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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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화. 제 힘으로 서겠습니다

비상 통로로 이어지는 병원 복도는 아직 새벽조차 오지 않은 시간의 숨결을 품고 있었다.희미한 벽등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여 서로가 가까워질 때마다 그 그림자들도 조용히 겹쳐졌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다.민영은 계속해서 따라붙는 기척을 느끼며도 예상과는 다르게 몸을 잔뜩 움츠리거나 걸음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오히려 자신이 더 이상 이유 없이 두려움에 떠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조용히 깨닫고 있었다.물론 그 용기에는 바로 옆에서 같은 속도로 걸어주는 한 사람의 존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지만.“…대리님.”민영은 걷다 멈춰 서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네.”“저를… ‘돌아오길 바라는 자리’라고 했죠. 그 사람들이 말한 그 자리 그게 어떤 의미일까요?”최강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의 침묵은 모르는 사실을 꾸미려 하지 않는 솔직함에서 시작되는 침묵이었다.“…정 사원님.”그가 입을 열었다.“아까 침입자가 했던 말들은 진실의 일부일 수도 있지만, 일부러 왜곡된 정보일 수도 있습니다.”민영의 시선이 잠시 흔들렸다.“왜곡… 이요?”“네. 진실을 조각으로 보여주면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조각을 스스로 이어 맞추려 하니까요.그걸 노린 걸 수도 있습니다.”민영은 입술을 깨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누군가가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보를 뿌렸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왔다.“…그러면 제가… 잘못된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는 걸 알고 그렇게 말한 걸까요?”“그렇습니다.”최강은 담담했지만 그 속은 더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들은 지금 정 사원님의 심리 상태를 관찰하고 있습니다.두려움, 혼란, 죄책감… 그 감정들이 어떤 결정을 만들지 지켜보는 거죠.”민영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작은 정적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아주 천천히 떨어졌다.“…저를… 흔들리게 만들려고 하는 거군요.”“네. 아마도요”최강도 멈춰 섰다.“흔들리면 돌아가게 되고, 돌아가게 되면…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가게 되니까요.”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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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화. 사라진 기척이 남긴 여운

그림자는 정말로 사라진 걸까.민영은 한동안 복도 끝 어둠이 지닌 온도를 잊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숨을 골랐다.그곳에서 느껴지던 기척은 한순간 꺼진 바람처럼 자취를 감춘 듯했지만, 기억 속의 잔향은 아직 가슴을 조금씩 두드리고 있었다.최강은 민영이 그 잔향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굳이 바라보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그녀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작은 긴장, 숨의 높낮이,그리고 시선이 돌아가는 방향까지 어쩌면 누구보다 민영을 빠르게 읽어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비상 통로로 향하는 마지막 구간은 평소보다 길게 느껴졌다.발걸음이 스치는 바닥의 차가운 질감조차 마치 누군가의 시선처럼 민영에게 오래 머물렀다.“…대리님.”민영이 작게 입을 열었다.“네.”“아까, 그림자가 사라졌을 때… 왜… 전 갑자기 숨이 쉬어졌던 걸까요…?”그녀의 목소리는 겉으로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서 작은 파동이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다.최강은 그 질문이 단순한 혼란의 표현이 아니라 민영이 스스로를 이해하고 싶어 하는 과정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정 사원님은… 두려움보다 알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커졌기 때문입니다.”민영은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들었다.“…정말… 그렇게 보였나요?”“네.”그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정 사원님은… 도망치려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습니다.”민영의 입술이 조금 느리게 떨렸다.“…저… 무서웠는데요.”“무섭다는 건… 맞서고 있다는 뜻입니다.”그의 목소리는 민영의 심장 깊숙이 닿을 만큼 낮고 단단했다.“진짜 도망치는 사람은 무서움조차 느끼지 못합니다.감각이 사라지니까요. 하지만 정 사원님은 달랐습니다.”민영은 잠시 말을 잃었다.그 말은 그녀의 마음 한 구석을 조용히 밝혀주는 등불 같았다.“…대리님은 어떻게 그런 걸 다 아세요…?”최강은 짧은 숨을 들이쉬었다.그의 시선이 아주 짧게 흔들린 뒤 다시 민영에게 돌아왔다.“…제가… 예전에…”그는 한순간 망설였지만 곧 결심한 듯 이어 말했다.“누군가를 지켜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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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화. 무너질 틈을 허락하는 배려

