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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hat ng Kabanata ng 붉빛미르: Kabanata 11 - Kabanata 20

155 Kabanata

가장 높은 곳, 그리고 천한 곳 (2)

  “무언가 좀 달랐습니다.” 노야가 이도에게 꽃잎을 우려낸 차 한 잔을 올리며 말했다.찻잔을 받아 든 이도는 입으로 가져갈 생각조차 하지 않고 노야를 응시했다. “무엇이 말씀입니까?”“오늘 있었던 기우는 저희 기우사들이 불러일으키는 권능과는 결이 좀 달랐습니다.”“자세히 얘기해보시지요.”“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기우를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천체의 이치를 따져야 하며, 날짜와 계절도 맞아떨어져야 하지요. 또…….”“심신을 경건하게 다스린 기우사들이 모여 주문을 외우고, 부적을 태우며 몇날며칠을 기원해야 한다는 것쯤은 압니다. 본론만 말씀하시지요.” 이도가 조바심을 내며 채근했다. 그러자 노야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말을 멈추었다. “오늘의 기우는…….” 노야갸 다시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주문이나 기도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말인즉슨?”“확신하기는 어려우나, 하늘에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바라여 내려주는 비와 같았습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인 양 말이지요.”“그렇다면 권사(權師)께서 하시려는 말씀은…….”“네.” 노야는 앞에 앉은 임금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 챈
last updateHuling Na-update :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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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와 여인 (1)

3경이었다. 이 시각에는 사람은 물론이고, 어리친 개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기찰을 도는 순관들의 횃불이 한양 거리 이곳저곳서 번뜩이고 있었다.한양 동쪽 어딘가에 다른 관문보다 훨씬 경계가 덜한 성문이 하나 있었다. 성문이라기보다는 거의 다 허물어져가는 폐허 같은 곳으로, 산시(山勢)가 험해 도성 안팎을 몰래 오갈 수 있는 뒷길로 이용되고 있었다.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기찰을 피해 관문에 다다른 누군가가 무너진 성벽 잔해를 원숭이처럼 기어올랐다.능숙하게 성벽을 넘은 그림자가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야산 속으로 사라졌다.산길을 탁탁- 딛는 발소리가 처량하게 울렸다.통금 시각을 넘어 남몰래 움직이는 그림자. 절대로 떳떳한 사람은 아니었다.다름 아닌 뒷골목 왈패, 곰보였다.곰보는 몇 식경이 흐르는 동안 고개를 타 넘고, 시냇물도 여럿 건넜다.언제 어디서 표범이나 호랑이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산길을 오르내리는데, 걸음에 거침이 없었다.꼭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보였다.산기슭 아래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통과하자 골짜기 속 깊은 곳에 파묻힌 공동(空洞)이 하나 나왔다.뜻밖에도, 화톳불로 밝혀진 동굴 앞에 도끼와 작살로 무장한 거한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다.곰보는 거침없이 그쪽으로 다가갔다.“암호?”거한 중 하나가 곰보를 발견하고 물었다.“한수정후 관운장.”곰보가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암호가 들어맞자 거한들이 옆으로 비켜섰다. 곰보는 그들 사이를 지나 화톳불이 타오르고 있던 동굴 입구를 지나쳐 들어갔다.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곰보는 숨을 깊게 훅- 들이마셨다.동굴 안쪽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허가받지 않은 도검, 약재, 보석, 장물 따위가 놓인 좌판이 양옆으로 죽 늘어서 있었다. 게다가 흥정을 하거나, 놓인 상품들을 살펴보는 손님들도 보이는 것이 작은 고을 규모의 시장을 통째로 옮겨온 듯했다.바로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암상인들이었다.시장에서 정식으로 거래되기 힘든 물건들을 사고 파는 일종의 번개시장으로,
last updateHuling Na-update : 2026-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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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와 여인 (2)

