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apítulo 671 - Capítulo 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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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1화

"됐소, 잔말 마시오. 나한테 결정권이 없다는 건 댁도 알지 않소."사내는 손을 들어 진 낭자의 말을 막았다.진 낭자는 다급해졌는지 발을 구르며 쏘아붙였다."부인께서도 전하라 하셨소. 너무 선 넘지 말라고. 진짜로 밑바닥까지 드러내고 척을 지게 되면, 그쪽도 무사하진 못할 거요..."말을 마친 진 낭자는 사내의 대꾸도 듣지 않고 홱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사내는 코웃음을 치며 무언가 중얼거렸으나, 강유영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강유영은 미간을 좁힌 채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한씨의 크나큰 약점이 저 사내의 손에 쥐여 있어,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은자를 바치는 듯했다."아씨, 당장 저 자를 끌어내어 캐물을까요?"청류가 나직하게 물었다."아직은 아니야. 일단 돌아가자."강유영은 손을 내저으며 만류했다.금수 상회의 하 낭자가 조사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이 일은 결코 그리 단순하게 얽힌 것이 아니었다.눈앞의 저 사내는 그저 끄나풀일 가능성이 컸다. 기세는 등등하나 실상은 아는 게 없을 터였다. 저 자가 핵심을 쥐고 있었다면 금수 상회가 그토록 오래 뒤를 캤는데도 빈손일 리 없었다. 지금 섣불리 움직였다간 상대의 경계심만 키울 뿐이었다.게다가 한씨의 뒤를 캐는 일을 조원철이 좌시할지도 미지수였다. 이전에도 한씨와 진국공부의 일로 얽혔을 때, 조원철은 늘 강유영의 편을 들어주긴 했다.허나 이번 일은 결이 달랐다. 한씨가 빼돌린 은자의 행방과 그 이면에 숨겨진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난다면, 한씨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조원철이 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는 사내라 한들, 낳아준 모친의 목숨이 달린 일을 모른 척할 리 없었다.금수 상회를 계속 닦달해 보았자 제자리걸음일 가능성이 컸다. 강유영 입장에선 조원철의 수하들을 움직여 뒤를 캐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었다. 당장 청류에게 저 사내의 뒷조사를 명한다면, 해가 지기도 전에 해답을 얻어낼 수 있을 터였다.허나 차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조원철이 두려웠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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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2화

보아하니, 강왕비라는 자리가 어지간히 든든한 뒷배가 된 모양이었다. 강왕도 그녀에게 적잖이 은자를 쏟아부은 듯했다.한씨는 당장 수중에 돈이 말라 쪼들리는 형편이었으니, 조연화에게 저런 비단옷과 장신구를 사줄 은자가 있을 리 만무했다.서유는 조연화를 힐끗 보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정작 강유영은 그녀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데, 위세를 떠는 모습이 우스울 뿐이었다."거기 서."조연화는 걸음을 옮겨 강유영의 앞을 가로막았다."무슨 일입니까?"강유영은 걸음을 멈추고 비로소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이 옷, 어디서 주워 입었니? 네 옆에 있는 천한 것들이 옷 짓다 남은 쪼가리로 기워 만든 거 아니야?"조연화는 강유영의 소매를 쥐어 잡고는, 더러운 것이라도 묻은 양 툭툭 털어냈다.그녀 뒤에 선 채하와 채운, 두 시녀도 입을 가린 채 킥킥대고 웃었다.강유영은 옅은 청색 바탕에 매화 가지가 은은하게 무늬로 들어간 비단 저고리를 가볍게 걸치고 있었다. 옷감 자체는 흠잡을 데 없었고, 요란한 자수 없이 수수하여 오히려 그녀의 청아하고 맑은 기품을 돋보이게 했다.어젯밤 급히 나서느라 장신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해, 그저 눈에 띄지 않는 밋밋한 금비녀 하나만 대충 꽂은 참이었다. 한껏 치장을 한 조연화의 눈에는 당연히 그 모습이 몹시 궁상맞아 보였을 터였다."게다가, 외출하면서 번듯한 장신구 하나 꽂지 않다니. 남들이 밖에서 보면 우리 진국공부에서 널 굶기고 박대라도 하는 줄 알겠다."조연화는 말하는 틈틈이 자신의 머리에 꽂힌 금보요를 과시하듯 매만졌다. 붉은 보석이 박힌 화려한 나비 모양의 장신구였다. 나비 날개는 영롱하게 빛났고, 꽃술에는 둥글고 붉은 진주가 박혀 있었다.그녀는 금실로 큼지막한 모란을 수놓은 짙은 남색 저고리를 입어 한눈에 보기에도 번쩍번쩍 귀티가 흘렀다."박대한 적, 없었나요?"강유영은 맑고 서늘한 눈빛으로 조연화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진국공부 전체를 통틀어, 한씨든 진국공이든, 아니면 조씨 노부인이든 막론하고 강유영의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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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3화

