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번 생은 가족부터 다시 선택할 거야: Chapter 281 - Chapter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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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1화

원 부인의 눈빛에는 노골적인 경멸이 어려 있었고, 말끝마다 업신여기는 기색이 묻어났다.애초에 혼담이 오갔을 때부터 그녀는 이 혼사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노부인의 뜻이었기에 감히 거역할 수 없었다.훗날 소설아가 신물을 돌려보내며 파혼을 선언했을 때도, 겉으로는 체면을 구겼다며 크게 노했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안도했다.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 원태준에게 더 좋은 혼처를 구해 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그런데 뜻밖에도 노부인이 갑자기 혼사 이야기를 꺼내더니, 소설아가 먼저 파혼을 요구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노했다.노부인은 원 부인을 호되게 꾸짖은 뒤, 당장 위원후부로 찾아가 혼사를 바로잡으라고 엄명을 내렸다.그렇지 않았다면 원 부인이 직접 위원후부까지 찾아올 이유가 있었겠는가.그 생각이 미치자 원 부인의 입가에 비웃음이 번졌다.“수양딸 주제에 감히 파혼까지 해 놓고, 우리 태준이보다 나은 사내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으냐?”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덧붙였다.“우리 태준이는 백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인재다.”소설아는 피식 웃으며 태연히 받아쳤다.“태준 오라버니는 스무 살이 넘도록 밤마다 부인의 품에서 잠을 청하신다 들었습니다.”그녀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런 사내라면 백에 하나가 아니라, 만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인재이긴 하겠네요.”원 부인이 눈을 부릅뜨며 버럭 호통쳤다.“네년이 지금 무슨 막말을 지껄이는 게냐!”소설아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그녀는 원 부인을 똑바로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부인께서는 먼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원 부인은 분을 참지 못하고 홱 고개를 돌려 위원후를 노려보았다.“후작님, 아랫사람이 윗어른에게 이토록 무례하게 구는데도 가만히 보고만 계실 겁니까? 위원후부의 가풍이 참으로 대단합니다.”그 말을 들은 위원후는 내심 불쾌했다.소설아의 태도에 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그의 눈에 소설아는 언제나 예를 잃지 않았고, 교양 또한 흠잡을 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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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원 부인의 안색이 한층 더 험악하게 굳어졌다.소명주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소설아가 무례하게 굴수록, 자신의 얌전하고 사려 깊은 모습은 더욱 돋보일 테니까.그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현숙함과 단아한 품행, 사리분별을 아는 모습을 마음껏 드러냈다.“언니, 원 부인께서는 우리보다 어른이세요. 우리 위원후부는 대대로 학문을 배워온 명문가인데, 어찌 이토록 무례하게 구실 수 있나요?”소명주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혹여 이런 일이 밖으로 알려지기라도 하면, 후부의 체면은 어쩌려고 그러세요?”위원후 역시 소설아의 태도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이대로 일이 커졌다가는 위원후부의 체면이 깎일 것이 분명했다.게다가 원 부인이 노여워 자리를 박차고 떠나기라도 한다면, 소명주의 혼사에도 차질이 생길 터였다.위원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설아야, 원 부인께 사과드리거라.”소설아는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후작이 단약이라도 잘못 드신 것일까.어쩌면 저리도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단 말인가.그녀는 담담한 눈빛으로 위원후를 바라봤다.“후작님, 제가 한 말 가운데 틀린 것이 하나라도 있습니까?”잠시 숨을 고른 뒤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두 집안 어른들께서 혼약을 맺고 신물을 주고받은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원씨 가문은 끝내 혼례를 정식으로 추진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태준 오라버니는 소명주와 가까이 지내며 정분까지 쌓지 않았습니까. 먼저 혼약을 저버린 것은 원씨 가문입니다.”소설아의 눈빛이 한층 차가워졌다.“그런데 제가 파혼을 요구하는 것이 어찌 잘못이라는 말씀입니까? 