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이번 생은 가족부터 다시 선택할 거야: Capítulo 581 - Capítulo 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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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1화

목욕 후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은 민씨와 소명주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목을 놓아 울었다.“명주야, 내 평생 지켜온 명예가 하루아침에 무너졌구나.”민씨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 오열하였다. 멸시가 가득했던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떠올리자 수치심과 분노에 숨이 턱턱 막혀왔다. 반평생 공들여 쌓아 올린 체면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린 것이다. 무엇보다 안호연이 자신을 바라보던 그 표정. 당혹감과 상처, 그리고 짙은 배신감이 서려 있던 그 얼굴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다. 그 역시 적잖이 상처받았으리라.'안 돼. 어떻게든 기회를 틈타 대인에게 오해를 풀어야 해.'배신한 것도, 헤픈 짓을 한 것도 아니라고. 그저 캄캄한 어둠 속이라 설연준을 그로 착각했을 뿐이라고 해명해야만 했다. 민씨는 어찌나 서럽게 울어댔는지 순식간에 두 눈이 퉁퉁 부어올랐다.모녀가 한바탕 감정을 쏟아낸 뒤, 소명주가 먼저 입을 뗐다. “어머니, 대체 어쩌다 물에 빠지신 거예요?”당시의 아찔한 상황을 떠올리며 민씨가 훌쩍였다. “누군가 뱀이 나타났다고 악을 쓰는 통에 초롱불마저 몽땅 꺼져버렸지 뭐냐. 그래서 그 아수라장을 틈타 소설아를 밀어버리려고 했는데…”하지만 뻗은 손은 허공을 갈랐고, 중심을 잃은 찰나 오히려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 차가운 강물에 빠지고 만 것이다.“명주 넌 어쩌다 빠진 게냐?”“저도 누군가 등 뒤에서 밀었어요. 워낙 어둡고 사람도 북적여서 누구 짓인지는 보지 못했고요.”민씨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두말할 것도 없다. 필시 소설아, 그 천한 것의 짓일 테지.”소명주는 물에 빠진 뒤 몹쓸 짓을 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안명동이 그녀의 정조를 훼손했으니 책임지고 부인으로 맞겠다고 사방에 떠들고 다녔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게다가 현장에는 명씨뿐 아니라 진채린과 명심도 있었다. 그 앙큼한 계집애들이 속으로 자신을 얼마나 비웃고 헐뜯을지 안 봐도 뻔했다.“아버지께 부탁해서 배후에 누가 있는지 낱낱이 파헤쳐 달라고 하세요! 정말 소설아 짓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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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2화

안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합시다.”“대인, 댁으로 돌아가시면 부인을 각별히 보살펴 주십시오. 꽤나 놀라신 듯하니…”문가에 서 있던 연화 군주는 안호연과 위원후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속으로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민씨를 참으로 지극정성으로 챙기시네.'상황이 이렇다면, 자신이 매정하게 굴어도 탓할 사람은 없을 터였다. 연화 군주는 주렴을 걷어 올리며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민씨와 소명주는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생강탕까지 들이켠 덕에 기운을 제법 회복한 상태였다.“군주 마마.”“일어날 것 없다. 좀 더 누워 있거라.”하지만 소명주는 기어코 하녀의 부축을 받아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예를 갖춘 뒤, 가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군주 마마. 그런데 사실… 누군가 고의로 저와 어머니를 물에 밀어뜨렸습니다.”그녀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억지로 눈물을 참아냈다.그 말에 민씨는 아예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군주 마마, 억울하고 원통하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 사방은 칠흑같이 어둡고 물은 또 어찌나 얼음장같이 차갑던지, 그저 살아야겠다는 두려움에 설씨 가문 세자를 붙들고 놓지 못했을 뿐입니다. 사람들의 그 끔찍한 입방아가 마치 수만 개의 화살이 되어 심장을 꿰뚫는 것만 같습니다. 차라리…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 생각했습니다…”말을 채 맺기도 전에 민씨는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얼굴을 감싸 쥐고 오열하기 시작했다.연화 군주는 그저 담담한 눈길로 두 사람을 응시했다. 눈곱만큼의 동정심도 일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이 얄팍한 촌극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이번에 두 사람이 물에 빠진 일은 안 대인과 나의 불찰이기도 하다. 그러니 민 부인과 명주는 마음을 푹 놓거라. 내가 반드시 배후에서 수작을 부린 자를 색출하여 합당한 처벌을 내릴 테니.”소명주가 곁에 선 소설아를 힐끗 흘겨보며 말했다. “군주 마마, 만약 그 악독한 짓을 저지른 자가 군주 마마와 아주 각별한 사람이라면 어찌하시겠습니까?”연화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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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3화

