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을 빌었더니, 계약이 시작됐다: Chapter 51 - Chapter 60

122 Chapters

51화

"하, 서아. 난 이 자식이 우리 데이트 방해해서 화가 치미는데, 넌 이게 웃음이 나와?""오호, 데이트 중이었어? 데이트라…."엘이 눈을 가늘게 뜨며 짓궂게 웃자 펠이 소리쳤다."그래! 그러니까 그만 좀 꺼져. 눈치는 어디다 팔아먹었냐? 눈치 좀 챙기고 갈 길 가라고.""나 딱히 목적지가 있었던 건 아닌데? 이왕 눈치 없는 거, 나도 같이 놀면 안 돼? 나 진짜 심심하단 말이야.""싫어! 절대 안 돼!""서아 씨. 서아 씨도 제가 싫어요?"엘이 금세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며 울망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천사 특유의 그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얼굴에 서아는 마음이 약해졌다."아, 음… 전 딱히 상관없긴 한데….""정말요?""네. 전 펠만 괜찮다면 상관없어요."서아는 펠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덧붙였다.펠은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으로 마른세수를 하더니, 결국 포기한 듯 내뱉었다."하. 우리 호텔 정원으로 와. 거기서 딱 차 한 잔만 마시고 꺼지는 거다.""오케이!""서아, 너도 참 눈치 없다. 꽉 잡아, 내려간다."휙!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급강하했다.순식간에 땅에 발을 디딘 서아는 조금 어지러운 듯 비틀거렸고, 어느새 지상으로 내려온 엘이 그녀를 부드럽게 부축했다."와. 서아 씨. 아까 하늘에서 봐도 예뻤는데, 가까이서 보니 오늘 정말 너무 아름다워요.""고마워요. 엘도 아까 날개 펼친 모습이 정말 멋지던걸요?""제가 좀 멋있긴 하죠, 하하!""아주 잘 알고 계시네요?"서아와 미카엘이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며 정원 안쪽으로 걸어가자, 뒤에 남겨진 펠의 얼굴은 숯덩이처럼 검게 타들어 갔다.'저 닭털 같은 자식이 내 데이트를 완전히 망쳐놓고 있어…!'정원의 은은한 조명 아래, 엘의 시선이 서아의 쇄골 위에서 빛나는 투명한 펜던트에 머물렀다.순간, 늘 여유롭던 그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가라앉았다."어…. 서아 씨, 그 목걸이…….""아, 엘도 단번에 알아보시는군요. 맞아요, 제 영혼 목걸이예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05
Read more

52화

“네가 여길 왜 와? 아스…… 아니, 강아모 대표님?”그레모리는 본명을 부르려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급히 말을 바꿨다.아스모데우스는 여유롭게 와인 잔을 흔들며 대답했다.“말 그대로 대표니까. 이 회사 회장 아들의 이사취임식에 초대받는 건 당연한 비즈니스지. 그보다, 일개 직장인이야말로 여길 왜 온 거야?”“일개 직장인이라니. 나도 엄연히 실장이라는 직함이 있어. 업무상 참석한 거라고.”“아아, 그래. 실장 자격으로 왔다? 뭐, 네 업무 능력만큼은 인정해 주지.”“괜히 시비 걸지 말고, 저리 가. 너랑 섞여서 좋을 거 없으니까.”그레모리가 질색하며 몸을 돌리려 하자, 아스모데우스가 그녀의 어깨를 스치듯 다가와 은밀하게 말을 건넸다.“내가 요즘 아주 흥미로운 소식을 들었거든. 우리의 위대하신 왕께서 웬 인간 여자 하나한테 푹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린다는 소문 말이야.”“……뭐?”그레모리의 걸음이 딱 멈췄다.아스모데우스의 눈이 즐거움으로 번들거렸다.“꽃다발은 기본이고, 다이아몬드 반지에 명품 가방까지 바리바리 갖다 바친다던데? 심지어 우리 매장에서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옷이랑 구두까지 싹 쓸어갔더라고.”“말도 안 돼. 루루가 그럴 리가…….”“나도 처음엔 네 선물인 줄 알았지.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소문의 인간 여자에게 줄 선물이라더군. 가엾어라, 이모리 실장. 수백 년을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면 뭐 하나? 정작 그분의 마음은 한 톨도 얻지 못했는데, 어디서 굴러먹던 인간 여자한테 다 뺏기고 말이야.”아스모데우스의 조롱 섞인 웃음소리가 그레모리의 귓가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당장이라도 저 재수 없는 얼굴에 샴페인을 뿌리고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그녀는 잔을 쥔 손에 힘을 주며 겨우 참아냈다.여기서 흔들리면 저 영악한 놈의 의도에 완전히 휘둘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인간 여자라니…… 대체 누구길래.’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던 그레모리의 뇌리에 번개처럼 어느 날의 기억이 스쳤다.얼마 전, 펠이 직접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온 그 꾀죄죄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06
Read more

