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Bab 51 - Bab 60

199 Bab

제51화

“저는 괜찮으니 앉으세요, 도 대인.”그녀는 황급히 휘장을 내려 침대 머리맡에 흐트러져 있던 옷들을 감추었다.도경진은 침상 근처 의자에 앉고서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기 위해서 고개를 숙였다.강유영는 자기도 모르게 긴장한 나머지 이불을 위로 끌어올렸는데, 조원철의 종아리가 밖으로 드러나고 말았다!그녀는 화들짝 놀라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왜 그러십니까? 아직도 몸이 많이 불편하십니까?”고개를 든 도경진이 걱정스레 물었다.“저… 목이 좀 마르네요. 물 한 잔만 따라주실 수 있겠습니까?”강유영은 황급히 방 안을 둘러보다가 탁자 위에 놓인 물잔을 발견하고 급히 핑계를 댔다.도경진은 아무 의심 없이 잔에 물을 따랐다.강유영은 그가 등을 돌린 틈을 타 다급히 이불을 끌어내려 조원철의 발을 덮었다.다시 침대 머리맡에 등을 기댄 순간, 허리춤으로 손 하나가 뻗어 나왔다.굳은살 박인 커다란 손이 그녀의 허리에 닿자 간지럽기도 하고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강유영은 맥이 풀려 다급한 마음에 그의 손을 밀어냈다.하지만 조원철은 물러서지 않고 몸을 그녀에게 더 바짝 밀착했다.도경진이 다시 돌아앉자 강유영은 꼼짝도 못 한 채 바짝 굳었다.“뜨거우니 조금 식힌 뒤에 드세요.”도경진은 마침내 고개를 들고, 수줍은 얼굴로 잔을 들었다.“제가 하겠습니다.”강유영은 공연히 불안한 마음에 손을 내밀었다.“괜찮습니다.”도경진은 천천히 침상 곁으로 다가왔다. 수줍던 표정은 어느새 가라앉고 한결 자연스러워져 있었다.“고맙습니다.”강유영은 물잔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그 순간 조원철이 그녀의 허리를 살짝 꼬집었다.순간 그녀의 얼굴이 확 붉어지며 그대로 굳어버렸다.“아직도 뜨거운가요?”영문을 모르는 도경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아닙니다. 이따가 마실게요.”강유영은 멍하니 찻잔을 내려놓았다.어떻게 해야 도경진을 돌려보낼지 계속 생각해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두 사람 모두 말을 잇지 않으니 어색한 기류만 감돌았다.도경진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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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진실을 말해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조원철이 옆에 붙어 있어 함부로 입을 열 수도 없었다.잠시 주저하는 사이, 허리에서 통증이 전해졌다. 조원철이 그녀의 허리를 깨물어버린 것이었다. 그녀가 아파해도, 그의 송곳니는 여전히 경고의 의미를 담은 듯, 그녀의 허리춤에 머물러 있었다.마치 보이지 않는 손아귀가 심장을 움켜쥔 듯, 숨이 턱 막혀왔다. 아직 아픔이 가시지 않은 그녀의 얼굴에 순식간에 붉은빛이 번지며, 귀까지 화끈거렸다.도경진은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한 채 불안한 기색으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강유영은 조심스럽게 허리를 앞으로 살짝 옮겨 조원철과의 접촉을 피했다.그러나 안도할 틈도 없이 조원철은 끈질기게 그녀에게 바짝 밀착해왔다.다행히 이번에는 그녀를 깨물지는 않았다.강유영은 정신을 가다듬고 조각 토끼를 도로 건네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도 대인, 참으로 정교한 조각상이네요. 저도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제가 이걸 받을 수는 없어요.”‘차라리 확실히 말해두는 게 낫겠지.’어차피 그녀가 하려는 말은 모두 사실이었고, 굳이 조원철에게 숨길 이유도 없었다.그녀는 이미 마음속으로 이 혼사가 끝내 이뤄질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더 이상 이 사람을 깊이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유영 아씨, 제가 뭘 잘못했나요? 아니면 부족한 점이라도….”도경진은 조각 토끼를 받아들고 얼굴이 창백해졌다.“대인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다… 제가 부족한 탓이지요.”강유영은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저는 대인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좋은 처자가 아닙니다. 저는….”그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도경진에게 해명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그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말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다 압니다.”자리에서 일어선 도경진이 한걸음 앞으로 다가왔다.“뭘 아신다는 거죠?”강유영은 그가 침상에 자신과 함께 있는 조원철을 보기라도 할까 봐 바짝 긴장했다.‘설마 나와 오라버니 사이의 일을 안다는 건 아니겠지? 그날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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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그 애의 말을 믿으시나요?”강유영은 고개를 들고 맑은 눈으로 도경진을 응시했다. 뒤에서 조원철의 손길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피하며 애써 무시했다.