조연화는 고작 그런 명분으로 자존심을 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참으로 가련했다."내가 네년의 동정이나 받을 처지냐?"조연화는 강유영의 맑은 눈에 담긴 연민에 발끈하여, 한 발짝 다가서며 다짜고짜 따귀를 때리려 손을 뻗었다.그녀는 무려 왕비가 될 몸이었다! 강왕이 아무리 형편없다 한들 어엿한 황실의 일원이거늘, 한낱 강유영 따위가 감히 자신을 동정하다니 기가 막혔다.그때 강유영 곁에 섰던 서유가 돌연 푸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그 웃음소리에 조연화의 손이 멈칫했다.조연화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서유에게 손가락질했다."천한 것, 지금 뭘 비웃는 게냐!"조연화는 서유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매번 강유영을 괴롭히려 들 때마다 앞장서서 막아서던 시녀였다. 지난번 강유영이 그녀의 가슴팍에 칼을 들이밀었을 때도, 가장 먼저 손을 쓴 자였다.지난 일이 떠오르자 조연화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순식간에 이성을 되찾았다.지금은 신분이 달랐다. 강유영이 또다시 자신에게 칼을 들이민다면 그건 곧 죽을죄였다. 진국공부에서 덮고 넘어간다 해도 강왕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연화 아씨도 본인 처지가 가련한 건 아시는구나 싶어 웃었습니다."서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웃으며 맞받아쳤다.당장 나서지 않으면 조연화가 진짜로 아씨에게 손찌검을 할 것 같았다. 어찌 됐든 조연화는 이제 왕비가 될 신분이었다. 아씨가 진짜로 따귀를 맞는다 한들, 이를 공론화하여 죗값을 묻기는 껄끄러운 노릇이었다."이년이..."조연화가 막 악담을 퍼부으려던 찰나였다.서유는 재빨리 말을 가로챘다."처음 연화 아씨께서 강왕비가 되신다는 소문을 들었을 땐, 솔직히 조금 부러웠지요..."서유는 거기서 짐짓 말을 끊었다.조연화는 그제야 안색을 풀고 거들먹거리며 턱을 치켜들었다."이제야 주제 파악을 하는구나!"제아무리 기고만장한 시종이라도, 막상 자신이 왕비가 된다고 하니 예전처럼 함부로 굴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허나 서유의 다음 말이 무참히 이어졌다."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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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4화

분부를 마친 강유영은 대충 세수를 하고 침상에 누웠다.이번 외출로 근심 하나는 던 셈이었다.진 낭자를 미행하며 먼 길을 걸었고 밤새 잠을 자지 않았기에 눈을 감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단비야."강유영은 나직하게 단비를 불렀다."아씨, 깨셨군요."단비가 안으로 들어왔다."일어나지 마시고 침상 위에서 드세요. 날이 곧 어두워집니다.""약은?"강유영은 침상머리에 기댄 채로 단비에게 물었다."데우고 있습니다. 지금 가서 가져올게요."밖으로 나갔던 단비는 곧바로 돌아왔다.강유영은 흰 사발에 담긴 적갈색의 탕약을 보고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아씨, 대체 무슨 약입니까? 혹여 어디 편찮으신 건가요?"단비는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그녀를 살폈다."아니다, 단지 보약일 뿐이야."강유영은 사발을 받아 들고는, 단숨에 약을 들이켰다.약물은 쓰고 떫었다. 얼굴 전체가 일그러지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빈 사발을 단비에게 건넸다."물 좀 다오.""물 대신 이걸 드시지요."단비가 사탕 한 알을 꺼내어 그녀의 입가에 물려주었다."어디서 난 거니?"강유영은 사탕을 받아 들고 찬찬히 살펴보았다.은은한 우유 향이 코끝을 스쳤다. 손에 쥔 사탕은 굳은 기름처럼 뽀얗고 매끄러웠는데, 정교한 사자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굽슬굽슬한 갈기와 부릅뜬 두 눈이 뚜렷하여 앙증맞으면서도 생동감이 넘쳤다. 전설로만 듣던 황실 진상품, 유구사자당인 듯했다. 말로만 들어보았지 실물은 처음이었다."약첩과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아직 몇 알 더 남았고요."단비가 대답했다.강유영은 사탕을 입에 넣었다.달콤한 맛이 우유 향과 어우러져 혀끝에 사르르 녹아내렸으나, 정작 마음속은 만감이 교차하며 복잡해졌다.어려서부터 오씨 어멈은 늘 강유영을 두고 약이 쓴 줄도 모르고 투정 한 번 부리지 않는다며 칭찬하곤 했다.허나, 실상은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 식구가 서로에게 의지해 간신히 입에 풀칠하던 시절, 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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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5화

