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Bab 31 - Bab 40

116 Bab

31화. 평행우주의 남자들

주말 오후.희수는 재원의 무릎을 베고 누워 틱톡을 보고 있었다.화면 속에는 ‘남자가 여자를 찐사랑할 때 나오는 신호’라는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영상 속 남자]카톡 텀? 1분도 안 걸림.하루 종일 “뭐해?”, “밥 먹었어?”, “보고 싶어”를 입에 달고 산다.여자가 “심심해” 하면 바로 영상 통화 건다.희수는 폰을 재원 쪽으로 쓱 돌렸다.“자기야. 이거 봐. 사랑하면 원래 이렇게 연락이 끊기질 않는대. 궁금해서 미쳐야 정상이라는데?”재원은 보던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건조하게 대꾸했다.“할 일 없나 보네.”“뭐? 야! 관심이자 사랑이잖아!”“업무 시간에 폰만 붙들고 있는 건 무능한 거다. 그리고 계속 물어보면 스토커지 그게 사랑인가.”“...아오, 낭만이라곤 없는 인간.”희수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그래, 너한테 뭘 바라냐.하지만 희수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상상 극장’이 펼쳐지고 있었다.***[SCENE 1. 편의점 재회]겨울 편의점 앞. 희수가 차가운 딸기우유를 들고 서 있다.저 멀리서 남친이 달려온다.도착하자마자 희수를 와락 끌어안는다.“많이 기다렸어? 미안해,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네.”“아냐, 나도 방금 왔어.”“손 차가운 거 봐. 이리 줘.”그는 희수의 얼음장 같은 손을 잡아, 자신의 따뜻한 코트 주머니 속에 쑥 넣는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손을 깍지 낀다.(희수 상상: 하... 그래, 이게 연애지. 녹는다 녹아.)겨울 편의점 앞. 희수가 차가운 딸기우유를 들고 서 있다.저 멀리서 재원이 패딩 주머니에 손을 꽂고 터벅터벅 걸어온다.희수 앞에 딱 멈춰 서서 한마디.“왔나.”끝. 포옹? 없다.재원의 시선이 희수의 손에 들린 딸기우유에 꽂힌다.“이거 뭐냐.”“어? 딸기우유.”“손 시리게 찬 걸 왜 들고 있나.”재원은 희수의 손에서 차가운 우유를 휙 뺏어간다.그러고는 자기 패딩 주머니에 우유를 넣어버린다. (희수 손 말고, 우유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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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잠금해제

재원은 ‘서울말’을 쓴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완벽하게 세팅된 표준어’를 구사한다.회사에서는 물론이고, 희수와 연애를 시작한 후로도 그는 늘 단정하고 딱딱한 말투를 유지했다. 그것은 재원에게 단순한 언어가 아니었다. 자신의 감정을 들키지 않고,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입는 단단한 ‘갑옷’이었다.그런데.언제부턴가 그 견고한 갑옷에, 자꾸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주말 오후, 재원의 집.희수는 소파에 누워 재원의 허벅지를 베고 넷플릭스를 보고 있었다.영화가 지루해진 희수가 장난기가 발동해 재원의 볼을 콕콕 찔렀다.“자기야.”“어.”“나 심심해. 놀아줘.”재원은 보던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영화 봐라. 결제해 줬잖아.”“아, 재미없어. 자기가 더 재밌어.”희수가 재원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파고들었다. 평소라면 “하지 마라”, “가만히 있어라”라고 표준어로 통제했을 타이밍이었다.그런데 재원은 책장을 넘기며, 무심코 한숨처럼 툭 내뱉었다.“아, 마… 고마해라.”“......”희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원을 올려다보았다.‘고마해라.’저 짧고 굵은 사투리 억양.사실 처음은 아니었다.요즘 들어 재원은 당황하거나, 졸리거나, 혹은 이렇게 희수가 귀찮게 굴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사투리가 튀어나오곤 했다.희수는 그게 묘하게 좋았다.그래서 더 보채기 시작했다.“아이~ 자기야아~ 한번만 봐줘~ 이거 몰라? 응?”희수가 재원의 책을 뺏어 들고 눈앞에서 흔들었다.재원은 그제야 희수를 내려다보았다.난감함, 귀찮음, 그리고 숨길 수 없는 귀여워함이 뒤섞인 표정.그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더니, 또다시 필터 없는 본체가 튀어나왔다.“하… 진짜 우예압니까, 이걸.”“......!”희수는 입을 틀어막고 킥킥거렸다.‘우예압니까’라니. ‘어떻게 합니까’의 저 무방비한 사투리 버전.그건 마치 “네가 너무 좋아서 내가 이길 수가 없다”는 항복 선언처럼 들렸다.희수는 벌떡 일어나 앉아 재원의 목을 끌어안았다.“자기야. 방금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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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대화의 기술

