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회장님의 딸은 모쏠입니다.: Bab 211 - Bab 220

231 Bab

211화. 같은 방향의 온도

문을 나서자 아침 공기가 생각보다 차분하게 민영의 뺨을 스쳤다.차가운 듯하면서도 밀어내지 않는 온도.그 감각이 어제의 밤과 이상하리만큼 닮아 있었다.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 민영은 발걸음을 일부러 재촉하지 않았다.늦을 이유도, 서둘러야 할 이유도 없는 상태라는 걸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하루가 자신을 밀어내지 않는다는 확신은 이렇게 사소한 동작 하나에도 영향을 미쳤다.회사 건물 앞에 다다랐을 때, 민영은 유리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눈빛은 고요했고, 표정은 담담했다.그런데도 어딘가 빈자리가 없는 얼굴.어제까지는 늘 한 칸쯤 비워 두었던 마음의 자리가 오늘은 이미 채워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민영은 문득 어제 나눈 말들을 되짚어 보았다.확답, 하지만 고백은 아니었던 말들.그 애매함이 왜 이렇게 편안한지 조금 이상했다.보통은 불안이 따라붙어야 할 텐데지금의 민영에게 그 애매함은 기다림이 아니라 과정처럼 느껴졌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몇 명 내려왔다.그 틈 사이로 민영은 자연스럽게 그를 발견했다.최강은 이미 안쪽에 서 있었고,민영을 보자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인사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운 동작.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그 침묵은 어색하지 않았다.마치 이미 이야기가 끝난 뒤의 정적처럼 안정적이었다.“어제”민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말을 꺼내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천천히 정리했다.“집에 가는 길이 생각보다 조용했어요.” 최강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짧게 대답했다.“그렇다면 필요한 말은 이미 다 오간 겁니다.”민영은 그 문장을 곱씹었다.필요한 말은 이미 다 오갔다.그 표현 속에는 더 이상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관계에 대한 전제가 담겨 있었다.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둘은 같은 속도로 내렸다.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란히 걸으며 복도를 지나갔다.사람들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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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화. 머무르는 선택

오후의 공기는 점심 이후라기엔 의외로 또렷했다.민영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마우스를 움직이다가 손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긴장이 풀렸다는 뜻이었다.집중이 느슨해졌다는 의미는 아니었다.오히려 필요 없는 힘을 쓰지 않게 된 상태에 가까웠다. 문서를 한 장 넘길 때마다 머릿속에서 불필요한 소음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예전 같았으면 결정 하나를 앞에 두고 수십 개의 가정을 세워두었을 텐데지금의 민영은 눈앞의 문장에만 시선을 두었다.그 문장이 지금의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그 정도만 읽어내면 충분했다.회의실에서 회의가 하나 더 이어졌다.의견이 오가고, 서류가 돌고, 각자의 역할이 분명해지는 시간.민영은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 고개를 들었다.말을 꺼내기 전,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그 침묵은 머뭇거림이 아니었다.말을 정확한 위치에 놓기 위한 짧은 간격이었다.“이 안은 리스크를 줄이는 데는 유효합니다.”민영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다만 속도를 조금 조절해야 합니다.”회의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모였다.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메모를 했다.그 반응들이 민영을 들뜨게 하지도, 위축시키지도 않았다.그저 자신의 말이 제자리를 찾았다는 확인만이 남았다.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질 때, 민영은 최강과 잠시 눈이 마주쳤다.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짧은 동작이었지만, 그 안에는 지금의 선택이 맞다는 확인이 담겨 있었다.민영은 그 확인이 이제는 큰 의미를 갖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이 조금 새로웠다.확인을 받아야 움직이던 단계는 이미 지나왔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오후가 깊어질수록 사무실의 소음은 점점 낮아졌다.키보드 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민영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다 말고 컵을 내려놓았다.오늘은 각성보다 유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잠시 후, 메신저 알림이 조용히 떴다. 강산의 이름이었다.민영은 화면을 곧바로 열지 않았다.그 이름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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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화. 숨을 고른 하루

