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회장님의 딸은 모쏠입니다.: บทที่ 151 - บทที่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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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화. 닿지 않은 거리

해가 완전히 기울었을 즈음, 사무실 안에는 낮과 밤의 경계 같은 공기가 천천히 내려앉았다.민영은 모니터의 밝기를 조금 낮추고 의자에 등을 붙였다. 오늘 하루는 생각보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았고, 많은 결정을 내리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비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꽉 차 있었다.무언가를 성취해서가 아니라, 함께 숨 쉬는 감각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우스를 내려놓고 서류를 정리하던 중, 민영은 문득 자신이 자주 고개를 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를 찾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복도 쪽을 향해 시선이 자연스럽게 흘렀다.'아직은… 닿지 않아도 되는 거리.'그 생각은 불안보다는 여유에 가까웠다. 굳이 가까워지지 않아도 멀어지지 않는 사이. 그 간격이 지금은 편안했다.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사무실의 소음이 하나둘 정리되기 시작했다. 민영은 컴퓨터를 종료하고 가방을 챙겼다.의자를 밀며 일어서는 순간, 뒤쪽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정 사원님." 최강이었다."네.""오늘은 바로 퇴근하십니까."질문은 습관처럼 들렸지만, 민영은 그 안에 작은 배려가 섞여 있다는 걸 이제는 느낄 수 있었다."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집에 가서 조금 쉬려고요.""그게 좋겠습니다."그의 대답은 늘 그렇듯 짧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런데 민영은 그 확신이 자신을 밀어내지 않는다는 게 좋았다.두 사람은 나란히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복도의 불빛이 발걸음에 맞춰 길게 늘어졌다."오늘," 민영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회의 때, 제가 말한 부분, 괜찮았죠?"질문은 확인을 구하는 듯했지만, 실은 그의 시선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어서였다.최강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 "필요한 말이었습니다.""필요한, 말.""네."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리에 있어야 했던 말입니다."민영은 그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있어야 했던 말.' 그 표현이 마음에 남았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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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흔들림의 결

오전의 빛은 늘 같은 각도로 사무실 창을 스쳤다. 그 빛이 책상 위에 얇은 선을 만들 때마다, 민영은 자신의 호흡이 그 선을 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오늘도 서두르지 않았다. 하지만 미루지도 않았다.파일을 열고, 문장을 읽고, 표시를 남기는 일련의 동작이 물처럼 이어졌다.끊기지 않았고, 넘치지도 않았다.그때 메일 알림이 조용히 울렸다.발신인은 외부 협력사였다. 제목에는 계약 조건 재검토라는 말이 간결하게 적혀 있었다.민영은 메일을 열자마자 문장의 결을 느꼈다. 애매하게 흘려 쓴 표현들, 책임의 방향을 살짝 비껴간 문장들. 예전 같았으면 한 번 더 읽고, 다시 읽고, 그래도 확신이 서지 않아 누군가의 판단을 기다렸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여기서 흔들리면, 이 다음이 더 어려워져.' 그 판단은 빠르지 않았지만 명확했다.민영은 펜을 들어 수정이 필요한 부분에 선을 그었다. 단호하지만 거칠지 않은 선. 그 선을 긋는 동안, 가슴 한쪽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두려움이 아니라, 책임이 자리를 잡는 감각."정 사원님."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민영은 놀라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 최강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네." 민영은 의자를 밀며 일어났다. "말씀하세요."그는 손에 든 태블릿을 민영 쪽으로 기울였다. "조금 전 보고가 하나 들어왔습니다."민영은 화면을 훑었다. 짧은 문장, 정리된 요약. 외부의 움직임. 아직은 명확하지 않은 신호."지금 당장 조치가 필요한 단계는 아니죠.""네." 최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미리 알고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그 말에는 늘 그렇듯 선이 있었다. 과도하게 보호하지도, 무작정 맡기지도 않는 선.민영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감사해요. 이렇게 미리 공유해 주셔서."최강은 그 말을 가볍게 받아내지 않았다. "정 사원님이 알아야 할 일입니다."그 대답은 자연스러웠다. 마치 당연한 전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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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화. 말하지 않은 온기

