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번 생은 가족부터 다시 선택할 거야: Chapter 291 - Chapter 300

336 Chapters

제291화

소설아는 갑작스레 나타난 원태준을 보자마자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원태준은 명심을 부축한 채 얼굴 가득 안쓰러운 기색을 띠고 있었다.“명심아,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저 애가 널 미는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겉으로는 노발대발하는 듯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분노 속에는 묘한 희열감이 스며 있었다. 대체 무엇이 그토록 즐거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원태준은 성큼 다가가 명심을 일으켜 세웠다.명심은 몸을 일으키자마자 중심을 잡지 못한 듯 비틀거리더니, 이내 다시 원태준의 품으로 쓰러지듯 안겼다. 그녀는 얼굴을 붉힌 채 황급히 몸을 떼어내고 고개를 푹 숙였다.“오라버니, 죄송해요. 방금 중심을 잃어서 그만…”조청을 한 겹 덧발라 놓은 듯한 애교 섞인 목소리였다.이내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소설아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설아 언니, 제가 발목을 삐끗해서 그랬어요. 일부러 오라버니께 기댄 게 아니니 너무 노여워하지 마세요.”눈꼬리를 살짝 늘어뜨린 그녀는 또다시 억울하고 가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소설아는 허리를 곧게 편 채 서 있었다.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빛이 명심을 향했다.그리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소설아는 원태준과 명심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마치 허접한 연극을 구경하는 관객처럼 냉담했다. 눈빛에는 짙은 경멸이 서려 있었다.“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지?”그녀는 비웃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단순히 품에 안긴 정도가 아니라, 당장 두사람이 한 침상에 오른다 해도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 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도 서로 끌어안고 난리 치는 꼴이 부끄럽지도 않느냐? 차라리 방이라도 하나 잡고 문을 걸어 잠그는 게 낫겠구나. 그 안에서 무슨 짓을 하든 지금보다는 훨씬 당당해 보일 테니.”말을 마친 소설아는 희수에게 앞장서라고 이른 뒤,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원태준은 그녀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역시 어머니 말씀대로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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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뭐 하러 그리 길게 해명하느냐. 저 여자는 그저 질투심 많고 심술궂은 여자일 뿐이다!”원태준이 버럭 소리쳤다.어느새 원씨 가문 하인들까지 줄지어 뒤를 따르고 있었기에, 소설아는 결국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려 원태준을 바라보았다.“오라버니,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드리지요.”차분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저희의 혼약은 이미 파기되었습니다. 이 시간부로 저희는 아무런 관계도 아닙니다. 그러니 두 사람이 무슨 짓을 하든 저와는 일절 상관없는 일이라는 뜻입니다.”소설아가 이토록 담담하게 선을 그을수록, 오히려 원태준의 속은 더욱 들끓었다.“지금 그 얘기를 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 네가 명심이를 밀쳤으니 당장 사과하란 말이다!”소설아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대꾸했다.“저는 저 아이를 밀지 않았습니다. 혼자 중심을 잃고 넘어진 것이겠지요.”그 말에 명심은 손끝으로 원태준의 옷깃을 살며시 움켜쥐었다.그리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라버니, 정말 설아 언니 탓이 아니에요. 제가 발을 헛디딘 것뿐인걸요…”그 꼴을 보던 소설아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보십시오. 본인 입으로 직접 시인하지 않습니까. 오라버니는 눈만 먼 게 아니라 귀까지 먹으셨나 봅니다.”“소설아, 네년이 기어코 선을 넘는구나! 오늘 내 기필코 네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고야 말 테다!”원태준은 품에 안고 있던 명심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곁에 있던 늙은 하녀에게 그녀를 부축하게 한 뒤 큰소리로 외쳤다.“여봐라! 당장 내 검을 가져오너라!”그의 얼굴에는 노기가 가득했다.“오늘 내가 널 단단히 가르쳐 놓지 않으면, 훗날 밖에 나가 사람들 앞에서 어떤 망신을 당할지 모르겠구나!”그 말은 곧 소설아를 자신의 사람인 양 여기고 있다는 뜻이었다.