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낯설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마치 오래전에 잊고 지냈던 소중한 누군가를 떠올린 기분이었다.“이레……”“모르는 이름인가?”지운이 천우의 반응을 살피며 물었다.“네.”천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흔치 않은 이름이기는 하군요.”“정말 모르는가? 자네 아버지로부터 들어본 적 없나?”“그렇습니다. 입에 담으신 적이 없습니다.”“흠.”지운이 신음을 흘렸다. 무언가 성가시다는 기색이었다.“아무튼 간에.”지운이 우선 할 얘기를 마쳐야겠다는 듯 덧붙였다.“이레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물빛미르의 곁을 지키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어. 죽을 뻔한 적도 수없이 많았다더군. 물빛미르의 발톱이 눈썹을 스치고 지나간 적도 있다 했으니, 얼마나 대담한 여인이었는지 짐작하겠지.”“알만하군요.”“이레는 꿋꿋하게 미르를 돌봤다네. 물을 먹이고, 상처를 닦고, 약초를 빻아 바르고…… 가녀린 여인의 몸으로 기우사 열 명이 할 일을 해냈어. 아마 이레가 그리 나서지 않았다면, 물빛미르는 진즉에 소멸해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허상이 되어 버렸을 걸세.”“당찬 여인이었군요.”“만인의 연인과도 같은 사람이었다네. 사람뿐 아니라, 세상 만물이 모두 아끼고 연모할 만한……”지운의 눈두덩 위로 어둠이 내렸다.그 광경을 보던 천우는 지운 또한 이레라는 수수께끼의 여인에게 연정을 품었던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혹시……”천우가 조심스레 운을 띄었다.“권사께서도……”“그래서.”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천우는 입을 다물었고, 지운은 무슨 소리 하느냐는 투로 천우를 노려보았다.어색한 침묵이 흘렀다.“그래서 물빛미르가……”지운이 이어 말했다.“이레를 아주 아끼고 사랑하였다네. 함께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말 정도로 말이야.”“떠나다니요?”천우가 깜짝 놀라 물었다.“어디로 갔단 말입니까?”“그걸 알고 있다면 내가 이렇게 속상해하지 않았겠지.”지운이 푸념하듯 말했다.다시 보니, 꼭 손녀딸을 잃어버린 조부
Last Updated : 2026-03-25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