 상인이 혀로 아랫입술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운도 필요하고, 신분도 필요하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물건이 아니야.”“그렇다면…”“어떤 사연인지는 몰라도 그 백면서생은 오랫동안 숨어 지내야 할 상황에 있었던 것 같군. 이건 아마도 그치 집안에 내려오는 가보나 다름없겠지. 한 집안이 오랫동안 숨기고 있던 보물이라. 이제 어느 정도 감이 오나?”“제가 일을 잘 처리했다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곰보가 살짝 즐거워하는 기색으로 물었다. 그러자 상인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표정으로 곰보를 쳐다보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알려주지.”“네?”“가보라는 물건은 가치가 큰 만큼 위험도 큰 법이야. 비싸게 내다팔 수도 있으나, 꼬리 잡히기도 쉽다는 말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나? 정확한 감정 없이는 네놈이 가져온 물건에 값을 쳐줄 수 없다는 얘기다.” 할 말을 잃은 곰보가 입만 떡 벌린 채 상인의 눈치를 봤다. 상인은 예의 무뚝뚝한 얼굴로 되돌아와 있었다.이대로라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쌀 한 톨 받아가지 못할 것이 뻔했다. “그, 그렇다면…” 곰보가 더듬더듬 말을 붙였다. “믿을 만한 감정사에게 맡긴다면...”“네놈과 얼굴을 튼 연놈들 중에 믿을 만한 사람이 있던가? 빼앗기지나 않으면 다행일거다. 아니면 밀고를 당하던가.”&ld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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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짐과 나타남 (1)

“그렇습니다.”상인이 곰보를 흘겨보며 대답했다.곰보는 그런 상인의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도깨비집을 아는 사람이라면, 함부로 행패를 부렸다간 목이 잘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인데.”선비가 여전히 알 수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런데도 큰소리가 났다는 말인가?”“못 배우고 천한 것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부터 엎고 말지요. 개들도 자기 먹이 주는 사람한테는 대들지 않는 법이거늘…….”상인이 이죽거렸다.아갈머리를 찢어놓고 싶었다. 곰보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그 물건 때문인가?”선비가 상인의 손에 들려있던 옥 장신구를 가리키며 되물었다.“그러하옵니다.”상인이 두 손으로 공손히 그것을 선비에게로 내밀며 대답했다.“한번 보시겠습니까?”“그러지.”선비는 거리낌 없이 장신구를 가져갔다.그러고는 자기 눈앞으로 가져가 관찰하다 말고 갑자기 탄식을 내뱉는 것이었다.“헉…….”선비가 장신구를 놓쳤다.쨍그랑-선비가 떨어뜨린 옥 장신구가 단단한 동굴 바닥에 부딪히며 요란한 파열음을 냈다.귀퉁이 한 구석이 깨져 산산조각이 나버렸다.모두가 놀랐다.동굴 속에 쥐 죽은 듯한 침묵이 감돌았다.“괜찮으십니까?”선비 옆에 붙어있던 여인이 그를 걱정하며 말문을 열었다.상투적인 물음이었음에도, 정인(情人)을 대하는 듯한 살뜰함이 와 닿았다.“어리야.”선비가 낯선 이름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동행한 여인의 이름이리라.“네.”“네가 한번 보려무나.”선비는 자기가 떨어뜨린 장신구 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그리 명했다.횃불 아래에서도 새파랗게 질린 것이 다 보일 정도였다.슥-어리라고 불린 여인이 가만히 무릎을 꿇고 소매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희고 맑은 꽃사슴의 어린 뿔만큼이나 섬섬옥수였다. 팔은 가늘고, 손가락은 얇은데 어떤 가락지를 끼더라도 되레 그 빛이 묻힐 것 같은 고움이었다.“…….”장신구를 들여다본 어리가 아무 말 없이 그것을 선비에게로 건넸다.선비가 가만히 쳐다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어떠하냐
last updateHuling Na-update : 202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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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짐과 나타남 (2)

  등이 배겼다.천우는 끙끙 앓는 소리와 함께 선잠에서 깨어났다. 썩어 들어가기 직전인, 꿉꿉한 지푸라기 냄새가 났다. 부스럭대는 소리가 나서 보니, 살찐 쥐 한 마리가 모서리에서 얼쩡대고 있다 얼른 벽 뚫린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굵은 창살이 바둑판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겨우 반나절 여기서 지냈을 뿐인데,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포청의 옥사였다. 다른 죄수들처럼 칼이나 사슬을 채우지는 않았으나, 이런 곳에 짐짝처럼 틀어박혀 있으니 죽을 맛이었다.한양에 도착하자마자 하루아침에 이런 꼴이 되다니. 부친의 말이 맞았다. 무서운 곳이었다. “끙…….” 천우는 옅은 신음을 흘리며 창살 쪽으로 기어갔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팠다. 어젯밤부터 여기 갇힌 이후로 입에 아무것도 대지 못하였기에 심신이, 양면이 모두 주렸다. “이보시오! 이보시오!” 천우는 창살 밖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군졸을 불렀다.길게 하품을 하고 있던 군졸이 그 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뭔 일이쇼?”“혹시 요기할 만한 것은 주지 않는 것이오?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를 못해…….”“조금만 참으슈. 밥 때 얼마 안 남았으니까.” 포졸이 퉁명스레 대답했다.그 삭막한 공기에 질린 천우는 더 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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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다루는 자들 (1)

