이 좋아하는 건 단맛이었다.희정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깨달았다.오미자편을 좋아하는 사람은 해인이었다.유호의 기억에 착오가 생긴 것이었다. 야마모토도 분명 말한 적이 있었다. 유호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연인과 관련된 과거 기억이 뒤섞일 가능성이 있다고.바꿔 말하면, 유호가 마음에 두고 있는 건 희정이 아니었다. 유호는 지금 희정을 해인으로 착각하고 있을 뿐이었다.희정의 속이 껄끄럽게 뒤틀렸다. 꼭 자신이 누군가의 대역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사랑하는 남자에게 대역 취급을 받고도 기뻐할 수 있는 여자는 없었다.희정이 한참 동안 젓가락을 들지 않자, 유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유호의 눈빛에 의심이 스쳤다.“왜 안 먹어?”희정은 이를 악물었다. 그래도 억지로 흠잡을 데 없는 미소를 지었다.이어 젓가락을 들고, 역겨움을 억누른 채 해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오미자편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러면서도 아주 맛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희정은 유호에게 의심을 사고 싶지 않았다. 수술이 끝난 지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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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화

한원랑이 입을 열었다.“먼저 먹자. 유호는 기다리지 마.”권영자가 먼저 수저를 들었다. 그러고는 영지에게 닭백숙 국물을 해인에게 한 그릇 떠다 주게 했다.권영자는 자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해인아, 이건 오골계탕이야. 기름은 다 걷어 냈으니까 살찔 걱정은 안 해도 돼. 엄마한테도, 아이한테도 좋아. 괜히 마음 쓰지 말아라.”“이번 일은 유호가 잘못한 거야. 우리 집안도 그렇게 앞뒤 안 가리는 집안은 아니니, 할미가 네 편을 들어 줄게.”한원랑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탰다.“아버지도 네 편 들어주마.”해인은 잠시 멈칫했다.권영자의 태도야 그렇다 쳐도, 한원랑의 태도는 뜻밖이었다.최수나의 죽음 앞에서 한원랑이 보였던 냉담함을 본 뒤로, 해인은 한원랑을 마주할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거리를 두게 되었다.애초에 한원랑이 강제로 밀어붙이지 않았더라면, 최수나와 오빠 동현은 그렇게 갈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최수나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한원랑은 냉정하게 방관했을 뿐, 최수나를 위해 억울함을 풀어주겠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그런 한원랑이 집안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며느리인 해인을 위해 나서겠다고 하니, 해인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식사가 절반쯤 이어졌을 때였다.조우가 갑자기 놀란 소리를 냈다.“헐, 형수! 형 바람났어!”해인은 멈칫했다.조우가 태블릿 화면을 크게 확대해서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오늘 저녁 유호와 희정이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는 사진이 화면에 또렷하게 떠 있었다.사진 속 유호와 희정은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유호는 희정에게 음식을 집어 주고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촛불까지 놓여 있었다. 식사 분위기는 누가 봐도 지나치게 다정하고 낭만적이었다.천하솜이 과장스럽게 목소리를 높였다.“어머, 한 대표가 저녁에 집에 안 들어온 게 차희정 씨랑 있어서였군요. 설마 한 대표가 사라져 있던 동안 두 사람이 계속...”천하솜은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 뒤에 이어지는 뜻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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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3화

