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의 모든 챕터: 챕터 461 - 챕터 470

558 챕터

제461화

해인은 화장실에 갔고, 애리는 계산하러 잠시 자리를 비웠다.식탁에는 유호와 태겸만 남았다.방금 전까지 태겸은 식탁에서 유호와 신경전을 벌이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태겸은 닭발 하나를 자기 접시에 집어 오더니, 묘한 웃음을 띠고 말했다.“손에 넣고도 소중한 줄 모르는구나. 한유호, 두고 봐. 너...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거야.”태겸은 해인을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 온 두 사람의 감정도, 해인은 끊겠다고 마음먹자 미련 없이 내려놓았다. 하물며 유호와는 함께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다.유호 역시 언젠가는 해인에게 단호하게 버림받을 것이다.태겸도 이미 소식을 들었다. 해인이 최근 YD그룹에 자주 드나든다는 소문을.평소 회사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회사 경영에 관심을 보인다는 건, 해인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유호가 눈을 들어 태겸과 시선을 맞췄다. 유호의 눈빛에는 상대를 눌러 버릴 듯한 압박감이 어려 있었다.기세만 놓고 보면 유호가 태겸을 압도했다. 하지만 태겸의 말 때문에 유호의 마음속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 피어났다.그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유호도 알 수 없었다. 마치 무의식 깊은 곳에서 태겸의 말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심지어 현실이 될까 봐 두려운 듯했고, 이유 없이 마음이 불안했다.유호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유호는 아직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저 남자로서 타고난 소유욕을 건드린 것일 수도 있었다.오늘 유호가 태겸에게 자극을 받은 건 사실이었다. 자기 것이라고 여겼던 여자를 태겸이 노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예전의 유호라면 해인에게 이 정도로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태겸은 더 이상 으름장을 놓는 것도 재미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는, 앞으로 벌어질 일이나 구경하겠다는 표정으로 식당을 나섰다.유호는 생각에 잠겼다.태겸이 떠나며 남긴 그 의미심장한 눈빛을 유호는 놓치지 않았다.마치 유호가 해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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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2화

유호는 부하가 자신의 사적인 감정 문제에 끼어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유호 곁에 있는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선을 알아야 했다.하지만 그 일들을 떠올리려고 애쓸수록 머리가 터질 듯 아팠다. 결국 유호는 더 이상 생각을 이어 가지 못하고 멈춰야 했다.주헌도 자신이 말을 지나치게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사모님께서 요즘 여러 발명가들을 만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연구 개발에 쓸 특허를 사들이려는 것 같습니다.][대표님, 어쩌면 며칠 안에 사모님께서 YD그룹을 직접 관리하겠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주헌의 말은 돌려서 하는 경고였다. 원래 가정에 더 마음을 두던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면, 높은 확률로 다른 마음을 먹었다는 뜻이었다.유호가 그 뜻을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 대답 없이 전화를 끊은 유호는 깊게 숨을 두어 번 들이마셨다. 머릿속을 비워 내자, 뒤통수 쪽을 짓누르던 통증이 조금씩 가라앉았다.유호가 고개를 돌렸을 때, 해인이 바로 뒤에 서 있었다.그는 멈칫했다.방금 주헌과 나눈 통화를 해인이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유호가 주헌에게 해인이 지금 말을 지어내 자신을 속이려는 것 아니냐고 따진 말, 주헌마저 해인에게 매수된 것 아니냐고 의심한 말들.해인이 그걸 들었다면, 상황은 더 꼬일 수밖에 없었다.이런 말을 들었다면 누구라도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유호는 백자처럼 맑고 흰 해인의 얼굴을 한동안 살폈다. 하지만 해인의 얼굴에는 불쾌한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유호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말했다.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가 빈 계단실에 퍼졌다.“가자.”해인의 표정은 담담했다.“응.”돌아가는 길 내내 해인은 조용했다.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고, 따지지도 않았다. 그저 차분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바깥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 전부 기억해 두려는 사람처럼 진지했다.유호는 해인이 방금 통화를 듣지 못했을 거라고 판단했다.듣고도 저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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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3화

