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은 ‘서울말’을 쓴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완벽하게 세팅된 표준어’를 구사한다.회사에서는 물론이고, 희수와 연애를 시작한 후로도 그는 늘 단정하고 딱딱한 말투를 유지했다. 그것은 재원에게 단순한 언어가 아니었다. 자신의 감정을 들키지 않고,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입는 단단한 ‘갑옷’이었다.그런데.언제부턴가 그 견고한 갑옷에, 자꾸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주말 오후, 재원의 집.희수는 소파에 누워 재원의 허벅지를 베고 넷플릭스를 보고 있었다.영화가 지루해진 희수가 장난기가 발동해 재원의 볼을 콕콕 찔렀다.“자기야.”“어.”“나 심심해. 놀아줘.”재원은 보던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영화 봐라. 결제해 줬잖아.”“아, 재미없어. 자기가 더 재밌어.”희수가 재원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파고들었다. 평소라면 “하지 마라”, “가만히 있어라”라고 표준어로 통제했을 타이밍이었다.그런데 재원은 책장을 넘기며, 무심코 한숨처럼 툭 내뱉었다.“아, 마… 고마해라.”“......”희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원을 올려다보았다.‘고마해라.’저 짧고 굵은 사투리 억양.사실 처음은 아니었다.요즘 들어 재원은 당황하거나, 졸리거나, 혹은 이렇게 희수가 귀찮게 굴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사투리가 튀어나오곤 했다.희수는 그게 묘하게 좋았다.그래서 더 보채기 시작했다.“아이~ 자기야아~ 한번만 봐줘~ 이거 몰라? 응?”희수가 재원의 책을 뺏어 들고 눈앞에서 흔들었다.재원은 그제야 희수를 내려다보았다.난감함, 귀찮음, 그리고 숨길 수 없는 귀여워함이 뒤섞인 표정.그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더니, 또다시 필터 없는 본체가 튀어나왔다.“하… 진짜 우예압니까, 이걸.”“......!”희수는 입을 틀어막고 킥킥거렸다.‘우예압니까’라니. ‘어떻게 합니까’의 저 무방비한 사투리 버전.그건 마치 “네가 너무 좋아서 내가 이길 수가 없다”는 항복 선언처럼 들렸다.희수는 벌떡 일어나 앉아 재원의 목을 끌어안았다.“자기야. 방금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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