‘소꿉친구’라는 말이 나오자, 한원랑의 분노는 더 거세졌다.“기사까지 났는데 아무것도 아니라고? 유호랑 희정이 예전부터 그런 낌새가 있었다면 나도 굳이 뭐라 하지 않았을 거야.”“그런데 유호는 이미 결혼했어. 지금 이게 대체 무슨 꼴이냐?”한원랑 곁에는 마음을 주고받던 여자들이 꽤 많았지만, 자기 아들까지 그런 식으로 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한원랑 자신은 서정란에게 한결같았다고 믿었다. 서정란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고,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너무 깊어서 대신할 사람을 찾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왕단영이 끓이는 국 맛은 서정란이 끓이던 것과 놀랍도록 똑같았다. 천하솜은 한원랑이 접대 자리에서 술에 취해 저지른 실수였다. 최수나만 한원랑이 먼저 다가간 사람이었지만, 최수나는 세상을 떠난 아내와 너무 많이 닮았다. 한원랑은 최수나마저도 그저 서정란의 대역으로 여겼다.게다가 왕단영과 천하솜, 최수나는 모두 서정란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한원랑 곁에 남게 된 여자들이었다. 유호가 지금 벌이는 일과는 성격이 전혀 달랐다.식사하는 동안 이런저런 말이 오갔다. 오직 해인만 조용히 음식을 먹고 있었다. 마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일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 것처럼.권영자는 해인의 마음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해인이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친 걸 보자, 더 붙잡지 않고 먼저 방으로 올라가 쉬라고 했다.한원랑의 엄한 지시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유호가 밖에서 가진 식사 자리가 마침 끝난 탓인지, 해인이 계단을 막 올라섰을 때 대문 쪽에서 소리가 났다.김 집사가 말했다.“대표님 오셨습니다.”해인의 걸음이 멈췄다.유호가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한원랑의 채찍이 정면에서 날아들었다.“이 못난 놈! 네가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알아? 내가 며칠 제대로 잡아 주지 않았더니 아주 제멋대로 굴어!”유호는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 채찍은 곧장 유호의 콧등을 때렸고, 잘생긴 얼굴 위로 붉은 상처가 생겼다.채찍 소리를 들은 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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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4화

“저 여자라니, 해인이는 네 아내야!”권영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유호를 끌고 거실 안으로 들어왔다.“해인이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그것도 사고로 돌아가셨단 말이다. 요 며칠 해인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아니? 살도 한참 빠졌고, 장례가 끝나고는 앓아눕기까지 했어.”“그러니까 얼른 올라가서 해인이 곁에 있어 줘. 요 며칠 네가 왜 그랬는지도 제대로 설명하고, 얼굴에 난 상처도 좀 치료해.”권영자의 말은 분명히 유호를 구해주려는 말이었다. 한원랑도 채찍을 내려놓았다. 나름대로 한 발 물러선 셈이었다.애초에 한원랑의 목적은 유호를 때리는 데 있지 않았다. 일을 바로잡는 것이 먼저였다.그때 유호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유호의 시선이 난간에 서 있던 해인의 눈길과 정면으로 마주쳤다.두 사람의 시선이 얽힌 그때, 해인이 본 것은 유호의 눈동자에 깃든 냉담함과 낯선 기색뿐이었다. 예전의 다정함은 어디에도 없었다.그런 유호를 마주한 해인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곧 유호는 해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설명할 게 뭐가 있습니까?”권영자를 비롯해 거실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권영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유호를 바라보았다.“너...!!”위층에 선 해인의 눈가에 금세 물기가 차오르면서 가슴 한구석이 시큰하게 아렸다. 서러움이라고도, 억울함이라고도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해인의 속을 조용히 헤집었다.해인은 오래 기다렸다. 유호가 이 이상한 행동들에 대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해 주기를 바랐다.하지만 유호가 결국 내놓은 말은, ‘설명할 게 뭐가 있습니까’였다.‘나는 당신에게 설명을 들을 자격도 없는 사람인 건가?’해인은 눈을 내리깔았다. 긴 속눈썹 아래로 쓸쓸한 기색이 스쳤다.어쩌면 처음부터 기대 같은 건 품지 말았어야 했다. 기대가 클수록... 돌아오는 실망도 커지는 법이니까.“작은 사모님...”곁에 있던 영지가 안쓰러운 눈으로 해인을 바라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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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5화