설날 당일, 권영자는 집안의 젊은 사람들에게 세뱃돈 봉투를 하나씩 나눠 주었다.식탁에서 해인은 권영자로부터 봉투 두 개를 받았다.천하솜은 한원랑의 접시에 반찬을 올려 주며 시큰둥하게 말했다.“해인이 뱃속 아기는 참 복도 많네요. 태어나기도 전에 증조할머님께서 세뱃돈까지 챙겨 주시고. 아이가 태어나면 아주 금덩이라도 통째로 안겨주고 싶으시겠어요.”말이 떨어졌지만 식탁에 앉은 누구도 천하솜의 말에 맞장구를 치지 않았다. 천하솜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어졌다.권영자가 차갑게 천하솜을 바라봤다.“한씨 가문의 첫 증손주인데 귀하게 여기는 게 당연하지. 금덩이가 문제겠어? 나중에 내가 가진 건 다 이 아이한테 줄 생각이야. 누가 감히 거기에 토를 달겠어?”천하솜은 제대로 한 방 먹은 셈이었다. 권영자의 말속에 자신을 향한 경고가 섞여 있다는 것도 느꼈다. 천하솜은 민망함을 감추려고 밥그릇만 붙잡고 밥을 떠 넣었다.식탁은 한동안 조용했다. 식사가 중반쯤 접어들었을 때, 왕단영이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그러고 보니 해인이 뱃속 아기가 아들인지 딸인지 모르겠네요. 배가 동그란 걸 보니 딸일 수도 있겠어요.”“한씨 가문에 딸아이가 태어난 지도 오래됐으니, 태어나면 사랑을 독차지하겠죠. 다만 딸은 나중에 결국 시집을 가잖아요.”“회사를 물려받는 건 아무래도 맞지 않죠. 그러다 한씨 가문 재산이 남의 집안으로 넘어가면 곤란하니까요.”말을 마친 왕단영은 한원랑을 바라보면서 동의를 구하는 눈치였다.“회장님께서도 유호랑 해인이에게 둘째를 빨리 가지라고 하셔야 해요. 한씨 가문에 아들을 하나 더 안겨주는 게 제대로 된 일이죠.”한원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안의 어른이 아직 첫째도 낳지 않은 며느리에게 공개적으로 둘째를 재촉하는 건, 도무지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었다.해인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그런 말을 듣고 기분 좋을 사람은 없는 법이다. 더구나 왕단영은 겉으로는 딸도 좋다는 듯 말했지만, 실제로는 말끝마다 딸을 깎아내리고 있었다.왕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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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4화

“당연히 상관있지. 나는 아직 받아 본 적이 없으니까 궁금하잖아. 국민연금 받는 기분이 어떤지.”천하솜은 한원랑 쪽을 흘끗 보았다.“회장님도 아직 국민연금 받으실 나이는 아니시잖아?”이번에는 왕단영도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해인은 집안의 두 여자가 말로 부딪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금 우스워졌다. 재벌가는 정말 한 순간도 조용할 틈이 없었다. 다만 한씨 가문 본가는 오래 머무를 곳이 못 됐다.어떤 엄마도 자기 아이가 이렇게 복잡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자라는 걸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게다가 본가에는 보는 눈이 많았다. 해인은 요 며칠 YD그룹에 다녀오면서, 누군가 몰래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승아에서 온 메시지였다.[해인아, 네가 부탁한 집 찾았어. 사진 보내 줄게.]해인은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꾸고, 승아가 보낸 사진을 살짝 확인했다.[괜찮네. 이걸로 계약해 줘.][너 밖에 나가서 집 얻어 살려는 거, 한 대표도 알아?]해인은 친구가 보낸 메시지를 보다가 손길을 잠시 멈췄다. 옆에 앉은 유호 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신경 안 쓸 거야.]유호는 지난번 본가에서 아무 말도 없이 떠났다. 권영자가 몇 번이나 재촉한 뒤에야 보름 만에 돌아와 해인의 산전 검진에 동행했다.그 보름 동안 전화 한 통 걸지 않았던 남자가, 해인의 동선을 신경 쓸 리가 없었다.해인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호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해인에게도 이제 혼자 숨 쉴 공간이 필요했다. 집을 사는 건 절차가 번거로우니, 우선 승아에게 괜찮은 집을 하나 빌려 달라고 부탁해 둔 참이었다.해인이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권영자는 어느새 화제를 해인과 유호 쪽으로 돌려놓고 있었다.“유호야, 해인한테 줄 설 선물은 준비했니?”유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무슨 설 선물이요?”준비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권영자는 답답하다는 듯 유호의 등을 찰싹 때렸다.“이 녀석아, 자기 아내한테 그렇게 인색해서야 되겠어?”유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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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5화

