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Bab 151 - Bab 160

199 Bab

제151화

밖에서 포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한바탕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강유영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쳐 당장이라도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고, 참았던 눈물이 툭하고 떨어졌다.대낮에, 지체 높은 진국공부의 세자가 형부 관아의 편청에서 양누이인 자신을 껴안고 있다니.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일인가.그는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걸까?남몰래 그녀를 괴롭히는 것으로도 모자라, 하필 지금 상황에서 이런 행동으로 겁을 주며 농락하려는 것인가.“잘 생각해 보아라. 주지상의 어미에게서 뭔가 이상한 점은 못 느꼈느냐?”조원철이 그녀를 일깨웠다.너무 가까이 붙어 있는 탓일까, 아니면 긴장한 나머지 환각이라도 본 것일까.조원철의 차가운 어조 속에서 묘하게도 애틋한 기운이 느껴졌다.“먼저 이것 좀 놓고 말씀하세요, 제발요….”강유영은 울먹이며 애처롭게 문밖을 살폈다.누군가 당장이라도 들어와 이 광경을 목격할까 봐 전전긍긍할 뿐, 그가 묻는 질문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조원철은 그런 그녀를 묵묵히 응시하고 있었다.강유영은 흐느끼며 억지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그녀는 그의 고집스러운 성미를 잘 알고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자유로워지려면 그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수밖에 없었다.공포가 잠재력을 일깨운 것일까.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찰나, 머릿속에 번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그녀는 눈물 맺힌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주지상의 어머니가… 가짜로 우는 것 같았어요. 곡소리는 요란한데 눈물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거든요.”그제야 그녀는 주씨 노부인에게서 느꼈던 위화감이 무엇인지 떠올렸다.자신의 눈물이 단서가 된 셈이었다.주씨 노부인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눈물 두어 방울을 짜냈는데, 그것은 뺨을 타고 흐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해서?”조원철이 다시 물었다.“설마 주지상의 죽음이 그 어머니와 관련이 있는 걸까요?”강유영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자신의 가설에 스스로 놀란 그녀의 몸이 빳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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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2화

강유영의 심장이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조원철의 반응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어린 시절의 정을 생각해서 놓아주기는 커녕, 오히려 그의 욕구만 자극한 꼴이 되었으니...고양이 앞에 놓인 쥐가 된 기분이었다.뼛속 깊이 자리 잡은 압박감에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온몸이 저려오는 가운데, 그의 수려한 얼굴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그저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그때,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정기우가 헛기침을 하며 인기척을 냈다.“세자….”하지만 조원철은 바로 손을 놓았고, 강유영은 물 밖으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처럼 그의 품에서 번쩍 뛰어 물러났다.평생을 통틀어 이토록 반응이 빨랐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그녀가 겨우 중심을 잡고 섰을 때, 정기우가 문 안으로 들어섰다.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절묘한 시점이었다.강유영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정말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이었다.조금만 늦었으면 정기우에게 그 광경을 들켰을 것이다.그녀는 이내 무심코 조원철을 바라보았는데, 그는 단정하게 앉아 한 손을 탁자에 얹은 채, 무심한 눈빛으로 정기우를 바라보고 있었다.무심하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절제된 모습이었다.정기우가 들어오기 직전까지 그가 어떤 황당한 짓을 벌이려 했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강유영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그는 늘 이런 식으로 연기에 능했다.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가 고결하고 청렴한 귀공자인 줄로만 알 것이다.“세자, 이제 심문을 다시 시작해도 되겠습니까?”정기우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조원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정기우는 강유영을 보더니 잠시 망설이다 위로의 말을 건넸다.“강 소저, 너무 겁먹지 마시오. 사실 소저는 피해자이니, 앞으로의 일은 소저와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오.”외출조차 자유롭지 않은 양반댁의 양녀가 진범일 리가 없었다.게다가 경화 공주의 오라버니인 서왕께서 특별히 그녀를 겁주지 말라고 당부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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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3화