53화

아스모데우스는 터져 나오려는 콧노래를 억지로 누르며 입술 끝을 말아 올렸다.구겨진 그레모리의 안색을 떠올리니 속이 다 후련했다.그동안 그레모리의 행동은 그의 인내심을 끊임없이 시험해 왔다.위대한 루시퍼의 곁을 독점하려 들며, 마치 자신이 그의 정비라도 되는 양 기세등등하게 구는 꼴이 가증스러웠다.자신보다 계급도 낮은 하위 악마 주제에 사사건건 막말을 내뱉으며 대드는 것도 눈엣가시였다.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건,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며 그의 가장 깊은 흉터를 헤집어 놓는 것이었다.그런 그녀의 콧대를 제대로 꺾어놓았으니, 아스모데우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밤이었다.“아이고, 강 대표님 아니십니까! 반갑습니다.”“아, 박 이사님. 그간 별거 없으셨습니까?”“이번 패션쇼도 업계에서 아주 난리더군요. 역시 강 대표는 감각이 남달라. 허허허!”“과찬입니다. 운이 좋았을 뿐이죠.”가식적인 미소로 화답하던 아스모데우스의 눈에 낯익은 뒷모습이 포착되었다.그레모리가 달봉의 멱살을 잡다시피 이끌고 비상계단 쪽으로 사라지는 광경이었다.‘저건 또 무슨 희한한 그림이야?’흥미로운 먹잇감을 발견한 포식자처럼 아스모데우스가 그들의 뒤를 쫓으려 발을 뗐을 때, 묵직한 목소리가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강아모 대표.”“아, 한 회장님. 아드님 이사 취임 축하합니다.”“하하, 고맙네. 여기는 내 딸 지희라고 하네. 인사 나누게나. 지희야, 사라 패션의 강아모 대표님이시다. 인사드려라.”“안녕하세요, 강아모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어요.”‘사라……?’“강 대표?”“……아, 죄송합니다. 따님께서 너무 미인이셔서 저도 모르게 넋을 놓아버렸네요. 하하.”“어머, 감사합니다. 과찬하시니 민망하네요. 대표님도 소문대로 정말 세련되고 멋지세요.”“한 쌍의 선남선녀가 따로 없구먼! 난 잠시 인사 나눌 곳이 있어서 가볼 테니, 두 사람이 오붓하게 대화 좀 나누게나.”국내 굴지의 패션 대기업 ‘루리앤 패션’의 수장인 한석훈 회장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06
Read more