제가 파혼을 요구했을 때 원 부인께서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으셨지요.”소설아는 원 부인을 똑바로 바라보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오늘 이렇게 직접 위원후부까지 찾아오신 것도, 결국 제게 파혼을 거두어 달라고 하시려는 것 아닙니까?”그녀는 시선을 위원후에게 돌렸다.“후작님, 지금 원씨 가문은 우리 위원후부에 부탁을 하러 온 처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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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원씨 가문의 서재.원태준은 평소와 다름없이 책을 펼쳐 들고 있었다.몇 줄 읽다 말고 곁에 시중 드는 어린 하녀를 힐끗 바라보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던 그는, 끝내 짜증이 치민 듯 책을 탁 덮어버렸다.이내 손을 뻗어 하녀를 제 곁으로 끌어당겼다.그녀는 원태준의 통방 하녀였다. 갑작스러운 손길에 하녀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애원하듯 말했다.“도련님, 부인께서 봄 과거가 반년도 남지 않았으니 절대 여색에 빠지지 말라고 엄하게 당부하셨습니다. 이번에도 들키면... 정말 절 죽이실 거예요.”원태준은 그녀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그 입 다물거라.”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내뱉었다.“지금 속이 뒤집혀 죽겠다. 금방 끝낼 테니 괜한 소리 말고 가만히 있거라.”하녀는 더는 거역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원태준은 비로소 하녀를 놓아주었다.그때였다. 서재 문이 벌컥 열리더니 원 부인이 안으로 들어섰다.허둥지둥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하녀를 본 순간, 원 부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었다.그녀는 하녀를 향해 매섭게 호통쳤다.“이 천한 것 같으니! 또 태준이를 유혹했느냐?”원 부인의 눈에서는 불이 날 듯 분노가 치솟았다.“태준이가 과거를 망치기라도 하면 네 목숨으로 갚아도 모자랄 것이다!”그러고는 냉정하게 쏘아붙였다.“당장 나가 피임약이나 마시고 오너라. 천한 것이 어디 감히 주제를 모르고 설쳐!”하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도망치듯 서재를 빠져나갔다.원태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히죽 웃으며 다가가 원 부인을 의자에 앉혔다.그러고는 능숙한 손길로 어깨를 주무르며 능청스럽게 물었다.“어머니, 또 누가 어머니 심기를 거스른 겁니까?”그 말을 들은 원 부인은 위원후부에서 당한 수모가 다시 떠오른 듯,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책상이 덜컹 흔들릴 만큼 요란한 소리가 서재를 울렸다.“소설아 그 계집애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어!”분이 풀리지 않는지 원 부인은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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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원 부인의 얼굴에 서려 있던 경계심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무슨 뜻이냐?”원태준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정실로 들이기 싫다면 첩으로 들이면 그만이지 않겠습니까.”그 한마디에 원 부인의 얼굴에서 분노가 눈 녹듯 사라졌다.“옳지! 바로 그거다!”위원후부에서 돌아오는 내내 원 부인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감히 위원후라는 자가 그 천한 수양딸이 자신을 모욕하도록 방관하다니. 그 치욕을 떠올릴수록 분이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내 보기엔 파혼을 입에 올린 것도 다 허세일 뿐이다. 제값을 올려 보려고 튕기는 수작이겠지.”원 부인의 입가에 음험한 미소가 번졌다.“기회를 엿보다가 그 계집의 정절부터 망쳐 버리거라. 그러면 제 발로 기어와 원씨 가문에 받아 달라고 애걸복걸할 것이다. 그때 가서 은혜 베푸는 척 첩 자리 하나 내주면 그만 아니겠느냐.”그녀는 비웃음을 흘리며 덧붙였다.“첩이 되고 나면 그때부턴 내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겠지.”원 부인은 그 생각만으로도 속이 후련해졌는지, 얼굴에 활짝 웃음꽃을 피웠다.“역시 우리 태준이가 효자구나.”원 부인은 흐뭇하게 웃으며 덧붙였다.“당분간은 행실을 더욱 조심하거라. 괜히 네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려 좋을 것 하나 없다.”원태준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원 부인이 주위를 한 번 살핀 뒤 목소리를 낮췄다.“윗선에서 진왕 전하를 은밀히 조사하고 있다는 말이 들려오더구나. 요즘 네 아버지가 좀처럼 밖으로 나서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지.”그 말을 들은 원태준의 표정이 단숨에 굳어졌다.원씨 가문은 진왕과 깊이 얽혀 있었다. 만약 진왕이 몰락한다면, 원씨 가문 역시 화를 피하기 어려웠다.“어머니, 아버지께선 괜찮으시겠습니까?”원 부인은 그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안심시켰다.