33화. 대화의 기술 (Defense OFF)재원과의 연애는 ‘번역’이 필요했다.희수는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나의 ‘서운함’ 표현이 그에게는 ‘비난’으로 들린다는 것.나의 ‘이유 확인(왜?)’이 그에게는 ‘심문’으로 느껴진다는 것.그래서 그가 입을 닫고(회피), 방어막을 치는(통제) 것이다.‘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그의 방어막이 켜지기 전에, 내가 먼저 ‘안전한 신호’를 보내는 것.희수는 비장한 마음으로 휴대폰 메모장에 [대화의 기술 v.3.0]을 띄워두고, 실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금요일 저녁. 평소라면 데이트 약속을 잡거나, 최소한 저녁 식사 여부라도 공유해야 할 시간.[19:00]연락이 없다.[20:00]여전히 없다.[21:00]희수의 인내심 게이지가 빨간불을 켰다.평소의 희수라면 이렇게 보냈을 것이다.[자기야, 왜 연락이 없어? 바빠? 기분 안 좋아? 나 기다리는데 너무한 거 아냐?]하지만 희수는 멈췄다.이 문장은 재원의 뇌에서 다음과 같이 번역된다.‘너는 나를 방치했다(비난) + 이유를 대라(심문) + 넌 나쁜 놈이다(확정).’결과는 뻔했다.[일했다.] [피곤하다.] (방어 및 회피)희수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메모장에 적어둔 ‘방어 OFF 대화법’을 적용해 문장을 조립하기 시작했다.Step 1. 선언 (비난 아님)“자기야, 이건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내 상황을 설명하는 거야.”Step 2. 정보 (나의 관점)“자기가 평소엔 연락을 잘하다가 갑자기 없으니까, 내가 상황을 잘 몰라서 오해할 뻔했어.”Step 3. 감정 (짧게 1줄)“그래서 혼자 기다리다가 조금 불안했어.”Step 4. 요청 (명확한 해결책)“다음엔 바쁘면 ‘바쁨’이라고 두 글자만 보내줘. 그럼 나도 편하게 내 할 일 할 수 있을 것 같아.”전송.희수는 떨리는 마음으로 화면을 바라봤다.‘과연... 통할까?’1분 뒤.숫자 1이 사라졌다.그리고 ‘입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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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시스템 오류 보고서

34화. 재원 시점 – 시스템 오류 보고서 (System Error)재원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아니, 원래 이런 사람이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06:11] 기상[06:12] 출근 준비그의 하루는 분 단위로 설계되어 있다.눈을 뜨면 이불을 개고, 물을 마시고, 정해진 순서대로 씻는다.이 루틴을 지키는 이유는 단순히 성실해서가 아니다.그렇게 해야만 ‘잡생각(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기 때문이다.재원에게 감정은 불필요한 데이터였다.쌓이면 불안해지고, 불안해지면 통제가 안 된다.그래서 그는 ‘정보’와 ‘규칙’으로 하루를 꽉 채운다.그렇게 평생을 안전하게 살아왔다.‘희수’라는 버그가 침입하기 전까지는.***[오류 1: 보고 누락에 대한 과잉 반응]희수는 자주 물었다.“왜 연락 안 된다고 화를 내? 내가 어린애야?”화를 내는 게 아니었다. 공포를 느끼는 거였다.재원에게 9시 이후의 연락 두절은 단순한 ‘무응답’이 아니다.‘사고가 났나?’ (안전 확인)‘아니면... 나에게 질렸나?’ (관계 종료의 공포)이 두 가지 가설이 머릿속을 지배하면, 심박수가 올라가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하지만 그는 “걱정돼서 미치겠다”고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그래서 손가락 끝에서 나가는 문자는 고작 이런 비꼬는 말이었다.[버스를 3시간이나 기다리나 보네?]‘연락이 없네? 걱정되게.’라는 말 대신, ‘아직도 버스 타령이냐’며 비꼬는 그 텍스트 뒤에.식은땀을 흘리며 휴대폰을 꽉 쥐고 있는 자신이 있다는 걸, 희수는 모를 것이다.***[오류 2: 감정 대화의 회피]희수가 입을 삐죽이며 “왜?”라고 물을 때, 재원은 숨이 막혔다.그녀의 감정적인 질문은 그에게 ‘공격’ 신호로 감지되었다.“왜 표현 안 해?” = “넌 자격 미달이야.”“서운해.” = “넌 나를 아프게 했어.”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던져주고 답을 내놓으라니.뇌 회로가 하얗게 타버릴 것 같았다.그래서 그는 도망쳤다.“예예.”“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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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완벽한 도킹