54화

“여기 양념치킨 한 마리랑 생맥주 500cc 두 잔이요!”기름 냄새와 활기찬 소음이 가득한 치킨집 안.서아는 쟁반을 옆구리에 낀 채 눈앞의 황당한 광경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생각이야? 펠, 그리고 달봉 씨까지!”“글쎄. 딱히 시간을 정해두진 않았는데? 아직 맛보지 못한 치킨 종류가 꽤 남았거든. 오늘은 양념치킨 차례일 뿐이야.”펠은 맞춤 제작한 고급 슈트 차림으로 끈적한 치킨집 소파에 태연하게 앉아 메뉴판을 살폈다.그 옆에서 초췌한 안색으로 포크를 들고 있는 건 달봉이었다.“서아 님, 저는 정말 루루 님 손에 끌려오는 겁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전 이제 닭이라면 질색이라 달걀프라이도 안 먹습니다.”엘이 데이트를 방해한 그날 이후, 펠은 매일 같이 서아가 일하는 치킨집을 제집 드나들듯 찾아왔다.오죽하면 평소 말 한마디 안 섞던 동료 아르바이트생이 “저 잘생긴 사람들은 대체 누구냐”며 서아에게 말을 걸 정도였다.“이래 봤자 결국 난 주말마다 엘을 만나게 돼. 그러니까 시간 낭비 하지 마. 주말까지 찾아오고 말이야. 너는 일 안 해? 그 좋은 호텔이 안 망하고 어떻게 유지되는지 정말 희한한 일이라니까.”“그거야 여기 유능한 내 비서가 다 알아서 하니까. 안 그래, 봉?”펠의 뻔뻔한 대답에 달봉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저만 죽어납니다, 저만. 어휴….”“달봉 씨는 무슨 죄야. 너무 달봉 씨한테만 다 시키는 거 아니야? 달봉 씨, 다음에 또 환생하면 그땐 절대 펠 한테 찾아가지 마세요. 정말 안쓰러워 죽겠네.”서아의 진심 어린 걱정에 달봉의 눈가가 촉촉해졌다.“제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서아 님은 천사…… 아니, 정말 좋은 분이세요.”“엘 그 녀석 때문인 것도 있지만 매일 봐야 정이 들지. 정이 들어야 사랑하게 될 테고. 난 네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야. 그러니 인상 좀 펴고 예쁘게 봐달라고.”펠이 능글맞게 윙크를 건네자, 서아는 고개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06
Read more

55화

잠시 침묵이 흐르자, 엘이 쐐기를 박듯 덧붙였다.“내가 말했지. 그런 식으로 영혼의 힘을 얻어본들, 넌 다시 그곳으로 돌아오지 못한다고.”“그딴 곳에 내가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위선자들만 가득한 그 역겨운 하늘에? 너만 봐도 알 수 있지. 친구? 배신한 친구를 두고 우정이니 뭐니 떠드는 꼴이라니. 난 그저 빼앗긴 내 힘을 되찾고 싶을 뿐이야.”“되찾고 나면? 그 뒤엔 어쩔 생각이지? 그대로 지옥의 왕으로 군림하며 지내겠다는 건가?”“그게 이상해? 지옥의 왕으로서 너희 천계보다 훨씬 더 큰 세력을 키울 거야. 신조차 다시는 날 어쩌지 못하게.”“어리석은 생각이군.”미카엘이 고개를 젓자, 펠이 의자를 바짝 당겨 앉으며 서늘하게 대꾸했다.“그리고 네 질문에 대한 대답은 둘 다야. 계약자를 빼앗기고 싶지도 않고, 질투도 맞아. 나 역시 서아에게 꽤 관심이 많거든. 무엇보다 우린 너와는 가질 수 없는 감정의 교류가 있지. 그러니 빼앗기 쉽지 않을 거다.”“그거야 나도 지금부터 차근차근 쌓아가면 되지. 내가 보기엔 아직 서아 씨가 너한테 별 관심 없어 보이던데? 즉, 나한테도 기회가 있다는 소리지.”“서아가 네 그 가식적인 진짜 모습을 모르고 있는 게 안타까울 뿐이군.”“가식이라니. 난 늘 진심이야, 루루. 내 모든 말, 모든 표현은 단 한 점의 거짓 없는 진짜라고.”미카엘이 맥주잔을 들고 주방에서 나오는 서아를 향해 다시 눈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 여유로운 태도에 펠의 주먹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그래서 이번 시즌에는 한국적인 선을 강조한 이미지로 디자인을…… 저, 대표님? 듣고 계신가요?”회의실의 공기가 순간 멈췄다.팀장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아스모데우스는 그제야 초점이 흐릿했던 눈동자를 갈무리하며 고개를 들었다.“아. 미안. 잠시 딴생각을 했군. 계속 진행해.”“네, 알겠습니다. 다음 시안은…….”팀장의 브리핑이 다시 시작되었지만, 아스모데우스의 귓가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지희를 만난 그날 이후부터 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06
Read more

