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apítulo 771 - Capítulo 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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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1화

조원철은 그녀의 머리칼에 얼굴을 묻고 가볍게 뺨을 비볐다. 마치 제 마음에 쏙 드는 물건에 애교를 부리는 커다란 고양이 같았다.그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등에 내려앉아, 어린아이를 달래듯 가볍게 토닥였다.그녀는 그의 품에 웅크린 채 그의 진한 체취에 휩싸여, 손길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마차 안은 무척이나 고요했고, 그저 덜컹거리며 굴러가는 바퀴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그의 품은 무척이나 따스했다.그녀는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이 길에 끝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세자, 아씨. 요월원에 도착했습니다."마차가 멈춰 서고 밖에서 청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저는 내리겠습니다. 오라버니도 일찍 처소로 돌아가 쉬십시오."강유영은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며 당부하고는 마차에서 내리려 했다."바래다주마."조원철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따라 일어났다."괜찮습니다. 혼자 가겠습니다."강유영은 황급히 거절했다.오늘따라 그는 술을 많이 마셨다. 행여 처음 그때처럼 술김에 이성을 잃고 함부로 굴까 봐 두려웠다."안 된다."조원철은 고집스레 그녀를 따라붙었다.강유영이 이미 한쪽 발을 마차 밖으로 내디뎠는데도 그는 끈질기게 달라붙었다.도리가 없었다. 이 처소 밖은 수시로 하인들이 지나다니는 곳이라 행여 남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퍽 곤란했다."알겠습니다. 안까지만 바래다주시고 곧바로 돌아가셔야 합니다."그녀는 마차에서 내려 걸음을 옮겼다.조원철은 그녀의 손을 꽉 쥔 채 바짝 뒤를 따랐다. 처소 문에 달린 등불 아래서, 그는 내내 고개를 돌려 그녀만 바라보고 있었다.강유영은 술에 취해 넋이 나간 듯한 그가 다음 순간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내심 조마조마했다. 그저 얼른 그를 돌려보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됐습니다, 침소에 다 왔으니 어서 가십시오."그녀는 침소 문을 넘어서자마자 그의 손을 뿌리치며 돌아가라는 눈짓을 했다."가지 않겠다."조원철은 그녀의 곁을 비집고 들어가 곧장 침상을 향해 걸어갔다."안 됩니다, 여기서 주무시면 어찌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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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2화

"수고하셨습니다."강유영은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청운은 공손히 예를 갖추고 물러났다.청운이 나간 후, 강유영은 다시 침소로 걸음을 옮겼다.조원철은 어느새 속적삼으로 갈아입고, 침상에 누워 이불을 반듯하게 덮고 있었다.그녀는 욕실로 들어가 몸을 단정히 씻었다.돌아온 그녀는 젖은 머리를 푼 채 침상 곁에 서서 잠시 그를 지켜보다가, 한쪽 무릎을 침상에 올리고 안쪽의 이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가 덮을 이불이었다.오늘 밤은 편한 평상에서 잘 요량으로 이불을 챙겨갈 생각이었다.하지만 안쪽의 비단 이불에 손이 닿는 순간, 돌연 단단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휘감았다."자자."조원철은 그녀를 끌어안고 단숨에 몸을 뒤집어 그녀를 침상 안쪽으로 눕혔다."정말 취하신 겁니까, 아니면 거짓으로 취한 척하시는 겁니까."강유영이 황당한 얼굴로 물으며 그를 밀어내려 했으나 헛수고였다.조원철은 오히려 그녀를 자신의 이불 속으로 끌어당겨 품에 머리를 꼭 안고는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착하지, 어서 자거라."강유영은 몇 번 발버둥을 치다, 술을 마신 그가 평소보다 억세다는 사실을 깨닫고 포기했다.그만두기로 했다. 오늘 하루 종일 겪은 일들로 그녀 역시 몹시 지쳐 있었다.