“아닙니다.”도경진은 고개를 저었다.“아씨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 난다고들 하지만, 분명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이 처자는 그가 한눈에 반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사람들이 그녀의 흉을 본다 해도, 그는 평생 그녀의 편이 되어주고 싶었다.도경진은 이미 그녀와 혼인할 준비를 마쳤고, 이제 그녀의 허락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강유영은 마음이 뭉클했지만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기심이 있는 법이었다.도경진은 그녀가 아직 결백을 잃은 줄 모르니 저런 말을 하는 것이리라. 세상에 그것을 신경 쓰지 않는 사내는 없을 것이었다.“아씨의 과거는 모두 저를 만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니, 사정이 어떻든 저는 따지지 않겠습니다.”도경진은 그녀의 우려를 눈치채고 다급히 말했다.“앞으로 우리 두 사람이 잘 지내면 됩니다.”그는 그녀의 입에서 거절의 말이 나올까 두려워, 마음속에 품고 있던 말을 한꺼번에 내뱉었다.지난번 맞선을 본 뒤로 그는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언제 그녀를 다시 만날지 핑계를 고민해왔다.그는 비록 표현에 서툴었지만, 오늘의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강유영은 그의 말에 마음이 흔들려 저도 모르게 그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조원철은 경고하듯 그녀의 허리를 잡아 뒤로 끌어당겼다.그녀는 당황해 어쩔 바를 몰랐다.도경진은 새빨갛게 붉어진 얼굴을 한 채로도 확신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저는… 시집을 가더라도 유모를 함께 데려가야 합니다.”강유영은 한참을 고민한 끝에야 하려던 말을 꺼냈다.만약 도경진이 이래도 자신을 받아준다면, 그와 혼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 같았다. 그녀는 진작부터 진국공부와 조원철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도경진과 혼인해 안온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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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도 대인, 옥비녀는 가져오셨습니까?”강유영이 묻자, 도경진은 영문을 모르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그와 반면 조원철은 강유영의 뜻을 바로 알아차린 듯, 다시 그녀의 허리를 세게 깨물었다.도경진은 뒤늦게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얼버무렸다.“저… 오늘은… 가져오지 못했습니다만….”맞선을 본 뒤, 사내가 여인에게 비녀를 꽂아주고 여인이 그것을 받아들이면 서로 마음이 있다는 뜻이 되었다.조금 늦긴 했지만, 그녀가 비녀를 받겠다고 한 것은 곧 이 혼사에 동의하겠다는 의미였다.이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그는 마침내 당당히 그녀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을 터였다.강유영은 허리에서 밀려오는 알싸한 통증을 꾹 참으며 그의 손에서 조각 토끼를 받아들고 미소를 지었다.“이건 제가 받아둘게요. 비녀는 다음에 오실 때 가져오세요.”조원철이 뒤에서 허리를 깨물고 꼬집었지만, 그녀는 끝까지 참아냈다.그가 소은경과 혼인하든 하지 않든, 애초에 그녀와 조원철은 함께할 수 없는 사이였다.비록 도경진을 연모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천천히 함께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정이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 당연히 그래야지요.”도경진은 감격에 찬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시간도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 보세요.”조원철이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아랫배를 문지르고, 입술로 허리를 자극하고 있어, 강유영은 이러다 들키는 것 아닐까 두려웠다.조원철은 한 번 이성을 잃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단둘이 있을 때 그녀에게 했던 짓만 봐도, 평소의 금욕적인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도경진과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는 분노가 극에 달한 조원철이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었기에, 그녀는 서둘러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예, 알겠습니다.”도경진은 아쉬운 눈빛으로 강유영을 한참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조원철은 그제야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도경진이 나간 뒤, 강유영은 그의 손을 밀어내며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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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마음속에서 북받쳐 오르는 서러움이 느껴져, 강유영은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나를 버리고 그런 놈에게 시집을 가겠다는 것이냐?”