56화

쾅! 문을 닫으려던 서아의 기세보다 펠의 발이 더 빨랐다.펠은 재빨리 문틈 사이에 명품 구두를 집어넣어 문을 막아섰다."이봐! 나 이미 짐도 다 싸서 왔다고!""그 짐 그대로 들고 네 펜트하우스로 돌아가면 되겠네. 어서 발 치워!""안 돼! 엘한테서 널 지키려면 이 방법밖에 없단 말이야! 그 자식이 너한테 관심이 있다고 대놓고 나한테 선전포고했다고!""뭐라고? 엘 씨가?""그래! 그때 치킨집에서 너 맥주 가지러 간 사이에 내 속을 다 뒤집어놨다고. 그런 소릴 듣고 내가 어떻게 널 혼자 둬?""아니,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남의 집에 쳐들어오면 어떡해? 여긴 좁아터진 원룸이라고!""그 자식이 너한테 털끝 하나 접근 못 하게 하려면 24시간, 네 옆에 딱 붙어있어야 해. 내 계약자니까!"서아는 목덜미가 당기는 통증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하, 펠. 난 어차피 주말마다 엘을 만나. 전에도 얘기했잖아.""그건 그거고! 그때도 내가 가서 눈을 부라리고 지켜볼 거야. 내가 없으면 봉봉이라도 보낼 거고.""너 일은 안 해? 그러다 그 좋은 호텔 망하겠다, 정말.""대부분 유능한 우리 봉이 잘 처리할 거야. 나랑 봉이랑 교대로 네 옆에서 보초 서면 돼.""하…… 진짜 못 말리겠네, 정말."서아가 황당함에 힘을 푼 사이, 펠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문을 더 넓게 밀어젖혔다."자, 문 좀 더 열어봐. 캐리어가 걸려서 안 들어가잖아."펠이 끙끙대며 대형 캐리어 두 개를 서아의 좁은 현관으로 억지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무슨 짐이 이렇게 많아? 피난이라도 왔어?""이 루치펠 님의 짐인데 이 정도면 아주 간소한 거야. 옷 몇 벌이랑 세면도구, 그리고 네 잠자리를 방해하지 않을 선에서 챙겨 온 내 침구류 정도?"서아는 제 집 안방처럼 거실 한복판에 캐리어를 툭 내려놓는 펠의 뒷모습을 보며 머리를 짚었다.'돌아버리겠다, 정말. 악마랑 동거라니. 내 인생 진짜 어디로 가는 거냐.‘***“그러니까…… 지금 루루가 서아 씨 집으로 쳐들어갔다는 말이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06
Read more