예전에 이보다 더한 일도 겪었는데, 그저 한 침상에서 잠을 자는 것쯤은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다.새삼스레 유난을 떨 필요가 없었다.어차피 내일 아침 눈을 뜨면 그는 곁에 없을 터였다.그녀는 아예 눈을 감고 그의 품에 안긴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밤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다음 날.강유영은 잠에서 깨어나 습관처럼 기지개를 켰다.팔을 뻗자마자 곁에 누운 사람의 몸이 닿았다."깼느냐?"조원철이 침상 머리맡에 기댄 채 책을 읽고 있었다.그가 쥐고 있던 책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오라버니, 어찌 궁에 가지 않으셨습니까?"강유영은 화들짝 놀라 손을 거두고는 눈을 끔벅이며 그를 쳐다보았다.어젯밤 마차에서 내렸을 때, 기어코 방 안까지 바래다주겠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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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3화

그녀는 지금의 자신이 국자감의 유생들보다 훨씬 더 고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최소한 그들은 잠깐 숨 돌릴 틈이라도 있지 않은가.조원철은 한 글자라도 더 배우고 과제를 하나라도 더 해내기를 바라는 듯, 엄격하게 그녀를 채근했다.그녀는 잠시 쉬고 싶었다.방금 건넨 말도 결국 그를 에둘러 쫓아내려는 속셈이었다."고단하냐?"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공문을 살피던 조원철이 문서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물었다.강유영은 제풀에 찔려 대답도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앞의 종이만 바라보았다."그럼 오늘은 이만 쉬거라."조원철이 한발 물러섰다."정말이십니까?"강유영의 까만 눈동자가 금세 반짝였다. 그녀는 반신반의하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오늘 하루 종일 아무런 수업도, 과제도 안 해도 되는 겁니까?""그래."조원철이 고개를 끄덕였다."정원에 나가 꽃구경이나 다녀오겠습니다."강유영은 붓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밖으로 나섰다.조원철도 탁자 위에서 무심한 듯 책 한 권을 챙겨 들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요월원은 한씨가 정성 들여 꾸민 곳이라, 작은 정원에는 사계절 내내 피고 지는 꽃들이 만발했다.입춘이 갓 지난 터라 봄꽃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제비꽃과 붉은 동백은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강유영은 정원 안을 거닐며 꽃들을 구경했다.매일 방 안에만 틀어박혀 글공부만 하다가 이렇게 화초를 마주하니 절로 눈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청운이 의자를 내왔다.조원철은 회랑 아래 앉아 손에 든 책을 펼쳤다.강유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눈앞의 제비꽃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꽃이 너무 빽빽하게 피어 있어 어딘지 정신 사나워 보였다.그녀는 손을 뻗어 꽃송이를 하나씩 꺾어 치맛자락에 고이 담았다. 내친김에 붉고 탐스러운 동백꽃 가지도 꺾었다. 방으로 돌아가 화병에 꽂아두면 좋을 것 같았다.고개를 돌려보니 조원철이 회랑 아래 앉아 있었다.조각난 금빛 햇살이 그의 푸른 장포 위를 환하게 비추었다. 그는 길고 곧은 속눈썹을 내리깐 채 책에 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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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4화