뜻밖에도 한원랑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문승이도 회사에 들어가서 업무 좀 익히게 해.”자기 이름이 나오자, 문승은 충격을 받은 얼굴이 되었다. 문승은 곧바로 빠져나갈 말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왕단영이 문승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문승이 감히 싫다고 입을 여는 날에는, 레이싱에 쓰는 용돈부터 끊어 버리겠다는 눈빛이었다.문승은 턱밑까지 올라온 말을 결국 삼켜야 했다.유호는 아직 멀리 가지 않았다. 한원랑은 유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승을 회사에 들이겠다는 말을 유호가 들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바로 그것이 한원랑의 목적이었다. 저 못난 아들에게 위기감을 조금이라도 심어 주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누구도 유호를 누르지 못할 터였다.옆에 있던 천하솜은 질투로 눈가가 붉어졌다.“회장님, 조우도 이번 시험 성적이 꽤 괜찮았어요. 이번 학기에 등수도 거의 10등이나 올랐고요. 조우도 회사에 들어가서 배워 보게 하면 어떨까요?”왕단영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천 여사 아들은 아직 열 살도 안 됐잖아. 회사에 들어가서 뭘 하게? 구구단 외우게?”천하솜의 표정이 굳어지며 곧바로 받아쳤다.“문승이는 뭘 도울 수 있는데? 차 고치기? 운전기사 노릇?”그 말에는 분명 문승을 깎아내리는 뜻이 담겨 있었다.왕단영이 발끈했다.“문승이가 할 줄 아는 게 얼마나 많은데. 지금 누구를 깔보는 거야?”천하솜도 지지 않고 맞섰다.“내 아들은 회장님의 훌륭한 피를 물려받았어. 설마 당신 아들보다 못하겠어?”천하솜의 말은 문승이 한씨 가문과 아무런 혈연이 없다는 사실을 비꼬는 말이었다.왕단영이 차갑게 말했다.“문승이가 회사에 들어가는 건 회장님께서 허락하신 일이야. 그럼 지금 회장님의 판단을 의심하는 거야?”두 사람은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물러서지 않았다. 정작 이 집에서 절대적인 발언권을 가진 한원랑이 이미 자리를 떠났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예전에 최수나가 집에 있을 때는, 두 여자가 이 정도로 날뛰지는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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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6화

해인은 눈을 내리깐 채 솔직하게 말했다.“나도 잘 모르겠어.”[아직 집에 안 들어왔어? 아니면 아직도 너한테 설명 안 했어?]성격 급한 승아는 바로 발끈했다.[한 대표가 전에는 너한테 그렇게 잘했잖아. 이건 좀 말이 안 되는데?] [게다가 한 대표가 차희정이랑 잘될 거였으면 진작에 잘됐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이제 와서 갑자기 붙어 다녀?]승아의 목소리는 점점 빨라졌다.[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거절당했던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한 대표랑 잘된다고? 이거 너무 수상한데. 말도 좋은 말은 지나간 풀을 다시 안 뜯어 먹는다잖아.][게다가 차희정은 지나간 풀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해. 한 대표가 얼마나 자존심 센 사람인데, 차희정 그런 여우짓을 못 알아본다고?] [한 대표는 이미 차희정의 수작을 훤히 꿰뚫어 본 거 아니었어?]승아의 말에는 유호가 변심했을 리 없다는 믿음이 가득했다. 유호가 해인처럼 좋은 사람을 보고도 눈이 삐어서 다시 희정 같은 여자에게 마음을 줄 리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승아뿐만 아니라... 해인 역시 아직 정신이 멍했다.“승아야, 나도 이 일에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그럼 네 남편이랑 제대로 다시 얘기해 봐. 이제 너희한테는 아이도 있잖아. 예전에 고태겸 때처럼 짐 싸서 나가면 끝나는 상황이 아니야.]승아는 결국 해인이 걱정되는 마음뿐이었다. 해인은 막 가장 가까운 가족을 잃었고, 임신한 몸으로 이런 일까지 겪고 있었다.[어쨌든 난 네 친정 식구나 마찬가지야.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꼭 말해.]해인은 승아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알고 있었다.지금 해인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또한 엄마가 될 사람이었다. 마음이 앞선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행동할 수 없었다. 자신과 아이를 위해 더 많은 것을 생각해야 했다.전화를 끊은 뒤, 해인은 혼자 정원을 조금 걸었다.요 며칠 기온이 내려가긴 했지만, 오늘 밤 달은 제법 둥글었다.해인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결국 코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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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7화