퇴근 무렵의 사무실은 하루의 끝을 정리하듯 조용히 숨을 낮췄다. 키보드 소리도, 전화벨도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민영은 마지막으로 파일을 저장하고 노트북을 닫았다.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부드럽게 들렸다.오늘은 무언가를 끝냈다는 느낌보다, 하루를 잘 놓아주었다는 감각에 가까웠다.의자에서 일어나 가방을 어깨에 메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어제보다 조금 더 가벼워졌다는 걸 느꼈다. 짐이 줄어서가 아니라, 붙들고 있던 힘이 빠져서였다.복도로 나서자 창가 쪽에서 희미한 노을이 유리벽에 걸려 있었다. 낮과 밤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겹쳐 있는 색.민영은 잠시 그 빛을 보다가 걸음을 옮겼다.엘리베이터 앞. 문이 닫히기 직전, 익숙한 기척이 뒤에서 다가왔다."정 사원님." 최강이었다."네.""같이 내려가시겠습니까."질문이었지만 확인에 가까웠다. 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엘리베이터 안은 오늘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문이 닫히자 짧은 정적이 둘 사이에 놓였다. 그 정적은 불편하지 않았다. 말을 꺼내지 않아도 이미 이어져 있는 공기였다."오늘," 민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괜찮았어요.""네." 최강은 짧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괜찮았다는 말이 예전에는 결과에 대한 말이었거든요.""지금은?""지금은…" 민영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과정이요."그 말이 엘리베이터 안에 조용히 남았다.최강은 그 말을 바로 받지 않았다. 잠시 생각한 뒤 낮게 말했다. "그건, 오래 갑니다."민영은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마음에 깊이 박혔다. 오래 간다. 무언가를 확신하는 말이 아니라, 지켜본 사람의 말 같았다.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저녁의 공기가 안으로 흘러들었다.로비를 지나 건물 밖으로 나오자, 노을은 이미 어둠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민영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물었다. "대리님은 오늘 어땠어요?"질문은 가볍게 던졌지만, 그 안에는 조심스러운 관심이 담겨 있었다.최강은 잠시 생각하다가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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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화. 한 박자 늦은 고백

오전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메일은 차분히 쌓였고, 회의 일정은 예상한 범위 안에서 흘러갔다.그런데 민영은 알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하루와 자신의 안쪽에서 조금씩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책상 위에 놓인 펜을 집었다가 내려놓는 아주 사소한 동작조차 오늘은 한 박자 늦었다. 급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먼저 멈춰 있었기 때문이다.그 멈춤은 불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를 정확히 보게 만드는 정지였다.문득 민영은 고개를 들었다. 유리 벽 너머, 보안팀 쪽에서 최강이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내려놓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표정은 늘 그렇듯 담담했지만, 전화를 끊은 뒤 잠시 시선이 허공에 머무는 걸 민영은 놓치지 않았다.'저 사람도, 지금은 멈춰 있구나.' 그 생각이 이상하게 마음을 놓이게 했다. 누군가와 같은 속도로 멈춘다는 건,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점심시간이 다가왔을 때, 민영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변을 살폈다. 굳이 찾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복도 끝, 그가 같은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다는 걸."정 사원님.""네.""식사, 같이 하시겠습니까."질문은 형식적이었지만, 민영은 그 안에 담긴 미묘한 조심스러움을 느꼈다."네." 그녀는 조금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싶어요."식당으로 향하는 길, 두 사람의 걸음은 눈에 띄지 않게 맞춰졌다. 말은 없었지만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 침묵 안에는 이미 서로가 알고 있는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자리에 앉아 식판을 앞에 두었을 때, 민영은 숟가락을 들었다가 잠시 멈췄다."대리님.""네.""어제, 건물 앞에서 말하지 않은 게 있었잖아요."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 민영은 가슴 깊은 곳에서 작은 진동을 느꼈다. 이건 고백이라기보다는 위치를 알리는 말에 가까웠다.최강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민영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재촉도, 놀람도 없었다."지금은 말하셔도 됩니다."그 한 문장이 민영의 숨을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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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화. 머무는 법을 배우다

