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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1화

그날은 마침 유호의 수술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큰 수술은 끝난 뒤에도 중환자실에서 며칠은 관찰해야 했다.현장이 폐허가 되었다는데 누가 유호를 돌볼 수 있을까?권영자는 마음속으로 매우 비관적이었다. 하지만 해인 앞에서 차마 그런 말을 꺼낼 수 없었다.만약 유호에게 정말 사고가 생겼다면, 해인의 뱃속 아이는 유호의 유일한 혈육이었다. 해인이 슬픔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 무사히 출산하도록 해야 했다.권영자가 말했다.“해인아, 가서 쉬어라. 내 곁에는 사람이 없어도 돼. 며칠 동안 밤에는 영지가 네 곁에서 같이 자도록 해.”해인은 임신 38주였다. 밤에 곁을 비우면 안 되는 시기였다.보통 이럴 때 임산부 곁에 있는 사람은 남편이었다.해인은 눈을 내리깔았다.“네, 알겠습니다.”깊은 밤.영지가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왔다.“따뜻할 때 드세요.”해인은 우유를 받아서 탁자 위에 내려놓고, 거울 속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영지야, 유호 씨가 이미 죽었을까?”이 말은 해인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숨어 있었다.집안은 이미 엉망이었다. 해인은 사람들이 걱정할까 봐 계속 괜찮은 척했다. 하지만 문을 닫고 나면, 결국 슬픔을 참을 수 없었다.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 사람은 해인의 남편이자 아이의 아버지였다.“대현 씨도 전화에서 자세히 말하려고 하지 않아. 내가 버티지 못할까 봐 그러는 거겠지.”“혹시 대현 씨가 이미 좋지 않은 소식을 알고도 나한테 말하지 않는 걸까? 내가 희망이라도 붙들고 있게 하려고?”영지는 그런 해인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곧 해인 곁으로 다가와 어깨를 조심스럽게 안았다.“울고 싶으시면 울어도 돼요.”“너도 유호 씨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지?”해인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영지에게 기댄 채 천천히 말했다.“그럼 내 뱃속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아빠가 없는 거네?”영지의 눈도 붉어졌다.“작은 사모님...”잠시 멈춘 영지는 위로하듯 말했다.“소식이 없다는 건 좋은 소식일 수도 있어요.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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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2화

영지는 잠드는 속도가 빨랐다. 해인 옆에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해인은 잠들지 못했다.유호가 외국에서 사고를 당한 뒤, 해인은 단 한 번도 편히 잠든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잠과 깨어 있는 경계에서 흐릿하게 보냈다.해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뱃속의 아이가 조금 불안하게 움직이는 느낌에, 해인은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울렸다.영지가 깰까 봐, 해인은 핸드폰을 들고 발코니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대현의 전화였다. 대현의 이름을 보자 해인은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밀려왔다.그 나라의 최신 상황을 알고 싶었지만, 유호에 관한 좋지 않은 말을 들을까 봐 두려웠다.해인은 영상 통화를 받았다. 화면 속 대현은 손에 향나무 염주 하나를 들고 있었다.[제수씨, 이거 유호 물건 맞습니까?]염주를 본 해인의 눈꺼풀이 거세게 떨렸다.향나무 염주에는 검게 탄 흙이 묻어 있었고, 절반 정도는 이미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해인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유호가 떠나기 전, 해인이 직접 유호의 손목에 걸어 준 부적 같은 염주였다.해인이 종안사에 가서 부처님께 빌면서 받아온 것이었다. 유호는 며칠 동안 계속 그 염주를 차고 있었다. 수술 전날 영상 통화 때도 해인은 분명히 그 염주를 보았다.해인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대현 씨, 그 염주 어디서 찾았어요?”[폭발 지점과 아주 가까운 곳입니다. 현장이 무너지면서 깊게 묻혀 있었고, 그래서 오늘에서야 발굴됐습니다.]해인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깊게 묻혀 있었다는 건 무슨 뜻이지?’ ‘유호 씨가 그 근처에 있었다는 뜻...?’“유호 씨는요? 유호 씨도 소식이 있는 거죠?”이 기간 내내 해인은 마음속에서 수없이 싸웠다. 이미 가장 나쁜 상황도 각오했다.대현이 말했다.[아직 소식이 없습니다.]그 말에 해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다행이었다.염주와 함께 발견될 수 있는 건 시신뿐일 거라고 해인은 짐작하고 있었다.대현의 다음 말이 곧바로 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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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3화