57화

"하, 누구 세…… 엘?"문을 열자마자 좁은 복도에 쏟아지는 눈부신 역광에 서아는 눈을 찌푸렸다.복도 끝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을 등지고 선 미카엘은 영락없는 천사의 형상이었다.하지만 그 성스러운 아우라와는 대조적으로, 그의 얼굴에는 개구쟁이 같은 장난기가 가득 서려 있었다."안녕, 서아 씨. 나도 오늘부터 여기서 같이 살려고 왔어요.""네……? 지금 뭐라고……."서아가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거실에서 짐을 풀고 있던 펠이 용수철처럼 튀어 나왔다."이 미친 닭 날개가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어, 루루도 있었네?"엘은 펠의 살벌한 눈빛을 여유롭게 받아치며 발밑에 놓아둔 깔끔한 가죽 가방을 들어 보였다.펠의 거대한 캐리어들에 비하면 단출했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펠의 짐보다 훨씬 무겁게 다가왔다."엘, 여긴 내 집이에요! 펠 하나로도 꽉 차서 발 디딜 틈도 없다고요!""걱정하지 말아요, 서아 씨. 전 루루처럼 짐을 잔뜩 들고 와서 서아 씨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엘이 펠의 어깨를 툭 치며 문 안으로 뻔뻔하게 발을 디뎠다."악마랑 인간 여자 둘이 한집에 있는 건 아무래도 위험하잖아요? 천사인 내가 옆에서 지켜줘야 서아 씨 영혼이 안전하죠. 안 그래?""이 자식이 진짜 죽고 싶나! 당장 안 나가? 여긴 내 계약자의 집이야!""계약은 계약이고, 동거는 자유지. 서아 씨, 나 요리도 잘하고 청소도 잘해요. 루루처럼 빈둥거리는 식충이 노릇은 안 할게요."서아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대환장 파티에 현기증을 느꼈다.좁은 원룸 안에 지옥의 왕과 천상계의 대천사가 동시에 들어차자, 공기마저 희박해지는 기분이었다."엘 씨까지 이러면 나 정말 신고할 거예요…….""신고해도 경찰관들이 우리 얼굴을 보면 그냥 돌아갈걸요? 너무 잘생겨서 죄가 안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고."엘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서아는 벽을 짚고 주저앉았다.어제 느꼈던 그 찝찝함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었다.악마가 쳐들어오면 천사도 쳐들어온다는 지극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06
Read more

58화

두 존재 사이에서 흑백의 기운이 충돌하며 전등이 깜빡거리기 시작하자, 서아는 결국 머리를 감싸 쥐고 절규했다.“으악! 제발 둘 다 나가라고!”서아의 비명은 원룸 벽을 타고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하지만 두 초월자는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느라 인간의 간절한 외침 따위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듯했다.서아의 소원은 ‘사랑’이었지만, 현실은 가혹한 ‘생존 서바이벌’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원룸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이들과의 동거는 서아의 정신 건강뿐만 아니라 심장 박동수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초월적인 비주얼을 가진 두 남자는 인간계의 수치심이라는 개념이 결여된 듯 행동했다.아침 출근 준비를 위해 씻으려고 화장실로 향하던 서아는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마주한 광경에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으악! 뭐, 뭐 하는 짓이야!”서아는 재빨리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홱 돌렸다.화장실 문밖으로 걸어 나온 루치펠은 수건 한 장을 목에 걸친 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체를 당당히 드러내고 있었다.“왜? 나 다 씻고 나온 건데.”“오, 옷을 왜 안 입고 나오는 건데! 여긴 너 혼자 사는 집이 아니라고!”“아. 미안. 집에선 늘 이러고 다녀서 습관이라 생각 못 했네.”“빠, 빨리 옷부터 입어! 이 변태 자식아!”서아의 매몰찬 일갈에도 펠은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오히려 젖은 머리카락을 털며 서아의 곁을 스치듯 지나갔다.“변태라니, 말이 너무하네. 내몸이 그렇게 질색할 정도로 나쁘진 않을 텐데. 아, 설마 너무 눈부셔서 부끄러워 그러는 건가? 이 미모에 이 몸매면 그럴만하지. 이해해.”“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옷이나 입으라고!”서아는 쿵쾅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화장실로 쏙 들어갔다.하지만 방금 본 잔상이 눈앞에 아른거렸다.조각칼로 정교하게 깎아낸 듯한 광활한 어깨와 탄탄한 식스팩.‘하, 저 근육질 몸매…… 해롭다. 내 심장에 너무 해로워.’하지만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겨우 씻고 나온 서아를 기다리고 있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06
Read more