버스가 멀리서 다가오는 게 보였다. 헤드라이트가 정류장을 비추며 잠시 모든 것을 하얗게 만들었다.그 순간, 민영은 자신이 이별을 앞둔 사람처럼아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각자의 길로 잠시 흩어지는 일이 오늘은 단절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버스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민영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가 다시 멈췄다. “대리님.”“네.”“오늘 같이 걸어줘서 고마웠어요.”그 말은 감사의 표현이었지만, 부담을 남기지 않았다.최강은 짧게 대답했다.“같이 걸은 건 저도 선택한 일입니다.”그 대답에 민영은 아주 작게 웃었다.그 웃음에는 확인도, 기대도 없었다.그저 지금 이 상태가 틀리지 않다는 공감만이 담겨 있었다.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고 창가에 앉았을 때,민영은 밖을 한 번 돌아보았다.최강은 그 자리에 서서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손을 흔들지도, 시선을 과하게 보내지도 않았다.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버스가 천천히 출발하자 풍경이 뒤로 밀려났다.민영은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그 얼굴에는 설렘도 있었고, 안정도 있었다.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불안이 없다는 사실이었다.닿지 않아도, 같은 쪽을 보고 있다는 건 이렇게 분명할 수 있구나.집으로 향하는 길,민영은 오늘 하루를 다시 한 번 정리했다.머무르는 선택, 질문이 사라진 자리,그리고 말이 없어도 유지되는 관계.아직 사랑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지만,그 단어가 언젠가 필요해질 때가 오더라도지금의 이 감정이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이상한 확신이 가슴 안에 조용히 남아 있었다.버스는 다음 정류장에 멈춰 섰고,민영의 하루는 또 한 번 부드럽게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집에 도착하자 현관의 불빛이 민영을 조용히 맞았다.문을 닫는 소리가 생각보다 부드럽게 울렸다.오늘 하루는 세게 닫히지 않아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날이었다.가방을 내려놓고 신발을 정리한 뒤 거실로 들어와 창을 조금 열었다.밤공기가 천천히 스며들며 방 안의 공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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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화. 말하지 않아도 남는 것

아침은 전날의 끝을 깨우지 않았다.대신 그 위에 조심스럽게 겹쳐졌다.민영은 알람이 울리기 전 눈을 떴고, 그 사실이 조금 낯설면서도 편안했다.몸이 먼저 하루를 받아들였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창문을 열자 아직 덜 깨어난 공기가 방 안으로 천천히 들어왔다.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온도.민영은 그 애매한 공기가 지금의 마음과 묘하게 닮아 있다고 느꼈다.확정되지 않았지만 흐릿하지도 않은 상태.세면대 앞에서 물을 얼굴에 적시며 민영은 거울 속 자신의 눈을 잠시 바라보았다.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 그런데도 어딘가 덜 긴장되어 있었다.오늘 하루가 자신을 시험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신뢰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출근길, 민영은 이어폰을 끼지 않았다.버스 안의 소음이 지금은 거슬리지 않았다.사람들의 낮은 대화, 정류장 안내 방송,차체가 흔들리는 소리 그 모든 것이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그 흐름 속에 자신도 무리 없이 올라타 있다는 사실이 조용한 안정으로 남았다.회사 건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며 민영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위쪽을 올려다보았다.늘 보던 건물이었는데도 오늘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그 안에서 자신이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어디로 향하고 있는지가 전보다 조금 더 분명해졌기 때문이었다.엘리베이터에 오르자 익숙한 숫자들이 차례로 올라갔다.민영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괜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지 않았다.예전엔 그 짧은 대기 시간마저 마음을 산만하게 만들었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그저 기다림으로 존재했다.사무실에 들어서자 아침 인사가 자연스럽게 오갔다.민영은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며 메일함을 열었다.급한 건 없었고, 쌓인 일도 감당할 수 있는 범위였다.그 사실이 마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었다.“…정 사원님.”고개를 들자 최강이 서류를 들고 서 있었다.아침의 기척이 아직 그에게도 남아 있는 듯 표정은 차분했다.“이 부분 검토 가능하실까요.”“네.”짧은 대화. 필요한 말만 오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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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화. 남겨진 자리에 깃드는 온기

