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hapter 521 - Chapter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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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1화

조원철의 시선은 지척에 있는 그녀의 입술에 머물렀다.오늘 화장을 한 데다 시간이 꽤 지나 입술의 연지가 다소 번져 있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도톰한 입술이 더욱 투명하고 생기 있어 보였다."안 되겠습니까?"강유영은 그의 옷깃을 쥐고 살살 흔들었다.그녀가 말할 때마다 탐스러운 입술이 달싹였다.조원철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뒷덜미를 감싸 쥐고는 고개를 숙여 그 부드러운 입술을 머금었다.너무도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강유영은 무방비 상태로 당하고 말았다.그렇게 그의 뜨거운 품에 갇힌 채, 묵직하면서도 점점 가빠지는 그의 심장 박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그는 거칠게 그녀의 숨결을 모조리 앗아갔다. 숨이 막혀 헐떡이느라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겨워졌고, 밀어내려고 해도 틈을 안 주고 몰아붙이는 조원철 때문에 진이 빠졌다.그는 상체를 숙여 그녀를 온전히 제 품 안에 가두었다.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입술과 코끝을 촘촘히 덮어왔고, 뒷목을 단단히 움켜쥔 커다란 손은 놓아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억센 힘으로 그녀의 숨결을 온전히 자신의 품으로 옭아맸다.이내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띠로 향했다."흡...."강유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격렬하게 저항하며 허리를 비틀었다.마차 안에서는 절대 싫었다.과거 그가 소주까지 찾아왔을 때, 마차 안에서 겪었던 끔찍한 기억이 순식간에 떠올랐다.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강유영은 주먹을 쥐고 그의 가슴팍을 마구잡이로 내리쳤다. 너무 서러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조원철도 평소와 다른 그녀의 격렬한 반항을 눈치채고 즉시 그녀를 놓아주었다.깊은 욕망에서 빠져나온 그의 어두운 눈동자에 점차 이성이 돌아왔다."싫습니다, 여기선 싫어요…."강유영은 아직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굵은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알았다. 이제 괜찮다."조원철은 그녀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강유영은 그가 더는 선을 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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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2화

"입맞춤까지 했는데…."강유영은 말을 채 잇지 못했다.수치심과 야속함에 결국 눈을 질끈 감고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렸다. 그가 참으로 얄미웠다."알았다, 뚝 그쳐라. 옷을 준비하라 이를 테니."조원철은 다정하게 그녀를 달랬다.그는 이리 성질을 부리는 그녀의 모습이 내심 보기 좋았다.그 말에 강유영은 눈물 맺힌 눈을 번쩍 뜨고 그를 보았다.옷을 준비한다니? 수영을 허락한다는 뜻일까?"수영을 배우려면 그에 맞는 옷이 필요하다."조원철이 담담히 덧붙였다.강유영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되물었다."그럼 어디서 배우는 겁니까?"설마 진국공부의 연못에서 배우는 건 아닐 것이다.조원철은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대답했다."성 밖의 온천 산장으로 갈 거다.""예."강유영은 고개를 숙여 그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댔다. 웬일인지 자꾸만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어쩌면 처음으로 타협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어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서왕부.서준은 서재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그는 늘 그렇듯 삐딱한 자세로 등받이에 기댄 채, 한 손으로는 턱을 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낭호필을 만지작거렸다.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은 수하가 그에게 보고를 올리는 중이었다.한참 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태자 쪽은 무슨 움직임이 없느냐? 감옥에 갇힌 처형을 보러 간 적은 있고?""없습니다." 수하가 답했다."태자비는? 그 여자도 움직임이 없고?"서준은 눈썹을 까딱이며 쥐고 있던 붓을 책상 위에 툭 던졌다."태자 전하께서 태자비께 이 일에 관여하지 말라 엄명을 내리셨다 합니다. 태자비께서는 예전처럼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울 뿐,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수하가 차분히 보고했다."곡창 쪽은?" 서준이 다시 물었다."태자가 이미 여러 명을 인주로 보냈습니다. 슬슬 움직일 작정인 듯합니다…."수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풍이 밖에서 들어왔다."전하." 그는 굳은 표정으로 예를 행했다."무슨 일이냐."서준은 턱을 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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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화