59화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이내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모리 님이야말로 정말 너무하시네요.”“뭐? 내가 뭘 어쨌…… 봉! 너, 너 울어?”“전 이미 모리 님께 제 마음을 고백하고 전부 알렸는데…… 그런 제 앞에서 루루 님만 찾으시는 모리 님을 보는 제 심정은 전혀 안중에도 없으시네요. 이런 바람도 제겐 욕심인 거겠죠.”달봉의 뺨을 타고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그레모리는 평소 자신을 그림자처럼 보좌하며 웃어주던 달봉의 눈물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 나도 너무 흥분해서…….”“…….”“그, 너도 알잖아. 내가 루루를 얼마나 오랫동안 좋아했는지. 그리고 왜 좋아하게 됐는지도. 지옥에서 유일한 여자 악마라고 무시당하고, 인간들에게 마음 약하게 군다고 ‘인간 호구’라고 조롱받을 때…… 유일하게 루루만 날 무시하지 않았어. 오히려 내 다정함이 인간들을 꾀어내는 장점이라고 칭찬해 줬다고. 처음으로 날 인정해 준 사람인데, 내가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겠어.”그레모리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지만, 그 고백은 달봉의 가슴에 날카로운 유리 파편이 되어 박혔다.달봉은 마음이 산산조각이 나 흩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그녀에게 펠은 단순한 짝사랑이 아닌, 존재의 가치를 증명해 준 구원자였다.그 거대한 서사 앞에 자신의 연심은 한낱 보잘것없는 소음처럼 느껴졌다.‘내 마음은 그녀에겐 조금도 다가가지 못했구나.’고백 후에도 혹시나 했던 기대가 무너진 자리에 시린 공허함이 차올랐다.달봉은 젖은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짝사랑의 비극은 그레모리뿐만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는 달봉에게도 현재진행형이었다.달봉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목격한 그레모리는 마치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지옥의 그 어떤 잔혹한 고문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그녀가, 달봉의 작은 떨림 앞에서는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리고 있었다.자신의 눈물 한 방울에 이토록 당황하며 안절부절못하는 그녀를 보자, 조금 전 날카롭게 산산조각 났던 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06
Read more

60화

펠의 서슬 퍼런 꾸중에 서아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으응, 고마워….”“그러니까 그렇게 말랐지! 쯧, 안 되겠다. 오늘부터 윤서아 식단 관리 돌입이다!”“좋아! 오래간만에 마음이 통하네. 역시 내 친구 루루!”“친구 아니라고 했지!”“저도 열심히 돕겠습니다, 루루 님! 엘 님!”서아는 세 남자의 과한 열정에 정신이 아득해졌다.“아, 아니.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되는데….”“넌 잠자코 우리가 해주는 밥이나 먹어. 얼른 씻고 나와.”펠이 서아를 욕실 쪽으로 떠밀고는 달봉을 향해 돌아섰다.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운 비즈니스 모드로 변했다.“봉. 일단 식단도 식단인데, 데이트 계획부터 다시 의논하자. 저 자식 때문에 지난번에 다 망쳤으니까, 이번엔 제대로 해야겠어.”“에이, 루루. 그냥 셋이 같이 놀자. 나만 왕따 시키면 서운해.”“시끄러워! 어딜 끼어들어, 감히!”펠의 고함에 엘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도발적인 제안을 던졌다.“흐음. 그럼 나도 서아 씨랑 단둘이 데이트하지 뭐. 루루 없는 날로 골라서.”“뭐라고?”“왜? 못 할 이유 없잖아? 서아 씨는 나랑 있을 때 더 편해 보이던데.”챙!순식간에 펠의 손에는 칠흑 같은 마력의 검이, 엘의 손에는 눈이 부신 빛의 검이 들렸다.좁은 원룸 안이 순식간에 전장으로 변하기 직전이었다.“너 이 자식, 진짜 한판 붙어볼래?”“흥, 내가 거절할 줄 알고?”“아이고! 두 분 다 진정하세요! 서아 님 나오시다 놀라시겠어요!”달봉이 필사적으로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으며 외쳤다.그제야 서아의 눈치를 살피던 두 존재가 마지못해 검을 거두었다.“내가 서아 때문에 참는다.”“누가 할 소리. 루루, 너 그렇게 다혈질로 굴면 서아 씨가 너한텐 절대 마음 안 줄걸?”“내 다혈질은 너 한정이야! 봉, 데이트 계획은 저 자식 없을 때 다시 짜자.”“넵! 그럼 전 이만 가봐도 될까요?”“그래.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봉봉, 잘 가.”엘이 현관문을 나서는 달봉에게 가볍게 손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06
Read more
PREV
1
...
45678
...
13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