저녁은 예상보다 빨리 사무실을 비웠다. 복도에 남은 발자국 소리마저 하루의 피로를 털어내듯 낮게 가라앉았다.민영은 가방을 정리하며 잠시 손을 멈췄다. 오늘은 집으로 곧장 가도 될 것 같았지만, 어딘가 하루를 한 번 더 되짚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었다.엘리베이터 앞에서 문이 열리기까지의 짧은 기다림. 그 몇 초가 이상하게도 길게 느껴졌다.문이 열리자 익숙한 그림자가 안쪽에 서 있었다."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인사는 자연스러웠다. 마치 어제도, 그제도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서 있었던 것처럼.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동안, 민영은 손잡이를 잡은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간 걸 느꼈다. 긴장이라기보다는 말을 꺼내기 전의 정리 같은 것이었다."대리님.""네.""오늘은, 조금 남아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최강은 그 말의 끝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민영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어디로요?""회사 앞 카페요. 사람 많지 않은 곳.""알겠습니다."짧은 합의였다. 설명도, 이유도 필요 없었다.건물 밖으로 나오자 밤공기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차가운 기운은 있었지만, 날카롭지는 않았다.카페는 조용했다. 창가 자리에 앉자 유리 너머로 차들이 느리게 지나갔다.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을 때, 민영은 컵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김을 한동안 바라봤다."요즘요." 그녀가 말했다. "뭔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줄어들었어요.""불안하지 않으십니까.""조금은요." 민영은 솔직하게 답했다. "그런데, 예전처럼 겁나지는 않아요."최강은 컵을 내려놓고 그녀를 보았다. "머무는 시간이 필요한 시기입니다.""머무는 시간…""선택을 미루는 게 아니라,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말입니다."그 말이 민영의 마음을 천천히 풀어주었다."저는 늘 결정으로 사람을 안심시키려 했던 것 같아요.""그건 강한 방식입니다.""강했을까요?" 민영은 작게 웃었다. "그냥 불안했을 뿐인데."최강은 그 웃음을 가만히 받아냈다. "불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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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화. 손을 내밀지 않는 거리

오전은 생각보다 천천히 흘렀다. 시계의 초침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고른 속도였다. 민영은 서류를 넘기며 문장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읽었다.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해를 서두르지 않기 위해서였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이 오늘따라 또렷했다. 사소한 감각들이 의미 없이 지나가지 않았다.'이 정도의 거리면 괜찮아.' 그 생각은 불현듯 떠올랐지만 확신에 가까웠다.보안팀 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잠시 겹쳤다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민영은 고개를 들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최강이 지금 이 층에 있다는 걸. 그 사실은 긴장을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공기의 밀도를 조금 안정시켰다.잠시 후, 그의 발걸음 소리가 복도를 지나 멀어졌다. 민영은 그 소리를 끝까지 따라가지 않았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이미 같은 공간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점심시간, 민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혼자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은 같이 걷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줄을 서며 주변을 살폈지만 그를 찾지는 않았다. 찾지 않는 선택이 더 자연스러웠다. 항상 함께할 필요는 없었다. 각자의 시간을 갖는 것도 관계의 일부였다.식사를 마치고 창가에 잠시 섰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맑지도, 흐리지도 않았다. 그 중간의 색이 오늘의 마음과 닮아 있었다. '손을 내밀지 않아도 멀어지지 않는 거리.' 그 깨달음이 민영의 마음을 조용히 채웠다.오후 업무는 집중력이 끊기지 않았다. 문장을 고치고, 자료를 정리하고, 회의 메모를 정리하는 동안 시간은 의식 밖으로 흘러갔다. 일에 몰두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보안팀 쪽 유리 벽 너머로 최강이 서류를 전달받는 모습이 보였다.그는 고개를 숙여 간단히 인사했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 짧은 장면이 민영에게는 충분했다. 다가오지도, 멀어지지도 않는 모습. 그가 자신의 자리에 잘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놓였다. 서로의 영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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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화. 닿지 않아도 흐르는 마음