조원철은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하지만 강유영은 그 말 속에서 서늘한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당신은 제 오라버니인데, 어찌 그 사람과 같은 자리에 놓고 비교할 수 있겠어요.”그녀는 주먹을 꼭 쥔 채 조심스럽게 하고싶은 말을 골랐다. 이번에는 제대로 말해보고 싶었다.정으로 호소하고 예로 타이르면, 혹시라도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하지만 조원철은 그녀에게 틈조차 주지 않았다.갑자기 그녀의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조원철이 그대로 덮치듯 밀어붙이며 그녀와 입술을 부딪쳤다.고귀하고도 준수한 얼굴, 옅은 붉은 기가 어린 눈매가 바로 눈앞까지 들이닥쳤다.강유영은 정신이 아득해지며 몸이 붕 뜨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문득 어린 시절 연못에 빠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끝없이 밀려드는 물살이 온몸을 삼키자, 숨 쉬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졌었다.그녀는 간신히 목을 뒤로 젖히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앞선 두 번처럼 서투르지는 않았다. 그는 어느새 이런 일에도 요령이 붙은 듯했다. 그러나 손길은 여전히 거칠고, 움직임은 한없이 강압적이었다.강유영은 두 손으로 그의 옷깃을 꽉 움켜쥐었다. 숨결이 완전히 그에게 잠식당하며, 목구멍 사이로는 가느다란 울음만 간신히 새어 나왔다.눈앞이 캄캄해지고 정신이 아득히 멀어질 즈음에야, 조원철은 비로소 그녀를 놓아주었다.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 몸 아래 깔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강유영의 술에 취한 사람처럼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검은 눈동자에는 금세라도 쏟아질 듯한 물기가 어려 있었다. 그녀는 애처롭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내가 누구지?”그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강유영은 고개를 돌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눈가에 맺힌 눈물이 뺨을 타고 조용히 흘러내렸다.그녀는 그가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하지만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았다.조원철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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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강유영은 새까만 속눈썹을 내리깐 채 입술을 꾹 깨물었다.조원철의 손아귀에 붙들려 외실로 살아가느니, 차라리 도경진과의 혼사가 더 나았다. 어쨌거나 정실부인의 자리는 가질 수 있으니까. 게다가 도경진은 그녀를 다정하게 대해주었고, 그녀의 뜻도 존중해주었다. 과거는 문제 삼지 않겠다고 했고, 오씨 어멈까지 함께 돌봐주겠다고 했다.그런 사람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다.“만약 그가 나와 너의 관계를 알게 되면, 그때도 너를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할 것 같으냐?”조원철의 눈빛은 차가웠고, 말끝에는 비웃음 어린 냉소가 배어 있었다.강유영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두려움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도경진이 이 일을 알게 된다면 혼사는 틀어질 게 분명했다.예법으로 보나 세상 눈으로 보나, 그녀와 조원철의 관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제 오라비와 그런 은밀한 일을 벌였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누구라도 손가락질하며 그녀를 경멸할 것이다.그녀는 온 경성의 웃음거리가 될 테고, 자칫하면 목숨마저 위태로울지 몰랐다.조원철은 아무 말 없이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길고 날카롭게 찢어진 눈매는 번뜩이는 칼날 같았고, 숨 막히는 듯한 위압감이 그녀를 짓눌렀다.“그 혼사, 거절하겠습니다.”강유영은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억지로 눌러 참으며 간신히 말했다.그는 그녀를 그저 심심할 때마다 가지고 노는 장난감으로 여기면서도, 이상하게 남의 손에 넘어가는 것만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언제든 싫증이 나면 내버려도 이상할 게 없다는 뜻이었다.조원철은 태어날 때부터 존귀한 몸이었고, 어린 나이에 이미 권력까지 손에 쥐고 있었다. 그가 원한다면 못 가질 여인이 없을 것이다.지금 그녀를 향한 감정도 그저 한때의 흥미와 소유욕일 뿐이었다. 하지만 강유영은 그 대가를 평생 짊어져야 했다.불공평하다는 걸 알면서도, 강유영은 그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이리 내.”