퇴근길 마트의 공기는 평소보다 달콤했다. 예전 같으면 퇴근 직후 휴대폰부터 꺼내 "퇴근중", "집 가서 연락할게" 같은 문자를 보내고 그의 루틴 보고가 올 때까지 초조하게 답장을 기다리는 게 일과였는데. 이제는 그가 기다리고 있을 우리의 공간으로 당연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장바구니에 재원이 좋아하는 맥주와 안줏거리를 담으며 희수는 소소한 승리감을 맛보았다. 이 좁은 서울 하늘 아래 서로의 품에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이 희수에게는 세상 무엇보다 큰 기적이었다.삐삐삑삑삑디리리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경쾌한 리듬을 탔다.거실로 들어서자 현관등 불빛 아래 재원의 검은색 구두가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자기야, 나 왔어!"신발을 대충 벗어 던지고 거실로 달려갔다. 소파에 기대어 있던 재원은 힐끗 희수를 쳐다보고는 이내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상태였다. 희수는 가방을 소파 밑으로 밀어 넣으며 재원의 팔에 팔짱을 꼭 끼었다.하루 종일 까칠한 견주들과 씨름하며 쌓였던 피로가 그의 단단한 등에 얼굴을 묻는 순간 비눗방울처럼 터져 사라졌다. 재원의 몸이 잠시 움찔하며 굳었지만, 희수는 개의치 않고 더 세게 팔에 힘을 주어 그를 압박했다."어...... 생각보다 일찍 왔네."재원은 여전히 시선을 정면으로 둔 채 건조하게 답했다. "오늘 마지막 미용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거든! 자기가 좋아하는 제육 덮밥 하려고 고기도 사 왔지. 자기도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려, 내가 완전 맛있게 해줄게."희수는 주방으로 달려가 앞치마를 둘렀다. 프라이팬에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와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 소리 위로 희수의 수다가 끊임없이 얹어졌다."자기야, 들어봐. 오늘 샵에 진짜 웃기는 비숑이 왔었거든? 이름이 두부인데, 애가 얼마나 고집이 센지 가위만 대면 으르렁거리는 거야. 근데 내가 간식 하나 딱 보여주니까 바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거 있지? 역시 먹을 거 앞에서는 장사 없다니까."재원은 소파에 앉아 멍하니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희수가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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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보이지 않는 벽

제36화. 보이지 않는 벽(희수 시점)토요일 아침, 창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유난히 간지러웠다. 잠결에 더듬거려 찾은 휴대폰 화면에는 아무런 알림도 떠 있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벌써 일어났냐는 문자를 보냈을 재원이었다. 어제 퇴근 후 그의 집에서 보았던, 유독 지쳐 보이던 그의 뒷모습이 떠올랐다."현장 일이 정말 힘들긴 했나 보네. 우리 재원이, 아직도 꿈나라일까?"희수는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머금은 채 자판을 두드렸다. [자기야 잘 잤어? 나 오늘 자기가 좋아하는 카페 가서 책 읽으려고 하는데, 같이 갈까?] 문장을 완성하고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까지도 희수의 머릿속엔 카페 창가 자리에 나란히 앉아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평화로운 오후가 그려졌다.하지만 30분 뒤에 도착한 답장은 희수의 기대를 단숨에 꺾어버렸다.[그건 좀...]단 세 글자. 마침표조차 찍히지 않은 그 문장을 희수는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평소의 무뚝뚝함을 고려하더라도 유독 딱딱했다. 희수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너무 피곤해서 길게 칠 기운도 없는 거겠지.' 희수는 다시 한번 애교 섞인 문장을 보냈다.[왜에, 어제 많이 힘들었어? 그럼 카페 말고 그냥 우리 집에서 영화 볼까? 나 하루만 더 같이 있으면 안 돼? 맛있는 거 해줄게.]이번에는 답장이 더 늦었다.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는 침묵 속에서 희수는 손톱을 깨물었다. 휴대폰 진동이 울리자마자 희수는 낚아채듯 전화를 받았다."응, 자기야! 많이 피곤해?"- "...... 희수야. 나 오늘 하루만 혼자서 쉬면 안 될까?"수화기 너머 재원의 목소리는 낮고 가라앉아 있었다. 단순히 졸음이 덜 깬 목소리가 아니었다. 무언가에 짓눌린 듯한, 간절함에 가까운 피로가 섞인 말투. 희수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나랑 같이 있는 게 쉬는 거잖아. 내가 방해 안 하고 옆에서 조용히 있을게. 자기는 잠만 자도 돼."- "아니. 그냥 아무도 없는 데서 혼자 있고 싶어."재원의 목소리가 순간 차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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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침묵의 설계