전화를 끊은 뒤, 해인은 창밖의 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새벽이 가까워질 때까지 잠들지 못했고, 날이 밝기 직전에야 겨우 잠깐 눈을 붙였다.하지만 그 잠도 편하지 않았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계속 꿈을 꾸는 것 같았다.꿈속에서 유호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어두운 눈빛으로 해인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해인아, 왜 나한테 외국으로 가서 수술을 받으라고 재촉했어? 네가 날 재촉하지 않았다면 내가 죽지 않았을 텐데.” “내려와서 나랑 같이 있어 주면 안 돼? 너 나 사랑한다면서.”“해인아, 나 집에 갈게. 네가 아이 낳는 거 옆에서 볼 거야...”“...”장면이 바뀌었다. 폭발 현장이었다. 현장에는 짙은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유호는 폐허 속에서 불길에 삼켜졌다. 몸은 다 타들어 갔고, 남은 흔적조차 없었다.눈앞은 온통 피처럼 붉었고, 유호의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만 선명했다.해인은 주먹을 꽉 쥐었다.꿈속에서 해인은 필사적으로 유호에게 달려가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리 해도 건널 수 없는 깊은 틈이 가로놓여 있었다. 해인은 눈이 새빨개질 정도로 울면서, 유호가 조금씩 재가 되어 사라지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눈물이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해인은 숨이 막힐 만큼 괴로웠고, 몸이 무너질 듯했다.“작은 사모님, 왜 그러세요?”영지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렸다.“악몽을 꾸신 거예요? 빨리 깨세요.”영지가 다급하게 해인을 부르자, 해인은 그제야 겨우 눈을 떴다.하늘은 완전히 밝아 있었다. 베개는 눈물로 한쪽이 축축했다.“영지야.”해인은 영지를 가볍게 안고, 영지의 어깨에 기댔다.“나 유호 씨가 너무 보고 싶어.”해인의 슬픈 말에 영지의 가슴도 아렸다.“작은 사모님...”...일주일 뒤.폭발 관련 뉴스의 열기는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폭발 현장의 생존자 대부분은 안정을 찾아 갔고, 중상을 입은 사람들은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었다. 아직 찾지 못한 이들은 모두 이른바 ‘실종자’로 분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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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4화

그날 아침, 고태겸의 차가 한씨 저택의 대문 앞에 멈췄다.태겸이 차에서 내렸지만, 한씨 저택 경호원이 길을 막았다.덩치 큰 경호원들을 바라보며 태겸은 턱을 살짝 들었다.“뭐야? 이 집은 이제 손님도 안 받아?”태겸의 신분을 알아본 경호원이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안으로 들어가 알렸다.요즘 한씨 가문은 침울했다.권영자는 퇴원한 뒤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만 보냈다. 한원랑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오늘 아침에는 일찍 나갔다. 회사 일을 처리하러 갔다고 했다.두 사람은 유호에게 사고가 생겼다는 사실을 거의 받아들인 듯했다.경호원은 해인의 방 앞에 와서 말했다.“작은 사모님, 고태겸 대표님이 오셨습니다. 만나시겠습니까?”해인은 창가에 서 있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태겸은 짙은 회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햇빛이 태겸의 얼굴을 스치며 눈동자를 더 선명하게 비췄다.태겸은 습관처럼 입술을 꼭 다물고 있었고,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한동안 태겸을 보지 못했던 해인이 말했다.“들어오시라고 해요.”경호원이 답했다.“대표님은 들어오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작은 사모님께서 밖으로 나와 달라고 합니다.”태겸은 유호와 늘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한씨 저택의 문턱을 밟는 것조차 싫은 듯했다.아마 여전히 유호가 해인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해인은 힘없이 웃었다. 갑자기 죽음과 삶 앞에서는 이 모든 원한과 얽힘이 사실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해인이 천천히 밖으로 걸어갔다.해인을 보자 태겸이 다급하게 말했다.“해인아, 요즘 괜찮아?”해인은 한 걸음 물러나 닿으려는 태겸의 손을 피했다.“괜찮아.”태겸은 해인의 거리감에 표정이 굳어졌지만 곧바로 조용히 말했다.“널 데리러 왔어. 우리 아버지가 너를 보고 싶어 하셔.”해인은 미간을 찌푸렸다.“회장님?”태겸은 고개를 끄덕였다.“일단 나랑 집에 가자.”해인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높이 솟은 자신의 배를 바라보았다.해인은 아마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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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5화