노발대발하는 민씨를 보고도 소설아는 조금도 겁먹은 기색이 없었다.“부인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 같네요. 후작님께서 문밖에 계시니, 곧 들어오실 겁니다.”소설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위원후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들어서기 직전까지만 해도 싱글벙글 웃고 있던 그의 얼굴은 방 안에 발을 들이자마자 순식간에 흉흉하게 일그러졌다. 눈 깜짝할 사이 태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방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같았다.위원후의 등장과 함께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듯 팽팽해졌다. 그는 다짜고짜 성을 내는 대신, 먼저 문가에 서서 바깥의 동태부터 살폈다. 연화 군주와 안 대인의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성큼성큼 민씨에게 다가갔다.그러고는 다짜고짜 민씨의 머리채를 낚아채 제 손에 거칠게 감아쥐었다.“이 천한 년! 네가 밖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다녔는지 알기나 하느냐!”“후, 후작님! 여긴 안 대인의 저택입니다!”두피가 통째로 뜯겨 나갈 것 같은 고통에 민씨는 반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댔다.위원후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는 살벌한 기세로 윽박질렀다.“이 음탕한 년이 내 얼굴에 아주 제대로 먹칠을 해놨구나! 사내에 굶주리기라도 한 게냐? 내가 널 만족시키지 못해서 아무 사내한테나 덥석덥석 들러붙어?! 어쩜 이리도 천박할 수가 있단 말이냐!”곁에 있던 소명주가 다급히 말려들었다. “아버지, 오해십니다! 어머니께서는 물에 빠져 혼비백산하신 나머지 잠시 정신을 놓으셨던 것뿐이에요. 어찌 사내를 탐하셨겠습니까! 그저 너무 놀라 설씨 가문 세자 전하께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매달리신 것뿐이에요! 아버지도 어머니께서 평소 얼마나 물을 무서워하시는지 잘 아시잖아요! 남들은 몰라도 아버지만큼은 어머니를 탓하실 게 아니라,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도록 나서 주셔야지요!”위원후는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될 만큼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조금 전 연회장에서 자신을 향해 쏟아지던 조롱과 비웃음이 아직도 생생했다.콧대 높은 위원후가의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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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4화

단단히 화가 난 설연준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휑하니 자리를 떠버렸다.설현정이 목소리를 낮춰 평국공 부인에게 속삭였다. “물에 빠진 일의 전말을 알아냈어요. 전 어멈이 사람을 잘못 알아보는 바람에 엉뚱하게 민 부인을 물에 밀어버린 거였어요. 큰어머니, 물에 빠지기 직전에 민 부인은 두루마기를 갈아입었고, 소설아는 머리 장식까지 바꾸었잖아요. 그래서 두 사람의 차림새가 비슷해졌던 거예요. 소설아가 큰어머니 속셈을 미리 눈치채고 일부러 전 어멈이 민 부인을 소설아로 착각하도록 유도한 게 분명해요. 큰어머니, 소설아가 어쩜 이렇게까지 교활할 수 있을까요!”소설아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설현정은 분노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평국공 부인은 연회석에 단정히 앉아 조금의 동요도 없는 평온한 모습을 보였다.“현정아, 우리 설씨 가문은 평소 몸가짐과 수양을 중히 여기는 가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침착하게 행동해야지.”설현정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명심할게요, 큰어머니.”평국공 부인은 과실주 한 잔을 들어 여유롭게 음미하며 말했다. “내일 내가 입궁해 이 일을 태자빈 마마에게 전하마. 태자빈 마마께 뾰족한 수가 있는지 봐야겠다.”설현정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큰어머니,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소설아가 아무리 교활하게 굴어도 궁에만 들어가면 저희 손바닥 안이잖아요!”평국공 부인은 술잔을 내려놓고 은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현정아, 보는 눈이 많다. 설씨 가문의 여식답게 기품을 지키며 식사나 하거라.”“네, 큰어머니.”설현정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단정히 앉았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엄격한 궁중 예법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평국공 부인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연회는 화청에서 열리고 있었다. 화청 중앙에는 여러 폭의 병풍을 세워 남녀 빈객의 자리를 나누어 놓았다. 그런데 갑자기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도령 하나가 병풍 틈을 비집고 나오더니, 여인들 자리로 쏙 빠져나왔다.도령은 까맣고 커다란 두 눈을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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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5화