왜 혼자서 이토록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는 걸까.스스로 생각해도 참으로 바보 같고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유영아, 이리 와서 요기라도 하거라."밖에서 조원철이 그녀를 불렀다.강유영은 동거울 앞에서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귀밑머리에서 파르르 떨리는 분홍빛 제비꽃에 자꾸만 시선이 머물렀고, 마음속에 번져가는 잔잔한 파문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그가 내민 것은 하얗게 삶은 오리 요리였다."이건 많이 먹어도 체하지 않으니 양껏 먹거라."조원철은 접시째 그녀 앞으로 밀어주었다.단비가 작은 의자를 내왔다.그는 서책을 읽고.그녀는 의자에 앉아 한가로이 군것질을 즐겼다. 제법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간이었다.밤이 이슥해지자 강유영은 화장대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조원철이 참빗을 쥐고 그녀의 머리를 한 올 한 올 조심스레 빗어 넘겼다."세자."그때 청운이 문밖에서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무슨 일이냐."조원철이 물었다.강유영은 무심코 거울 너머로 그의 표정을 살폈다."폐하의 하명입니다. 궁내에 시급한 일이 생겼으니 지체 없이 입궁하라 하십니다."청운이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고했다.강유영의 머리를 빗겨주던 조원철의 손길이 멈칫했다."어서 가보십시오."강유영은 그의 손에서 참빗을 건네받으며 입궁을 재촉했다.황실의 어명이니 지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게다가 그가 요월원에 머문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나지 않았던가. 꽤 오래 머물렀으니 이제는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조원철은 그녀의 정수리에 가만히 손을 얹고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거울 너머로 그녀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일찍 자거라. 내일 밤에는 연등을 보러 가자꾸나."그는 한 걸음 물러서며 흩어진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예."강유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마주 보았다. 채비를 하는 그를 바라보는 눈빛에 묘한 아쉬움이 묻어났다.지난 며칠 동안의 시간은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하고 조화로웠다. 마치 꿈결 같았고, 몰래 훔친 시간처럼 애틋했다.어쩌면 두 사람 사이에서 이렇게 정다운 부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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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5화

조원철은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강유영 역시 밤새 뒤척이며 잠을 설쳤다. 지난 며칠 동안 그와 함께했던 자잘한 기억들이 쉴 새 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다 문득 소은경이 떠올랐다. 몸을 섞을 때마다 그가 귓가에 속삭이던 '은경아'라는 애달픈 부름이 환청처럼 겹쳐 들리자, 마음 한구석이 달콤하다가도 이내 씁쓸해져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아씨, 일어나서 만둣국 드셔요."단비가 방 안으로 들어와 그녀를 깨웠다.강유영은 짧게 대답했다.오늘은 원소절, 그가 연등을 보러 가자고 약속한 날이었다.그녀는 하루 종일 서안 앞에 앉아 책을 폈지만, 눈에 글자가 들어오지 않았다.창밖을 내다보니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날이 곧 어두워질 텐데 그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궁에 필시 무슨 발목을 잡힐 만한 급한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그녀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앞의 책장을 넘겼다.해 질 녘부터 완전히 어두워지기까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으나, 그녀에게는 일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조원철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아씨, 어찌 불도 안 밝히고 계셔요?"단비가 들어와 부시통을 불어 초를 밝혔다.캄캄했던 방 안이 서서히 환해졌다."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강유영은 옅게 미소 지었다."오늘 바깥이 참으로 시끌벅적하던데, 아씨께서도 나가서 연등 구경이라도 하고 오시지요."