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hapter 131 - Chapter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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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화

“강유영!”뒷문으로 나와 얼마 걷지 않았을 때, 길가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서준,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강유영은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서 있는 인영을 알아보고 놀란 듯 물었다.“장 영감이 넌 미모가 워낙 빼어나서 혼자 밤길을 걷게 두는 게 영 불안하다며 나더러 데리러 나오라고 하셨지.”서준은 그녀의 곁에 서서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말투에는 늘 그렇듯 나른함이 묻어 있었다.“말이나 못 하면.”강유영은 웃으며 핀잔을 주었다.서준은 반박하지 않고 싱긋 웃어 보였다.“그래서 오늘 어디서 모이기로 했어?”강유영이 궁금한 듯 물었다.“서원이야.”서준은 마치 산책이라도 하듯 한가로이 걸었다.“그렇게 사치스러운 곳에서?”강유영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서원은 경성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극장으로, 음식을 먹으며 연극을 관람할 수 있는 곳이었다. 추석 같은 명절에 그곳에서 식사하려면 꽤 많은 은자를 써야 했다.“응. 장 영감이 좀 부자거든. 나랑은 다르게 말이야….”서준은 말을 멈추고 잠시 뜸을 들였다.강유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쳐다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난 빈털터리이기도 하지만, 다른 것도 가진 게 아무것도 없거든.”“정말 못 말린다니까.”강유영은 그의 농담에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어때서? 네가 약방을 떠난 뒤로 한 번도 장 영감을 화나게 한 적 없어. 못 믿겠으면 이따가 직접 물어보든가.”서준이 자신만만하게 장담했다.“장 영감이 뭐야? 장 의원님이라 불러야지.”강유영이 호칭을 바로잡아주었다. 두 사람은 이제 꽤 허물없는 사이가 되어 두런두런 웃음꽃을 피우며 어느새 서원에 들어섰다.“유영아, 어서 와서 앉거라.”장 의원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강유영을 반겼다.“장 의원님, 지아, 동희야, 모두 반가워요.”강유영은 정겹게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지아와 동희는 약방에서 그녀와 함께 일을 돕던 동료들이었다. 두 사람 역시 반갑게 그녀를 맞아주었다.화려하게 꾸며진 방은 무대가 있는 중앙을 향해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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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화

모두가 한마디씩 거드는 상황에 계속 거부하면 흥을 깨는 꼴이 될 것만 같았다.서준이 술단지를 들자, 호박빛 술이 초록빛 유리잔 속으로 흘러들었다.강유영이 이내 잔을 들어 향을 맡아보자, 달콤한 과실 향이 코끝에 감돌았다.“향이 정말 좋네.”“맛은 더 좋을걸.”서준이 눈을 빛내며 부추겼다. 한 모금 머금자, 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설탕을 넣은 우유보다도 훨씬 달고 맛이 좋았다.“이건 내가 만든 향낭이야. 잠이 잘 오도록 신경 안정에 좋은 약초들을 넣었어. 자, 하나씩 가져가. 장 의원님도요.”그녀는 준비해온 향낭을 꺼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서준은 그 향낭을 손에 쥐고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들여다보았다.무대 위에서는 가희들의 곡조가 낭랑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다섯 사람은 탁자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사람들의 시선이 무대에 쏠린 틈을 타, 서준은 슬그머니 문가로 다가갔다.“남풍.”남풍이 마치 귀신처럼 소리 없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부르셨습니까, 전하.”“강유영의 얼굴이 왜 저 모양인지 알아보고 오거라.”서준이 나직하게 명했다. 남풍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서준은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로 돌아갔다.“어디 갔다 왔어?”강유영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과실주 두 잔을 마신 그녀는 살짝 취기가 오른 듯 뺨이 발그레했다. 평소의 신중하고 차분한 모습 대신 천진하고 귀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안주 좀 더 시키고 왔어.”서준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잔을 들어 그녀의 잔에 가볍게 부딪혔다.“건배.”그는 단숨에 잔을 비웠다. 강유영 역시 잔에 남아 있던 술을 홀짝 들이켰다. 서준이 다시 술단지를 들어 그녀의 잔을 채워주려 했다.“더는 못 마시겠어.”강유영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뺨은 화끈거렸지만 아직 정신은 또렷했다. 하지만 더 마셨다가는 정말 취해버릴 것 같아 겁이 났다.“이건 취하지 않는 술이야. 취하면 내가 책임질게.”서준은 달콤하게 그녀를 달랬다.방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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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화