밤은 도시를 급히 덮지 않았다. 불빛들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은 채 겹겹이 겹쳐 늦은 시간을 만들고 있었다. 민영은 집 앞 골목에서 잠시 걸음을 늦췄다. 하루의 끝에 꼭 멈춰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날은 멈춰 서도 괜찮은 기분이었다.발끝으로 아스팔트의 온도를 느끼며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차갑지 않았다. 낮 동안 데워진 공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닿지 않아도 흐르고 있었지.' 그 생각이 어렵지 않게 떠올랐다.엘리베이터에서 각자 가도 괜찮다고 말했을 때, 그 선택이 어색하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마주 보지 않아도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감각. 민영은 그 감각을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설명하려는 순간 흐름이 끊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집에 들어와 불을 켜고, 가방을 내려놓고, 창문을 조금 열었다. 바람이 천천히 들어왔다. 소리를 내지 않는 바람이었다. 민영은 그 바람이 오늘의 하루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존재는 분명한데, 붙잡을 수는 없는 것. 그렇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닌, 그런 것.소파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지만, 의식은 자연스럽게 하루의 끝으로 흘러갔다. 점심의 침묵, 오후의 시선, 퇴근길의 선택. 그 모든 순간에 공통으로 남아 있던 건 확인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다는 감각이었다. 그게 민영에게는 생각보다 큰 변화였다.휴대폰이 손에 잡혔지만, 메시지를 열지는 않았다.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전하지 않아도 이미 닿아 있는 말이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어떤 말은 말하지 않아도 전해진다. 민영은 그것을 이제 알고 있었다.침대에 누워 불을 끄자 어둠이 부드럽게 내려앉았다.그 어둠은 고요했지만 텅 비어 있지 않았다. 민영은 그 고요 속에서 하나의 장면을 떠올렸다. 카페에서 컵을 내려놓던 손, 엘리베이터 안에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 각자의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던 저녁.그 장면들은 서로 떨어져 있었지만, 끊어져 있지는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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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화. 기다리지 않는 신뢰

오전의 사무실은 전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프린터가 종이를 삼키는 소리, 회의실 문이 닫히는 둔탁한 음, 누군가의 낮은 통화 목소리. 모든 것이 익숙한 질서 안에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민영은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 채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타이핑을 시작했다. 속도는 의도적으로 맞추지 않았다. 지금의 리듬이 이미 몸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문장을 한 줄 완성할 때마다 작은 확신이 남았다. 이건 내가 선택한 속도다, 라는 감각.그 감각은 사람에게도 같이 적용되고 있었다. 최강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그가 오늘 어디쯤 있을지 민영은 알 것 같았다. 보안팀의 일정, 회의 동선, 오전 점검 시간. 서로 묻지 않았지만 이미 공유된 정보들.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안정감을 주었다.잠시 후 민영의 메신저에 알림이 하나 떴다. 업무 관련 짧은 메시지였다. 간결했고, 불필요한 말은 없었다."외부 출입 기록, 오전 중 이상 없음."민영은 짧게 답장을 보냈다. "확인했습니다. 감사합니다."그것뿐이었다. 그런데도 메시지를 닫는 순간 마음 한쪽이 조용히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기다리지 않는 신뢰. 답장을 기다리지 않아도 상대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확신. 그 신뢰는 말보다 훨씬 오래 남았다.점심 무렵, 민영은 회의실에서 나온 뒤 잠시 복도를 걸었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전보다 조금 단단해 보였다. 그때 맞은편에서 최강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시선이 마주쳤고, 둘은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정 사원님." 최강이 먼저 인사했다."대리님." 민영도 고개를 끄덕였다.짧은 인사였다. 예전 같았으면 그 뒤에 어색한 정적이 붙었을 텐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회의는 무리 없으셨습니까?" 최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네, 정리만 조금 더 하면 될 것 같아요.""그럼 오늘은 점검 일정을 조정하겠습니다." 그는 이미 민영의 하루를 배려한 상태였다."괜찮아요." 민영은 고개를 저었다. "제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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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화. 숨이 겹치지 않는 자리