조원철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강유영은 무슨 뜻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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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며칠 뒤, 유난히 햇볕이 뜨거운 오후였다.강유영은 잠시 쉬었다가 오후에 약방으로 나갈 생각이었다.하지만 바깥에서는 매미 소리가 쉴 새 없이 울어댔고, 방 안에는 얼음마저 모자른 상태라 더위가 숨 막히게 짓누르고 있었다.단비가 부채를 들고 들어와 그녀의 곁에 앉아 조용히 바람을 일으켰다.“아씨, 좀 주무세요.”해마다 여름만 되면 강유영은 이런 식으로 더위를 견뎌내곤 했다.“단비야, 네가 고생이 많구나. 내가 잠들면 너도 좀 쉬어라.”그 말을 끝으로 강유영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막 잠이 들려던 순간, 서유가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아씨, 앞뜰에 교지가 도착한답니다. 집안 식솔들이 모두 나가 교지를 받들어야 하니, 부인께서 속히 대청으로 오시라 하셨습니다.”강유영은 감았던 눈을 뜨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이내 주먹을 꼭 쥐었다.소은경이 진국공부에 들어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궁에서 이렇게 빨리 교지가 내려올 줄은 몰랐다.조원철의 경사가 이제 눈앞까지 다가온 것이었다.“아씨, 옷 좀 갈아입으실래요?”그녀가 말없이 몸을 일으키자, 단비가 조심스레 물었다.지금 강유영은 약방에 나갈 때 입던 차림 그대로였다. 재작년에 지은 옷이라 제법 낡고 수수해 보였다.“아니, 그럴 필요 없어.”강유영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어차피 오늘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었다. 그녀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신경 쓸 사람도 없을 터였다. 한씨가 그녀를 부른 것도 온 집안 식구가 함께 교지를 받아야 하니 형식상 부른 것뿐이었다.진국공부의 대청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지방에서 글공부 중인 차남만 빠졌을 뿐, 몇몇 첩실들까지 포함해 집안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품고 있든, 적어도 겉으로는 하나같이 기쁜 사람들처럼 보였다.강유영은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도 진국공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조원철을 단번에 찾아냈다.진청색 둥근 깃 두루마기에 혁대를 단정히 맨 그는 여전히 고고하고 늠름한 기품을 풍기고 있었다.강유영은 힐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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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대내관 고익이 안으로 들어섰다.진국공은 앞으로 나가 그와 한동안 인사를 주고받았다.이윽고 고익이 교지를 펼쳤다.“진국공 조정휘와 세자 조원철은 명을 받들라!”사람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교지를 받들었다.강유영 역시 무릎을 꿇은 채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히 혼인을 하사하는 교지일 줄 알았는데, 정작 소은경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고익이 교지를 모두 읽어 내리자 대청 안에는 잠시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제의 혼인 하사가 내려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하지만 이는 혼사가 아니라 포상을 내리는 교지였다. 조원철 부자가 황제를 도와 간신들을 처단하고 조정의 기강을 바로세운 공을 치하하는 내용이었다.조원철과 소은경의 혼사에 대해서는 끝내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세자, 어서 교지를 받드시지요.”고익이 성지를 내밀며 높게 외쳤다.“포상을 들여오너라!”곧 궁인들이 포상이 담긴 상자들을 들고 대청 안으로 들어왔다.금은보화와 비단은 물론이고 몸을 보하는 귀한 약재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거기에 수십 가지 신선한 과일까지 더해졌는데, 평소 보기 힘든 여지까지 포함되어 있었다.온갖 과일 향이 뒤섞이며 대청 안에 싱그러운 향기가 은은하게 퍼졌다.강유영도 무심코 그쪽을 한번 힐끗 바라보았다.궁에서 내린 포상은 대체로 하나같이 정교하고 귀했지만, 수량은 많지 않았다. 크고 탐스러운 사과도 한 접시에 고작 두 개뿐이었고, 대추는 여덟 알, 여지는 여섯 알뿐이었다.진국공은 고익을 배웅하며 슬쩍 은자 주머니를 쥐여주었다.강유영도 자리를 뜨려 몸을 일으키는데, 상석에 앉아 있던 한씨가 그때서야 입을 열었다.“요즘 날이 더워 과일은 오래 두기 어렵구나. 마침 다들 모였으니 나누어 가져가거라.”조연화 일행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궁중에서나 볼 수 있는 과일은 시중에서는 돈으로도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상 앞으로 몰려들었다.강유영만 한발 물러선 채 뒤에서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한씨는 과일이 거의 다 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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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조원철이 마침내 강유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저 아이가 어찌 군주와 견줄 수 있겠습니까.”