머릿결이 참으로 부드럽고 매끄러워 만지는 맛이 있었다.“나 건드리지 마.”강유영이 불만 섞인 목소리로 그의 손을 밀쳐냈다. 그러자 서준은 보복이라도 하듯 그녀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리고는 그 모습을 보며 소리 내어 웃었다.“내 소원은….”강유영은 양손으로 턱을 괴고 미간을 찌푸렸다. 몽롱한 눈동자 속에 깊은 고민의 흔적이 스쳤다.“그래, 소원이 뭐야?”서준은 나직막한 목소리로 그녀가 진심을 말하기를 유도했다.“오씨 어멈이 빨리 나아지셨으면 좋겠어.”강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음… 그리고 내 출생의 비밀을 알고 싶어. 내 부모님이 누구인지, 왜 나를 버렸는지….”그녀의 목소리에는 서러움이 배어 있었고,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출생에 관한 의문은 오랜 세월 그녀의 마음을 짓누르던 돌덩이였으나,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비밀이었다.술기운에 이성을 잃은 지금에서야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말들이 터져 나왔다.억눌렸던 서러움도 한꺼번에 밀려왔다. 남들은 다 친부모가 있는데 자신만 없었다. 만약 부모님이 자신을 버린 게 아니라면, 자신도 조연화처럼 당당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대단한 가문이 아니어도 좋았다. 그저 평범한 집안이라도, 한씨의 눈치를 보며 위태롭게 살아남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삶이면 충분했다.“출생이라… 그런 건 때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서준은 무언가 생각난 듯, 눈빛에 매서운 독기가 스치고 지나갔다.“은자도 아주 많았으면 좋겠어. 아주아주 많이, 평생 써도 다 못 쓸 만큼…. 그러면 오씨 어멈과 단비를 데리고 나가서 우리끼리 살 수 있을 텐데…. 다시는… 그 사람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고….”강유영은 허공을 향해 팔을 벌리며 중얼거렸다. 이것이 그녀가 진심으로 갈망하는 바였다.술기운을 빌려 진심을 털어놓으면서도, 만취한 와중에도 그녀는 마음속 깊은 비밀을 지키며 조원철의 이름만큼은 단 한 글자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그녀의 본능이 되어 있었다.“유영이 넌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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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화

서준은 손에 쥔 꽃신을 꽉 움켜쥐더니 벌떡 일어났다.그는 특유의 나른한 기색을 되찾고, 눈을 매혹적이게 치켜뜨며 조원철을 정면으로 응시했다.“방금 유영이가 한 말, 똑똑히 들었는가? 자네는 싫고 나를 좋아한다는군. 여기서 물러서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자네야.”그는 조원철에게 강유영을 자신에게 넘기라고 종용했다.“제 누이는 제가 보살필 것이니, 서왕 전하께서는 신경 끄시지요.”조원철의 안색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서준의 도발에 눈빛은 매섭게 가라앉았고, 심연처럼 깊은 눈동자에는 상대를 얼려버릴 듯한 살벌한 냉기가 서렸다.“누이라 하였는가? 천하에 어느 집 정숙한 오라비와 누이가 이 나이가 되도록 이리 껴안고 있단 말인가?”서준은 의자 등받이에 팔꿈치를 괴고 눈썹을 치켜세우며 조원철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조원철이 자신의 신분을 간파한 것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조원철의 세력이라면 그의 뒷조사를 하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서준 역시 사경을 헤치고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와 황제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한 인물인 만큼,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제 집안일은 전하와 상관없는 일입니다.”조원철은 강유영을 품에 안은 채 앞으로 다가가며, 서준의 손에 들린 꽃신을 낚아채려 손을 뻗었다. 서준 또한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고 꽃신을 꽉 쥔 채 버텼다.밝은 등불 아래, 체격이 비슷한 두 사내는 순식간에 여러 합의 초식을 주고받았다. 결국 두 사람은 꽃신의 양끝을 각각 움켜쥔 채 팽팽하게 대치했다.한 치의 양보도 없는 기싸움이었다. 그 찰나, 두 사람의 눈동자에는 서로를 향한 명백한 적의가 불꽃처럼 튀었다.“세자는 내가 두 사람의 일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게 두렵지 않은가 보군?”서준이 먼저 위협적인 말을 내뱉었다. 그는 일부러 강유영을 훑어보며 입꼬리를 올렸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조원철은 생각보다 훨씬 다루기 힘든 적수였다. 겉으로는 대등해 보이지만, 그가 한 팔로 강유영을 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진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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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화