설현정이 유모를 이끌고 평국공 부인 앞으로 다가갔다.“큰어머니, 이쪽은 배 도련님을 모시는 유모, 진 어멈이에요.”“진 어멈, 이분은 제 큰어머니이신 평국공 부인이십니다.”유모는 배 도령을 품에 안은 채 평국공 부인에게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 “평국공 부인을 뵙습니다.”배 도련님은 유모의 품에 얌전히 파묻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핏빛처럼 붉은 보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유모는 아이를 다정하게 달랬다. “도련님, 이분은 평국공 부인이십니다.”배 도련님은 유모의 품에서 꼬물꼬물 내려오더니, 아주 의젓하게 예의를 갖춰 절을 올렸다. 하지만 인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다시 유모를 향해 두 팔을 뻗으며 안아 달라고 보챘다.여전히 단 한마디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고, 그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유모는 황급히 아이를 번쩍 안아 들고 무어라 변명하려 했지만, 평국공 부인이 손을 들어 만류했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아네. 진 어멈, 편히 앉게나.”설현정도 생긋 웃으며 거들었다. “진 어멈, 너무 어려워하지 마세요. 큰어머니께서는 무척 다정하신 분이랍니다.”평국공 부인은 몸소 소화가 잘될 법한 담백한 음식들을 골라 집어주며, 유모에게 도령을 먹이라 권했다.식사가 이어지는 동안, 평국공 부인은 은연중에 운을 띄웠다. “우리 평국공부에 머무는 전담 의원은 국공 어르신께서 직접 강남까지 내려가 모셔 온 분이라네. 온갖 기이하고 어려운 병증을 다스리는 데 아주 능통하시지. 태의보다 의술이 몇 수는 뛰어나지만, 명리에 욕심이 없어 태의원 입궐을 고사하셨을 뿐이라네. 듣자 하니 배 장군께서 이번에 상경하신 것도 다 우리 배 도령을 진맥하기 위해서라던데, 어멈이 장군께 잘 말씀드려 우리 가문의 의원에게 진료를 받아보시는 게 어떻겠나. 혹여 장군께서 구설을 염려하신다면, 우리 의원을 직접 장군부로 보내드리지. 나 역시 한 아이의 어미로서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이 얼마나 뼈를 깎는 일인지 잘 알아서 하는 말이네.”평국공 부인은 이미 사전에 뒷조사를 마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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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6화

유모가 설명했다.“설 아가씨, 배 도련님은 남이 몸에 손대는 걸 싫어하세요.”설현정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예, 알겠습니다.”그녀는 화청을 나와 문가에 서 있던 몸종에게 물었다.“소씨 가문 큰 아가씨는 어디 가셨니?”사람을 찾으려는 게 아니었다. 그저 가로막으려는 것이었다.소설아를 붙잡아, 화청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할 셈이었다.어렵게 배 도련님과 연을 텄는데, 소설아가 나타나 판을 흐트러뜨리게 둘 수는 없었다.몸종이 대답했다.“소 아가씨는 손님을 배웅하러 가셨습니다. 곧 돌아오실 거예요.”과연 차 반 잔 마실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소설아가 돌아왔다.설현정이 곧장 앞을 막아섰다.“아가씨, 드릴 말씀이 있어요.”설현정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화친왕을 흠모하는 여인은 많았지만, 그녀가 유독 미워하는 건 소설아 하나였다.그녀는 평국공부에서 태어나 날 때부터 고귀한 혈통을 지녔다. 그녀의 출발점은 많은 이들이 평생을 발버둥 쳐도 닿지 못할 종착점이었다.소설아처럼 미천한 출신이라면 응당 남의 눈치나 보며 얌전히 살아야 마땅했다.그런데 몰락한 후작가의 양녀 주제에, 감히 평국공부 적녀의 것을 넘보다니.황제가 두 사람의 혼인을 정해 준 뒤로도 화친왕은 담담하기만 했다. 단 한 번도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마치 이 혼인을 두고 마음이 들뜬 사람은 그녀 혼자뿐인 듯했다.화친왕이 소설아를 남다르게 대한다는 소문을 들은 뒤로, 그녀는 가슴속 원망을 전부 소설아에게 돌렸다.하필이면 그녀는 소설아와 부딪힐 때마다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다.뼛속 깊이 흐르는 고귀한 혈통이 그녀를 부추겼다. 소설아를 진흙탕에 처박아야만 비로소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설 아가씨,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소설아는 몸에 걸친 두루마기를 여미며 재촉했다.설현정은 사실 별생각 없이 소설아를 붙잡은 터라 막상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한참을 우물쭈물하던 그녀는 이내 허리춤에 달린 옥패를 풀어 손에 들고 살짝 흔들었다.“별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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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7화

