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많이 잔 탓인지, 다음 날 해인은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권영자는 그보다 더 일찍 일어나 있었다. 해인이 캐리어를 끌고 내려오자, 권영자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해인아, 이 아침에 어디 가려고?”“요즘 회사 일이 좀 바빠요. 본가에서는 거리가 멀어서 출퇴근도 불편하고, 이동 시간도 많이 걸려서요. 나가서 지내려고 해요.”권영자는 해인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다. 해인이 말한 ‘나가서 지낸다’는 뜻을, 유호와 살던 하늘빌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다.“그래, 그럼 내가 이따 영지를 너한테 보내마.”지금 해인은 배가 많이 불러 있었다. 곁에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됐다. 누군가 가까이에서 챙기야 권영자도 마음이 놓였다.해인은 권영자를 향해 살짝 웃었을 뿐, 더 설명하지 않았다.그리고 간단히 아침을 먹고 캐리어를 끌고 차에 올랐다.승아는 아파트 단지 아래에서 해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마주치자마자 승아가 곧장 달려왔다.“우리 해인이... 진짜 고생 많았어.”승아는 해인의 캐리어를 받아 들었다.해인이 웃으며 물었다.“어느 동이야?”두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승아의 시선이 해인의 배에 머물렀다.“의사가 아들인지 딸인지 말해 줬어?”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원래는 태어날 때까지 모른 척하려고 했는데, 검진할 때 의사가 살짝 흘리더라.”며칠 전, 한씨 가문의 두 여자가 식탁에서 해인의 뱃속 아이 성별을 두고 떠들 때도 해인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굳이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해인은 미소를 띤 채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얼굴에는 곧 엄마가 되는 사람의 기쁨이 은은하게 번져 있었다.“아마 딸일 거야.”“공주님이네!”승아는 해인보다 더 신나 보였다.“딸 너무 좋지. 예쁘게 꾸며 놓고 같이 나가면 사람들이 모녀가 아니라 자매인 줄 알걸? 달콤하고 말랑말랑해서 너처럼 안아 주고 싶을 거야.”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두 사람은 임시로 지낼 집에 도착했다.방은 두 개였다. 하나는 해인이 지낼 방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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