서재 안을 감도는 은은한 침향에 조연화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소매 속에 감춘 손바닥에는 어느새 땀이 배이고 있었다.오늘 서준을 만나기 위해 그녀는 특별히 공들여 치장을 했다. 금실로 나비를 수놓은 화사한 붉은 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화려한 금비녀를 꽂았다. 얼굴에는 분을 곱게 바르고 입술엔 붉은 연지를 찍었다. 본래도 꽤 빼어난 외모였지만, 이렇게 한껏 꾸미고 나니 한 송이 꽃처럼 화사하고 교태가 물씬 풍겼다.서재 문턱을 넘기 전만 해도 그녀는 몹시 자신만만했다. 용모나 품성 모두 강유영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고, 출신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허나 막상 서준의 나른하고도 오만한 자태와 황족 특유의 위엄을 마주하고, 매일 밤 꿈에 그리던 그 훤칠한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숨이 턱 막혔다. 보이지 않는 엄청난 위압감에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해, 일순 대답하는 것조차 잊고 말았다."조 소저?"서준이 눈썹을 치켜올며 그녀를 다시 불렀다."예, 전하."조연화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지만 긴장했던 탓에 갈라진 목소리가 나왔다. 그녀는 황급히 헛기침을 하고는 최대한 조신하고 상냥한 어투를 꾸며냈다."불쑥 찾아와 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힌 것은 아닌지 송구하옵니다.""많이 긴장한 모양이군."서준이 고개를 기울여 그녀를 보았다.그는 묘한 눈빛으로 조연화가 공들여 꾸민 얼굴과 화려한 옷차림을 가볍게 훑어 내렸다. 참으로 무심한 시선이었다.그 태도에 조연화는 덜컥 겁이 나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앉거라."서준이 손을 들어 올렸다."감사합니다, 전하."조연화는 감히 의자 깊숙이 앉지도 못하고 끝에만 걸터앉아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그녀는 몰래 호흡을 가다듬으며 이곳에 오기 전 어머니가 당부했던 말과 오늘의 목적을 떠올렸다. 이대로 기가 죽어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오늘 불쑥 찾아뵌 것은, 참으로 중대한 일이 있어… 전하와 상의를 드리고자 함이옵니다."그녀는 애써 고개를 들어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녀는 진국공부의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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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4화

조연화는 마침내 정신을 가다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서준은 의자에 나른하게 기댄 채 그녀를 보며 말했다."그러니까, 진국공부에서 그 아이를 내게 시집보내겠다는 뜻이군. 헌데 이 일을 어린 처자인 네가 직접 찾아와 말하는 건 영 부적절하지 않나. 차라리 다른 사람을 보내거나, 내가 다시 청혼을 하러 가는 편이 낫지 않겠어?"조연화는 정곡을 찌르는 그의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꽉 쥔 손바닥에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그녀는 주먹에 힘을 주었다.어린 처자인 자신이 먼저 외간 사내를 찾아와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 얼마나 가벼워 보이는 짓인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어머니는 이렇게 직접 나서야 진정한 성의를 보일 수 있다고 했다. 그녀의 미모가 빠지지 않으니 서준도 십중팔구 마음이 동할 것이라고 부추겼다. 서준이 동의하여 두 사람의 혼사가 맺어진다면 그야말로 아름다운 미담이 될 터였다.설령 거절당한다 해도 진국공부의 체면을 보아 그녀가 먼저 찾아왔다는 사실을 밖으로 발설하지는 않을 것이다."어머니의 뜻이 그러하옵니다." 그녀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오늘 찾아온 진짜 목적을 꺼냈다.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전하께서 꺼리지 않으신다면, 소녀 연화가 전하의 곁을 모시고 싶사옵니다. 강유영 그 아이가 분수를 모르고 철없이 굴었으나, 전하께서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지요. 소녀가 정실로 문을 넘는 날, 조그만 가마에 그 애를 태워 첩실로 들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전하께서도 만족하실 테고, 저희 자매의 우애도 지킬 수 있으며, 그 아이에게도 번듯한 거처를 마련해주어 훗날 밖으로 나도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전하의 뜻은 어떠하신지요?"그녀는 얼굴이 불타는 듯 달아올라 재빨리 서준을 힐끗 보았다. 막상 말을 내뱉고 나니 심장이 요동쳐서 서준의 표정이 기뻐하는 것인지 불쾌해하는 것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었다.어머니는 서준이 존귀한 황자로서 강유영에게 단칼에 거절당했으니 속으로 몹시 언짢았을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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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5화