강산과의 대화를 끝내고 자리에 돌아온 뒤에도 민영의 마음은 요란해지지 않았다.오히려 조용히 정리된 방처럼 숨을 쉴 공간이 더 넓어진 느낌이었다.오래 전부터 의식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던 무언가가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 물러난 듯했다.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켜자 익숙한 화면이 눈앞에 펼쳐졌다.숫자와 문장, 정리된 항목들.민영은 손을 올려 키보드를 두드리기 전에 잠시 눈을 감았다.방금 전까지의 감정의 결을 업무의 리듬으로 천천히 옮겨 놓기 위해서였다.숨을 한 번 고르고 나서 다시 눈을 떴을 때, 생각은 흩어지지 않았다.오히려 더 또렷해졌다.강산이 물러났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자신이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는 점이었다.문서를 검토하던 중 회의실 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사람들의 발걸음이 지나가고, 낮은 목소리들이 겹쳐졌다.그 소리 사이로 익숙한 기척이 민영의 감각을 스쳤다.“…정 사원님.”고개를 들자 최강이 서 있었다.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지만, 민영은 그가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걸 느꼈다.표정이 아니라 태도에서였다.괜히 앞으로 다가오지 않고, 지금의 거리에서 그대로 멈춰 서 있는 방식.“회의 잘 끝나셨습니까.”“네.”민영은 짧게 답했다.그리고 그 한 마디에 불필요한 감정을 싣지 않았다.지금은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였기 때문이다.최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뒤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그 침묵은 무겁지 않았다.오히려 말을 꺼내지 않음으로써 상대를 존중하는 형태에 가까웠다.“오늘”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조금 피곤해 보이십니다.”“괜찮아요.”민영은 고개를 저었다.“피곤한 게 아니라 정리된 느낌이에요.”그 표현에 최강은 아주 작게 숨을 내쉬었다.마치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그렇다면 다행입니다.”민영은 그 말 속에 숨겨진 의미를 읽어냈다.괜찮으냐고 묻지 않은 대신,정리되었다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 태도.그 태도가 민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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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화. 고요 뒤에 남는 결

집에 도착해 문을 닫는 순간, 바깥의 소음은 생각보다 쉽게 끊어졌다.민영은 현관에 서서 잠시 그 정적을 느꼈다.오늘의 고요는 낯설지 않았다.혼자라서 생긴 정적이 아니라,이미 충분히 채워진 하루가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다.신발을 벗고 불을 켜지 않은 채 거실로 들어왔다.창밖의 불빛이 커튼 사이로 희미하게 스며들어 방 안을 완전히 어둡게 두지 않았다.민영은 그 애매한 밝기가 마음에 들었다.명확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 지금의 감정과 닮아 있었다.소파에 앉아 가방을 옆에 내려놓고 등을 깊게 기댔다.몸이 천천히 자리를 찾는 감각.오늘 하루 동안 쌓였던 선택들이 한 겹씩 벗겨지는 느낌이 들었다.강산과의 대화, 최강과의 침묵,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했던 말들.'나는 도망치지 않았고, 붙잡지도 않았어.'그 사실이 민영을 편안하게 만들었다.선택은 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해왔는데, 지금의 자신은 그 중간에 서 있었다.그래서 무너지지 않았다.부엌으로 가 물을 한 잔 따라 천천히 마셨다.컵의 차가움이 손끝을 타고 올라오자 몸이 오늘을 완전히 인식하는 듯했다.민영은 창가로 다가가 도시를 내려다보았다.불빛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켜져 있을 텐데그 수많은 이유 중 하나쯤은 지금의 자신과 닮아 있을 것 같았다.휴대폰이 조용히 진동했다.민영은 곧바로 화면을 켜지 않았다.알림의 무게가 가볍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몇 초 뒤, 천천히 화면을 켰다.-오늘, 집에 가는 길이 조용하셨으면 합니다.짧은 문장. 확인도, 질문도 아니었다.민영은 그 문장을 한 번 더 읽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이 말은 걱정이 아니라 존중에 가까웠다.-네. 조용했고, 그래서 좋았어요.보내고 나서 민영은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뒤집어 두었다.대화는 여기서 끝나도 괜찮았다.이 문장들 사이에는 이미 말보다 많은 것이 겹쳐져 있었기 때문이다.침실로 들어가 불을 켜고 침대에 앉았다.이불을 정리하며 민영은 거울 속 자신을 잠시 바라보았다.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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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화. 아주 작은 용기

