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은 서아의 머릿속이 얼마나 어지러운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말을 이었다.“소원을 들어준다는 건 빈말이 아니야. 내 사전엔 허언이란 없거든.”가볍게 덧붙인 말이었지만,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무게감이 남달랐다.“다만 네 소원은 좀 까다롭긴 해. '사랑'이라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보다 난해하거든. 시간도 꽤 걸릴 거고.”서아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를 바라봤다.남자의 눈동자는 깊은 심연처럼 고요해서 도무지 속내를 읽을 수 없었다.“이렇게 골치 아픈 걸 소원이라고 내뱉을 줄 알았으면, 애초에 ‘뭐든 들어준다’ 같은 호기는 안 부렸을 텐데. 아쉽게도 나에겐 인간의 속을 꿰뚫는 독심술 따위는 없어서 말이야.”펠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그 태도가 너무나 당당하고 태연해서, 서아는 저도 모르게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하지만 골목이 깊어지고 가로등 불빛이 멀어질수록,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의 뺨을 때리며 정신을 깨웠다.‘잠깐. 나 지금… 정체도 모르는 위험한 놈을 집 근처까지 끌고 가는 거 아냐?’술기운에 억눌려 있던 생존 본능이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서아는 급히 걸음을 멈추고 그와의 거리를 벌렸다.“그, 저기….”서아는 경직된 근육을 억지로 끌어올려 미소를 지었다.“여기서 헤어져. 집 거의 다 왔고, 이쪽부턴 큰길이라 밝아서 괜찮거든.”입 밖으로 낸 말은 정중했지만, 속마음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악마고 뭐고, 지금 네가 제일 위험하다고!’펠이 우뚝 멈춰 섰다.그는 서아의 비겁한 퇴로를 이미 읽었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제 휴대전화를 내밀었다.“그래. 그럼 들어가.”예상외로 순순한 물러남이었다.서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찰나,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대신 번호는 저장해 둬. 내일 데이트해야 하니까.”“……데, 데이트?”“응. ”펠의 눈은 지나치게 진지했다.농담이라고는 한 톨도 섞이지 않은 그 정직한 시선이 오히려 더 소름 끼쳤다.“아, 아니… 저기!”서아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뒷걸음
Last Updated : 2026-03-04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