서준은 책상에 기대어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참 침묵을 지키던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제법 괜찮은 제안이군. 내가 준비하도록 하마."조연화는 그가 당장 거절하지는 않더라도 즉시 수락하지는 않고 고심할 줄 알았다. 그런데 단박에 승낙하고는 몸소 준비하겠다고까지 하니 너무 놀라웠다.그녀는 뛸 듯이 기뻤으나 애써 벅찬 마음을 억눌렀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리며 아까처럼 다소곳하고 조신한 태도를 유지했다."그럼 소녀는 이만 부저로 돌아가 전하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겠사옵니다.""그전에 너와 내가 자주 왕래해야겠어. 강유영 그 아이가 후회하는 꼴을 봐야 하니까."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문밖까지 배웅했다.조연화는 두 뺨이 붉게 달아오른 채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소녀는 모두 전하의 뜻에 따르겠사옵니다."서준은 자신을 이용해 강유영의 질투를 유발할 작정인 듯했다. 그녀는 그 사실이 조금도 불쾌하지 않았다. 앞으로 서준이 든든한 뒷배가 되어줄 텐데 강유영도 더 이상 미쳐 날뛸 수는 없을 것이다.훗날 서왕부에 시집가면 그녀는 정실 왕비이고, 강유영은 일개 첩실에 불과했다. 그때가 되면 강유영을 철저히 짓밟고 그간의 수모를 말끔히 씻어낼 것이다.서준은 문틀에 비스듬히 기댄 채 뜰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강 소저를 핑계 삼아 서왕부에 발을 들이려는 속셈이옵니다. 전하, 정말로 수락하신 겁니까?"어둠 속에서 나타난 남풍이 다가와 물었다.서준은 조연화가 사라진 곳을 바라볼 뿐, 남풍의 물음에는 대답 대신 실소를 흘렸다."조원철의 누이라. 제법 재미있군."요월원."아씨, 반나절 내내 서책만 들여다보시면 눈이 상합니다. 바람 좀 쐬시지요."서유가 강유영을 방 밖으로 이끌었다.강유영은 회랑 아래에 서서 기지개를 켰다.반나절을 내리 앉아 있었으니 눈을 좀 쉬게 해줄 때가 된 것 같았다"단비는 어딜 갔느냐?""점심을 가지러 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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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6화

"이건 무슨 옷감입니까? 전에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강유영은 옷을 펼쳐보며 신기해했다.위는 치마, 아래는 바지의 형태였다. 소매폭이 좁고 바짓단에 줄이 달려 발목에 묶을 수 있게 되어 있어 물속에서 움직이기 편해 보였다.새하얀 색감에 은은한 광택이 도는 부드러운 옷감은 손에 닿는 감촉이 마치 봄날의 물결을 쓰다듬는 듯했다. 가볍고 보드라우면서도 차분하게 가라앉는 태가 났다. 짜임새가 워낙 촘촘하여 밝은 곳에 비추어 보아도 빛만 통과할 뿐 속살은 비치지 않았다."탁청초(濯清绡)다."조원철은 찬합을 열고 음식들을 하나씩 꺼내놓았다."탁청초…."강유영은 여전히 옷을 들여다보며 작게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돌려 그에게 물었다."이게 본래 수영할 때 입는 옷을 짓는 옷감입니까?"여태껏 들어본 적조차 없는 이름이었다.조원철은 그녀를 힐끗 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아씨, 식사…."단비가 찬합을 들고 웃으며 방으로 들어오다가 조원철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입을 다물더니 이내 무릎을 굽혀 예를 올렸다."세자를 뵙습니다."조원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너희들끼리 나누어 먹거라."강유영은 손에 든 옷을 내려놓으며 단비에게 일렀다."감사합니다, 아씨."단비는 찬합을 챙겨 들고 환하게 웃으며 물러났다."이리 와서 밥 먹거라."조원철이 그녀를 불렀다.강유영은 다가가 그가 건네는 수저를 받아 들고는, 맑은 시선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온천 산장에는 언제 가는 겁니까?"꿀에 절인 앵두를 한 입 베어 문 그녀의 눈망울이 기대감으로 반짝거렸다.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는 그가 무언가를 가르치려 할 때마다 질색을 했고, 늘 억지로 감시하듯 가르쳐야만 했다.헌데 지금은 무엇이든 배우려 들며 의욕이 넘쳤다."그리 마음이 급하냐."조원철은 밥을 한 젓가락 떠 입에 넣고는 천천히 씹어 삼켰다."날이 하루가 다르게 쌀쌀해지지 않습니까…."강유영은 시선을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스스로 생각해도 좀 궁색한 핑계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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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7화