민영은 병동 로비의 의자 끝에 앉아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손끝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지만 그 떨림은 아까처럼 공포가 아니라몸 깊은 곳에서 아주 천천히 올라오는 어떤 묘한 감각 때문이었다.자신이 누군가에게서 ‘빼앗겨온 존재’라는 말.그 말은 충격적이었지만,한편으로는 평생 어딘가 어긋나 있던 의문에 조용히 자리를 만들어 주는 듯했다.'왜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시선을 피하듯 자신을 숨기려 했을까.''왜 민영 자신도 언제나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눈길이 따라붙는 듯한 알 수 없는 낯섦을 느껴왔던 걸까.''그리고, 왜 아버지는 한 번도 그녀에게 강요한 적 없던 ‘라오네트’를 끝까지 지켜내려 했을까.'민영은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의 야망이 아닌, 어떤 오래된 약속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은아직 선명하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녀의 귓가에 남은 잔향을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그 모든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새도 없이 최강은 언제나처럼 민영에게 한 걸음 옆에서 멈춰 서 있었다.지켜야 한다는 의무 때문이 아니라, 지키고 싶다는 마음 때문인 듯한 거리였다.“정 사원님.”그의 목소리는 낮고 오래 머물렀다.“지금은 잠시라도 쉬셔야 합니다.”민영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저… 잠이 올 것 같지 않아요.”“괜찮습니다. 눈 감아만 보세요.”그 말은 거짓 위로도 아니고, 명령도 아니었다.단지 무너질 틈을 허락해도 된다는, 그런 조용한 배려였다.민영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아주 조심스럽게 눈을 감았다.그러자 뒤늦게 밀려오는 피로가 파도처럼 몸으로 스며들었다.“…대리님.”그녀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그 사람들은… 저를 찾으면서도왜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죠?”최강은 잠시 말을 삼켰다.그녀가 듣고 싶어 하는 답과 현실이 너무 다르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정 사원님을 한 번에 빼앗고 싶은 게 아닙니다.”민영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잘 모르겠어요… 저를 데려가는 게 목적이라면 왜 이렇게 돌아가는 거죠…?”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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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화. 그림자의 숨결이 가까워질 때

민영은 병동 창가에 잠시 서 있었다.밤공기는 유리창 너머로만 스며들고 있었지만그 온도마저도 어딘지 낯설게 느껴졌다.병원의 하얀 불빛 아래에서 자신의 그림자가 바닥에 길게 늘어진 것을 보며 민영은 문득 깨달았다.어쩌면 지금 이 순간, 멀리 있던 그림자가 오히려 자신과 똑같이 어딘가의 어둠 속에서 자신의 발자국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그러나 그것은 두려움의 떨림이라기보다 긴장과 결심이 뒤섞인 새로운 형태의 감정이었다.“정 사원님.”최강의 목소리가 천천히 그녀 뒤에서 다가왔다.그는 아무 말 없이 민영 옆에 멈춰 섰다.그 거리에는 억지로 지키려는 힘이 아니라 곁에 서는 사람의 조용한 온기가 있었다.“…대리님.”민영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아까 그 문자는… 그냥 위협이 아니라…전쟁의 시작 같은 거죠?”최강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그녀의 감각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먼저 체감하고 있었다.“네.”그의 대답은 단호했지만 어딘가 가슴 깊은 곳이 저릿한 듯 울렸다.“정 사원님을 흔들기 위한 전조이자, 동시에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입니다.”“신호…”“곧 움직이겠다는 뜻입니다. 정 사원님이 준비가 되어 있든 아니든.”민영은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그리고 아주 느리게 그 숨을 내쉬었다.“…그럼 저도 준비해야겠네요.”그녀의 눈동자에는 아직 불안이 있었지만그 불안 너머로 단단한 빛이 어렴풋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최강은 그 눈동자를 보며 말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을 스쳤다.“정 사원님.”“네.”“준비는… 제가 도와드릴 겁니다. 혼자 하게 두지 않겠습니다.”민영은 눈을 깜박였다.놀람, 안도,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흔들림이 어린 듯했다.“…왜요…?”그녀가 조심스럽게 묻자, 최강은 잠시 눈을 떨구었다.그의 대답은 쉽게 꺼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마치 오래 닫혀 있던 문을 조심히 연다는 듯한 호흡으로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키고 싶은 사람에게는 준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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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화. 어둠 속의 등불, 곁에 있다는 약속