  노야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자 이포교는 두말 않고 몸을 돌리더니 잠깐 천우를 곁눈질하고선 밖으로 나가버렸다.처음 보는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앉으시게.” 노야가 천우에게 옆자리를 권했다.멀뚱히 서 있던 천우는 쭈뼛쭈뼛 노야가 권한 자리에 걸터앉았다. “한 잔 받으시게.” 노야는 천우가 앉자마자 잔을 채우라며 앞에 놓인 술병을 집어 들었다.천우는 영문도 모른 채 얼른 잔을 집었다.맑은 청주(淸酒)가 흘러나오는 소리가 감미로왔다. 두 사람이 서로 잔을 비웠다.그리고 천우는 잔이 입에 닿자마자 놀란 기침을 컥컥 내뱉었다. 술이 아니라 물이었다. 무슨 수를 썼는지 겨울철 눈송이를 녹인 것처럼 차가웠다. “내가 곡차를 할 줄 모른다네.” 노야가 푸근한 미소와 함께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목을 축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천우는 더욱 기꺼워하며 물잔을 비웠다. “갈증이 났습니다.” 천우가 말했다. “어제부터 갑자기 붙들려 있던 참이어서요.”“듣자하니 기름 가게 화재 사건과 관련된 일이라 하던데…….”“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제 물건을 뺏어 달아나던 들치기를 쫓아가다 일이 틀어진 것입니다.”“세상에 흘려들을 사연이란 없는 법이지.” 노야는 천우를 이해한다는 듯 말하며 조용히 물을 홀짝거렸다.
last updateHuling Na-update : 202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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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나듦의 극과 극 (1)

지운의 주름진 눈가에 회한일지, 아쉬움일지 모를 진한 감정이 내려앉았다.“기우사라고 남은 사람은 이제 나 한사람뿐이라네.”무거운 결론에, 분위기가 절로 숙연해졌다.“이 쓸모없는 늙은이 하나만이 겨우 기우사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결례를 범했습니다.”“괜찮네. 사람 목숨은 하늘에 달린 것이니.”“기우사라는 것이 그토록 고된 일입니까?”“고되고 어려우며 위험하기까지 하지. 게다가 기우사가 될 수 있는 자격 또한 쉬이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라네.”“자격…….”“오랜 수행과 훈련이 필요하지. 그렇다고 해도 자네처럼 물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네.”지운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천우는 그의 목에 걸린 비단 끈을 흘깃거렸다.“어제 갑작스런 대기의 변화를 느꼈다네.”지운이 단호한 투로 말했다.다 늙은 몸이지만 기우사로 다져진 감각은 여전히 제 기능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그리고 금화도감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지. 불이 난 곳에 희한하게 소나기가 쏟아졌고, 화재사건의 참고인을 포청에서 확보해놓은 상황이라고. 그 얘기를 듣자마자 확신했다네.”지운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내가 모르는 재야의 기우사가 나타난 것이라고.”지운이 강렬한 눈으로 천우를 쳐다보았다.천우는 뚫어보는 듯한 그 눈길이 괜히 부담스러워 시선을 한쪽으로 흘렸다.“하지만 이렇게 젊은이일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네.”지운이 말했다.“모두가 떠난 마당에 이렇게 힘이 넘치고 유능한 기우사를 만나게 되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네.”“과찬이십니다.”“천우라고 했나? 자네와 나누어야 할 얘기가 너무나도 많아. 당장 술상이라도 하나 보고 싶은 심정일세.”지운은 혀를 쯧- 찼다.“하지만 어명을 어길 수는 없네. 당장 돌아가야 하니 채비하게나.”“네?”“못 들었나? 어서 일어서게.”“저……. 어디로 가신다는 말씀이십니까?”“대궐로 가네. 전하를 뵈어야지.”“방금 뭐라 하셨습니까?”천우는 자기가 헛것을 듣고 있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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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나듦의 극과 극 (2)