그 말이 떨어지자 강유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얼굴에서도 핏기가 싹 가셨다.담담한 말투였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날 선 비수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그래, 그가 애지중지 마음에 둔 여인이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소은경에 비하면 강유영은 그저 그가 심심할 때 무료함이나 달래는 노리개에 지나지 않았다.흥미가 생기면 손에 쥐고 놀다가도, 싫증이 나면 아무렇지 않게 내던져질 존재였다.그러니 자신과 소은경을 같은 자리에 놓고 비교할 수 없다는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소은경은 생긋 웃으며 말했다.“농담이었어요. 포도는 유영이 네가 가져가서 먹으렴.”애초에 포도 몇 알이 탐나 그런 말을 꺼낸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보고 싶었던 건 조원철의 분명한 태도였다.“어머니,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강유영은 한씨에게 예를 갖춰 인사한 뒤 조용히 몸을 물렸다.“잠깐.”그때 조원철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강유영은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미친 듯이 뛰는 가슴을 겨우 눌러가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오라버니, 무슨 일이십니까?”그녀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쥔 채, 들킬까 두려운 마음을 감추려 시선을 내리깔았다.“조연화, 앞으로 나오너라.”조원철은 소은경의 팔짱을 빼내며 차갑게 말했다.조연화는 제 이름이 불리자 화들짝 놀라 조심스레 앞으로 나왔다.“오라버니….”그녀는 머릿속으로 최근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다급히 떠올려보았다. 조원철이 이름이 아니라 성까지 붙여 부를 때는 십중팔구 좋지 않은 일이었다.“요월원에 뱀을 풀어놓은 것이 너냐?”조원철이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그 말을 들은 강유영은 순간 멈칫했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 여겼는데, 그가 이제 와 이 일을 들추고 나설 줄은 몰랐다.하지만 조연화는 뱀을 잡을 엄두조차 못 내는 사람이었다. 그 뱀은 분명 서남에서 자란 소은경이 강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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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그래요.”조원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무심하게 말했다.“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게 하십시오.”생각지도 못한 그의 태도에 소은경은 순간 멍해졌다.‘이렇게 그냥 넘어간다고?’친동생인 조연화는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고 사당에 갇혀 가훈까지 베껴 써야 했다.그런데 정작 일을 꾸민 소은경에게는 꾸중 한마디 없었다.‘설마 세자도 나를….’어쩌면 그가 원래 낯을 가리고 표현에 서툰 성정이라, 가까이하려 해도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것일지도 몰랐다.역시 강유영이 짐작한 대로, 조원철은 소은경에게 아무 벌도 내리지 않았다.그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그의 마음이 누구에게 기울어 있는지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다.강유영은 멍한 얼굴로 대청을 빠져나왔다.조월아가 팔짱을 낀 채 옆에서 종알종알 말을 걸어왔지만, 그녀는 한마디도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언니, 이거 드세요.”조월아는 그녀의 손에 대추 두 알을 쥐여주며 방긋 웃었다.강유영은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추와 포도를 다시 조월아의 손에 쥐여주었다.“네가 다 먹어. 나는 과일 별로 안 좋아해.”그날 밤, 하늘에는 밝은 달이 떠올라 있었다.오후 내내 약방에서 바쁘게 일한 강유영은 요월원으로 돌아오자마자 먼저 오씨 어멈에게 침을 놓아드렸다.저녁은 몇 숟가락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목욕까지 마친 뒤 얇은 잠옷만 걸친 채 탁자 앞에 앉아 작은 수첩 하나를 펼쳤다.장 의원이 직접 베껴 준 수첩이었다. 오씨 어멈의 병세와 관련된 여러 증상과 처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글을 모르는 그녀는 배움이 더뎠다. 그래서 틈이 날 때마다 수첩을 들여다보았고, 모르는 것이 생기면 다음 날 장 의원에게 물어 하나씩 익혀갔다.그때 갑자기 문이 열렸다.“단비야, 먹 좀 가져다주렴.”강유영은 단비가 들어온 줄 알고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이상한 기척에 고개를 든 순간, 맑은 눈이 크게 흔들렸다.어느새 조원철이 눈앞에 서 있었다.강유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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