단비는 혼이 빠진 듯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권했다.강유영은 잠시 머뭇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럴까?"사실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문득 자신이 최근 들어 조원철에게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는 한가한 사람이 아니었으니 매 순간 그녀 곁에 있어 줄 수는 없었다.그녀 역시 평생 그의 곁에 머물며 살 생각은 없었다.그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연등 구경을 못 갈 이유가 있을까?이대로라면 정말 그의 외실이 되어, 평생 빛도 보지 못한 채 어둠 속에 숨어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아니, 그럴 수는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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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6화

거리는 온통 화려한 연등으로 뒤덮여 있었다.강유영은 고개를 돌리자마자 훤칠하고 단단한 체구를 지닌 사내를 단박에 알아보았다.조원철이었다.그가 연등 아래 서 있었다. 등불의 따스한 빛이 그의 단정한 옆선을 밝히고, 푸른색 장포 위로 부드러운 윤슬이 감돌았다.언제 어디서든 그가 나타나면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에게 쏠렸다.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인파와 불빛, 시끌벅적한 세상의 소음마저 모두 그를 돋보이게 하는 한낱 배경으로 전락해 버렸다.하루 종일 그를 기다렸지만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런 곳에서 마주칠 줄이야.그녀의 까만 눈망울이 살짝 흔들렸다.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것처럼 차갑게 식으며 손발이 싸늘해졌다.그를 발견하고 잠시 뒤에야 그 곁에 선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소은경이었다.소은경은 예전처럼 강렬한 붉은 옷을 고집하지 않았다.연한 살구빛 치마 위에 매미 날개처럼 얇은 연분홍 비단 덧옷을 걸치고 있었다. 사내처럼 틀어 올리던 간단한 머리 모양도 버리고, 여느 명문가 여식들처럼 단정하게 쪽을 진 뒤 귀밑머리에 정교한 구슬 장식을 꽂은 모습이었다.그녀는 조원철을 향해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무어라 재잘거리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묻어나는 의지와 친밀함이 표정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하지만 조원철은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멀리 떨어진 연등에 고정되어 있었고, 몸은 반 발짝쯤 물러서 거리를 둔 채였다.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그의 눈빛은 여느 때처럼 고요하여 작은 일렁임조차 없었다.하늘을 수놓은 연등 아래, 서늘한 사내와 부드러운 여인이 나란히 서 있었다. 여인은 사내보다 반 뼘 남짓 작았고, 곁으로 연인들이 연신 스쳐 지나갔다.멀리서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은 참으로 잘 어울렸다. 마치 하늘이 맺어준 인연처럼 자연스럽고 조화로웠다.강유영은 숨이 멎는 듯했다. 눈시울이 시큰해지며 가슴이 수많은 바늘에 찔린 것처럼 예리하게 아파왔다.눈앞의 화려한 등불도, 시끌벅적한 저잣거리의 소음도, 귓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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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7화