“별일 없을 테니 괜한 걱정은 하지 말거라.”그러곤 눈빛을 싸늘하게 가라앉혔다.“그보다 지금은 소설아 그 계집부터 처리할 방도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원태준은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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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소명지의 안색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언니,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저보고 멍청하다고 한 건가요?얼굴이 벌게진 소명지는 씩씩거리며 소설아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하지만 의란거에는 하녀들과 유모들이 지키고 있었다. 게다가 유 어멈 한 사람만 나서도 소명지를 제압하기에는 충분했다.소설아는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비웃듯 말했다.“조금만 건드려도 불같이 날뛰고, 속내는 훤히 다 드러나니. 남이 파놓은 함정에 제 발로 뛰어들어 놓고도 고맙다며 돈까지 갖다 바칠 사람이구나. 그런 네가 감히 나를 감시하겠다고?”소설아의 눈빛에는 노골적인 경멸이 어려 있었다.소명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지금 말 다 하셨나요? 그렇게 악독하게 굴다간 제명에 못 사실 겁니다! 그 입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테니 두고 보세요!”소명지는 원래부터 머리를 쓰는 데 서툰 사람이었다. 남을 욕할 때조차 정곡을 찌르는 말은 한마디도 못 하고, 그저 같은 욕설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뿐이었다. 이제는 소설아의 귀에 못이 박일 지경이었다.소설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생각해 보거라. 원씨 가문에 가서 내가 몇마디만 던졌는데도 네가 펄쩍펄쩍 뛰며 난리를 친다면, 원 부인이 널 곱게 봐줄 것 같으냐? 명지야,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꾹 참거라. 원씨 가문에서 쫓겨나는 순간, 그 뒤는 정말 내 마음대로 흘러갈 테니까.”소명지는 분통이 터져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녀가 아직도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그녀는 여전히 소설아를 자신을 감싸주고 보살피며, 묵묵히 궂은일을 떠맡던 예전의 큰 언니로 여기고 있었다.지난 생, 소명지가 직접 마부를 시켜 자신의 정조를 짓밟게 만든 그 순간부터, 소설아에게 이 여동생은 이미 남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마차에 오른 소설아는 곧장 원씨 가문으로 향하지 않고, 먼저 천배취로 발길을 돌렸다.서경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소 낭자, 벌써 소식을 가져온 겁니까?”소설아는 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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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원씨 가문의 밑천까지 모조리 드러나도록 탈탈 털어주지!”*소설아가 천배취에서 서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소명지는 아래층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원씨 가문로 간다더니, 소설아 저 천한 년은 술집에 왜 들어간 거야?”“아가씨, 제가 가서 알아보고 오겠습니다.”규연이 쪼르르 달려갔다가 금세 돌아와 보고했다.“큰 아가씨께서 원 노부인께서 이곳 복령떡을 좋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마침 주방장이 방금 도착해 새로 쪄내야 해서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합니다.”소명지는 코웃음을 쳤다.“무슨 복령떡 타령이냐. 그저 나를 골탕 먹이고, 내 인내심을 시험해 보려는 수작이겠지.”그러고는 손을 휙 내저었다.“두 사람만 잘 지켜보거라. 우린 구경이나 하러 가자. 내가 그렇게 쉽게 저울질에 넘어갈 사람 같으냐!”소명지는 마차에서 내려 주변 가게들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한참을 돌아다니던 그녀의 눈에 문득 낯익은 뒷모습 하나가 들어왔다.바로 민영하였다.민영하는 어떤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를 마치자마자 수줍은 듯 뺨을 붉히며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소명지는 호기심이 동해 슬며시 다가가 보았다. 그 사내는 다름 아닌 보국공부의 막내 도련님, 윤청안이었다. 소명지는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었다.“가자. 얼른 따라가 보자.”윤청안이 골동품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한 어린 낭자가 다가와 그에게 부채를 건넸고, 그는 웃으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대하에서는 부채를 선물하는 것이 품위 있게 마음을 전하는 대표적인 풍습이었다. 