토요일 오후의 정적은 달콤하다 못해 비현실적이었다. 재원은 암막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가느다란 빛줄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휴대폰은 진작에 거실 소파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진동 소리만 들어도 뒷목의 근육이 빳빳하게 굳는 기분이었으니까. 희수가 보냈을 그 다정한 문장들을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재원은 팔을 들어 두 눈을 가렸다. 어제 퇴근 직후의 풍경이 망막 위에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달려들어 목을 껴안던 희수의 온기, 뺨에 닿던 머리카락의 감촉, 그리고 쉼 없이 쏟아지던 그녀의 하루 일과들. 희수는 그것을 ‘함께 쉬는 시간’이라 부르지만, 재원에게 그것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잔업이었다. 그녀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적절한 타이밍에 고개를 끄덕여야 했고, 영혼 없는 대답이라도 골라내어 침묵의 공백을 메워야 했다.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다만 재원이 가진 감정의 총량이 희수의 넘치는 에너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할 뿐이었다."...... 하아."무거운 한숨이 어두운 방안을 메웠다. 재원은 스스로가 지독하게 결함 있는 인간처럼 느껴졌다. 남들은 연인이 매일 찾아오고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것을 복이라 말하겠지만, 재원에게 그것은 서서히 차오르는 수면 아래에서 숨을 참는 것과 같았다. 희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꾸만 재원의 개인적인 성벽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녀가 가까워질수록 재원이 숨 쉴 수 있는 영토는 좁아졌고, 결국 발을 디딜 곳조차 사라진 기분이었다.이대로는 안 된다는 확신이 든 건 며칠 전이었다. 희수가 뽀뽀를 해달라며 얼굴을 들이밀었을 때, 재원은 저도 모르게 고개에 힘을 주어 방어했다. 찰나였지만 그 순간 느꼈던 감정은 설렘이 아니라 ‘침범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그 서늘한 감각에 재원 스스로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귀찮은 침입자처럼 느끼게 된 자신을 발견한 순간, 재원은 결단이 필요함을 직감했다.그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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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어긋난 노선

일요일 아침, 희수는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휴대폰부터 더듬어 찾았다. 암막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의 각도로 보아 이미 아홉 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평소라면 '기상' 혹은 '출 출근 준비중'이'라는 재원의 짧은 문자가 화면을 채우고 있어야 했다. 연애를 시작한 지 1년, 재원은 단 한 번도 기상 연락을 거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알림창은 깨끗했다. 단 하나의 숫자도 뜨지 않은 빈 화면이 희수의 눈동자에 서늘하게 박혔다. "뭐지? 출근을 한거야, 안 한거야?."희수는 애써 불안을 털어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제 재원이 '혼자 쉬고 싶다'고 했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충분히 이해한다고, 배려해 주겠다고 다짐하며 웬수 노트에 적기까지 했지만, 막상 일상이 된 침묵 앞에서는 마음이 한없이 좁아졌다. 씻고 화장을 하는 내내 희수의 시선은 화장대 옆에 놓인 휴대폰으로 향했다. 10분, 30분, 한 시간. 정적은 길어졌다.오후가 다 되어서야 도착한 재원의 문자는 평소보다 더 건조했다. [출근해서 일 하는 중.]그게 다였다.언제 일어났는지, 출근을 몇시에 했는지,어제는 잘 쉬었는지에 대한 안부는 한 줄도 없었다. 희수는 립스틱을 바르다 말고 멈춰 섰다. 서운함이 파도처럼 밀려와 가슴 끝을 때렸다. "너만 바빠? 너만 피곤해? 나도 할 줄 알거든."희수는 오기가 생겼다. 재원이 조금이라도 내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리라 다짐하며, 재원이 보낸 '일하는 중', '밥 먹고 쉬는 중'이라는 톡들을 미리보기 알람으로만 읽고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숫자가 사라지지 않는 자신의 카톡 창을 보며 재원이 초조해하길 바랐다. 평소 1분 만에 답장하던 희수가 3시간째 답이 없으면, 무뚝뚝한 그라도 제풀에 지쳐 전화를 걸어올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재원은 추가로 독촉 문자를 보내지도, 전화를 걸지도 않았다. 그는 그냥 희수가 침묵하는 대로 그 시간을 내버려 두었다. 결국 견디다 못한 것은 희수였다. 세 시가 넘어서야 희수는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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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틈새를 파고든 의심