청류는 명을 받들자마자 바로 사라졌고, 마차는 다시 속력을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마차 내벽 상단에는 네 개의 유리등이 매달려 있었고, 찬란한 등불은 마차의 흔들림을 따라 이리저리 일렁였다.강유영은 취기에 정신이 몽롱해져 있어, 그 빛이 눈을 찌르는 듯 따갑게 느껴졌다.“음….”그녀는 나직이 앓는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돌려 조원철의 품속으로 얼굴을 깊이 묻고, 불만스러운 듯 몸을 뒤척였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볼을 가린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술에 만취해서도 한숨을 내쉬다니, 그 가슴속에 대체 얼마나 많은 말 못 할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조원철은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그녀의 손을 치워냈다.술을 입에 대지도 않았던 그녀였기에 주량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술기운이 제대로 오른 그녀의 옥같이 하얀 뺨과 목덜미는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고, 작고 예쁜 귀까지 발그레해져 있었다.그녀의 몸에서는 과실주의 달콤한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 나왔다.강유영은 무언가 불편한 듯 다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잠을 방해받은 작은 고양이처럼 짜증이 섞인 듯한 몸짓이었다.하지만 조원철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금 그녀의 손을 잡아 끌어내렸다.“건들지 마….”강유영은 원망 섞인 말투로 가냘프게 중얼거리며 그를 툭 밀쳐냈다. 취기에 제정신이 아닌 그녀는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평소 가졌던 두려움도 잊은 듯했다.좀처럼 보기 드문 어리광 섞인 고집이었다. 여덟 살 이전, 그 짧았던 시절 이후로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조원철은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꽉 쥔 채 놓아주지 않았다.그녀가 편히 잠들도록 내버려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방금 전 서원에서 그녀가 서준과 나누었던 대화를 빠짐없이 들은 탓에, 그의 마음은 지금 몹시도 뒤틀려 있었다.“서준아, 장난 그만해…. 나 좀 자게 내버려둬….”강유영은 눈을 감은 채 버둥거렸으나 손에는 힘이 전혀 없었다. 정신이 혼미해지기 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서준이었기에, 잠을 방해하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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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화

마차가 멈춰 섰다.잠시 후, 밖에서 청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세자, 숙취탕약을 가져왔습니다.”그는 얼굴을 내밀지 않은 채, 휘장 안으로 갈색의 숙취탕이 담긴 그릇을 밀어 넣었다.조원철은 손을 뻗어 그릇을 받아 들고는 품에 안긴 가녀린 몸을 부축해 일으켰다.“강유영, 입 벌려.”그는 그릇을 그녀의 입가로 가져다 댔다.강유영은 그가 이끄는 대로 두어 모금 마시더니, 코끝을 찡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써요….”하지만 그녀는 뒤로 몸을 빼며 거부했다.“마셔야 속이 좀 편해질 게다.”조원철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다시 숙취탕을 그녀의 입가로 가져갔다.강유영은 순순히 그릇에 입술을 대고는 몽롱하고 물기 어린 눈을 치켜떠 그를 보았다.눈매를 곱게 접으며 천진하게 웃던 그녀는 막 한 입 머금으려다 말고 갑자기 동작을 멈추더니, 미간을 찌푸린 채 그를 쏘아보았다.“마시라니까.”조원철이 재촉했다.“당신이 주는 건 싫어요. 안 마실래….”그의 얼굴을 알아본 강유영이 손을 들어 그를 거칠게 밀쳐냈다.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있던 조원철의 몸이 기우뚱하더니, 그릇에 담긴 숙취탕 태반이 그의 옷에 쏟아졌다.쓴 향이 순식간에 마차 안을 가득 채웠다.“강유영.”조원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목소리에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그러나 지금 정신이 혼미한 강유영에게 그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옷자락에 번진 얼룩을 보더니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쌤통이네.”그녀는 눈을 흘기며 콧방귀를 뀌었다. 붉게 달아오른 두 뺨에는 가시지 않은 취기와 천진함이 가득했다.조원철은 지끈거리는 미간을 짚으며 드물게 허탈한 기색을 내비쳤다.“청류, 가서 숙취탕 한 그릇 더 받아오거라.”두 번째 숙취탕이 금세 당도했다.“당신이 주는 건 안 먹는다고 했잖아요.”강유영은 또다시 밀쳐내려고 손을 뻗었다.이번에는 조원철도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이걸 다 마시면 보내줄 것이다.”그는 그녀의 손을 피하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저를… 보내준다고요?”강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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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화

