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은 냉정하게 상황을 짚어보려 했다.“그날 행사장 예약이 비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해. 무턱대고 부탁한다고 될 일이 아니야.”“봉봉한테 이미 확인했어! 네가 요즘 연락도 잘 안되고 일도 봉봉한테 죄다 떠넘기길래, 급한 마음에 미리 물어봤거든.”펠의 시선이 구석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던 달봉에게 꽂혔다.달봉은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하. 그럼, 그건 부탁이 아니지, 모리. 그리고 내 말 좀 끝까지 들어.”“미안, 미안! 내가 너무 급해서 나도 모르게 그만……. 아무튼 예약도 없는데 부탁 좀 들어줘. 너희 호텔 홍보도 되고 일석이조잖아, 안 그래?”펠은 잠시 침묵하다가 차가운 눈빛으로 달봉을 불렀다.“봉봉. 내 허락도 없이 호텔 스케줄을 외부인에게 함부로 발설하고, 그걸 나한테 보고조차 안 한 걸 보니…… 이제 그만 잘리고 싶은 모양이구나?”“죄, 죄송합니다, 루루 님! 그레모리 님께서 너무 간절해 보이셔서 그만…….”“내가 외부인이라니! 섭섭하다, 얘? 나 진짜 간절하다고, 루루. 제발!”그레모리가 다시 한번 쐐기를 박듯 애원하자, 펠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어차피 비어 있는 홀이라면 아스모데에게 휘둘리는 것보다 그레모리에게 내주는 것이 사업적으로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휴, 알았어. 봉봉, 내일 아침까지 바로 계약서 작성해서 진행해. 할 수 있겠지?”“물론입니다! 즉시 준비하겠습니다.”달봉은 지옥 사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표정으로 서둘러 서재로 향했다.속으로는 ‘에휴, 오늘 새벽까지 잠은 다 잤구나’ 하며 눈물을 삼켰지만 말이다.“꺄! 고마워, 루루! 역시 너뿐이야!”그레모리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바닥에 두었던 고급 아이스 버킷을 테이블 위로 올렸다.“내가 아주 귀한 빈티지 와인을 사 왔거든. 오랜만에 우리 한잔할까?”그레모리가 능숙하게 와인 코르크를 따는 동안, 펠의 시선은 거실 벽면에 걸린 시계로 향했다.지금쯤 서아는 피시방에서 일을 시작했을 시간이었다.엘이 나타나지는 않았을지, 서아가 혼자 당황하고 있지는 않을
Last Updated : 2026-03-04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