권영자는 모든 걸 꽤 꼼꼼하게 준비해 두었다. 게다가 이런 때야말로 유호가 남편다운 모습을 보여 줄 기회였다. 배가 불러 있는 아내를 유호가 돌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자기 친손자인 만큼, 권영자는 유호가 그렇게 기본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해인은 권영자에게 이런 낭만적인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 설 연휴를 틈타 B국 여행까지 준비했을 줄은 몰랐다.왕단영과 천하솜은 동시에 유호를 바라봤다. 최근 유호가 해인을 대하는 태도로 봐서는, 해인과 단둘이 여행을 떠나겠다고 쉽게 받아들일 것 같지 않았다. 유호는 집에도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으니, 해인과의 여행도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뜻밖에도 유호는 항공권을 힐끗 보더니 선선히 대답했다.“B국은 안 가 봤는데, 한번 가 보는 것도 괜찮겠네요.”유호가 거절하지 않자, 권영자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옆에 있던 해인의 눈에도 놀라움이 스쳤다.‘겨우 생긴 휴가를 한유호가 전부 나하고의 여행에 쓰겠다고?’유호는 항공권을 손에 들고 가볍게 만지작거렸다. 해인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유호는 입꼬리를 올리며 해인에게 미소를 지었다.그 웃음에 해인은 잠시 멍해졌다. 아주 짧은 순간이자만 유호가 예전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하지만 해인은 금세 정신을 차렸다. 그저 여행일 뿐인데 괜한 상상을 할 필요는 없었다. 해인의 인생은 길고, 충분히 더 다채롭고 멋지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남자 하나 때문에 마음을 조이면서 살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게다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남자는 미성숙하거나 믿음직하지 못한 쪽에 가까웠다. 해인이 해야 할 일은 그런 사람에게 흔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더 탄탄해지는 것이었다.그동안 조용히 있던 조우가 갑자기 말했다.“B국? 나도 갈래!”천하솜은 아들이 갑자기 나서서 분위기를 흐릴 줄은 몰랐다.“왜 또 끼어들어! 겨울방학 숙제는 다 했어?”조우가 바로 받아쳤다.“끼어드는 거 아니야. 나 태어나서 한 번도 해외에 나가 본 적이 없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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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6화

“그래, 그럼 네 뜻대로 하자.”집안 식구들은 거실에 모여 밤을 함께 보내고 있었다. 해인은 임신 중이라 권영자는 해인에게 방에 올라가 쉬라고 했다.유호도 해인을 따라 일어났다. 복도에 이르자, 해인이 고개를 돌려 유호에게 물었다.“왜 따라와?”유호가 어깨를 으쓱했다.“내 방에 가는 건데.”해인은 몸을 옆으로 비켜 주었다.“그럼 먼저 들어가.”유호가 문을 열자, 해인은 따라서 안으로 들어왔다. 방문이 닫히자마자 유호는 해인을 문 뒤쪽으로 몰아세웠다.방 안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사방이 어두웠고, 창밖에서 들어온 달빛만 유호의 등 위로 내려앉았다. 달빛은 유호의 어깨를 지나 해인의 얼굴까지 닿았다. 해인의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차분한 눈으로 유호를 올려다보면서, 해인의 옅은 핑크빛 입술이 가볍게 움직였다.“왜?”유호가 물었다.“우리 여행 가는데, 조우는 왜 데려가?”해인이 대답했다.“둘이 가면 심심하잖아. 아이도 데려가면 떠드는 소리도 있고,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나쁘지 않잖아?”유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둘이 가면 심심하다고?”“응.”유호의 시선이 해인의 눈에서 코끝으로 내려왔다. 이어 천천히 해인의 옅은 핑크빛 입술에 닿았다.부드러운 달빛도 해인의 차가움을 녹이지는 못했다.갈수록 흥미로웠다.해인에 대한 궁금증은 어느새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하지만 유호는 누구에게도 두 사람의 과거를 조사하게 하지 않았다.유호는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해인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보고 싶었다.해인이 손을 뻗어 불을 켜자 방 안은 금세 환해졌다.해인은 유호를 가볍게 밀어낸 뒤,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유호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려고 했다.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호는 뭔가 떠올린 듯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유호가 다시 돌아왔을 때, 영지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유호 뒤를 따라 들어왔다. 두 사람 사이에는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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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7화