정기우는 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손을 저어 포졸들에게 그녀를 부축하라고 명했다.일행은 위풍당당하게 주씨 저택으로 향했다.지난번 일이 있었던 편청을 지날 때, 강유영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었는데, 속에서 역겨운 기운이 다시 치밀어 올랐다.마치 주지상이 살아 숨 쉬고 있고, 자신이 위기에 처했던 그 끔찍한 순간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그러자 곁에 있던 조원철이 의도한 것인지, 아님 우연인지 그녀의 시야를 가로막으며 듬직하게 앞을 가려주었다.“청운.”부름을 들은 청운이 급히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조원철은 그의 귀에 대고 몇 마디 나지막이 지시를 내렸다.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수하들을 이끌고 포졸들과 함께 저택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포졸 한 명이 정기우의 앞으로 달려와 보고했다.“대인,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수확이 없습니다.”정기우는 초조한 듯 조원철을 바라보았다.이제 그가 믿을 사람은 오직 세자뿐이었다.“세자, 뒤뜰의 부엌 근처에서 무언가 발견했습니다.”잠시 후, 청운이 다가와 보고했다.그 말을 들은 순간 주씨 노부인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하더니,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듯 휘청거렸다.다행히 옆에 있던 포졸들이 재빨리 그녀를 붙들었다.정기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형부상서라는 자리에 그냥 올라온 그가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의 통찰력은 가지고 있었다. 심문장에서 주씨 노부인이 기를 쓰고 재수색을 반대할 때부터 뭔가 구린 구석이 있다는 것을 예감했었다.이쯤 되니 주지상의 죽음이 필히 그 어미와 관련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형부에서 수년간 몸담으며 인륜을 저버린 별의별 사건을 다 보아온 그였기에 이 정도쯤은 별 일 아니라고 여겼다.“그쪽으로 가보지.”조원철이 앞장섰다.강유영도 뒤따라 부엌이 있는 뒤뜰로 들어섰다.저택은 규모가 크지 않아 뒤뜰 역시 아담했다.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꽃 한 송이 없는 평범한 마당일 뿐, 특이점은 보이지 않았다.“세자, 여길 보십시오.”청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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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화

조원철은 그녀를 힐끗 보더니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강유영은 마침내 여인의 시신을 똑똑히 확인했다.시녀의 옷차림을 한 여인은 머리에 큰 상처가 나 있었는데, 그것이 치명상인 듯했다.그녀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얼마나 참혹한 죽음이었을지 상상이 갔다.“여기 식칼도 있습니다!”포졸 한 명이 소리쳤다.마침내 흉기까지 찾아낸 것이다.검시관이 신속하게 시신을 살폈다.여인의 손에는 옷자락 한 조각이 쥐여 있었는데, 필히 범인의 옷에서 찢어낸 것으로 보였다.이 집에서 이토록 좋은 비단옷을 입을 수 있는 이는 주씨 노부인뿐이었다.곧이어 시녀의 손에 찢긴 주씨 노부인의 옷가지도 땅속에서 발굴되었다.그야말로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가 드러난 순간이었다.주씨 노부인은 넋이 나간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녀는 이제 변명도 포기했는지, 초점 없는 눈으로 눈물만 줄줄 흘리며 웅얼거렸다.“내가… 내가 죽였어요….”그러다 갑자기 눈빛이 사납게 돌변하더니 악을 썼다.“그놈은 짐승이야! 죽어도 마땅한 인간도 아닌 괴물이라고!”정신이 완전히 무너진 그녀는 악에 받쳐 모든 울분을 토해냈다.정기우는 즉시 상세한 심문에 들어갔다.알고 보니 주지상의 변태적인 행각은 전처들과 시녀를 비롯해 자신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여인들에게만 그치지 않았다.그는 천인공노하게도 친모에게까지 마수를 뻗쳤던 것이다.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로 줄곧 그래왔다고 했다.“다른 이들은 죽거나 도망이라도 칠 수 있지. 난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었어요! 내가 죽으면 내 부모 형제들까지 다 죽이겠다고 협박했으니까! 지난 몇 년간 난 산송장이나 다름없었어요! 여길 좀 보세요!”주씨 노부인은 이제 빠져나갈 가망이 없음을 깨달았는지, 겉옷을 젖히고 소매와 바짓단을 걷어 올렸다.밖으로 드러난 그녀의 몸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채찍에 맞은 자국, 불에 덴 자국,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도구에 짓눌린 흔적들까지.상처 위에 상처가 겹쳐져 성한 곳이라곤 찾아볼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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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화