연회가 끝났다.마지막 손님까지 배웅하고 나서, 연화 군주는 목욕을 마치고 침상에 눕자마자 곧 잠이 들었다.연화 군주가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호연은 눈을 떴다.그는 겉옷을 걸치고 월하의 처소로 향했다.해시가 지났는데도 월하의 방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안호연은 소리 없이 문을 지키던 하녀의 등 뒤로 다가가, 목덜미를 가볍게 툭 쳤다. 하녀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안호연은 쓰러진 하녀를 바닥에 눕히고 문을 열어 월하의 방으로 들어갔다.“명주가 물에 빠진 게, 네가 사람을 시켜 민 짓이냐?”문에 들어서자마자 안호연이 다그쳐 물었다.“아버지.”월하는 속적삼 차림으로 침상에 기대 책을 읽고 있다가, 안호연이 들어오는 걸 보고 손에 든 책을 곧바로 밑으로 내렸다.“아버지, 어머니는요?”“네 어머니는 주무신다.”월하는 문 쪽을 힐끗 보더니, 하녀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걸 확인하고는 걸어가 문을 닫았다.“아버지, 저를 이제 사랑하지 않으시는 거예요?”월하의 가슴속에 억울함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아버지는 양녀 하나를 들인 것도 모자라, 안 씨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가보까지 그 애한테 주었다. 그런데 이제는 소명주가 물에 빠진 일까지 들먹이며 자신을 다그치고 있었다.오늘 저지른 일 때문에 원래도 마음이 불안해서 침상에 누운 채 한참을 잠들지 못했는데, 지금 이렇게 추궁까지 당하니 마음이 더욱 괴로웠다.눈을 한 번 깜빡이자, 눈가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안호연은 마음이 약해져 딸의 손을 잡고 침상 곁에 앉았다.“월하야, 내 어찌 너를 사랑하지 않겠느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너란다.”월하는 안호연의 어깨에 기대어, 뺨을 살며시 그의 어깨에 비볐다.“하지만 저는,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소명주인 것 같아요.”안호연은 손을 들어 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말했다.“월하야, 명주는 다르단다.”“명주가 아버지 마음속에서, 그렇게나 특별한가요?”월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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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8화

후궁의 세력이 조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어느새 추영우의 기세가 태자를 압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삼황자가 옆에서 농담하듯 말했다.“아바마마, 서북 쪽에서는 아홉째를 어진 왕이라 부르며, 책을 써서 그의 전기를 남기고 비석까지 세우려 한다더군요.”태자도 거들었다.“아홉째가 조정에서 평판도 갈수록 좋아지고 있습니다.”추영우는 금의위 지휘사라는 자리 때문에 조정에서 악명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서북 재해 구제 사건 이후로 그의 명성은 그야말로 완전히 뒤집혔다.대신들은 그가 가산을 몰수하고 사람을 죽였던 일들을 점점 잊어가는 듯했다.태자가 웃으며 말했다.“아바마마께서 아홉째에게 혼처를 내리신 뒤로, 많이 성숙해졌습니다. 혼례를 치르고 아이까지 생기면, 아홉째의 성격도 한층 더 차분해지겠지요.”추영우는 고개를 들어 삼황자를 한 번 보고, 다시 태자를 바라보았다.삼황자가 황제 앞에서 자신을 헐뜯는 거야 이해할 수 있었다.그런데 태자는 언제부터 삼황자와 한편이 되었단 말인가.황제는 의심이 많은 성격이었고, 특히 나이가 든 뒤로는 점점 힘을 키워가는 황자들을 계속 경계해 왔다.오늘 아침 조회에서 여러 대신이 그를 두둔하는 말을 했는데, 황제는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거기에 태자와 삼황자까지 이렇게 치켜세워 주었으니, 황제가 그를 의심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었다.온 내관에게서 전해 들은 소식으로는, 황제가 그를 금의위에서 떼어낼 생각이라고 했다.금의위 지휘사는 권세가 조정을 좌우할 정도로 막강했고, 오직 황제 한 사람의 명령만을 따랐다.그는 절대 그 자리에서 물러날 수 없었다.서경수는 한쪽에 서서 태자와 삼황자를 번갈아 보다가, 다시 추영우를 바라보며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속으로 은근히 구경거리를 즐기고 있었다.황위 다툼이란 것은 워낙 위험천만한 일이라, 그는 거기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그런데 뜻밖에도, 금란전을 나서자마자 추영우가 그를 붙잡았다.“형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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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9화