복도 끝 전등이 깜빡이며 빛의 끝자락을 흔들어 놓은 순간,민영은 자신의 발밑으로 낯선 기척이 스며드는 듯한 감각을 선명히 느꼈다.그림자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고, 또다시 길게 늘어나 사라지는 흐름은 마치 누군가 민영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민영은 손끝이 차가워질 만큼 긴장했지만 조금 전과는 다르게, 그 떨림은 더 이상 ‘깜빡이는 공포’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이번에는 알 수 없는 기척을 똑바로 바라보려는 스스로를 흔들림 밖으로 꺼내려는 결심에 가까웠다.“…대리님.”민영이 조심스럽게 숨을 골랐다.“지금… 누가 여기 있었다고 느껴지는 거…저만 그런 건 아니죠?”최강은 민영의 말에 아주 짧은 순간 눈빛을 낮추었다.“네. 정 사원님만 그런 게 아닙니다.”그의 시선은 복도 끝, 깜빡이는 전등 아래에 고정되어 있었다.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그러나 그 ‘아무도 없음’이 도리어 누군가가 방금까지 서 있었다는 증거처럼 서늘하게 남아 있었다.“이 병원 구조를 모르면 움직일 수 없는 곳입니다.”최강이 낮게 말했다.“그는 이미 이곳을 파악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지나는 동선, 멈추는 지점, 지켜보는 타이밍까지.”민영의 심장이 조용히 내려앉았다.“…우리를 계속 따라다닌다는 거죠?”“네.”그는 숨을 가라앉히며 대답했다.“그리고 지금은 거리를 좁히고 있습니다.”민영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나려다가 곧 다시 멈춰 섰다.그 움직임은 아주 미세했지만 최강은 정확히 보았다.그는 조용히 말했다.“정 사원님. 뒤로 물러서는 건 괜찮습니다.하지만 마음이 무너지면 그때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겁니다.”민영은 숨을 들이쉬었다.그리고 아주 천천히 다시 제자리로 발을 가져왔다.“…저, 물러서지 않을게요.”“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그는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다만… 제가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은 잊지 마십시오.”민영은 그 말에 잠시 눈을 깜박였다.이상하게, 가슴 깊은 곳이 조금 따뜻해졌다.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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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빛이 닿지 않는 문틈

하얀 천 조각은 병동의 고요 속에서 이질적인 존재처럼 바닥에 가만히 놓여 있었다.작은 조각일 뿐인데 그 안에 스며 있는 온도와 결은마치 누군가의 숨결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지독히 생생했다.민영은 그 조각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골랐다.손끝으로 만지지 않았음에도 섬유가 가진 차가운 감촉이 자신의 가슴 한가운데까지 꾸준히 스며드는 것 같았다.“…대리님.”민영이 낮게 불렀다.최강은 이미 그 조각 위에서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그의 눈빛은 적을 포착한 사람의 눈이면서도민영을 철저히 지키고자 하는 사람의 긴장으로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누가… 여길 지나갔던 걸까요…?”민영의 목소리는 두려움보다는 알고자 하는 욕구에 조금 더 가까웠다.그 변화는 아직 스스로도 모르게 조용히 자라나는 용기였다.최강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서며 천 조각을 조심히 들어 올렸다.“병원 직원이 아닙니다.”그는 손끝으로 천의 결을 느끼며 말했다.“이 소재는… VIP 청소 전담팀에서 쓰는 복장과 가장 비슷합니다.”“청소팀이면… 출입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거죠?”“그렇습니다.”그가 천 조각을 내려다보며 이어 말했다.“하지만 청소팀의 근무복은 라벨이 있고, 절대 이렇게 뜯어질 구조가 아닙니다.”민영의 가슴에서 작은 불안이 파르르 흔들렸다.“…그럼 누군가가 그 옷을 흉내 냈다는 뜻인가요?”“그럴 가능성이 큽니다.”최강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정 사원님에게 접근하기 위해 병원 직원처럼 위장한 사람.그리고 우리가 이동한 동선을 누군가 실시간으로 알고 있었다는 뜻이죠.”그 말은 민영에게 또 다른 충격으로 내려앉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오히려 전보다 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대리님.”“네.”“저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네.”그의 대답은 흔들림이 없었다.“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무엇에…요?”최강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정 사원님의 진실에.”배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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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화. 세 번째 신호를 기다리는 결심