설 연휴 둘째 날 이른 아침, 권영자는 직접 현관까지 나와 세 사람을 배웅했다.권영자는 유호를 바라보며 몇 번이고 당부했다.“유호야, 해인이 잘 챙겨. 해인이는 임산부고 배 속에 아이도 있잖아.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많이 양보해.”“해인이 화나게 하지 말고. 괜히 속상하게 했다가 돌아오면, 그땐 내가 가만 안 둘 줄 알아.”예전 같았으면 권영자가 굳이 이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요즘 유호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권영자는 두 사람의 사이가 다시 좋아지길 바라면서도, 혹시 또 다른 일이라도 생길까 봐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유호는 고개를 돌려 옆에 선 해인을 한 번 바라보고는 가볍게 웃었다.“할머니, 제가 할머니 눈에는 그렇게 매너 없는 사람으로 보이세요? 여자랑 다투기나 하게요?”권영자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건 모르는 일이지.”옆에 있던 조우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끼어들었다.“할머니, 걱정하지 마! 내가 수시로 일러바칠게!”천하솜은 굳은 얼굴로 조우의 엉덩이를 꼬집었다. 남의 여행에 조우가 왜 끼어든단 말인가? 어젯밤 방으로 돌아가자마자 천하솜은 조우를 한참 꾸짖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에게 망신을 줬다고 화를 내면서.하지만 조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천하솜에게 혀까지 내밀었다.“엄마가 영어 못하는 건 사실이잖아. 말도 못 하게 해?”천하솜이 이를 악물었다.“왜 그걸 사람들 다 있는 데서 말하냐고!”조우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차이가 있어? 엄마는 맨날 나보고 시끄럽다고 그랬잖아. 나 형수님이랑 여행 가면 엄마도 조용해서 좋겠네.”“네가 언제부터 해인이랑 그렇게 친했다고 형수님, 형수님 하면서 붙어? 해인이 배 속 아이 태어나면 이 집에서 네 자리는 더 없어져. 그때 가서 울지나 마.”조우는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듯 가슴을 폈다.“형수님 아이가 태어나면 나도 이제 이 집 막내가 아니야. 나 삼촌 되는 거야!”무슨 소리인지. 아직 어린애 티도 못 벗은 아이가 벌써 삼촌이라니.천하솜은 문득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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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8화

유호는 차갑게 말했다.“그만 울어.”유호와 이 ‘동생’은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둘 사이에는 딱히 나눌 만한 공통 화제도 없었다.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라고는 해도 사실상 남이나 다름없었다.이번 해외여행에 해인이 조우를 데려가겠다고 한 건 유호에게도 전혀 예상 밖이었다.더 서럽게 울던 조우는 해인의 팔을 꼭 붙잡고 불쌍한 얼굴로 물었다.“형수님, 우리 형은 나 같은 애한테도 이렇게 무서운데, 형수님은 대체 예전에 우리 형 어디가 좋아서 결혼한 거야?”해인은 창밖에 두었던 시선을 거두고 조용히 말했다.“예전에는 나한테 이러지 않았어.”유호는 멈칫하면서 고개를 돌려 해인을 바라봤다.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해인의 맑은 눈에는 순수함과 함께 쓸쓸함도 살짝 어려 있었다.그 이야기를 꺼낼 때 해인이 마음 아파하고 있다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하긴.”조우는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인을 대신해 억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남자들이 다 그렇지 뭐. 바람둥이에다가 새것만 좋아하고 금방 질려 하고!”조우는 유호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유호는 열 살도 안 된 꼬맹이에게 비아냥을 당한 기분이었다.유호가 헛웃음을 흘렸다.“너는 남자 아니야?”‘게다가 내가 언제 바람을 피웠어?’유호는 딱히 잘못한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나는 남자애지! 남자가 되려면 아직 멀었어. 게다가 형수님이 옆에서 계속 지켜봐 줄 건데, 내가 어떻게 잘못 크겠어!”말을 마친 조우는 해인의 품 쪽으로 더 바짝 기대었다.그 모습을 본 유호는 이상하게 거슬렸다. 유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혹시 네 형수한테서 무슨 약이라도 먹었어? 언제부터 네 형수랑 그렇게 친했는데?”조우는 한씨 가문에서 ‘어린 폭군’이나 다름없었다. 천하솜이 워낙 버릇없이 키운 탓에, 집안 가사도우미들 중에 조우를 보고 피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그런데 그 ‘어린 폭군’이 말끝마다 해인을 하늘 높이 치켜세우고 있었다. 해인에게 유난히 살갑게 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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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9화