해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남의 입에서 ‘유호가 죽었다’는 말을 듣는 건 몹시 불편했다.태겸은 해인을 잘 알았다. 해인이 반박하지 않는 걸 보고 자신의 말이 맞다는 걸 알아차렸다.“나랑 가자. 앞으로 내가 널 돌볼게.”“아버지랑 어머니께도 다 말씀드렸어. 두 분도 동의하셨어. 넌 원래 우리 집에서 여러 해를 지냈잖아. 우리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예전처럼 지내면 돼.”“내가 너랑 연인이 되자는 것도 아니야. 친구로도 좋고, 남매처럼 지내도 돼. 평범한 친구도 괜찮아.”“우리 부모님도 너를 친딸처럼 대하실 거야. 네가 이곳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훨씬 편할 거야.”태겸은 원래 거의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유호가 죽었다. 태겸에게 기회가 다시 온 것이다.지금의 해인은 다시 16살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부모와 오빠들을 잃었고 친어머니는 재혼해서, 해인 혼자 외롭고 의지할 데 없던 시절.태겸은 자신이 그때 해인을 어둠 속에서 한 번 끌어냈던 것처럼, 이번에도 다시 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해인이 당장 자신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평범한 친구처럼 지내자는 말을 꺼냈다.어쨌든 태겸은 해인을 한씨 가문에서 데리고 나가고 싶었다.태겸의 말을 다 들은 해인의 눈에는 큰 흔들림이 없었다.“너희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태겸은 감정이 격해졌다.“왜? 설마 죽은 사람 붙잡고 평생 살겠다는 건 아니지? 현실을 봐. 한유호는 없어. 돌아오지 않아.”태겸의 시선은 해인의 배로 내려갔다.“아니면 뱃속의 아이 때문이야?”“좋아. 그건 문제가 안 돼. 아이는 낳아. 한유호의 유일한 후손이니까 한 회장도 기꺼이 그 아이를 키우려고 할 거야.”해인은 눈살을 찌푸렸다.태겸은 뜨거운 눈빛으로 말했다.“네가 아이를 놓기 힘들다는 거 알아. 하지만 현실적으로 말해서 한씨 가문에서 자기 집안의 아이를 너한테 맡기고 데려가게 놔두겠어?”“우리 집안이 아니더라도 다른 집안으로 가려면, 아이는 절대 못 데려가. 네가 이 아이를 원한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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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6화

요즘 해인은 자신이 유호가 없는 꿈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유호는 단지 해인의 꿈속에 나타나지 않았을 뿐, 사실 어딘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 태겸은 몇 번이고 유호가 죽었다고 반복해서 말했다.해인을 억지로 현실로 끌어내는 말이었다.하지만 태겸은 결국 해인을 흔들지 못한 채 혼자 떠났다.그 뒤 며칠 동안도 유호에게서는 어떤 소식도 없었다.권영자와 한원랑은 유호가 사고를 당해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거의 받아들인 듯했다.그 누구도 유호의 장례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한씨 저택에서는 점차 유호의 이름을 꺼내는 사람도 줄어들었다.마치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덜 슬플 것처럼.해인은 자주 유호의 물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번 그렇게 앉아 있으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곤 했다.그사이 희정이 한 번 찾아와 소란을 피웠다.희정은 어디서 유호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울고불고하며 한씨 저택 대문 밖에서 뱃속의 아이와 함께 유호의 상을 지키겠다고 난리를 쳤다.희정이 그렇게 외치자, 원래 유호의 일을 모르던 사람들까지 모두 알게 되었다. 언론은 한씨 가문을 에워쌌고, 한씨 가문 사람들을 취재하려고 몰려들었다.이는 예전에 희정이 자신이 유호의 아이를 가졌다고 떠들었던 일보다 더 큰 폭발력을 지닌 뉴스였다.하지만 한원랑은 그런 상황을 봐줄 사람이 아니었다.한원랑은 하늘을 향해 총을 한 발 쐈다.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없었던 기자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뒤로 물러섰다.그제야 사람들은 한씨 가문에 군 관련 배경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 뒤로는 어떤 기자도 한씨 가문 대문 앞에 와서 구경하려고 들지 못했다.희정의 의도는 뻔했다. 유호가 말할 수 없을 때를 틈타, 뱃속의 아이가 한씨 가문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굳히려는 것이었다.지금은 죽은 사람에게 확인할 방법도 없으니까.“왜 강해인은 이 집에 들어와 살 수 있는데 저는 안 돼요? 저도 유호 아이를 임신했어요!”“회장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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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7화