"이쯤에서 덮을 셈이냐?"조원철은 미간을 살짝 치켜올렸다."아닙니다. 알아보고 싶습니다."강유영은 긴 속눈썹을 내리깔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섣불리 대답하기 어려웠다. 행여 그가 가로막는다면 금수상회에 의뢰해 뒷조사를 맡긴다 한들 제대로 된 단서를 얻을 리 만무했다. 따로 부릴 만한 수족도 없었다."캐내고는 싶은데, 어찌 움직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뜻이구나."조원철은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아무리 그래도 오라버니의 친모이십니다. 제가 이 일을 파헤쳐도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강유영은 눈치를 살피다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물었다."내가 훼방이라도 놓을까 걱정했던 게로구나.""예."강유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발뺌해 보아야 속내를 빤히 꿰뚫어 볼 사내였다. 차라리 솔직하게 인정하는 편이 나았다."그렇다면 어찌하여 내게 먼저 묻지 않았느냐. 내가 예전에 뭐라 가르쳤지?"조원철이 재차 물었다.강유영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물었다.가망이 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무작정 부딪혀 보라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뜻밖에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던 그 가르침을 그녀는 또 까맣게 잊고 있었다."세자."그때 밖에서 청운이 문을 두드렸다.조원철은 손을 뻗어 침상의 장막을 내렸다. 그녀의 모습을 완전히 가려준 뒤에야 명을 내렸다."들어오너라."강유영은 침상 머리에 몸을 기댔다. 장막이 드리워지자 눈앞이 어둑해져 바깥 상황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청운이 들어와 탁자 위에 상을 차리는 듯한 발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방금 전까지 조원철의 말투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묻어나지 않았다. 강유영은 그가 진심으로 한씨의 뒷조사를 허락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분부하신 일은 모두 알아보았습니다."청운이 낮게 보고했다."말해 보거라."강유영은 호기심이 일어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청류가 사람을 시켜 확인한 결과, 그 허름한 집에 사는 자는 홀아비였습니다. 성은 손씨이고 부모 형제 하나 없이 혼자 지내는 오십 대 사내입니다."강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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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6화

조원철도 반대하지 않았다. 강유영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바라는 바였다."다른 분부가 없으시다면,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청운이 다시 입을 열었다."잠깐."조원철이 그를 불러 세웠다.강유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그가 청운을 불러 세운 것은, 마음이 바뀌어서일까?"이 일은 네가 더 이상 관여할 필요 없다."조원철이 청운을 향해 말했다."예."청운은 명을 받들고 방을 나섰다.강유영은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걷잡을 수 없는 상실감에 휩싸였다. 꽉 쥐었던 손을 풀고는 맥없이 시선을 떨어뜨렸다.그는 결국 그녀를 돕지 않을 생각인 듯했다.그때 눈앞이 환해졌다.조원철이 침상의 휘장을 걷어 올려 걸고 있었다.강유영은 입술을 살짝 비죽일 뿐,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랬다저랬다 변덕을 부리는 사람은 쳐다보기도 싫었다."뭐 좀 더 먹겠느냐."조원철이 눈을 내리깔고 그녀에게 물었다."됐습니다."강유영은 고개를 저으며 비단 이불을 끌어당겨 누우려 했다."어찌 또 심통이 난 게냐."조원철이 이불 속에서 그녀를 끄집어냈다.강유영은 코끝이 찡해지며 단박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나 그를 밀쳐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라리 처음부터 가로막아 이 일을 캐지 못하게 하든가, 아니면 끝까지 파헤치도록 내버려 두든가 할 일이었다.이런 식으로 사람을 시켜 반쯤 조사해 놓고는 돌연 발을 빼는 의도를 알 수 없었다."원래 청란을 네게 내어줄 참이었다. 왜, 굳이 청운을 부리고 싶은 게냐."조원철은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강유영은 그 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아닙니다."그녀의 입에서 불쑥 대답이 튀어나왔다.그는 한 입으로 두말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녀에게 청란을 붙여주려던 것뿐이었다.그녀가 그를 단단히 오해했던 것이다.청란을 부릴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청운은 매일같이 조원철의 곁을 그림자처럼 지키는 수족이니, 시간을 뺄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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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7화