저택으로 돌아가는 내내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가장 큰 충격은 주씨 노부인의 처참한 인생이었다. 금시초문인 그 끔찍한 이야기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도 그녀를 괴롭혔다.오씨 어멈의 저녁을 챙긴 후에 침소로 돌아오니, 조원철이 이미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와서 밥부터 먹거라.”그가 그녀에게 젓가락을 건넸다.식탁 위에는 그가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반찬이 가득 놓여 있었다.강유영은 이제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익숙해져서인지 전처럼 겁을 먹지는 않았다.그녀는 눈을 내리깐 채로 맞은편에 앉아 밥을 한술 떴다. 마음이 쓰라려서 입안에선 그저 쓴맛만 맴돌았다.그는 오후 내내 소은경과 함께 지내다 온 듯했다. 둘이 그렇게 다정하게 지내면 될 것을 왜 또 자신을 찾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조원철은 앵두 전병 하나를 집어 그녀의 밥그릇 위에 놓아주었다.그녀는 젓가락질을 멈추고 긴 속눈썹을 늘어뜨린 채, 꿀빛이 도는 앵두 전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그는 늘 이렇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하지만 정작 그녀는 가슴 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억누르기 너무 힘들었다.“왜 또 울고 그러느냐?”조원철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손을 뻗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강유영은 그의 손길을 피하며 손등으로 얼굴을 슥 닦았다.축축한 감촉이 느껴져서야 그녀는 자신이 울고 있음을 알아차렸다.“배불러요.”입맛을 잃은 그녀는 수저를 내려놓았다.오늘 시신을 보고 돌아온 터라 음식이 넘어갈 리 없었다.게다가 지금 이 상황에서는 더욱 뭘 삼킬 수가 없었다.“밥은 먹어야지.”그의 낮은 목소리에서는 거절을 용납치 않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정말 더는 못 먹겠어요.”강유영은 그가 두려워 슬쩍 눈치를 살피며 입술을 깨물었다.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여 도저히 음식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이따가 공부도 해야 하는데 그때 가서 배고프다고 해도 없어.”조원철이 경고하듯 말했다.강유영은 고개를 숙인 채 묵묵부답으로 버텼다.그녀에게도 나름의 고집이 있었다.“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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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화

조원철이 가르친 것들 중에는 병법의 이치가 많았다.강유영은 이것이 일상에서 악당을 상대할 때 요긴하게 쓰일 것임을 직감했다.그녀는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물었고, 가르침에 있어 조원철은 의외로 인내심이 강했다.촛불 아래서 글을 가르치는 그는 평소와 달리 영락없는 스승의 자태였다.“앞 문구는 적이 뭉쳐 있을 때 분산시켜 격파하라는 뜻이고, 뒷 문구는 강한 적을 만나면 정면으로 맞서지 말고 우회하여 약점을 찌르라는 의미다. 알겠느냐?”조원철은 시선을 들며 물었다.강유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 구절을 읽어 내려갔다. 조원철은 문구마다 상세히 설명을 덧붙였고, 강유영도 점차 진지하게 배움에 임했다.처음엔 억지로 시작했으나 조원철의 엄한 지도와 필사의 벌 덕에 어느덧 습관이 배었다. 게다가 약방 출입이 불허된 뒤로는 소일거리가 없어 스스로 서책을 펼치는 일도 잦아졌다.수업이 끝난 후, 강유영은 숙제로 받은 문구를 필사하고 장부를 펼쳐 셈을 하기 시작했다. 조원철은 묵묵히 서책을 읽었다.침소 안, 두 사람이 마주 앉은 가운데 주판알 튕기는 소리만이 정적을 메웠다. 기묘하리만치 고요하고 평온한 기운이 감돌았다.“이거 이상하네요.”강유영이 장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누군가 정산을 끝낸 장부였지만 다시 계산해 보니 숫자가 맞지 않았다.게다가 곡물 같은 기본 품목의 단가가 시세보다 훨씬 높게 책정되어 있었다.그가 왜 이런 장부를 내밀었는지 의아했다.“무엇이 이상하단 말이냐?”조원철이 깊고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강유영이 손가락으로 그 대목을 짚자, 조원철은 무심하게 대꾸했다.“그런 건 신경 쓸 것 없고, 너는 네가 계산한 숫자만 적으면 된다.”장부 두 권을 겨우 끝마친 강유영은 붓을 내려놓고 작게 하품을 했다.밤이 깊어서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졌다.“내일부터는 일찍 일어나 무공을 가르칠 것이다. 다도는 어느 정도 익혔느냐? 꽃꽂이도 새로 배워야 할 것이다.”자리에서 일어나며 내뱉은 조원철의 무심한 말에 강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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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화