"이 일은 네가 알아서 생각하거라. 나는 수영을 가르쳐 줄 뿐이다."조원철은 시선을 내리깐 채 그녀를 보지 않았다.강유영은 젓가락을 쥔 채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이거 참 난감한 일이었다."밥이나 먹거라."조원철이 그녀를 재촉했다.강유영은 건성으로 밥을 떠넘기며, 어떻게 해야 노부인과 한씨 모르게 그를 따라 온천 산장에 갈 수 있을지만을 골똘히 생각했다."경화 공주가 한 달 내내 공주부에 얌전히 틀어박혀 있을 것 같으냐."조원철이 닭도리탕을 한 그릇 떠서 그녀의 앞에 내려놓으며 담담히 물었다.강유영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왜 갑자기 이런 걸 묻는 걸까.그녀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가 아무 까닭 없이 물었을 리는 없었다. 경화 공주를 언급한 것은 분명 그녀에게 무언가를 일깨워 주려는 것이었다.경화 공주는 본디 얌전한 성정이 아니었다. 건정제가 친히 명을 내렸다 한들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위인이었다. 분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주부를 몰래 빠져나와 밖에서 유흥을 즐길 사람이었다."제가 근신 처분을 받게 되면, 아무도 모르게 몰래 빠져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강유영의 눈빛이 반짝였다.그녀는 그의 뜻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근신 처분을 받은 사람에게는 으레 감시의 눈길이 느슨해지기 마련이었다."어찌하면 근신 처분을 받겠느냐."조원철이 국그릇을 그녀 앞으로 쓱 밀어주었다.강유영은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국을 휘휘 저으며 생각했다. 그러다가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말했다."노부인의 심기를 건드려야지요."이미 노부인의 눈 밖에 난 지 오래니, 벌을 받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네게 그럴 배짱이 있느냐."조원철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물었다.강유영은 숟가락질을 멈추고 멍하니 눈앞의 음식을 내려다보았다."하지만, 근신 처분으로 끝날지 아니면 가법으로 다스릴지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배짱이야 지금은 얼마든지 있었다. 다만 노부인이 그녀를 어떻게 벌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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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8화

"아씨, 걱정 마십시오."서유가 웃으며 대답했다.주종 두 사람은 치자나무 앞에 서서 조용히 기다렸다.일각쯤 지났을까, 서유가 돌연 입을 열었다."아씨, 그만하십시오. 이 말을 노부인께서 들으시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정 하시려거든 거처로 돌아가서 하시지요."그녀는 말과 함께 강유영을 끌고 자리를 뜨려는 듯 몰래 눈짓을 보냈다.마침 화씨 어멈의 부축을 받으며 회랑 아래 대나무 숲 뒤를 지나던 노부인이 그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화씨 어멈 역시 우뚝 멈춰 섰다."이 시간이면 할머니께선 삼청 신상 앞에서 불공을 드리고 계실 텐데, 내 말 따위에 신경이나 쓰시겠어."강유영은 치자꽃 한 송이를 꺾어 코끝에 대고 향을 맡았다."그래도 밖에서 함부로 하실 말씀은 아닙니다. 혹여 담장 너머로 듣는 귀라도 있으면…."서유가 재차 만류했다."두려울 게 뭐 있겠어? 지난번 꾀병을 부려 대사라는 작자를 시켜 내 심방혈을 뽑으려 했던 그 순간부터, 난 이미 그 노인네를 할머니로 여기지 않아."강유영의 목소리는 느릿하고 나긋나긋했지만, 내뱉는 말은 지독히도 가시가 돋쳐 있었다.화씨 어멈이 곁에 선 노부인의 음침해진 안색을 살피며 앞으로 나섰다.노부인은 어멈을 홱 끌어당기며 싸늘하게 명했다."어디 무슨 망발을 더 지껄이는지 들어보자."강유영이 눈앞에서 조연화의 심장에 단검을 들이댔던 그날 이후, 그 계집의 성정은 완전히 변해버렸다.노부인은 강유영이 얼마나 더 방자하게 구는지 두고 볼 참이었다.지난번엔 자신이 꿀리는 구석이 있어 억지로 분을 삼켜야만 했으나 이번은 달랐다.제 발로 약점을 쥐여 주었으니, 이번에야말로 국공부의 법도가 어떤 것인지 뼛속 깊이 새겨줄 작정이었다."하긴, 그때 노부인의 처사는 너무 과하셨습니다. 어찌 그리 아씨만 못살게 구시는지...."서유도 거들며 맞장구를 쳤다."내가 이 집 혈육이 아니라서 그런 거 아니겠어?"강유영은 손에 쥔 치자꽃을 바닥에 툭 던져버렸다."부처님 믿는답시고 유난을 떠는 게 기가 막히지.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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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9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유영의 귓가에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팡이로 바닥을 강하게 내리찍는 소리였다.그녀와 서유는 짰던 대로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안색이 시퍼렇게 질린 노부인이 강유영을 손가락질하며 부들부들 떨고 있엏다. 기가 막혀 당장 말조차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평생을 대접만 받고 살아온 국공부 노부인이 언제 이런 수모를 겪어보았겠는가. 예전에는 쥐 죽은 듯 기어 다니던 계집이 이제는 간이 배 밖으로 나와 등 뒤에서 감히 어른의 흉을 보고 있었다."노부인, 고정하십시오."화씨 어멈이 노부인을 부축하며 달랬다. 그녀는 이내 강유영을 힐끗 보며 대신 용서를 구했다."유영 아씨가 아직 어려 철이 없어 저러는 것이니, 부디 노여움을 푸시옵소서…."화씨 어멈은 강유영이 제 비밀을 까발릴까 두려워 안달이 난 상태였다.노부인은 과연 대갓집 마님다웠다. 금세 평정을 되찾은 노부인은 강유영을 싸늘하게 노려보며 꾸짖었다."내 미처 몰랐구나. 이 진국공부에서 어른을 흉보고 부처님을 모독하는 요물을 거두어 길렀을 줄이야.""할머니…."강유영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변명을 하려는 듯, 말끝을 흐렸다."입 닥치거라!"노부인이 호통을 치며 화씨 어멈에게 명했다."당장 채찍을 대령해라."오늘 기필코 그 옹졸하고 분수도 모르는 늙은이가 어떤 사람인지 뼛속 깊이 알려줄 참이었다.강유영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척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음을 깨달았다.노부인은 근신 처분 따위가 아니라 단박에 채찍을 들고나왔다. 노부인이 자신을 얼마나 끔찍이도 미워하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할머니, 어찌 이리 크게 노하셨습니까."회랑 모퉁이에서 걸어 나온 조원철이 강유영을 무심하게 힐끗 보고는 노부인에게 예를 올렸다."원철아, 마침 잘 왔다."노부인은 손자를 보자마자 조금 전 강유영이 지껄인 망발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일러바쳤다.얌전하고 순종적인 겉모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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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0화