무언가 기이했다.천우는 분명 포청 밖으로 나와 앞서 걸어가는 지운의 뒤를 따랐을 뿐이었다.어찌된 일인지 양 옆을 지나치는 행인의 모습은 일절 보이질 않고, 오로지 앞서가는 지운의 굽은 등만이 보일 뿐이었다.시선이 고정된 것처럼 다른 곳에는 눈조차 돌아가질 않았다.누군가가 목을 꽉 붙잡고 놔주지 않는 듯했다.그러고보니 발 아래를 딛던 감촉 또한 이상했다. 흙바닥일 것이 분명한 한양 땅이 이토록 부드러웠던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다.잠시 후, 지운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천우 또한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정신이 들고, 주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다 왔네.”지운이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어깨 너머로 거대한 성벽이 드리워 있었다.사람을 압도하는 높이와 크기, 한치의 틈도 들어갈 것 없이 완벽하게 배치된 기와, 2층으로 치밀하게 쌓아 올려진 누각은 그야말로 천하 꼭대기에서 세간을 내려다보는 거인의 그것처럼 웅장했다.광화문(光化門).조선의 심장으로 향하는 정문.조선 사람 중에 어느 누가 이를 알아보지 못할 것인가!천우는 단번에 그들이 어디에 와 있는지를 깨달았다.“여기는…….”“혹시 처음 보나?”“한양을 바로 어제 들어왔습니다만…….”“그렇다면 궁궐도 처음이겠군.”천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갯짓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예절에 어긋나는 짓이었으나 지금 무어를 말할 정신이 남아있지 않았다.맙소사. 대궐이라니.“가세.”지운이 거침없이 발을 옮기려 했다.“자, 잠시만!”천우가 그런 지운을 얼른 붙들었다.“왜 그러나?”“저, 지금 어디로 가시려는 것인지…….”“보면 모르겠나? 용안을 뵈러 가는 것이지!”“지금 바로 말입니까?”“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지 않나?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어서 가세.”“저, 저…….”지운은 말릴 새도 없이 다시 몸을 돌려 대궐 문 쪽으로 나아갔다.그러자 문을 지키고 있던 관원들과 푸른 비단옷을 차려 입은 수문장이 다가와 가로막았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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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을 알현하다 (1)

뭘 제대로 먹지도 않았는데 속이 울렁거렸다.위장 속 내용물을 다 게워낼 것만 같았다.“오게.”그러나 그런 천우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지운은 성큼성큼 사정전 쪽으로 걸어갔다.허둥지둥 그의 뒤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전각 바로 앞에 서 있었다.안에서도, 밖에서도 서로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는 거리였다.한창 무언가를 열심히 얘기하고 있던 주상의 고개가 별안간 이쪽으로 향했다.‘어이쿠!’천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수그렸다.감히 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목덜미고 등이고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잠깐의 침묵이 흘렀다.“오늘 경연은 이것으로 마칩시다.”전각 안쪽에서 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일고, 동시에 긴장이 피톨을 타고 돌게 만드는 목소리였다.아마 태산이 목소리라는 형태로 현신(現身)할 수 있다면 분명 이러했으리라.“황공하오나 전하. 아직 시간이 남아있는 것으로 아뢰옵니다만…….”처음 듣는 목소리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경연에 참석중인 관리일 터였다.“내 조금 피곤하고 배도 고프고 하니 휴정할까 하오.”임금의 목소리가 대답했다.“그럼 나머지 문건에 대해서는 모레까지 준비해 오시는 것으로 알겠소이다. 모두 조심히 돌아가시오.”“어명을 받들겠나이다!”관리들이 한 목소리가 되어 외쳤다.그리고 동시에, 사석에 앉아있던 주상은 훌쩍 몸을 일으켜 휘적휘적 밖으로 걸어 나왔다.‘으헉…….’순식간에 천우는 이 나라의 국왕과 마주보고 섰다.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주상이 천우를 빤히 바라보았다.허리를 굽히고 있음에도, 천우를 바라보는 주상의 호기심이 어린 눈길이 느껴졌다.“가자.”주상이 기다리고 있던 수행원들을 보고 말했다.그러자 모두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지운은 잠시 천우를 기다리게 했다.그리고 수행원들의 마지막에 붙어 그들을 따라가도록 했다.그들 역시 뒤를 따르는 지운과 천우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마치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투명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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