재원의 문자는 차가웠다. 아니, 날카로웠다. [오전 내내 연락 한 번 없다가 갑자기 배부르다고? 참 대단하네.] [기본적인 예의는 좀 지키지.] 희수는 침대에 멍하니 앉아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내가 왜 연락을 늦게 했는지, 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지. 재원은 묻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루틴이 깨진 것에 대해 판결을 내릴 뿐이었다. "어떻게 이래... 내가 왜 그랬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억울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어제 그를 위해 저녁을 차리고, 그의 피곤함을 배려해 토요일을 온전히 비워줬던 희수였다. 하지만 돌아온 건 '예의'라는 이름의 질책이었다. 서운함 뒤로 낯선 공포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1년 동안 재원은 늘 한결같았다. 무뚝뚝하지만 성실했고, 건조하지만 규칙적이었다. 그런 그가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정말 고작 연락 몇 번 때문일까? 희수는 핸드폰 속 그동안 재원을 분석하던 [❤️웬수]폴더를 열어보았다. 그동안 재원의 사소한 변화들을 기록해왔던 희수의 사랑의 메모장. 이제 그 오래 된 기록들은 더이상 사랑의 기록이 아니라, 변심을 증명하는 증거 목록이 되어가고 있었다. 희수는 첫 페이지로 돌아갔다. 1년 동안 그가 했던 모든 무심한 행동들에 내가 달아주었던 '이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 [ 어느 주말] 재원: [오늘은 볼 일 좀 보고 집에 갈게.] 희수의 생각: '무슨 볼 일일까? 가끔은 남자의 프라이빗함도 인정해줘야겠다..' 지금의 생각: 정말 혼자였을까? 그 '볼일'이라는 단어 뒤에 숨겨진 누군가가 있었던 건 아닐까? 재원은 늘 '혼자'를 강조하며 나를 밀어냈다. 그게 사실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시간이었다면. *** [반년 전, 마트 앞] 희수가 멀리서 재원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멈춰서 그와 눈이 마주치길 기다렸다. 재원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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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절벽

약속 장소인 파스타 집으로 향하는 내내, 희수의 손에는 땀이 배어났다. 어젯밤, 희수는 재원에게 '다른 사람이 생겼냐' 물었었다.오늘 재원을 몰아붙여 확답을 받아낼 비장한 각오도 준비되었다."잘못한 건 내가 아니야. 수상하게 행동한 재원이지."희수는 거울을 보며 입술을 다시 붉게 칠했다. 최대한 당당해 보이려 애썼지만, 거울 속의 눈동자는 파들거리며 떨리고 있었다.식당에 들어서자, 재원은 이미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평소처럼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물을 마시고 있었지만, 희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재원의 눈빛에는 예전 같은 미동조차 없었다."일찍 왔네?"희수가 먼저 말을 건넸지만, 재원은 짧게 고개만 끄덕였다.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기까지, 식탁 위에는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희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자기야. 어제 내가 물어본 거, 왜 대답 안 해?"재원이 식기를 내려놓았다. 달그락거리는 금속음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뭐?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거야?""의심? 나는 자기가 요즘 너무 이상하니까...""뭐가 이상한데. 내가 다른 여자를 만난다고? 1년 동안 내 퇴근 시간, 주말 일정 다 너한테 맞춰져 있었는데, 대체 언제 누구를 만난다는 거야."재원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그는 감정적인 호소 대신, 마치 판결문을 읽듯 논리적으로 희수의 의심을 반박했다. 하지만 그 논리 정연함이 희수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매주 본다는 그 볼 일이 대체 뭔데? 그리고 마트 앞에서도 나 무시했잖아!"희수가 쏟아내는 1년 전의 기억들에 재원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삼켰다."넌 나를 믿지 않고,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고 있었네.""그건 자기가 믿음을 안 줬으니까!""아니. 넌 내가 숨 쉴 틈을 안 줬어."재원의 말에 희수의 숨이 멎었다. 재원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희수를 똑바로 응시했다. "희수야. 나 원래는 우리 관계를 어떻게든 끌고 가보려고 대구 파견을 신청했어. 좀 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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