일개 첩실이 감히 말대꾸를 한다면 사내의 체면이 서지 않는 법. 오직 제 소유라 여기는 사람에게만 저토록 당연하다는 듯 훈계하고 억누르려 들 수 있었다.소설아는 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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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소명지가 후부에 돌아오자마자, 소명주는 곧바로 그녀를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 남매는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명지야, 파혼은 어떻게 됐느냐? 설아 언니가 무슨 딴수작이라도 부리진 않았고?”소명주의 물음에 소명지가 고개를 저었다.“딱히 수작은 없었습니다. 아, 아니. 하나 있긴 했습니다. 원 도련님의 사촌 여동생 명심이란 아이 말이죠...”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덧붙였다.“명주 언니, 명심이 그 여자는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원씨 가문에 시집을 가게 되면 반드시 조심해야 해요.”그러나 소명주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 넘겼다.“명심이라면 나도 잘 알고있다. 온화하고 착한 아이지 않느냐.”“온화하고 착하다고요?”소명지는 오늘 본 명심의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 들었다.“언니, 그 여자에 대해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듯합니다.”전생의 소명주와 명심은 서로 충돌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두 사람에게는 공통의 적인 소설아가 있었기에, 소명주는 자연스럽게 명심을 선량한 사람이라 여기고 있었다.“명심이는 신경 쓸 것 없다.”소명주는 손을 내저었다.“넌 설아 언니나 잘 감시하거라. 내 생각엔 언니가 그렇게 쉽게 혼약을 포기할 리가 없다.”소명준과 소명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셋 모두 회귀한 사람이었기에 전생의 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전생의 소설아는 원태준을 목숨처럼 사랑했다.원씨 가문이 몰락했을 때조차 그녀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며 원씨 가문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막대한 재산을 쏟아부었을 뿐 아니라, 자칫하면 위원후부까지 화를 입을 뻔한 적도 있었다.그런 소설아가 이번 생에서 원씨 가문이 아직 건재한 상황에 혼약을 순순히 포기한다는 것은, 세 사람의 눈에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일이었다.반면 소명지 혼자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래도 설아 언니는 진심으로 파혼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미련 같은 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네가 뭘 안다고 그러느냐?”소명주는 속으로 소명지를 답답하게 여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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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네 남매는 다시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 소설아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저주하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하지만 소설아를 욕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아무리 험담을 늘어놓아도 소설아의 귀에 들어갈 리 없었고, 네 남매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속으로 삼킬 뿐 풀어낼 곳조차 찾지 못했다.며칠 뒤, 채여진이 귀인으로 책봉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소명주는 곧장 소명천을 찾아갔다.“여진 언니가 물에 빠졌을 때 호위무사에게 구출되지 않았던가요? 그런데 그 무사에게 시집가는 대신 귀인 마마가 된 거죠? 아무래도 예전에 제가 여진 언니에게 해줬던 말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그녀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둘째 오라버니, 여진 언니에게 어머니를 구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오라버니가 전생의 인맥을 이용해서 황궁에 서신 하나만 전해줄 수 없을까요?”소명천은 고개를 저었다.“그건 아마 어려울 거다.”그의 다리 부상은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고, 금오위에도 들어가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니 전생의 인맥 역시 단 하나도 활용할 수 없었다.이 모든 것이 소설아 때문이었다.만약 소설아가 귀의를 데려와 그의 다리를 치료해 주었다면, 지금쯤 금오위에 들어가 관직을 맡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소명주의 얼굴에 다시 실망이 드리웠다.