해인이 문을 밀고 방 안으로 돌아왔을 때, 영지가 아직도 거실에 서서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영지는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있었다. 추위에 해인의 코끝이 빨개진 걸 보자마자, 얼른 우유를 해인의 손에 쥐어 주었다.얼마 전 입덧이 심했을 때부터 해인은 우유를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해인은 컵을 감싸 쥐고 단숨에 절반 넘게 마셨다. 몸에 남아 있던 한기가 조금씩 풀리며, 따뜻함이 아래로 퍼져 내려갔다.영지는 무언가 말하려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해인은 영지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왜 그래?”영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이 사당에서 벌을 받고 계세요. 무릎을 꿇고 계신대요. 밤에는 춥잖아요.”“큰 사모님도 걱정이 돼서 못 주무시는데, 아직 대표님께 화가 나셔서 직접 가 보지는 못하고 계세요.”해인은 곧 알아들었다.영지의 할머니 진주는 권영자 곁에서 오래 일한 심복이었다. 아마 진주가 영지를 통해 말을 전하게 한 듯했다.다만 유호가 사당에서 무릎을 꿇고 벌을 받고 있다는 건 해인도 예상하지 못했다....사당 안.유호는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두 무릎은 철제 고리에 단단히 고정되어 바닥에 박혀 있었다.한원랑이 저녁에 내리친 채찍 자국은 유호의 얼굴 위에 딱지로 남아 있었다. 지금의 유호는 어딘가 병약해 보이는 아름다움까지 더해져 있었다.밤이 되자 사당은 무서울 만큼 조용했다. 더구나 기온이 떨어진 밤에는 더욱 그랬다.찬바람이 스치자 촛불이 흔들렸다. 불빛이 흰 벽 위에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었고, 실내의 빛마저 흔들리게 하면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문에서 ‘끼익’ 소리가 나면서, 해인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방 안의 유호는 돌아보지 않았다. 누가 들어왔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은 듯했다.해인이 사당에 들어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유호의 뒤에서 걸음을 멈추자, 유호의 옷이 채찍에 찢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눈에 들어왔다.팬던트 덕분인지 한원랑도 어느 정도 힘을 거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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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8화

유호가 미간을 찌푸렸다.‘개한테 먹인다고?’‘배짱이 아주 두둑하네. 지금 나를 개만도 못하다고 비꼬는 건가?’이상한 일이었다. 유호의 머릿속에는 아내에 대한 인상이 완전히 비어 있었다. 눈을 감아도 해인의 얼굴이 어떤지조차 떠오르지 않았다.그렇다면 희정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유호는 정말 강해인이라는 아내에게 별로 마음을 두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신경을 쓰지도 않았으니 이렇게 아무 인상도 남아 있지 않은 게 아니겠는가?유호는 저녁에 식당에서 음식을 많이 먹지 않았다. 주된 관심은 투자 조건과 업무 이야기에 가 있었다. 사람은 바쁘면 배고픔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법이었다.그런데 여기서 반나절 가까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게다가 마침 음식 냄새까지 코끝을 자극하자, 허기가 뒤늦게 올라왔다.고개를 옆으로 돌린 유호의 말투는 거만했다.“뒤에 숨어서 뭘 그렇게 꾸물거려? 나 밥 먹는 거 안 도와?”해인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도와?’그 말이 이상하게 귀에 거슬렸다.해인은 앞으로 다가가서 눈짓하자, 영지는 곧바로 도시락통을 정리해서 물러났다.음식이 다시 치워지는 걸 보자 유호의 표정이 굳어졌다.“무슨 뜻이야?”이미 유호 앞에 다가온 해인은 가져온 얇은 매트를 유호 옆에 펼쳤다.“밤도 늦었는데, 자기 전에 먹으면 몸에 안 좋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 영지한테 가져가서 구비 먹이라고 할게.”유호는 말문이 막혔다.‘지금 나를 가지고 노는 거야?’영지는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이 따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준 것이다. 나가면서 사당 문도 조용히 닫았다.가까이 다가온 해인이 유호 옆에 깐 매트에 앉자, 유호는 그제야 해인의 얼굴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유호는 그대로 굳어졌다. 알 수 없는 충격이 가슴 깊은 곳을 세게 두드린 것 같았다.해인의 피부는 백옥처럼 하얗게 빛났다. 머리카락은 느슨한 올림머리로 묶은 채, 눈은 조용히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코끝과 눈가가 붉게 충혈된 것이 울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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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9화