엘리베이터가 지하 로비에 도착하자문이 열리는 소리보다 먼저 저녁의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민영은 한 박자 늦춰 발을 내디뎠다.오늘 하루가 생각보다 조용히 몸에 남아 있다는 걸 그 순간에야 깨달았기 때문이다.로비를 지나 회전문을 통과하는 동안,유리 너머의 풍경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불빛은 비슷한 위치에서 켜져 있었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늘 그랬듯 각자의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다.그런데도 민영은 이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자신이 그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서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건물을 나서자 최강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걸음을 맞췄다.어깨가 닿을 만큼 가깝지도, 멀어질 만큼 떨어지지도 않은 거리.민영은 그 미묘한 간격이 이제는 설명 없이도 편안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오늘”최강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말끝을 조금 남겨 둔 채였다.“네.”민영은 그가 말을 이어갈 수 있도록 기다렸다.재촉하지 않는 태도는 이제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 있었다.“회의 이후에 조금 생각이 많아 보이셨습니다.”그 말은 염려라기보다 관찰에 가까웠다.민영은 그 차이를 분명히 느꼈다.그래서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많다기보다는 정리하고 있었어요.”“무엇을요.”민영은 잠시 발걸음을 늦췄다.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셨다.이건 고백이 아니었고, 결정을 알리는 말도 아니었다.다만 지금껏 말로 옮기지 않았던 감각을 처음으로 밖으로 꺼내는 순간이었다.“제가”민영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이제는 망설이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라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서요.”최강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그러나 민영의 속도에 아주 미세하게 맞춰졌다.그 변화는 민영이 말을 계속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 주는 방식처럼 느껴졌다.“망설임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닙니다.”민영은 덧붙였다.“다만 그 망설임이 저를 멈추게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그 말이 끝났을 때, 잠시 침묵이 흘렀다.민영은 그 침묵이 무겁지 않다는 걸 알았다.오히려 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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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화. 말보다 먼저 닿는 것

아침은 어제의 결을 그대로 이어받은 듯 조용히 시작되었다.민영은 알람이 울리기 전 눈을 떴고, 그 사실을 굳이 의미로 만들지 않았다.몸이 먼저 하루를 받아들였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창문을 열자 공기는 전날보다 조금 더 가벼웠다.이유를 찾으려 들지 않아도 괜찮은 변화였다.민영은 그 가벼움을 호흡으로 받아들이며 천천히 세면대로 향했다.거울 속의 얼굴은 특별하지 않았지만, 낯설지도 않았다.이제는 이 표정이 자기 것이라는 확신이 어느새 자리하고 있었다.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며 문을 닫을 때, 민영은 잠시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멈춤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운 동작.오늘도 이 문을 자연스럽게 나설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회사로 향하는 길, 민영은 주변의 소리를 의식적으로 듣지 않았다.그저 들려오는 대로 흘려보냈다.발걸음이 스스로의 속도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누군가를 기다리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맞추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속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익숙한 공간이 민영을 맞았다.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타고 있던 사람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빈자리가 보였다.그 옆에 최강이 서 있었다.어제와 다르지 않은 위치, 그러나 어제보다 조금 더 익숙한 거리.둘은 말없이 층수를 올려다보았다.엘리베이터가 부드럽게 상승하는 동안, 민영은 괜히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았다.이 침묵은 불편하지 않았다.말이 없어도 서로의 상태를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사이였기 때문이다.문이 열리고 각자의 자리로 흩어질 때, 최강이 짧게 말했다.“오늘 일정이 조금 타이트합니다.”그 말은 주의라기보다 공유에 가까웠다.민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알겠어요.”“필요하면 말헤 주세요.”그 간단한 문장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도움이 필요할지 미리 정하지 않는 태도.그 여지가 지금의 관계를 더 편하게 만들고 있었다.업무는 빠르게 흘러갔다.메일이 오고, 서류가 오갔다.민영은 집중이 끊기지 않은 상태로 하나씩 처리해 나갔다.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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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화. 이름 붙이지 않은 온도