“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네요. 제가 직접 채 시랑부에 가서 여진 언니와 연락할 방법이 있는지 알아볼게요.”하지만 소명주가 시랑부를 찾기도 전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어느 날 갑자기 황궁에서 성지가 내려와 그녀를 입궁시키라는 명이 전해진 것이다.그녀를 부른 사람은 양비였고, 실제로 만나게 된 사람은 채여진, 아니 이제는 채 귀인이 된 그녀였다.채여진은 노을빛이 감도는 부드러운 비단 옷을 걸치고 있었다. 화장은 옅었고, 연지도 은은하게 발라져 있었다. 장공주부의 화연에서 만났을 때보다 한층 더 연약하고 가련한 분위기를 풍겼다.소명주는 곧장 예를 올렸다.“귀인 마마를 뵙습니다. 그간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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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소명주는 황궁에서 돌아오자마자 쉴 틈도 없이 소명천의 거처로 향했다.“오라버니, 드디어 어머니를 다시 모셔 올 수 있게 됐어요!”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그녀가 어오 말했다.“사흘 뒤 태자비 마마께서 황자를 낳으시면, 여진 언니가 어머니를 사당에서 나오실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어요. 게다가 태의도 보내 주겠다고 했고요. 둘째 오라버니의 다리도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앞으로도 계속 쓸모 있는 정보를 제공하면, 나중에 여진 언니가 황제 폐하의 총애를 듬뿍 받게 되었을 때 오라버니가 금오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힘써주겠다고도 했답니다!”소명천 역시 덩달아 흥분한 얼굴로 침상 위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명주야, 역시 널 믿길 잘했구나!”“둘째 오라버니.”소명주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입꼬리를 길게 끌어올렸다.“저희 이제 제대로 계획을 세워야 해요. 언제까지 이 후부라는 좁은 우물 안에 갇혀 있을 수는 없잖아요.”그녀의 눈빛에는 야망이 가득했다.“다시 한번 삶을 살게 된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해요.”잠시 숨을 고른 그녀가 말을 이었다.“장사에 실패한 것은 저희가 무능해서가 아닙니다. 애초에 저희는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났잖아요. 천한 장사치들과는 근본부터 다른 사람들이라고요. 위원후부는 대대로 공을 세워 온 명문가입니다. 저희 몸에는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고귀한 피가 흐르고 있지요. 그러니 마땅히 벼슬길에 올라 권력을 쥐어야 합니다.”소명주의 눈동자에는 의기양양함과 흥분이 뒤섞여 있었다.마치 이미 성공한 미래를 손에 넣은 사람처럼 말이다.“전생에 큰 오라버니는 문관이 되셨고, 둘째 오라버니는 무관이 되셨잖아요. 후부의 자식들은 원래 평범하게 살 운명이 아닙니다. 이번 생에 앞길이 조금 험난해졌다고 해도, 그건 하늘이 저희에게 내린 시련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그래, 명주 네 말이 백번 옳다!”소명천은 비록 하반신이 마비된 채 침상에 누워 있었지만, 두 눈만큼은 희망으로 불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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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태자비가 무사히 순산하는 데 채 귀인이 큰 공을 세웠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당초 태의들의 진맥에 따르면 태자비의 산기가 시작되려면 아직 열흘은 더 남아 있었다. 그 때문에 동궁에는 태의 한 명만이 겨우 상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그런데 하필이면 출산 당일, 당직이던 태의는 휴가를 내고 자리를 비웠고, 교대를 하기로 한 태의마저 급한 사정으로 교대 시간이 늦어지고 말았다. 태자비가 산책을 하던 중 넘어지는 바람에 예정보다 일찍 산기가 돌았다. 진통은 급하게 몰아쳤고, 하필 태자는 지방에 공무를 보러 나간 터라 동궁에는 일을 주관할 사람이 없었다. 그 바람에 동궁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이보다 앞서 채 귀인은 태자비가 조산하는 꿈을 꾸었다며 이를 황제에게 농담처럼 전한 적이 있었다. 황제는 이를 가볍게 웃어넘기면서도 은밀히 만반의 대비를 갖추도록 명해 둔 상태였다.동궁이 혼란에 빠져 있던 그때, 채 귀인은 태의와 산파, 그리고 미리 달여 둔 약재를 이끌고 기적처럼 나타났다. 그 덕분에 태자비는 무사히 아들을 출산했고, 모자 모두 건강을 되찾았다. 이로 인해 채 귀인의 공이 지대했으니, 그녀 역시 막대한 하사품을 받았다.그 이후 일주일 동안 황제는 매일같이 채 귀인의 처소만을 찾았다. 채 귀인이 연일 총애를 독차지하자, 용비의 요광전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로 변했다.황제가 하사하는 보석 비녀는 원래 황후가 먼저 고른 뒤 영향력이 큰 비빈들이 순차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관례였고, 보통은 용비가 두 번째 순서로 고르곤 했다. 내무부 사람들은 원래도 권세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데 능했다. 