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닫히며 꽃집이 다시 고요를 되찾았지만,이전의 고요와는 전혀 다른 결이 깔려 있었다.무언가가 무너지고, 동시에 새로 세워지는 이상한 정적이었다.숨소리 하나, 의자 다리 하나의 위치,심지어 창밖에서 스치는 바람에 흔들리는 간판의 미세한 소리까지 모든 감각이 지나치게 선명하게 들려왔다.강혁은 여전히 손에 쥐고 있던 여진의 메모를 곧게 편 채 시선에서 떼지 않았다.그는 글자 하나하나를 다시 읽고 또 읽으며 여진이 어떤 얼굴로 이 글을 썼을지,얼마나 급했고, 얼마나 두려웠고, 왜 하필 지금 이 말을 남겼을지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그런 강혁의 옆얼굴을 수진은 오래 바라봤다.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슬픔,말해버리면 부서질 것 같은 마음,그 속에서 기어이 버티고 있는 사람의 어둡고 단단한 무게.그 무게를 오래전부터 느껴왔던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렇게 가까이, 이렇게 선명하게 들여다보는 건 처음이었다.수진은 조심스레 손을 뻗어 강혁의 팔 위에 손끝을 조용히 올렸다.그 단 한 번의 접촉만으로 강혁의 어깨가 아주 살짝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그의 숨이 깊게 떨어지고, 시선이 메모에서 천천히 빠져나와 그녀에게 향했다.“수진.”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 그 목소리는 이전과 달랐다.흔들리지만, 무너지지 않는 음.누군가를 의지하려 애쓰는 음.그리고 마지막으로 함께 가겠다는 결심이 녹아 있는 음.수진은 그 음을 피하지 않았다.“이제… 정말 혼자 가려고 하지 말아요.”그녀는 낮게 말했다.숨처럼, 속삭임처럼,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힘으로.“여진 씨가 죽은 이유도, 그 사람이 남긴 말도…다 당신 혼자 짊어지라고 남긴 게 아니에요.”강혁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아니었다.그녀의 말을, 그녀의 숨결을, 그녀의 마음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기 위해 듣고 있었다.수진은 말을 이어갔다.“나도… 당신이 혼자 가는 걸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요.”그 말은 조용했지만,그 아래엔 오랜 시간 눌러왔던 감정이 있었다.
Última atualização : 2026-05-22 Ler ma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