“얌전히 있어!”차장섭의 인내심은 이미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기사에게 희정을 서진의 집으로 보내라고 지시했다.희정은 눈앞의 건물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그렇게 빨리 나를 시집보내고 싶어? 귀찮은 짐을 털어내려고?”차장섭이 말했다.“알고 있다니 다행이구나.”희정은 말문이 막혔다. 그때 서진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희정아.”희정이 차 문을 열고 내리자마자, 차장섭의 차는 곧바로 떠났다.희정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떠나는 차를 바라보았다. 차장섭은 한마디도 더 하지 않고 그대로 가 버렸다.희정은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서진아, 우리 아빠가 나를 버린 것 같아.”서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근데... 너 나한테 거짓말했어.”오늘 외출할 때 희정은 잠깐 바람 쐬러 간다고 했다. 하지만 서진 몰래 기자를 불러서 한씨 가문 앞에서 난동을 부렸다.서진이 처음부터 알았다면, 희정이 그렇게 하게 두지 않았을 것이다.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 서진은 두 사람의 일이 아이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걸 원하지 않았다.희정은 태연하게 인정했다.“응. 너한테 말했으면 네가 반대했을 테니까.”서진이 말했다.“꼭 이렇게 해야 해? 아이가 나중에 커서 친엄마가 자기를 도구로만 썼다는 걸 알면 어떻게 생각하겠어?”“네가 지금 벌이는 뉴스 하나하나가 그 아이가 학교에서 놀림을 받을 자료가 될 거야. 희정아, 제발 부탁할게. 아이를 생각해 줘.”희정은 눈썹을 찌푸렸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따져? 아이 아빠 자격?”“하지만 서진아, 내가 예전부터 말했잖아. 우리 엄마가 나를 그렇게 대했다고. 나를 낳은 이유가 우리 아빠를 붙잡으려는 거였어. 내 아이도 당연히 나를 위해 써야지.”“이 아이가 한유호의 아이가 되면, 나중에 한씨 가문의 모든 것이 네 아들 것이 돼. 뭐가 나빠? 서진아, 너 권력을 갖고 싶지 않아?”서진은 눈을 내리깔았다.“미안해, 희정아. 네가 나를 위해 그렇게까지 생각한 줄 몰랐어. 네 말이 맞아. 한씨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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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8화

희정이 한씨 저택을 떠난 뒤, 한원랑과 권영자는 번갈아 해인을 찾아왔다. 희정의 난동 때문에 해인의 마음이 불편해졌을까 걱정해서였다.해인에게 희정은 우스운 광대나 다름없었다. 희정 같은 사람 때문에 흔들릴 이유는 없었다.외국의 관련 보도에 따르면, 건물 여러 동이 무너진 것은 극단주의자들이 폭탄을 터뜨렸기 때문이었다.그 극단주의자들은 아직 도주 중이었지만, 폭발 현장에서 몇 가지 표식이 발견되어 당국은 대략적인 신원을 특정했다.그들은 해외 범죄 조직 중 하나였다. 다크웹에서 자주 활동하며 현상 의뢰를 받아 움직이는 집단이었다.해인은 생각이 많아졌다. 곧바로 컴퓨터공학과 선배에게 부탁해 다크웹에 접속해 달라고 했다.선배가 다크웹의 캡처 사진 몇 장을 보내왔을 때, 해인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유호의 실종은 사고가 아니었다. 누군가 유호의 목숨을 사려고 한 것이다.극단주의자들이 폭발 지점을 연구소 옆 건물로 정한 건 자신들의 행동을 감추고, 모든 것을 우연한 사고처럼 꾸미기 위해서였다.해인의 마음은 오래도록 진정되지 않았다.‘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의 목숨을 해치다니...’상대가 내건 금액은 결코 적지 않았다.유호가 원한을 산 사람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적인 마찰만으로는 목숨까지 노릴 정도가 아니었다.‘이만한 돈을 낼 수 있고, 유호 씨가 죽길 원하는 사람이라면...’해인이 물었다.“선배, 의뢰자가 누군지 알아낼 수 있어요?”[어려워. 상대가 IP를 여러 번 우회했고, 다크웹은 원래 이런 부분에 특히 민감해. 나도 들어가다가 컴퓨터를 세 대나 날려 먹었어.]“고마워요, 선배. 컴퓨터 손해는 나중에 제가 계좌로 보내 드릴게요.”[무슨 그런 말을 해. 우리 친한 사이잖아. 내가 도울 수 있으면 당연히 도와야지.]전화를 끊은 뒤, 해인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칩이 제거되고 유호가 무사해지면, 유호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신을 해친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이다.칩을 만든 연구소는 추적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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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9화