공항 데스크에서 수하물까지 맡긴 뒤, 일행은 탑승을 준비했다.해인의 뒤를 졸졸 따라가던 조우는, 문득 유호가 오지 않는 걸 봤다. 유호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듯했다. 조우가 슬쩍 눈동자를 굴렸다.“형수님, 먼저 들어가. 나 금방 갈게.”해인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주치의의 동행을 받으며 먼저 비행기에 올랐다.몇 분 뒤 조우가 돌아왔다. 그런데 조우의 얼굴은 화가 잔뜩 나 있었다.해인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그래? 누가 건드렸어?”“방금 우리 형이랑 차희정, 그 여자가 통화하는 거 내가 들었어!”조우는 분해서 콧김까지 뿜으며 말했다.“형수님, 혹시 알아? 그 여자도 지금 B국에 있대! 그것도 어젯밤 늦게 도착한 비행기였대.”그 말을 들은 해인은 잠시 멈칫했다.조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세상에 이렇게 우연한 일이 있을 수 있어? 다른 나라가 그렇게 많은데, 하필 우리가 가는 곳하고 똑같아?” “마치 우리가 B국에 가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잖아.”맞는 말이었다. 세상에 많은 나라를 두고, 차희정은 왜 하필 B국에 있는 걸까?해인은 눈을 내리깔았다. 세상에 그런 우연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곧이어 작은 목소리로 해인이 말했다.“어쩌면 너희 형이 알려 줬을 수도 있지.”“둘이 여행 가는 거잖아. 우리 형이 왜 그 여자한테 알려줘?”조우는 말을 하다 말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떴다.“설마 아니지? 며칠 떨어져 있는 것도 못 참을 만큼 애틋한 거야? 우리 형은 형수님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조우는 순수하게 해인을 대신해 억울해했다.조우는 강한 사람을 좋아했다. 해인의 뛰어난 농구 실력을 본 뒤로는 해인을 거의 우상처럼 따르고 있었다.나이는 어렸지만, 요즘 아이들은 성장이 빠르다. 더구나 조우는 한씨 가문처럼 복잡한 환경에서 자랐기에 알 만한 건 이미 다 알고 있었다.해인은 입술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침 유호가 비행기에 올랐다.조우가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해인 곁에 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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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0화

해인은 더는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옆에 있던 조우는 희정이 정말 자리에 앉으려고 하자, 희정이 앉으려는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이 여자 진짜 낯짝이 두껍네? 우리가 앉아도 된다고 했어? 왜 마음대로 앉아?”조우의 말에도 희정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다. 희정은 옅게 웃으며 말했다.“조우야, 어른들끼리 얘기하는데 어디 내놓기도 부끄러운 사생아가 왜 끼어들어? 여긴 뷔페 식당이야. 의자에 네 이름이라도 적혀 있어?”겨우 몇 살 되지도 않은 아이에게 대놓고 사생아라는 말을 하는 건 지나치게 악질이었다. 해인은 어른들의 일에 조우를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희정이 조우를 빌미로 해인을 겨냥하고 있다는 걸 해인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인은 단 한 번도 자신을 차씨 가문의 사생아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해인은 차씨 가문과 아무 관계도 없었고, 차씨 가문에서 어떤 은혜를 받은 적도 없었다.해인은 희정과 더 얽히고 싶지 않았다.“여기 너 반기는 사람 없어. 꺼져.”희정은 물러서지 않았다. 희정은 의자를 다시 끌어다 앉았다.“유호가 너랑 같이 오로라를 보러 와서 꽤 기대했나 봐? 그런데 착각하지 마. 유호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은 나야.”“오로라는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봐야 의미가 있는 거거든.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알아? 유호가...”해인이 희정의 말을 잘랐다.“내연녀 노릇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희정이 웃었다.“사랑받지 못하는 쪽이 내연녀지. 너 말이야, 임신한 몸으로 그 불룩한 배를 가지고 남자 하나 붙잡겠다고 여기까지 온 거, 우습지 않아? 유호 머릿속엔 지금 나밖에 없어.”“나랑 떨어지기 싫어서 나까지 따라오게 한 거야. 내가 보기엔 그 아이도 그냥 포기하는 게 낫겠어. 낳아 봐야 너처럼 불행해질 텐데, 차라리 지워.”그 말을 듣자, 해인은 식탁 위에 놓여 있던 밀크티를 집어 들고 희정의 얼굴에 그대로 끼얹었다.갈색 액체가 희정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더니, 하얀 옷 위로 뚝뚝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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