단 몇 달 만에 강유영은 제법 그가 원하는 만큼까지 익힐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조원철은 약을 달이는 작은 화로 위에 가마솥을 걸어놓고는 그녀에게 요리까지 배우라고 강요했다.이제 그녀가 만든 음식도 제법 먹을만한 수준이 되었다.어느덧 시간은 흘러 연말이 다가왔다. 진국공부에는 해가 가기 전, 온 집안 식솔들이 교외에 있는 운귀사로 가서 천지신명께 제사를 올리는 가례가 있었다.강유영 역시 일원으로서 동행해야 했다. 조원철도 그날 하루는 휴식을 허락해 주었다.마차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던 강유영은 오랜만의 해방감을 만끽했다. 생기 넘치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답답했던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명절을 앞두고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거리엔 인파가 넘쳐났고 마차는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느릿느릿 나아갔다.“유영 언니, 이거 받아요.”조월아가 방금 시종을 시켜 사온 군고구마 반쪽을 건넸다. 강유영은 상념에서 깨어나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고마워.”갓 구운 고구마의 뜨끈한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더니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그런데 언니, 큰오라버니는 왜 언니에게 금족령을 내린 거예요? 그새 얼굴이 반쪽이 되었네요.”조월아는 안쓰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게… 지난번 주씨 가문 일로 사고를 쳐서 그런가 봐.”강유영은 잠시 머뭇거리다 얼른 핑계를 대고 대충 넘겼다. 스스로 깨닫지는 못했지만 지난 몇 달간의 고된 배움 덕분에 그녀의 눈치와 임기응변 능력은 몰라보게 성장해 있었다.‘사람들에게는 날 금족에 처했다고 말씀하신 건가?’그녀는 전혀 몰랐던 일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지난 몇 달간의 생활은 금족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차라리 금족이 나았을지도 모른다.금족이야 그저 조용히 자숙하면 그만이지만, 그녀는 팽이처럼 쉴 새 없이 돌아가며 온갖 것들을 배워야 했다.“그게 언니 잘못도 아니잖아요. 주지상은 원래 질이 안 좋은 놈이고 차라리 죽어서 다행이죠.”조월아는 그때의 일이 떠오른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두 자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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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화