조원철이 물었지만, 강유영은 베개에 기대어 반쯤 취한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머리가 둔해져 빠르게 돌아가진 않았지만, 무언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만 무엇이 문제인지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그녀는 그저 조원철을 빤히 응시했다.그는 잔을 내려놓고 식탁으로 다가가더니, 음식이 든 상자를 들고 와 침상 곁에 작은 탁자를 옮겨 놓았다.그러고는 상자를 열어 자신의 손바닥보다도 더 큰 대게 한 마리를 꺼내놓았다.강유영은 그의 긴 손가락이 은제 가위를 들고 정성스레 게살을 발라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그가 게다리를 잘라내고 쭉 밀자, 길고 하얀 속살이 쏙 빠져나왔다.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군침을 꿀꺽 삼켰다.‘정말 맛있어 보이네.’취한 와중에도 먹을 것에 대한 인지만큼은 또렷했다.조원철은 게다리 살을 간장에 찍어 그녀의 입가에 가져다댔다.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게살은 입에 넣자마자 야들야들하고 싱싱한 맛을 내며 형언할 수 없는 풍미를 선사했다.한입 맛을 본 그녀는 다음을 고대하며 그의 손놀림을 더욱 진지하게 살폈다.조원철이 게딱지를 따자, 두툼하고 꽉 찬 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작은 숟가락으로 한 점 떠서 그녀의 입가로 가져왔다. 손가락 끝에 묻은 반짝이는 게장은 무척이나 유혹적이었다.게장은 입안에서 눅진하게 혀를 감쌌다. 강유영은 그것을 음미하며 천천히 오물거렸다. 기름진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침실 안에는 조원철이 게를 손질하는 소리와, 가끔 그녀가 음식물을 삼키는 미세한 소리만 감돌았다.그녀는 그렇게 침상 머리에 기대어 그가 한입 한입 먹여주는 대로 게 한 마리를 다 먹어치웠다.조원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상자를 치우고 손을 씻은 뒤, 수건을 적셔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려 손을 뻗었다.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피하며 미간을 찌푸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오는 길에 마신 숙취탕이 효험을 발휘한 데다, 시간이 꽤 흐른 덕에 취기가 반쯤 가시고 온몸에는 식은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내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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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화

평소 깔끔을 떠는 성격이라, 술 냄새도 더럽다고 여기는 걸까?“내가 직접 도와줄까?”조원철의 미간에 불쾌한 기색이 서렸다.강유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끝내 그가 준 잠옷을 받아들고 목욕실로 향했다.그가 경성으로 복귀한 뒤로, 이런 식으로 그와 꼬인 적이 결코 적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놓아줄 마음이 없다면 제 발로는 나갈 수 없음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무거운 마음으로 목욕을 마친 그녀는 욕실 문가에 멍하니 서 있었다. 차마 그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몸을 감싼 잠옷에서는 그 특유의 감송향이 은은하게 배어나와 그녀의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이리 오거라.”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조원철은 어찌 알았는지, 그녀가 목욕을 마쳤음을 귀신같이 알아챘다.강유영은 자신의 몸에 걸친 잠옷을 내려다보았다. 소매가 너무 길어 여러 번 접어야 했지만, 다행히 속살까지 비치지는 않았다. 품이 지나치게 넉넉하다는 점 말고는 딱히 흠잡을 데가 없었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옷깃을 여민 뒤,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침상 곁으로 다가갔다.“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이제 하세요, 오라버니.”조원철은 침상에 기대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찰나의 순간, 그의 눈동자가 더욱 짙게 가라앉았다.까만 머리카락은 젖은 채 흩어져 백옥 같은 얼굴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마치 아침 이슬을 머금은 백합 같았다. 소매 밖으로 드러난 가느다란 팔은 너무나 희고 가녀려 연민을 자아냈다.그의 골격이 워낙 장대하니 옷이 그녀에게 맞을 리가 없었다. 잠옷을 걸친 그녀의 모습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어린애 같았다. 곧게 뻗은 두 다리는 눈처럼 희고 매끄러워 눈이 부실 정도였다.“이리 와서 앉거라.”그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강유영은 어색하게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좀처럼 발을 떼지 못했다.“하실 말씀이 있다면 그냥 거기서 하세요.”그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그에게 다가갈수록 위험해진다는 사실을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조원철은 아무런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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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화