"예."강유영은 고분고분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석 달 동안 합방을 금한다는 의원의 당부가 있었기에, 그가 그리 두렵지 않았다.조원철은 시선을 내려 맑고 뽀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강유영은 얼굴을 붉히며 이불속으로 쏙 들어갔다.부끄러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일종의 거부이기도 했다. 이토록 다정한 그를 온전히 마주하기가 버거웠다. 속절없이 빠져들어 다시는 헤어 나오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이른 아침, 강유영은 눈을 뜨자마자 곁이 텅 비어 있음을 깨달았다.손을 뻗어 더듬어 보니 조원철이 누웠던 자리가 싸늘했다. 자리를 뜬 지 꽤 지난 듯했다."아씨, 청란이 왔습니다."서유가 들어와 알렸다.강유영은 망토를 걸치고 회랑으로 나가서 청란에게 지시를 내렸다."너희 두 사람은 밤낮으로 교대하며 손씨 홀아비를 감시하거라. 굳이 가까이 다가갈 필요는 없다. 그저 매일 무엇을 하고 누구와 접촉하는지만 지켜보고 내게 보고하면 된다.""예."청란은 짧은 대답과 함께 즉시 물러갔다."아씨, 아침상 내왔습니다."단비가 찬합을 들고 돌아왔다."차릴 것 없다. 오씨 어멈과 둘이 챙겨 먹거라. 나는 서유와 함께 밖을 좀 나갔다 오마."강유영은 잠시 생각하다 단비에게 일렀다.어젯밤 조원철은 그녀에게 시집이나 문집을 많이 읽으라 일렀지만, 그녀의 처소에는 그런 책이 없었다. 주인도 없는 서재에 함부로 들어가 책을 뒤지기도 난감했다. 행여 손대선 안 될 물건을 건드릴 수도 있었다.차라리 서적을 파는 점포에 가서 몇 권 사 오는 편이 나았다. 읽지 않더라도 가져다 놓고 시늉이라도 하면 그의 마음이 한결 누그러질 터였다.어찌 됐든 그는 그녀에게 청란을 내어주지 않았던가. 적당히 비위라도 맞출 필요가 있었다."어디로 가십니까? 아침은 거리에서 드시게요?"단비가 넌지시 물었다."책을 좀 사려 한다. 나간 김에 밖에서 먹을 요량이다."강유영이 대답했다.단비는 고개를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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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8화

내가 가르쳐주겠다는 말은 결국 입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에게 그런 기회 따위가 주어질 리 만무했다. 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도경진은 낯빛을 더욱 붉힌 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유영, 마음에 든다면 가져가서 읽어 보세요."강유영은 고개를 숙이고 책장을 넘길 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감동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조원철이 글을 가르쳐 주기 전까지 그녀는 까막눈이나 다름없었다. 아이들이 보는 책부터 차근차근 권해 줄 만큼 세심하고 다정한 사람은 도경진이 처음이었다."모두 사겠습니다. 일이 좀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강유영은 그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 시집과 고금현문을 품에 안고 가볍게 묵례했다.도경진과 오래 머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조원철이 이 일을 알게 되면 또 무슨 난리를 칠지 모를 일이었다. 한창 청란을 부려야 할 때 그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되었다."조심히 가세요, 유영."도경진은 계산대로 향하는 그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시선은 점차 씁쓸하게 가라앉았다.강유영은 책을 챙겨 안고 서포를 나섰다. 그런데 뜻밖에도 도경진은 책 몇 권을 품에 안은 채 문가에 서 있었다."도 대인."강유영은 어쩔 수 없이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도둑질이라도 들킨 양 까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행여 누군가 보고 조원철에게 일러바칠까 겁이 났다."이 책들과 그건 한 묶음입니다."도경진은 손에 든 세 권의 책을 마저 건넸다."글공부를 할 참이라면, 이것들도 함께 가져가서 보세요."강유영은 멍하니 책만 바라볼 뿐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도경진은 진정 좋은 사람이었다. 만약 조원철과 그런 악연으로 얽히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부질없는 가정이었다. 그녀는 이미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몸이었다.도경진은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책을 든 채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포 앞은 오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곁을 스쳐 지나가는 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길을 힐끗 던지고는 바삐 걸음을 옮겼다."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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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9화