그들은 비녀를 받쳐 들고 황후의 궁을 나서자마자 곧장 채 귀인에게로 향했다. 채 귀인과 양비가 먼저 마음에 드는 것들을 모두 고른 뒤에야 비로소 용비에게 물건이 전달되었다.입궁한 지 십팔 년 만에 겪는 이례적인 냉대였다. 일주일 내내 요광전에서는 깨진 도자기 파편이 매일 한 무더기씩 치워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채 시랑이 위원후를 찾아왔다.“이제 곧 명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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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소설아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전생에 채여진은 궁에 들어갔다가 물에 빠진 뒤 자신을 구해 준 호위무사와 혼인했었다.그런데 이번 생에는 어째서 채여진이 귀인이 되었단 말인가?게다가 전생에서 태자비는 난산으로 하혈이 심했고, 아이 역시 태어난 뒤 몸이 몹시 약했다. 결국 삼황자가 황위에 오르기도 전에 그 아이는 병을 앓다 요절하고 말았다.그런데 이번 생에 들려온 소식에 따르면, 태자비 모자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채여진의 꿈 덕분이라고 했다.채여진의 기세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했다. 엄청난 하사품을 받았을 뿐 아니라 새롭게 황제의 총애받는 여인이 되었다.설마 채여진도 회귀한 것일까?아니, 만약 채여진이 회귀했다면 애초에 물에 빠질 일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소명주가 사전에 후궁을 방문했으니, 틀림없이 소명주가 그녀에게 무언가 언질을 준 것이 분명했다.소명주, 그 멍청한 계집애. 여기저기 나불대고 다니다가 요물로 몰려 화형이라도 당할까 무섭지도 않은 모양이다.채 귀인이 총애를 얻었으니, 반드시 누군가는 총애를 잃었을 터였다. 후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채여진이 물에 빠진 일도, 태자비가 조산한 일도 모두 마찬가지였다.함부로 후궁의 암투에 휘말렸다가는 뼈도 못 추리게 뜯어 먹힐 수도 있었다.삼 년에 한 번씩 간택이 열리는 마당에, 후궁에 가장 넘쳐나는 것은 젊고 예쁜 여인들이었다. 평생 홀로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채여진이 지금은 총애를 받고 있어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지만, 만약 소명주와 채여진의 관계가 탄로 나기라도 한다면 소명주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 나갈 것이다.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소설아는 옥비녀를 머리 장식에 꽂아 넣고 손을 들어 단정하게 매만졌다.구황자 전하께서는 무슨 일로 바쁘신지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지만, 궁 안의 소식은 전하께서 이미 훤히 꿰고 계실 터였다. 내일은 원태준이 축국하는 것이라도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하였다.마차가 덜컹이며 나아가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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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알고 보니 애먼 사람을 욕한 것이었다.“홍연, 왕 관사! 그년들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 버릴 테다! 소설아, 그년도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홍연은 낌새를 채고 진작에 줄행랑을 쳤고, 남은 것은 왕 관사뿐이었다. 왕 관사 역시 바보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떼거지로 몰려온 것을 보자마자 재빨리 가주를 부르러 달려갔다.소명준은 사당 안팎을 샅샅이 뒤졌으나 끝내 두 사람을 찾지 못했다.“어머니, 일단 돌아가시지요. 제가 그 악독한 종년들을 절대 가만두지 않겠습니다!”그들이 민씨를 부축하고 막 자리를 뜨려던 찰나, 가주가 가문의 원로들을 이끌고 나타났다.“소명준, 민씨는 가문 자손들의 앞날을 위해 사당에서 기도를 올리는 중이거늘, 지금 어디로 데려가려는 게냐?”소명준이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읍했다.“아버지께서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가 명절을 보내도록 허락하셨습니다.”소명주가 거들고 나섰다.“폐하께서도 효를 으뜸으로 여기십니다. 자식 된 도리로 어머니를 모시고 명절을 보내겠다는데, 예법으로 보나 이치로 보나 가주 어르신께서 막으실 명분은 없습니다.”가주는 느릿하게 수염을 쓰다듬었다.“명절이라? 명절은 모레가 아니더냐. 정 그러하다면 모레 다시 데리러 오거라.”민씨는 소명주의 옷자락을 생명줄처럼 꽉 움켜쥔 채 사시나무 떨듯 목소리를 떨었다.“싫다… 여긴 단 한시도 더 있기 싫구나…”소명주가 코웃음을 쳤다.“어머니를 모셔 가는 건 다름 아닌 궁에 계신 귀인 마마의 뜻입니다. 가주 어르신께서는 정녕 귀인 마마의 뜻을 거스르시겠다는 겁니까? 아직 모르시는 모양인데, 지금 후궁에서 가장 황은을 입고 계신 분이 바로 귀인 마마이십니다.”가주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사람이었다. 고작 소명주의 말 한마디에 겁을 먹을 리가 없었다.“그렇다면 귀인 마마께서 직접 내게 하명하시라 전하거라.”