“오라버니, 이거 놓으십시오!”강유영은 가슴이 철렁내려 앉아, 손목을 비틀며 그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그에게 닿을 때마다 상황은 늘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곤 했다. 하물며 지금처럼 차림새가 허술할 때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조원철은 오히려 힘을 주어 그녀를 품 안으로 거칠게 끌어당겼다. 단단한 팔이 그녀를 옥죄어 한 치도 움직이지 못하게 가두었다.강유영은 한참을 버둥거리다 기운이 다했는지 점차 잦아들며 조용해졌다.다리에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몸부림치는 사이 잠옷이 말려 올라가, 가려야 할 은밀한 곳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다.조금만 더 움직였다간 속살이 훤히 드러날 판이었다.그리고 조원철의 시선은 정직하게도 바로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수줍은 분홍빛이 온몸에 번져 나갔다. 그녀는 하얀 손으로 옷자락을 움켜쥐고 다급히 아래로 끌어내렸다.수치심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다시 한번 말하마. 다시는 서준과 왕래하지 말거라.”그가 시선을 거두며 서늘하게 경고했다.“싫습니다.”강유영은 다리를 웅크린 채 고개를 돌려 그를 외면했다.그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니, 이제 그의 간섭을 받을 이유도 없었다.서준은 소중한 벗인데, 남의 약혼자 때문에 왜 벗과 인연을 끊어야 한단 말인가.“너는 그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나 있느냐? 성품이 어떤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리 가깝게 지내는 게야?”조원철의 눈에 분노가 어리며 눈가에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그는 그저 제 벗이라는 것, 제게는 그거 하나로 충분해요.”그의 품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강유영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위태로운 모습이었다.속으로는 두려움이 엄습했으나, 억지로 고집을 부렸다.이대로 그에게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이미 혼약까지 있는 처지에, 다 끝내자고 분명히 말했거늘 대체 무슨 권리로 사사건건 간섭이란 말인가.“그자와 연을 끊는 게 그리도 어려운 일이냐?”조원철의 어두운 시선이 그녀의 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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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화

“이러지 마십시오!”강유영은 온몸을 비틀며 저항함과 동시에, 찢어진 옷깃을 여미기 위해 허둥댔다.그러나 조원철은 그녀의 얼굴을 거칠게 감싸 쥔 채, 하늘을 찌를 듯한 분노를 담아 입술을 짓눌렀다.서준과 왕래하기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겠노라 말하던 그 입술이었다.그는 그녀의 치열을 억지로 가르고 들어가, 화풀이하듯 집요하게 몰아붙였다.아리고 저릿한 감각에 그녀의 눈가와 코끝이 붉어졌다.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귓가에는 이명이 울렸으며, 심장은 흉통을 뚫고 나올 듯 요동쳤다.두려움과 수치심이 뒤섞인 끝에, 그녀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고 그의 혀끝을 세게 깨물었다.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비릿한 피 냄새가 번졌다.조원철은 그녀가 저항하는 방식에 이미 익숙해진 듯 아주 잠시 주춤했을 뿐, 물러서지 않았다.오히려 그녀의 반항은 그를 멈추게 하기는커녕 불만 더 지핀 꼴이 되었다.입맞춤은 점점 더 거칠고 사나워졌다.서늘한 머리카락이 살갗을 스쳤다.강유영은 무거운 눈꺼풀을 뜨지 못한 채, 신음을 삼키려 입술을 깨물었다.가느다란 손가락은 어느새 그의 머리카락을 쥐어뜯듯 붙잡고 있었다.가냘픈 몸은 마치 한겨울 칼바람을 맞는 여린 버드나무처럼 파르르 떨렸다.“이래도 그자가 좋다고 할 것이냐? 내가 그리도 미운 게야?”조원철이 고개를 들었다. 젖은 코끝과 땀방울이 맺힌 이마에는 서늘한 위협이 서려 있었다.강유영은 피가 배어 나올 듯 입술을 깨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말해 보라니까!”그는 그녀를 거세게 압박하며 으르렁거렸다.“오라버니는… 그저 저를 괴롭힐 줄밖에 모르시는군요….”한계에 다다른 강유영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끝내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조원철은 그녀를 내려다보면서도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응시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위협이 담겨 있었다.“말하거라. 다시는 그자와 왕래하지 않겠다고.”그는 집요하게 몰아붙였다.“싫습니다…. 차라리, 차라리 저를 죽여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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