"왜 그러십니까?"강유영은 애써 눈웃음을 지으며 서준을 마주 보았다.이런 점은 조원철에게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감정을 감추는 법을 그에게서 제법 배웠으니 말이다. 태산이 무너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예전보다 훨씬 나아진 것은 분명했다."어찌 울지 않는 게냐?"서준이 고개를 갸웃하며 짓궂게 물었다.조원철이 다른 여인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서러워 눈물이라도 쏟을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는 아주 잠깐 멍하니 멈춰 섰을 뿐,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평정을 되찾았다.억지로 태연한 척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괘념치 않는 걸까?그는 미간을 좁힌 채 그녀의 표정을 살폈지만 속내를 도무지 읽어낼 수가 없었다."제가 왜 울어야 합니까?"강유영은 그를 살짝 흘겨보고는 걸음을 재촉해 조원철과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어디로 가는 것이냐?"서준이 뒤따라오며 고개를 돌려 웃으며 물었다.'내가 오해한 걸까?'조원철을 꽤나 마음에 품고 있다고 여겼건만, 실은 그저 그 정도였을까?"저쪽으로 한 바퀴 돌고 저택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강유영이 손을 들어 대충 길을 가리켰다.이미 연등을 구경할 마음은 싹 가신 지 오래였다. 원래라면 당장이라도 처소로 돌아가고 싶었다.하지만 왔던 길로 되돌아가려면 조원철의 곁을 지나쳐야 했다.그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싫어 아예 먼 길을 빙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제 막 해가 진 참인데 이리 일찍 돌아가 뭘 하려고. 내가 같이 구경해 주마."서준은 대답도 듣지 않고 소맷자락 너머로 그녀의 손목을 덥석 쥐고 앞으로 이끌었다."어디로 가시는 겁니까?"강유영은 제 의지와 상관없이 그에게 이끌려 사람들 틈을 비집고 걸어갔다."저기 설탕꽃을 파는 곳이 있구나. 제일 큰 놈으로 하나 사주마."서준이 실실 웃으며 가리킨 곳은 설탕 공예 노점이었다. 그는 그녀를 노점 앞으로 훌쩍 끌어당겼다."사람이 이리 많은데 언제 기다립니까. 그만두시지요."강유영은 손목을 비틀어 빼내며 거절했다.입맛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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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8화

등불 거리를 반쯤 지났을 무렵.서준은 수수께끼 등불을 매단 노점 앞에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려 웃으며 물었다."어떤 연등이 탐나느냐. 말만 하면 내가 빼앗아서라도 갖다주마."그는 주렁주렁 매달린 연등들을 가리키며 마음껏 고르라 손짓했다."저것으로 하십시오."강유영은 슬쩍 쳐다보더니 자그마한 토끼 연등을 가리켰다."오냐."서준은 흔쾌히 대답하고 노점상과 흥정을 시작했다.강유영은 손에 든 설탕 공예를 오도독 깨물며 오가는 인파 속에 덩그러니 서서 상념에 잠겼다.조원철은 대체 무슨 재주를 부렸기에 이미 황제의 후궁이 된 소은경을 궁 밖으로 빼내어 함께 원소절 연등 구경을 하는 건지 궁금했다.황제의 여인을 이토록 대놓고 곁에 두다니, 참으로 두둑한 배짱이었다.하지만 그가 이리 과감하게 행동했다면 필시 만전을 기했을 것이다.그는 매사에 빈틈없이 주도면밀한 사람이었다. 소은경을 향한 그의 마음이 그만큼 지극하고 애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자, 받거라."주변의 환호성을 등지고 돌아온 서준이 그녀의 품에 토끼 연등을 덥석 안겨주었다.그제야 강유영은 정신을 차렸다.스스로가 한심해 뺨이라도 한 대 치고 싶었다. 조원철의 일은 자신과 무관하니 더는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분명 눈으로는 서준을 쫓고 있었는데, 어느새 또 그에 대한 생각으로 빠져들고 말았다.조원철의 일 따위 그녀가 걱정할 몫이 아니었다.그녀는 복잡한 상념을 털어내고 품에 안긴 토끼 연등을 내려다보았다.가는 댓개비를 뼈대 삼아 새하얀 화선지를 발라 만든 연등은 제법 앙증맞았다. 둥그런 배 속에서 아른거리는 촛불이 따스하게 번져 무척이나 귀여웠다."고맙습니다."강유영은 고개를 들어 서준을 향해 맑게 웃어 보였다."내게 새삼 인사는 무슨. 저 앞쪽에 구경거리가 더 많다. 가자꾸나."서준이 앞장서며 손짓했다.강유영은 설탕 공예를 야금야금 베어 먹으며 토끼 연등을 안은 채 그의 뒤를 따랐다.그는 탕후루 파는 곳을 보자 한 꼬치 사서 안겨주었고, 찹쌀떡,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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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9화