“그래서 놓치고 싶지 않아요.”그 대답은 고백이 아니었다.다만 현재를 소중히 여긴다는 의사표현이었다.최강은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무실의 소음이 조금씩 변했다.키보드 소리가 느려지고, 의자 끄는 소리가 늘어났다.하루가 마무리를 향해 기울고 있었다.민영은 컴퓨터를 끄며 자신의 마음도 함께 정리되는 걸 느꼈다.오늘은 특별한 결론이 없었다.그러나 그 결론 없음이 불안하지 않았다.엘리베이터 앞에서 둘은 나란히 섰다.문이 열리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그 침묵은 서로의 온도를 확인하기에 충분했다.이름 붙이지 않은 온도는 그래서 오래 남는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은 같은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오늘도 말은 많지 않았지만,겹쳐진 온도는 조용히 하루를 완성하고 있었다.엘리베이터가 지하에 도착했을 때,문이 열리는 소리는 낮보다 조금 더 길게 귀에 남았다.민영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발끝에 의식을 두었다.하루가 끝났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순간이었다.로비의 불빛은 저녁 특유의 색을 머금고 있었다.낮의 흰빛이 아니라 어딘가 온기를 덜어낸 조명.민영은 그 빛 아래서 잠시 걸음을 늦췄다.서두를 이유도, 피할 이유도 없는 시간이었다.회전문을 나서자 공기가 훨씬 차가워졌다.최강은 말없이 민영의 옆으로 걸음을 맞췄다.어깨와 어깨 사이에는 아직 손 하나 들어갈 만큼의 공간이 있었지만, 그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오히려 서로가 자기 자리를 존중하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오늘은”민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말을 꺼내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조금 느린 하루였던 것 같아요.”최강은 고개를 끄덕였다.“느린 날이 나쁜 건 아니죠.”“네.”민영은 짧게 웃었다.“오히려 놓치지 않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그 대답은 하루에 대한 평가이면서,지금의 관계에 대한 은근한 설명이기도 했다.최강은 그 의미를 굳이 말로 풀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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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화. 엇갈린 시선의 온도

다음 날 아침, 사무실은 전날보다 조금 더 분주했다.문이 열리는 소리, 전화가 울리는 간격,의자 끄는 소음까지 모두가 한 박자씩 앞서 있었다.민영은 그 속도에 끌려가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호흡을 고르게 했다.어제까지 몸에 남아 있던 느린 리듬을 오늘로 무리 없이 옮겨오고 싶었기 때문이다.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자 메일이 연달아 들어왔다.급한 표시가 붙은 제목들.민영은 하나씩 우선순위를 가르며 읽어나갔다.서두르지 않는 대신, 놓치지 않는 방식.그 균형이 오늘은 필요해 보였다.잠시 후, 회의실 호출 알림이 화면에 떴다.짧은 브리핑. 민영은 노트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복도로 나서자 익숙한 그림자가 시야에 들어왔다.강산이었다.그는 복도 끝 창가에 서 있었다.예전과 다르지 않은 차림과 자세였지만,그를 둘러싼 공기는 어딘가 미세하게 날이 서 있었다.민영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지만, 시선이 잠시 그에게 머물렀다.그는 그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정 사원.”강산이 먼저 말을 걸었다.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의도적으로 정리된 감정이 느껴졌다.“네.”민영은 자연스럽게 대답했다.예전처럼 긴장하지도 괜히 경계하지도 않았다.지금의 그녀는 상대의 태도와 자신의 감정을 구분할 수 있었다.“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질문은 정중했지만, 거절을 기대하지 않는 톤이었다.민영은 회의 시간을 떠올렸다.그리고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짐깐면 괜찮아요.”강산은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한 걸음 다가왔다.그러나 적당한 거리에서 멈췄다.그 역시 선은 넘지 않았다.“요즘”그가 말을 꺼냈다.“많이 안정되어 보이십니다.”민영은 그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관찰의 결과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런 편이에요.”강산의 시선이 잠시 민영의 얼굴을 살폈다.마치 어디에서부터 이 변화가 시작되었는지를 가늠하려는 듯.그 시선에는 호기심과 미묘한 불편함이 섞여 있었다.“변화에는”그가 조심스럽게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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