서쪽 교외 마장.추영우는 검은색 승마복 차림이었는데, 옥대로 허리를 조인 덕분에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가 한층 두드러져 보였다.마침 오늘은 경성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맑은 날씨였다. 따스한 햇살이 그의 옆얼굴을 비추자 매끄러운 얼굴선이 한층 또렷하게 드러났다. 붉은 입술은 날카로운 이목구비에 부드러운 인상을 더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수려한 미남의 모습을 완성하고 있었다.그는 검은 준마 위에 올라 고삐를 바짝 잡아당겼다. 그러자 바람에 귀밑머리가 흩날리고, 말발굽이 땅에 내려앉은 서리를 힘껏 걷어찼다.살벌한 기세에 젊은 패기가 어우러져, 도도하면서도 서늘한 고귀함이 자연스레 배어났다.설연준은 평소 자신의 풍채와 풍류에 꽤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추영우와 나란히 서고 보니, 어쩐지 저절로 한발 물러서게 되는 기분이었다.‘화친왕 전하의 풍채가 과연 헛소문은 아니었구나. 누이가 밤낮으로 그리워할 만도 하지. 확실히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어.’“화친왕 전하와 처음으로 함께 말을 달리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황제가 두 사람의 혼인을 정해 준 뒤로, 설연준은 줄곧 추영우와 단둘이 만날 기회를 엿보았다. 하지만 추영우는 그때마다 거절했다.그런데 추영우가 서북에서 돌아온 뒤 다시 한번 청하자, 뜻밖에도 이번에는 흔쾌히 응했다.설연준은 몸을 날려 말 위에 올라탔다. 그의 눈빛에는 상대와 한번 겨뤄보고 싶다는 날카로운 기색이 가득했다.“전하, 몇 바퀴를 돌면 되겠습니까?”설연준은 한 손으로 고삐를 움켜쥐고, 다른 손에는 채찍을 들었다.추영우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승부에서 지고 싶지는 않았다.평국공 가문의 아들인 자신이라면 실력만큼은 황자들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그가 보기에는 추영우 역시 황족으로 태어나 외모가 조금 빼어난 것뿐이었다.실력만 놓고 본다면 자신이 한 수 위였다. 그러니 두 사람의 실력은 그럭저럭 엇비슷하다고 여겼다.추영우가 담담하게 말했다.“세 바퀴.”설연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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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0화

설현정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뭐예요? 드디어 마음을 고쳐먹은 거예요?”소설아는 그녀의 손에서 천리경을 다시 빼앗아 들었다.“설 아가씨, 그러니 이제 그만 가주시겠어요?”소설아는 설현정을 문 쪽으로 밀어냈다.“이제 그만 돌아가세요.”하지만 설현정은 문 앞에 서서도 물러날 생각은커녕 계속해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우리 오라버니가 대체 어디가 부족해서 처음에는 그렇게 마다하신 거예요? 제가 분명히 말해두는데, 우리 오라버니는 아가씨에게 과분한 사람이에요! 그러니 아가씨도 사람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고요!”소설아는 피식 웃었다.“너무 우쭐해하지 마세요. 저는 세자 저하가 망신당하는 모습이나 구경하러 온 거니까요.”말을 마치자마자 문이 쾅 닫혔다. 이어 문까지 단단히 걸어 잠갔다.이에 설현정은 하마터면 코를 문에 부딪힐 뻔했다.“하마터면 코 깨질 뻔했잖아요!”소설아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설 아가씨, 또 품위를 잃으셨네요.”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창가로 돌아가, 설현정이 문밖에서 얼마나 소란을 피우든 신경 쓰지 않았다.설현정은 문을 몇 번 두드렸고, 그 바람에 손이 벌겋게 부어올랐다.예전 성격대로였다면 반드시 문을 부수고서라도 속에 쌓인 화를 풀어야 직성이 풀렸을 것이다.하지만 화친왕 전하가 말 달리는 늠름한 모습을 놓칠까 봐, 그녀는 잔뜩 골이 난 채로 별실로 돌아갔다.설연준 쪽에도 그 소식이 전해졌다.“소설아가 왔다고?”설연준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말로는 싫다면서도 결국 자신의 말 달리는 모습을 보러 온 모양이었다.“소설아는 어느 방에 있지?”“세자 저하, 왼쪽에서 두 번째 방입니다. 창문이 열려 있는 곳이 바로 그 방입니다.”설연준은 등을 곧게 펴고 턱을 살짝 치켜든 채, 별실 쪽을 향해 제 모습을 한껏 뽐내듯 자세를 잡았다.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앞에서도, 뒤에서도 제 모습을 잘 볼 수 있도록 몸가짐을 다듬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추영우가 눈빛을 가라앉히며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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