저녁의 온도는 낮보다 분명했다. 해가 지고 난 뒤에야 도시는 자신의 체온을 드러냈다. 민영은 집 앞 슈퍼에 들러 필요한 것 몇 가지만 장바구니에 담았다. 우유, 빵, 그리고 그날의 기분과 어울리는 정도의 과일. 무언가를 더 채우고 싶지 않았다. 이미 충분하다는 감각이 손목을 가볍게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집으로 돌아와 불을 켜고 창문을 열자 저녁 공기가 조용히 들어왔다. 차가움보다 맑음에 가까운 공기였다. 민영은 부엌에 서서 물을 끓이며 잠시 생각했다. 오늘 하루는 특별한 장면이 없었다. 눈에 띄는 대화도 의미를 부여할 사건도 없었다. 그런데도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겹치지 않아도 같은 자리일 수 있구나.' 그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사람과 사람이 꼭 숨을 맞추지 않아도, 보폭을 재지 않아도, 같은 시간 안에 서로의 존재를 존중할 수 있다는 사실. 그건 이전에 알던 방식의 관계와는 달랐다.컵에 따뜻한 물을 담아 소파에 앉았을 때, 민영은 오늘 하루를 차분히 되짚었다. 업무는 무리 없었고, 회의는 예상대로 흘렀다. 최강과의 대화는 필요한 만큼만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이상하게도 과하지 않았다. 적당하고,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민영은 화면을 확인했다.업무 관련 알림이었다. 추가 확인이 필요 없다는 간단한 보고였다. 그녀는 짧게 답장을 보냈다. "확인했습니다."그걸로 끝이었다.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에 감정이 끼어들 틈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았다. 그게 지금의 온도였다. 업무는 업무대로, 감정은 감정대로. 그 경계가 명확한 것이 오히려 편안했다.잠자리에 들기 전, 민영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자 오늘 하루의 소음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어디에도 매달려 있지 않았다.누군가를 기다리지도 않았고, 누군가에게 도착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외롭지 않았다.그 상태가 민영에게는 조금 낯설면서도 안심이 되었다. '이게 의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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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화. 질문은 늘 가장 늦게 도착한다.

민영은 회의실 문을 나서며 잠시 걸음을 늦췄다.회의 자체는 무리 없이 끝났고, 정리할 것도 크게 남아 있지 않았다.그런데도 몸보다 마음이 한 박자쯤 뒤처져 있었다.복도를 따라 걷다 코너를 도는 순간“…정 사원님.”낯설지 않은 목소리였다.민영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강산이었다.그는 복도 벽에 기대 서 있었고,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처럼 조급함이 없었다.“강 팀장님…?”민영의 목소리는 놀라기보다는 조심스러웠다.그 자체가 두 사람 사이의 거리였다.“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질문이었지만 선택지를 주는 말투는 아니었다.민영은 짧게 숨을 고른 뒤 고개를 끄덕였다.“네. 잠깐이면 괜찮아요.”강산은 회의실 반대편, 사람들 시선이 닿지 않는 쪽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 거리 선택이 의도적이라는 걸 민영은 느꼈다.“…요즘,”강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표정이 많이 달라지셨습니다.”“그래요?”“네.”그는 웃지도, 찡그리지도 않았다.“예전엔 항상 주변을 먼저 살피셨는데.”민영은 뭐라고 답하지 않았다.사실이었기 때문이다.“지금은,”강산이 말을 이었다.“누가 보고 있든 말든 자리에 서 계십니다.”그 말은 칭찬처럼 들렸지만, 민영의 마음은 조금 굳어졌다.“…그게 문제인가요?”“아니요.”강산은 고개를 저었다.“문제는 아닙니다.”잠시의 침묵.그리고..“다만,”그가 조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궁금해졌을 뿐입니다.”“뭐가요.”강산의 시선이 민영에게 정확히 꽂혔다.“그 자리가 정 사원님 자리인지.”그 질문은 부드러웠지만, 피할 수 없었다.민영은 잠시 말이 없었다.“…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정말 모르십니까.”강산은 한 걸음 다가오지 않았다.대신 말로만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요즘 보안팀 대리와 자주 함께 계시던데.”민영의 심장이 아주 미세하게 한 번 뛰었다.“…업무상”“업무.”강산이 그 말을 되받았다.“그렇게 말하기엔 유독 친해 보이던데요.”민영은 숨을 들이마셨다.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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