문틈 아래를 스치고 지나간 그림자는 잠시의 흔적만을 남긴 채 다시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그러나 그 ‘잠시’가 남긴 느낌은 두 사람 모두에게 전과 다른 깊이를 열어 놓았다.민영은 자신의 양 어깨가 언제부터인가 아주 미세한 긴장감으로 굳어 있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그 굳음은 도망치기 위해 움츠러든 것이 아니라무언가를 대비하기 위해 자신을 세우는 긴장에 가까웠다.“…대리님.”민영이 조심스럽게, 그러나 흔들림 없이 불렀다.최강은 즉시 민영을 돌아보았다.“네.”“아까 그 그림자… 우리의 움직임을 보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우리가 그들을 볼 차례죠?”그 말은 순간적으로 최강의 눈빛을 조용히 흔들어 놓았다.그 흔들림은 불안이나 놀람이 아니었다.민영의 변화가 그의 예상보다 빠르고 깊다는 깨달음에서 오는 울림이었다.“…맞습니다.”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이제 그들이 남긴 두 번째 흔적을 찾아야 합니다.”“두 번째 흔적…?”“네.”최강은 복도 끝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민영도 그의 옆에 자연스럽게 발을 맞췄다.“첫 번째 흔적은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던 ‘기척’이었습니다.”“그리고 지금…?”“지금은 ‘상황을 조작하려는 손’입니다.”민영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조작…이요?”“네.”그는 한 번 숨을 고르고 설명했다.“그림자는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대신, 우리가 걷는 길에 다른 형태의 흔적을 남깁니다.환경, 경로, 사람… 이런 것들이 잘 맞지 않을 때 두 번째 신호가 시작됩니다.”민영은 그 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가슴 어딘가에서 어렴풋하게 위험의 결이 느껴졌다.그러던 중딸깍.병원 안내 방송 패널이 갑자기 불이 들어왔다.방송이 켜지는 스위치는 직원만 접근하는 위치였다.그러나 방송은 나오지 않았다.어쩌면 무언가가 켜기만 하고 말을 하지 않은 채 단지 “존재만 알려놓은” 것처럼 불빛만이 병동의 공기 속에서 낯설게 반짝이고 있었다.민영이 낮게 속삭였다.“…대리님. 이거… 우연인가요?”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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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화. 그림자가 문을 두드릴 때

빈 병실의 공기는 누군가 방금 전까지 그곳에 머물다 떠난 것처럼 이상할 만큼 따뜻했다.장비는 모두 꺼져 있었고, 침대 시트는 흠집 하나 없이 정돈되어 있었음에도 정적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누군가의 부재’를 말하는 듯 진득하게 가라앉아 있었다.민영은 모니터에 찍혀 있던 문장을 떠올리며 입술을 천천히 깨물었다.-세 번째 신호가 곧 도착합니다.그 한 줄은 협박도, 위협도, 설명도 아니었다.그저 조용히 손가락으로 그녀의 삶의 문을 ‘톡’ 하고 건드리는 듯한 숨결이 붙어 있는 예고처럼 느껴졌다.“…대리님.”민영이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최강은 문틈과 모니터,그리고 방 전체를 한 번 더 둘러본 뒤 그녀에게 돌아섰다.“네, 정 사원님.”“…저…이제 조금씩 알 것 같아요.”그 말은 설명하기 어려운 떨림을 품고 있었다.두려움의 떨림이 아니라 알아야만 한다는 의지에서 생기는 떨림이었다.“무엇을요?”“그림자가 왜… 저를 이렇게 가까이서 지켜보는지요.”최강의 눈빛이 짧게, 그러나 깊게 흔들렸다.민영은 그 흔들림을 눈치채지 못한 채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저를 데려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저를… 어떤 자리로 옮기려는 느낌이 들어요.”그 말은 최강의 가슴 어딘가를 묵직하게 눌러놓았다.그는 짧은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정 사원님의 감각이 정확합니다.”민영이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정말인가요?”“네.”그는 단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들은 정 사원님을 ‘어딘가로’ 데려가려는 것이 아니라‘어떤 위치’로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있습니다.”‘위치.’민영의 심장이 조용히 내려앉았다.“…저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그 자리와 사람은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최강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깊은 울림으로 이어졌다.“어떤 사람은 자리를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자리가 사람을 선택하죠.”민영은 자신이 지금 선택의 주체인지, 혹은 대상인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앞으로 도망치지 않겠다고 이미 마음을 세운 사람이었다.“…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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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화. 물러나지 않는 빛의 발걸음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정적을 찢기에는 너무 가벼웠지만,사람의 숨결을 멈추게 하기에는 충분할 만큼 선명했다.탁~~!민영은 자신의 심장이 그 소리와 동시에 짧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그 떨림은 두려움의 파동이었지만 흔들림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마음이그 파동을 천천히 가라앉히고 있었다.“정 사원님.”최강이 낮게 말했다.어둠 속에서도 그의 눈빛은 민영이 있는 방향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네.”“뒤로 가지 마십시오.”민영은 그 말이 단순히 '물러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지금, 이 자리에서 함께 서 있으라’는 의미임을 본능적으로 이해했다.그녀는 숨을 고르고, 손끝을 천천히 모아 쥐었다.탁~두 번째 노크가 울렸다.이번엔 조금 더 길고, 조금 더 진하게…마치 누군가가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천천히 어둠을 두드리는 듯한 울림이었다.“문… 여는 건가요?”민영이 속삭였다.“아직 아닙니다.”최강이 고개를 저었다.“이건 단순한 접근이 아닙니다. 우리의 반응을 보고 있습니다.”민영의 눈이 크게 떨렸다.“…어떻게요?”“문틈 아래로 보이는 그림자.”그는 아주 미세하게 턱을 들어 문 아래로 드리워진 길고 좁은 그림자를 가리켰다.“가만히 서 있는 게 아닙니다. 움직입니다. 우리의 움직임을 따라… 길이를 바꾸고 있습니다.”민영은 손끝이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그림자가… 스스로 형태를 조절하고 있다는 사실.그 말은, 누군가 문 너머에서 기척을 숨긴 채 두 사람의 호흡까지 읽고 있다는 뜻이었다.“…우리의 반응을… 시험하는 건가요?”“아니요.”최강이 낮고 단단히 말했다.“우리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정 사원님의 감정, 움직임,심지어 지금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까지.”민영은 목 뒤를 차갑게 쓸고 지나가는 어떤 형언하기 어려운 전율을 느꼈다.“…왜… 왜 그렇게까지”그때였다.문틈 아래 그림자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었다.민영 쪽으로.그 움직임은 너무 느리고,너무 정확해서 오히려 사람의 동작이라기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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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 어둠이 부르는 이름