요망한 강유영, 지금까지도 도경진을 꼬드기고 있다니.도경진은 강유영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애틋하게 굴고 있었다. 저러다간 두 사람 사이에 조만간 혼사라도 오갈지도 모른다.강유영이 도경진에게 시집가는 광경을 떠올리자,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듯한 고통과 한이 밀려왔다. 분노를 이기지 못한 조사예는 기어이 손에 쥔 손수건을 갈가리 찢었다."아씨, 이제 그만 저택으로 돌아가시지요."시녀 소심은 그녀의 등 뒤에 서서 무슨 말을 꺼내려다 애써 삼켰다.소심은 아씨의 속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허나 도경진은 탐화랑 출신이었다. 지금 조정에서 벼슬은 그리 높지 않을지언정 차근차근 승진하며 전도가 유망한 인재였다.게다가 도경진은 외모마저 출중했다. 경성에는 그를 눈여겨보는 가문이 적지 않으니, 어느 날 갑자기 명문가 규수를 부인으로 맞이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그러니 아씨는 굳이 강유영과 감정싸움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 강유영은 양녀였고, 조사예는 서녀였다. 소심의 눈에는 두 사람 모두 도경진의 정실로 시집갈 가능성이 몹시 희박해 보였다.그 무렵, 우두커니 서 있던 도경진은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몸을 돌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조사예는 도경진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가 번잡한 인파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발길을 돌렸다.그녀는 손에 쥔 찢어진 손수건을 다시 갈기갈기 뜯어 놓았다.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는 반드시 도경진에게 시집가야만 했다. 비록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억지로라도 매달려 볼 참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홧병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그녀는 돌아오는 내내 머리를 쥐어짜며 깊이 고심한 끝에, 마침내 그럴듯한 묘안을 하나 떠올렸다. 진국공부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곧장 조연화의 처소로 향했다.조연화와 강왕의 혼례는 해를 넘겨 치르기로 정해져 있었다. 조사예는 평소 조연화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온갖 비위를 다 맞추어 왔다. 이제 어엿한 강왕비가 될 조연화를 이용하면 분명 득이 될 터였다."셋째 언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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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0화

조사예는 옷자락을 꽉 쥔 채 붉어진 눈으로 우물거리며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말할 테냐, 말 테냐? 끝까지 입을 다물겠다면 사람을 시켜 따귀라도 쳐야 제대로 말을 하겠느냐!"참을성이 없는 조연화는 곧바로 으름장을 놓았다."도경진, 도 대인입니다."조사예는 겁에 질린 척하며 바로 사내의 이름을 내뱉었다."그자는 지방으로 쫓겨나지 않았느냐?"조연화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연말을 맞아 관직 보고차 돌아왔습니다. 듣자 하니 폐하께서 경성에 남겨 기용하셨다 합니다."조사예는 대답하며 슬쩍 조연화의 눈치를 살폈다."신경 쓸 것 없다."조연화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거울을 향해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보았다."강유영은 서왕 전하의 측비 자리조차 거들떠보지 않은 오만한 계집이다. 도경진 따위는 일개 종육품 말단 관원에 불과한데, 그것이 미쳤다고 시집을 가겠느냐?"그녀는 강유영은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부류라고 생각했다. 조연화는 그녀가 주제 파악을 못하고 나대다가 비참하게 몰락하는 꼴을 볼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저도 처음엔 그리 생각했습니다."조사예는 일단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친 뒤, 슬그머니 말머리를 돌렸다."허나 오늘 저잣거리에 나갔다가 우연히 두 사람이 은밀히 만나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도 대인이 강유영에게 물건까지 건네주더군요. 두 사람은 눈이 맞았는지 헤어질 때도 무척이나 아쉬워했습니다."조사예는 오늘 본 광경에 살을 붙여 고자질했다. 조연화가 꼼짝도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몇 마디를 더 보탰다."언니, 도 대인을 얕보시면 안 됩니다. 강유영이 얼마나 영악한 계집입니까. 허투루 사람을 고를 리가 없습니다. 도 대인이 지금 관직은 낮아도, 탐화랑 출신이라는 사실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지방으로 발령 난 지 반년 남짓 만에 경성으로 불려왔으니, 폐하의 신임이 얼마나 두터운지 알 수 있지요. 그런 사람에게 몇 년만 시간을 주면, 큰오라버니처럼 앞길이 탄탄대로일 것입니다."이 말은 조사예의 진심이었다. 그녀는 도경진의 앞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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