"그러실 것 없습니다. 그냥 여기 매달린 기성품 중에서 고르겠습니다."강유영이 노점에 매달려 있는 사람 연등 하나를 가리키며 말렸다.그 연등은 붉은 관복을 차려입은 어엿한 관리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 것이 제법 번듯해 보였다."이것으로 하겠단 말이냐?"서준은 그 연등을 들어 올리더니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제법 재밌게 생겼구나. 저걸로 주시게."대소의 풍속은 꽤나 관대하여, 이처럼 고관의 형상을 본뜬 연등을 만들어 놀아도 그저 장난으로 여길 뿐 굳이 문제 삼는 이는 없었다.그는 주저 없이 은자를 내밀었다."붓 좀 빌리겠습니다."강유영은 노점상이 쓰던 붓을 들어 먹을 듬뿍 묻히고는 연등의 입꼬리에 슬쩍 덧칠을 했다.단 몇 번의 붓질만으로 호쾌하게 올라가 있던 입꼬리가 일자로 꾹 다물린 뚱한 표정으로 돌변했다. 순식간에 희극적이던 인상이 차갑게 바뀌어버렸다."어라?"서준이 턱을 문지르며 연등을 유심히 살피더니 갸웃거렸다."어째 네 오라비와 묘하게 닮은 것 같구나?"강유영은 입술을 꾹 다문 채 붓을 들고 망설였다.애초에 조원철과 닮지 않았다면 굳이 고르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녀는 마음 같아선 저 연등의 앞뒤에 악당이라는 두 글자를 커다랗게 적어 넣고 싶었다.그렇게나 못되고 사납게 굴며 사사건건 자신을 괴롭혀댔으니, 온 거리에 끌고 다니며 망신을 당해도 쌌다.저 연등을 조원철이라 치고 왁자지껄한 인파 속을 한 바퀴 돌면, 그게 바로 통쾌한 복수가 아니겠는가.'그러니까 누가 사람 마음 가지고 장난치래.'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끝내 붓을 내려놓았다.명색이 관복을 입은 연등인데 함부로 그런 글귀를 적었다간 엉뚱한 화를 자초할지 모른다.관두자. 혼자 속으로만 상상하면 그만이었다.그녀는 반 사람 크기만 한 연등을 번쩍 들어 올렸다. 곁에 끼고 걷기 딱 알맞은 크기였다."왜 말이 없는 게냐? 혹여 저걸 정말 네 오라비라 여기기라도 한 것이냐?"서준이 바짝 다가와 그녀가 든 연등을 훑어보며 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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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0화

연등이 주렁주렁 매달린 고목 아래, 조원철이 꼿꼿한 자태로 고요히 서 있었다.그는 끝없이 펼쳐진 연등의 바다를 등지고 서서 옅은 빛 무리를 뿜어내는 듯했다. 곧게 뻗은 어깨와 등줄기에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서늘한 한기가 흘러나왔다.강유영은 흠칫 몸을 떨며 몸을 돌려 달아나고 싶었다. 하지만 서준에게 행여나 덜미를 잡힐까 두려워 발이 땅에 붙은 듯 굳어버렸다.조원철이 움직였다.그가 인파를 거슬러 천천히 다가왔다. 어깨 위로 언제 내려앉았는지 모를 불꽃놀이의 파편이 묻어 있었다.그의 서늘하고 담담한 시선이 강유영의 얼굴에 꽂혔다. 살얼음판 같은 눈빛 너머로 어떠한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서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강유영의 앞을 막아서고는, 입가에 가벼운 조소를 띠었다."어찌 이런 우연이, 세자.""이런 걸 두고 우연이라기엔 다소 억지스럽습니다만."조원철의 시선이 비로소 서준의 얼굴로 옮겨갔다.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맑고 차가웠다."사람을 데리러 왔습니다.""유영이 말인가?"서준은 반 발짝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돌려 강유영을 보고 픽 웃었다."세자는 방금 전까지 어여쁜 여인과 단둘이 연등을 구경 중이시지 않았나? 우리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네만. 유영이가 방해하고 싶지 않다며 굳이 먼 길을 에둘러 온 참이네."강유영이 진정으로 조원철을 마음에 품었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조금은 곁을 내주었을지도 모르지만.그러나 서준은 확신했다. 조원철은 강유영에게 아주 단단히 빠져 있었다.속을 알 수 없는 음흉한 인간이 수차례나 제 눈앞에서 강유영을 낚아채 간 것만 봐도, 그녀를 향한 소유욕을 여실히 드러낸 셈이었다.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었다.아니, 어쩌면 조원철은 애초에 그를 상대로는 감출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조원철은 이미 서준이 릉우에서 벌인 일들을 모조리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약점을 빌미로 자신과 강유영의 관계에 대해 입 밖에 내지 못하도록 협박해 왔다.하지만 서준은 조원철의 비밀을 끝까지 지켜줄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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