문틈 아래로 밀려들던 그 바람은 온도도 향기도 없었지만,민영의 몸을 스치는 순간 마치 오래된 기억의 조각 하나가 억지로 떠올려진 듯한 착각을 남겼다.“…이름을… 돌려받으러…”그 속삭임이 귓속 깊은 곳에 가라앉자민영은 자신도 모르게 손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그 말은 지금 들은 적이 없는데도 어딘가에서, 과거 어둠 속의 어떤 자리에서 이미 들은 적 있는 것처럼설명할 길 없는 이질적 친숙함을 남겼다.“정 사원님.”최강의 목소리가 그녀의 천천히 가라앉아가던 의식을 다시 현재로 붙잡아 끌어올렸다.“…네.”“지금은 그 소리에 반응하지 마세요.”민영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문틈 너머 그림자가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며마치 두 사람의 호흡을 따라 움직이는 듯했다.“…저 소리는…”민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저를… 아는 사람처럼 들렸어요.”“아니에요.”최강의 목소리는 낮지만 확고했다.“그건 아는 게 아니라 정 사원님의 '반응’을 흉내 내는 겁니다.”“…흉내…요?”“정 사원님의 감정을 따라 배우는 거죠.”그의 눈빛은 단단했다.“그 힘은 진짜 이름을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정 사원님의 흔들림을 읽고 복제하는 겁니다.”그 순간 문손잡이가 또다시 아주 조금, 그러나 더 깊게 내려갔다.딸칵.철의 마찰음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의 손가락이 안쪽에서 문을 조용히 두드리는 듯한 소리.민영은 본능적으로 가슴 위로 손을 가져갔다.심장이 마치 낯선 바람에 노출된 것처럼 조금씩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 했다.“…왜 제 이름을 돌려받으러 왔다고”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을 때, 최강이 빠르게 그녀의 말을 막았다.“정 사원님.”그는 아주 낮게 속삭였다.“그 말에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됩니다.지금은 어떤 말도, 어떤 소리도 정 사원님을 흔드는 도구가 될 수 있어요.”민영의 속눈썹이 흔들렸다.“…그럼… 그 사람은 뭐죠?”“아직 모릅니다.”그는 단호하게 말했다.“하지만 하나는 확실합니다. 정 사원님을 알고 있는 건 그림자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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