여인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내에게 부채를 건네는 것은 그의 재능을 흠모한다는 뜻으로 여겨졌기에, 남들의 입방아에 오를 일도 없었다.윤청안이 부채를 촤락 펼쳐 가볍게 부쳤다. 곁에 있던 서동이 으스대며 말했다.“도련님께서 장공주부의 화연에서 두각을 나타내신 뒤로, 벌써 부채를 여러 자루나 받으셨습니다.”그때, 소명지가 윤청안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짜고짜 입을 열었다.“방금 도련님께 부채를 건넨 여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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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원태준은 짙은 남색 직철 자락을 늘어뜨린 채, 허리에는 비취빛 옥패가 달린 옥대를 두르고 있었다. 자세만 보면 제법 단정하고 기품 있는 도련님처럼 보였다. 이목구비 또한 준수한 편이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 밑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밤새 글공부에 매달린 탓인지,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인지 어딘가 수척하고 초췌한 기색이었다.“큰 도련님.”길을 안내하던 어멈은 그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린 뒤, 고개를 숙인 채 황급히 자리를 비켰다.원태준은 뒷짐을 진 채 오만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는 소설아를 한참 동안 훑어보더니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지나쳐 갔다. 그러고는 예물 상자를 들고 있던 어린 하녀 앞으로 다가가 대뜸 뚜껑을 열어젖혔다.“이 산삼은 족히 오백 년은 됐겠구나.”원태준은 상자 안을 살펴보며 입꼬리를 비스듬히 말아 올렸다. 이어 내용물을 이리저리 뒤적이더니 혀를 찼다.“제비집에 녹용까지 들어 있네.”그는 비웃음 어린 시선을 소설아에게 던졌다.“쯧. 이런 귀한 예물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와 놓고, 정말 파혼하러 온 게 맞긴 한 거냐?”소명지는 순간 눈을 번뜩였다.“설아 언니, 정말 웃기네요! 집에서는 저희가 풀뿌리를 씹어 먹든 말든 관심도 없으시면서, 밖에 나와서는 이런 비싼 예물이나 바리바리 챙겨 오고, 있는 척 잘난 척은 혼자 다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귀한 예물을 준비하신 속셈이야 뻔하지요! 원 노부인께 매달려서 어떻게든 이 혼약을 지켜 달라고 빌 생각 아니세요? 언니는 정말 치사하고 비열하시네요! 분명 명주 언니가 시집오기로 되어 있었잖아요!”소설아는 소명지를 힐끗 곁눈질하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 구제불능 멍청이 같으니. 입에 독이라도 털어 넣어 벙어리로 만들어 버리고 싶네.'애초에 반신반의하던 원태준은 소명지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안심한 듯했다.그는 입꼬리를 비죽 끌어 올리며 우쭐한 미소를 지었다.“설아야, 잘 생각해 보거라.”원태준은 턱을 치켜들며 말을 이었다.“내가 주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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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원태준은 소설아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어머니께서 체면을 생각해 기회를 주었건만, 도무지 제 분수를 모르고 고집만 부리는구나! 분명 한 번의 기회를 주었거늘, 정실 자리를 제 발로 차겠다면 앞으로 어떤 험한 꼴을 당해도 나를 원망하지 마라!”*소설아는 원 노부인의 처소로 들어섰다.원 노부인은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기력이 정정했다. 전생에 원씨 가문이 가산을 적몰당해 쫓겨났을 때도 자손들을 이끌고 두 달이 넘는 험난한 유랑을 견뎌냈을 만큼 강단 있는 노인이었다.“노부인, 그간 평안하셨습니까.”소설아가 공손히 예를 올렸다.“설아야, 이 늙은이를 보러 와줘서 고맙다. 참으로 오랜만이구나.”원 노부인이 반가운 얼굴로 손짓했다. “어서 오너라. 어디, 설아 얼굴 좀 보자구나.”곧 어린 하녀 하나가 의자를 가져다 노부인 곁에 놓았다. 소설아가 자리에 앉자마자, 노부인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설아야, 태준이가 널 섭섭하게 한 것이냐?”원 노부인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태준이는 제 어미가 워낙 오냐오냐 키워서 조금 버릇이 없을 뿐, 본성이 나쁜 아이는 아니란다. 이 늙은이 눈에는 다 보인다. 그 녀석이 널 얼마나 마음에 두고 있는지도 말이다. 네가 시집오기만 하면 이 할미가 태준이 어미도 단단히 단속해 주마. 아니면 태준이가 과거를 치른 뒤 지방 관직에 나가 너를 데리고 훌쩍 떠나도 좋지 않겠느냐. 타지에서 둘이 오붓하게 살림을 꾸리면, 이 늙은이도 하루빨리 증손자를 안아볼 수 있을 테고… 그 녀석은 심성은 착한데 귀가 얇은 것이 흠이지. 제 어미만 곁에 없으면 네 말을 그렇게 흘려듣진 않을 게다…”원태준은 열세 살이 될 때까지 경성에서 줄곧 노부인의 손에서 자랐다. 그 뒤에야 원 부인 명씨가 남편을 따라 경성으로 돌아와 그를 곁에 두고 직접 양육하기 시작했다.명씨가 막 경성으로 돌아왔을 무렵만 해도, 원태준은 친어미보다 오히려 할머니인 노부인을 더 따랐다. 