해인의 아랫배가 묵직하게 내려앉는 느낌이 심해졌다. 예정일까지는 아직 사흘이 남아 있었다.아마 출산이 시작되려는 징후일 것이다. 해인은 곁에서 깊이 잠든 영지를 가볍게 깨웠다.“영지야, 곧 아이를 낳을 것 같아. 기사님 불러서 차 준비해. 병원으로 가야 해.”영지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네! 조금만 버티세요. 제, 제가 기사님 부르고 회장님이랑 큰 사모님께도 전부 알려드릴게요!”영지도 아직 어린 여자애였다. 평소에는 아무리 침착해도 이런 일을 겪어 본 적이 없으니 허둥댈 수밖에 없었다.영지는 다급한 마음에 신발도 반대로 신었다. 해인은 영지의 손을 가볍게 잡아 세웠다.“긴장하지 마. 의사 선생님이 첫아이는 그렇게 빨리 나오지 않을 거라고 했어.”해인은 몇 번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아랫배의 통증을 눌렀다.“할머니는 요즘 계속 잠을 못 주무셨잖아. 오늘 밤은 수면제 드시고 어렵게 잠이 드셨으니까 깨우지 마.”“아버님은 남자라서 출산 문제에 딱히 도와주실 수 있는 게 없어. 아버님이 병원에 같이 가시면 내가 오히려 불편할 것 같아.”해인은 곁에 있는 사람 중 누구를 믿어야 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크게 움직이지 않아야 했다. ‘스파이’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영지야, 유호 씨가 날 보호하라고 붙여 둔 경호원들을 불러. 그분들이 병원에 데려다주게 해. 되도록 조용히. 아무도 깨우지 말고.”그 경호원들은 유호 곁에서 여러 해를 보낸 이들이었다. 유호가 믿었다면 해인도 믿을 수 있었다.영지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큰 사모님이나 회장님 없이 작은 사모님 혼자 병원에 가셔도 정말 괜찮으시겠어요?”해인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앞으로 혼자 있어야 할 때가 많을 거야. 모든 일을 남에게 기대고 살 수는 없잖아.”“게다가 아이 낳는 일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어. 내가 강해지지 않으면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잘 키우겠어?”해인의 말을 듣자, 영지의 가슴이 갑자기 아팠다. 다른 사람들은 아이를 낳을 때 남편이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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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0화

며칠 전부터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밤이 되면 도로 곳곳에 살얼음이 끼면서 교통사고가 잦았다.애리가 있는 병원은 차량 통행이 가장 복잡한 구간에 자리하고 있었다.사고 현장과도 가까운 편이라, 근처에서 다친 사람들은 대부분 그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애리가 말했다.[지난번 검진 때 네 수치는 전부 괜찮았어. 일단은 자연분만을 시도해 보는 게 좋겠어.]분만실과 수술실은 동선이 따로 나뉘어 있어서, 서로 방해될 일은 없었다.해인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네.”애리가 말했다.[병원 입구에 사람을 보내 둘게. 도착하면 바로 분만실까지 안내하게 할게.]“네.”[해인아, 무서워하지 마. 너도 아이도 둘 다 괜찮을 거야.]“네.”전화를 막 끊자마자, 구급차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해인 곁을 지키던 영지는 정신이 온통 해인에게 쏠려 있어서, 차에 오를 때 안전벨트를 매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영지의 몸이 앞으로 확 쏠리더니 앞좌석 등받이에 이마가 그대로 부딪혔다. 눈앞에서 별이 반짝거리는 듯했다.해인은 통증 때문에 줄곧 들것 손잡이를 꽉 붙잡고 있어서 그나마 괜찮았다.“영지야, 괜찮아?”해인은 영지의 이마가 크게 붉어진 걸 똑똑히 보았다.영지는 이마를 문질렀다.“으... 괜찮아요. 조금 어지러운 것뿐이에요.”해인을 수행하던 경호팀장이 운전석 쪽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운전을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구급차 운전대원이 연신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도로가 너무 미끄러워서요. 앞차가 갑자기 급정거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들이받을 뻔했습니다.”운전대원만 탓할 수는 없었다. 도로는 이미 얼어 있었고, 한밤중이라 시야도 좋지 않았다.게다가 앞차가 급정거하면서 여러 대가 연달아 추돌하고 있었다.그나마 해인 일행이 탄 구급차는 운전하던 구급대원이 빠르게 반응한 덕분에 간신히 멈춰 선 것이었다.영지가 목을 빼고 밖을 보더니 놀라 말했다.“앞이 막힌 것 같아요.”해인은 미간을 찌푸렸다.“이 시간에 정체라고?”밤바람은 뼛속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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