일의 흐름은 유호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유호는 원래 자신의 아이를 가질 정도로 일을 꾸몄다면, 눈앞의 여자가 아부에 능한 타입일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해인은 그렇게 유호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목소리는 유호의 마음 끝을 살짝 긁고 지나가는 듯했다.그리고 얼굴은 바로 유호의 눈앞에 있었다.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서, 유호는 해인의 뺨 위에 난 보드라운 솜털까지 볼 수 있었다.해인의 피부는 너무도 고왔다. 어쩌면 아이를 품고 있어 호르몬의 영향이 있는지도 몰랐다. 살결은 갓난아이처럼 맑고 보드라워 보였고, 조금만 건드려도 상처가 날 것 같았다.부드러운 눈동자는 순진하면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 눈빛은 고요한 물처럼 잔잔했다.유호의 목젖이 천천히 움직였다. 자신도 모르게 해인에게 시선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오늘 밤 돌아오는 길에 희정은 말했다. 유호의 아내라는 강해인은 아주 수단이 좋은 사람이라고. 주변 사람을 모두 자기 무기로 만드는 데 능하고,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 데도 뛰어나다고 했다. 절대 강해인에게 휘둘리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까지 했다.유호가 지금 보니, 그 말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정신을 차렸을 때, 유호는 이미 해인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해인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자,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닦아주려고 했다.그러다 유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가까스로 손을 내려놓으면서, 눈빛에는 혐오하는 기색이 떠올랐다.‘사람 마음을 홀리는 데는 정말 능하네.’해인은 유호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쪼그려 앉은 자세에서 반쯤 무릎을 꿇은 자세로 바꾸었다. 자신의 손을 유호의 손등 위에 올리고, 고개를 들어 유호의 눈을 바라보았다.“아니면... 당신 연기하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차희정 씨랑 같이 있는 척해야 하는 거야?”“당신이 그랬잖아. 때가 되면 나한테 설명해 주겠다고. 여기엔 다른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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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0화

권영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을 꾸짖어도 유호에게 별다른 반응이 없자, 더는 말을 이어 갈 마음도 사라졌다.이어 고개를 돌려 한원랑을 바라보았다.“한 회장, 어떻게 생각하니?”그 말은 분명 자기 아들에게 압박을 주는 말이었다.한원랑도 권영자의 뜻을 모르지 않았다.유호가 어떻게 되든 그건 둘째 문제였다. 하지만 해인은 지금 한씨 가문의 귀한 며느리인 데다가 손주까지 품고 있었다. 해인에게는 작은 탈도 생겨서는 안 됐다.해인은 곧 임신 5개월째에 접어들었다. 그런 해인을 시댁에서 사당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게 했다는 말이 밖으로 퍼지면, 한씨 가문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결국 한원랑이 한발 물러섰다.“일어나라. 이건 네 아내 얼굴을 봐서 봐주는 거야. 하지만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와서 무릎 꿇어.” “사흘을 다 채우기 전에는 이 집 대문 밖으로 나갈 생각도 하지 마라!”한원랑은 그 말을 남기고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섰다.김 집사가 곧바로 다가와 유호의 무릎을 고정하고 있던 쇠사슬을 풀었다.권영자는 손자를 바라보며 무거운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유호야, 네가 오늘 밤 이 사당에서 나갈 수 있는 건 전부 해인이 덕이야. 해인이가 널 도와준 거란 말이다. 알겠니?”한원랑은 성미가 급했다. 정면으로 설득하려 했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났을 터였다. 다만 권영자는 해인이 이렇게까지 유호를 생각해 줄 줄은 몰랐다.권영자는 진심으로 해인을 좋아했고, 진심으로 안쓰러웠다. 그래서 두 아이가 잘 지내기를 바랐다.유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너무 오래 무릎을 꿇고 있던 탓에 다리가 저리면서,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해인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유호를 붙잡았다.“할머니, 늦었어요. 할머니도 이제 들어가서 쉬세요.”유호는 남자인 자신이 여자에게 부축을 받는 상황에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그는 곧바로 해인의 손을 빼냈다.해인은 멈칫하면서 어색하게 손을 내려놓았다.그 모습을 놓치지 않은 권영자가 유호를 매섭게 흘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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