그 때문에 명씨는 못내 분하고 서운해 속을 끓이며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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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노부인은 더 만류하고 싶었으나, 소설아의 단호한 눈빛을 마주하고는 깊이 고심한 끝에 결국 입을 다물고 말았다.“혜숙이가 떠날 때 내게 너를 잘 보살펴 달라고 그리 신신당부했거늘, 이 늙은이가 결국 네 할머니와의 약조를 어기게 생겼구나!”노부인은 옛 규방 시절의 벗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노부인, 저희 할머니께서도 노부인을 원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는 제 스스로 내린 선택입니다. 노부인께서 저를 얼마나 아껴 주셨는지, 할머니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돌아가신 조모를 떠올리자 소설아의 눈가에도 이내 붉은 기운이 어렸다.조모가 살아 계실 적, 그녀는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비록 양어머니 민씨의 미움 속에 있었으나, 조모의 각별한 사랑이 있었기에 단것이 먹고 싶을 때면 할머니 품에 파고들어 마음껏 어리광을 부릴 수 있었다. 그러나 조모가 세상을 떠난 바로 그날 이후, 그녀는 억지로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설아야, 너는 참으로 착한 아이다. 내가 태준이 그 녀석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해 이렇게 엇나가게 만들었으니, 모두 이 늙은이의 탓이다…”“노부인, 부디 눈물을 거두십시오. 제가 노부인을 울리면 저희 할머니께서도 분명 절 꾸짖으실 겁니다.”노부인은 결국 소설아를 끌어안고 한참 동안 흐느꼈고, 곁에 있던 하녀들과 어멈들이 앞다투어 다가와 위로를 건넸다. 한참 뒤에야 겨우 눈물이 그치자, 한 어멈이 대야에 물을 떠 와 노부인의 얼굴을 닦아 드린 뒤 다시 연지를 곱게 발라 주었다.소설아는 오늘 파혼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티끌만 한 동요도 남아 있지 않았다. 노부인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설아야, 혹 마음에 둔 정인이라도 생긴 게냐?”소설아가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네.”노부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어쩐지 이리도 단호하더라니… 대체 어느 집 사내가 그리 복이 넘쳐 우리 설아의 마음을 얻었단 말이냐.”노부인은 소설아가 자라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아 왔기에, 그녀가 얼마나 반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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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명씨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태준아, 여인들은 겉으로는 유약해 보여도 속으로는 생각이 아주 깊고 복잡한 법이다. 너희 사내들처럼 매사 솔직하고 단순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 여인들은 가끔 원하는 바가 있을 때, 입으로는 짐짓 아니라고 말하곤 한다. 그래야 사내들이 애를 태우며 마음을 알아주고 달래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너희 사내들은 큰일을 도모해야 할 몸이니 학업이나 관직에 전념해야지, 어찌 한가하게 여인의 속마음 같은 걸 추측하고 있느냐?”명씨의 말을 듣고 있자니 원태준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과연 그런 것이었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살뜰히 굴던 소설아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전부 자신을 붙잡아 두려는 귀여운 수작이었던 것이다.명씨가 말을 이었다.“그 아이가 말한 정인 말이다. 얼굴도 잘생기고, 명석하며, 신분도 존귀하고 활 솜씨까지 뛰어나다지 않느냐. 그게 바로 너 아니겠니? 그깟 후작부의 양녀가 그런 신분 높은 사내를 어디서 또 만나겠느냐. 너 말고는 달리 떠올릴 사람도 없지.”원태준의 입꼬리는 당장이라도 하늘로 승천할 듯 치솟았다. “어머니, 그럼 이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너와 소명주의 혼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무나. 그 애가 애가 타는지 안 타는지 지켜보기만 하면 될 일이다!”“만약 애를 태우지 않으면요?”“그때 가서는 수를 써서 첩으로라도 들이면 그만이지. 사실 첩 자리도 그 애한테는 과분하다!”아들이 여전히 미심쩍어하는 눈치자 명씨가 덧붙였다. “명심이더러 한 번 만나보라 해야겠다. 그 애가 명심이를 끔찍이도 싫어하지 않니. 명심이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너에 대한 마음을 접었는지 아닌지 단박에 알 수 있을 게다.”명심은 명씨의 친정 조카였다. 명씨는 줄곧 명심을 며느리로 들이고 싶어 했으나, 노부인이 완강히 반대하며 위원후부와의 혼사를 덜컥 정해버렸던 것이다.소설아가 파혼을 원한다고 하니, 이참에 그녀를 이용해 명심을 집안에 들이면 더없이 좋을 터였다.명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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