소명주가 어이없다는 듯 따졌다.“마마께서는 궁궐 안에 계시거늘 어찌 직접 오셔서 말씀하시겠습니까?!”가주가 여유롭게 맞받아쳤다.“그럼 너희가 거짓말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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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나도 부인을 대신해 남고 싶지만, 내게는 그럴 자격이 없구나.” 소설아가 소명주에게 다가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명주 너는 부인이 배 아파 낳은 친딸이니, 그 자격은 너만이 갖고 있지 않겠니.”‘친딸’이라는 두 글자를 입에 올릴 때, 소설아는 일부러 힘을 주어 또박또박 발음했다.“그렇지 않습니까, 가주 어르신? 우리 소씨 가문의 규율은 효에 관해서라면 이토록 빈틈없이 철저하니까요.”가주는 앞서 소설아가 찔러준 은표를 떠올리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설아의 말이 맞다. 오직 핏줄을 나눈 친자식만이 어미를 대신해 벌을 받을 수 있지.”소설아는 소명주를 향해 천연덕스럽게 눈을 깜빡였다.“명주야, 설마 네가 배은망덕하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싶은 건 아니겠지?”방금 전까지만 해도 소설아를 몰아붙이려 했던 소명주의 칼날은, 그대로 방향을 틀어 자신의 가슴을 겨누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소명주는 벌떡 일어나며 의자가 바닥을 긁는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입을 열어 항변하려 했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민씨의 처참한 꼴을 보고 있자니, 저 사당에 남는다는 것 자체가 본능적으로 두려웠던 것이다. 비록 껍데기뿐인 위원후부라 해도 밥상에 풀떼기만 올라올 뿐, 최소한 하인들의 수발은 있었다. 하지만 이 사당은 쥐뿔도 없는 데다, 흉악하기 그지없는 늙은 하녀 하나와 어딘가로 꽁꽁 숨어버린 악독한 종년까지 있지 않은가.그녀는 결단코 남고 싶지 않았다. 방금 내뱉은 말은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주워 담고 싶었다.애당초 그녀는 민씨가 배 아파 낳은 친딸도 아니었다.“어머니, 이 일은 저희 남매가 조금 더 상의해 보겠습니다…”민씨가 금쪽같은 두 아들을 사당에 남겨둘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결국 소명지뿐이었다. 소명지는 머리가 나쁘니 적당히 구슬리면 떠넘길 수 있을 터였다.소명주가 고개를 돌려 소명지의 자리를 찾았을 때, 이미 저 멀리 달아나는 소명지의 뒷모습만 보았을 뿐이다. 소명지는 이미 줄행랑을 친 뒤였다.소명지 역시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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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소명주는 입을 떡 벌린 채 거친 숨만 연거푸 몰아쉬었다.지금 이 자리에서 '싫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라도 내뱉는 순간, 불효막심한 계집이라는 낙인이 머리 위에 찍힐 게 불 보듯 뻔했다.소설아는 당황한 소명주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명주야, 참으로 효심이 지극하구나. 우리 모두 본받아야겠어."가주가 단호하게 결론을 내렸다."그럼 이 일은 이렇게 정하마. 소명주가 민씨를 대신해 사당에 남아 가문의 선조와 자손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도록 하여라. 민씨, 너는 돌아가 이번 일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반드시 개과천선해야 한다. 무엇보다 명주의 갸륵한 효심을 결코 헛되이 만들어선 안 될 것이다."민씨는 마침내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가주 어르신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그러고는 곧장 아들을 재촉했다."명준아, 어서 가자. 온몸이 가려워 죽겠구나. 당장 돌아가 목욕부터 하고 옷도 갈아입어야겠다. 아, 그리고 주방에 일러 뜨끈한 탕약도 달여 놓으라 하거라. 씻고 나오자마자 마실 수 있게."소명준은 여동생을 향해 애써 안심시키듯 말했다."명주야, 너무 겁먹지 마라. 사흘 안에 오라비가 반드시 널 데리러 오마."소명주는 멍한 얼굴로 제 눈앞에서 사당의 낡은 대문이 천천히 닫혀 가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점점 좁아지는 문틈 사이로 뒤 한 번 돌아보지 않은 채 매정하게 떠나가는 민씨의 뒷모습이 보였다.그 뒤를 따라가는 소설아의 새빨간 비단 치맛자락은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길 같았다. 눈이 시릴 정도로 선명한 붉은빛이 소명주의 시야를 어지럽혔다.마침내 대문이 굳게 닫히고 마지막 햇살마저 완전히 가려지자, 사당 안은 순식간에 음산한 어둠으로 잠겼다.바깥의 소란이 완전히 잦아든 뒤에야 소명주는 자신이 민씨 대신 이 사당에 갇히게 되었다는 현실을 억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괜찮아. 여진 언니에게는 아직 내가 필요해. 머지않아 반드시 날 불러낼 거야.'단 하루나 이틀만 참고 버티면 끝날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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