"노부인, 소인이 사람을 시켜 아씨를 요월원으로 끌고 가겠습니다."화씨 어멈이 눈치를 살피다 자청하고 나섰다."그래."노부인은 강유영을 다시 한번 노려보며 말했다."끌고 가거라.""가자!"화씨 어멈이 손을 내젓자, 억센 심부름을 하는 두 노파가 강유영의 양팔을 거칠게 비틀어 쥐고 앞장서 끌고 갔다."저년도 함께 망발을 지껄였으니, 차라리 내다 파는 것이…."서유를 본 노부인이 불쑥 입을 열었다."유영이와 함께 근신하도록 두시지요."조원철이 때맞춰 나섰다.노부인은 그를 유심히 살폈으나, 무심한 얼굴에는 한 치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그럼 그렇게 하거라."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조원철과 강유영.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었다. 다행히 강유영이 근신에 처해졌으니 앞으로 반년은 조용할 터였다. 그 이후의 일은 차차 방도를 생각해도 될 일이었다.어쩌면 이참에 서둘러 조원철을 장가보내는 것이 상책일지도 모른다. 노부인의 시선이 다시 조원철에게 머물렀다.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다 왔다. 너희 둘은 문밖에서 기다리거라. 내 아씨에게 단단히 일러둘 말이 있으니."요월원에 들어서자마자 화씨 어멈은 재빨리 두 노파를 밖으로 물렸다.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싸늘하게 노려보았다.화씨 어멈은 문을 닫자마자 황급히 다가가 강유영의 팔을 주물렀다."아씨, 괜찮으십니까? 팔은 아프지 않으시고요? 제가 좀 주물러 드리겠습니다."그녀는 굽신거리며 잔뜩 아부하는 얼굴로 말했다.강유영은 힐끗 쳐다만 볼 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화씨 어멈의 속셈이야 뻔했다. 자신의 그 구린내 나는 짓거리들이 까발려질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이런 아랫사람을 대할 때는 위엄을 갖춰야 기세를 누를 수 있다던 조원철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위엄을 부리는 법을 잘 몰랐기에, 그저 가만히 있어도 기백이 넘치는 그를 흉내 내어 입을 꾹 다물었다."소인이 일부러 귀띔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노부인께서 막아서시는 바람에 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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