서준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시선을 아래에 두고 코앞까지 다가온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한 손으로도 잡힐 것 같은 그녀의 작은 얼굴은 투명하리만치 희고 고왔다.겨울날의 햇살이 그녀의 뺨 위에 내려앉아 맑은 빛을 내고 있었고, 길고 검은 속눈썹은 위로 말려 올라가 있었다.별빛을 머금은 듯한 눈동자가 깜빡일 때마다 사람의 마음을 간지럽히며 보는 이의 애를 태웠다.목덜미에는 희고 부드러운 토끼털 목도리가 둘러져 있었고, 코끝은 추위에 조금 발그레해져 있었다.예전처럼 순한 모습 그대로였지만, 눈매에는 생동감이 더해져 예전처럼 마냥 호락호락하게 당하고만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몇 달간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리도 변한 걸까.’강유영은 그가 자신을 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채, 손을 내리며 인상을 썼다.“이마가 이렇게 뜨거운데 약방에나 있지 절에는 어쩐 일이야?”장 의원은 인자한 분이라 낯선 환자에게도 지극정성이니, 아픈 서준을 모른 척할 리 없었다. 약방에 얌전히 머물며 탕약을 챙겨 먹어도 모자랄 판에 이런 곳까지 오다니, 자칫 큰일이라도 날까 걱정이었다.“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위패를 모시러 온 거야.”서준은 입을 가리고 쿨럭이며 기침을 내뱉었다. 초췌한 얼굴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운 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었다.강유영은 깜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뜨더니, 안쓰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언제… 일이야?”어머니를 여의었으니 얼마나 상심이 클까.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아려와 고개를 떨구었다.정작 그녀 본인은 생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강유영은 두 사람이 같은 처지라 여겼다. 어쩌면 병든 어머니를 직접 모실 수 있었던 서준이 자신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사흘 전.”서준은 다시 한번 마른기침을 토해냈다.“부디 기운 차려.”강유영은 잠시 말을 고르다 달리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하고, 연민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그렇게 보지 마. 사람이라면 생사 이별을 피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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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남풍은 그저 황제께서 서왕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알아차리지 못하길 바랄 뿐이었다.만약 알게 된다면 뒷감당은 고스란히 그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스님들이 목탁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강유영은 그 틈을 타 조월아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월아야, 내 벗 중에 몹시 아픈 이가 있어서 그런데… 마차로 그를 산 아래까지만 데려다주고 오고 싶어. 너는 이따가 작은 마님의 마차를 타고 귀가해 줄 수 있을까?”“그럴게요, 언니. 대신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어머니께 들키지 않게 서두르시고요.”조월아는 걱정스레 당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강유영이 부러웠다. 제사 내내 서 있거나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하는 이곳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기에, 그녀 역시 산 아래로 내려가 바람이라도 쐬고 싶은 심정이었다.채비를 마친 강유영은 다시 몰래 대전 밖으로 빠져나갔다.“가자, 내가 아래까지 데려다줄게.”강유영은 서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서준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자연스럽게 그녀의 팔을 붙잡고 몸을 기댔다.두 사람은 그렇게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함께 걸음을 옮겼다.“아, 나 마차를 몰 줄은 모르는데.”마차 앞에 도착해서야 강유영은 그 사실을 떠올리고 발을 동동 굴렀다.“내가 할게.”서준이 능숙하게 마차에 오르며 고삐를 잡자, 강유영이 의아한 듯 물었다.“너 마차도 몰 줄 알아?”경성에서 마차를 모는 일은 엄연한 기술이라 숙련도가 필요한 일이었다.“가난한 집 아이들은 몸으로 하는 재주는 다 익혀야 살아남는 법이지.”서준은 강유영의 손을 잡아 마차 위로 끌어올렸다.“하지만 넌 아프잖아. 차라리 마부를 찾는 게….”강유영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서준의 태도는 단호했다.“그럴 것 없어.”말을 마친 서준은 강유영을 마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곧이어 마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이거라도 안고 있어.”강유영은 자신이 쓰던 손난로를 그의 품에 쏙 넣어주었다.서준은 따스한 손난로를 품에 안은 채 그녀를 등지고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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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화

강유영은 젓가락을 들어 그의 밥그릇에 반찬을 얹어주었다.이것만 다 먹으면 이제 서둘러 진국공부로 돌아가야 했다.그런데 서준이 숟가락으로 죽을 휘저으며 잠시 망설이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차라리 나한테 시집오는 건 어때?”강유영의 까만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그에게 되물었다.“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그에게 시집을 가라니…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두 사람이 허물없는 사이이긴 하지만, 그런 쪽으로는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내가 싫어? 아니면… 우리 집이 가난해서 싫은 거야?”서준은 주위를 쓱 훑어보고는 그녀를 빤히 응시하며 물었다.“그런 거 아니야.”강유영은 숟가락으로 죽을 저으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조원철이 순순히 그녀의 혼인을 허락할 리 없었다. 서준과의 혼인은 고사하고, 몰래 그를 산 아래까지 데려다준 사실을 들킨다면 큰일이 날 것이다.차마 뒷일이 두려워 깊이 생각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강유영은 어서 먹고 돌아가야겠다고 다짐하며 죽을 한입 더 떠먹었다.“그럼 왜지? 설마 집안에서 반대라도 한대?”서준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집요하게 물었다.그는 확답을 원했다.그녀의 마음만 확실하다면 나머지는 그가 알아서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넌 아무것도 몰라.”강유영은 눈을 내리깔며 나직이 한숨을 내뱉었다.“너까지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아.”조원철이 사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그녀는 차마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그는 한번 눈이 뒤집히면 무슨 짓이든 저지를 사람이었다.그녀 자신은 이미 심연에 빠진 몸이라지만, 아무 죄 없는 이까지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서준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맑고 빛나는 눈동자가 마치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려는 듯, 집요하게 응시했다.그러더니 허를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그 말은, 진국공부에서 반대하는 사람만 없다면 나한테 시집올 마음이 있다는 거지?”그녀만 원한다면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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