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Chapter 11 - Chapter 20

34 Chapters

11화. 몰래 읽기 의혹 1차

가게 한켠에서 머리를 질끈 묶고 정리하던 희수는재원이 아침부터 보내는 ‘초건조 모드’를 보며슬슬 불쾌함이 쌓여갔다.[회의들어간다] 09:30[끝났다] 10:10[밥먹고 쉰다] 12:31[일하는 중] 13:05평소에도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오늘은 유난히 ‘정보만 던지고 사라지는’ 느낌이었다.심지어 온도도 없음.희수는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나름의 감정을 조금씩 섞었다.[나 지금 밥먹었어!] 13:30[오늘 손님 많아 ㅠㅠ 지쳐어~] 14:25그런데 돌아오는 답은—[네에] 15:40[집이다 쉰다] 15:42“…와 진짜 오늘 왜 이래.”희수는 마음속에서 아주 조용히‘흥’ 하고 삐지는 소리가 났다.대구에서 보여줬던 그 남자의 미세한 다정함이오늘은 싸그리 사라진 느낌이었다.‘뭐야… 어제까진 귀여웠으면서.’어쩌면 그래서 더 서운했다.조금만 달달한 걸 맛보면그게 기준이 되어버린다.가게 마감하고 집에 가는 길.희수는 기분을 바꾸려 일부러 귀엽게 썼다.[자기 나 퇴근 하는 중이야~] 19:40[잘 쉬구 있지?] 19:40[보구싶다아~] 19:41그러니 돌아오는 답은—희수 기준에서 오늘 최악의 단어가 와야 했다.그리고 진짜로 왔다.[예~] 19:55“……와.”감정이 ‘닫힙니다’ 소리처럼착— 하고 내려앉았다.‘아니 왜. 왜 오늘만 이래.기껏 보고 싶다고까지 했는데.’희수는 10초 만에 감정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결국 참지 못했다.폭주 기차처럼 메시지를 쏟아냈다.[자기는 나를 걱정해준 적이라도 있어?] 19:56[난 자기 말 한마디에 하루가 뒤집히는데 자기한테 나는 뭐야?] 19:56[여자친구로 생각은 해? 아니면 그냥 일상보고 받아주는 사람이야?] 19:56적고 나서심장이 쿵, 쿵—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희수는 방금 보낸 메시지들을 눌러 다시 읽었다.“아오… 미쳤네 나… 이걸 보냈다고…?”순간적으로 너무 솔직했고, 너무 감정적이었다.재원이 가장 싫어하는 ‘끝난 감정 되짚기 + 감정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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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몰래 읽기 의혹 2차

아침 햇살이 희수의 침대 위를 미끄러지듯 비췄다.희수는 눈을 뜨자마자, 늘 그렇듯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들었다.재원의 루틴.[기상] 06:12[출근 준비할게] 06:13똑같고 정확한 시간.이 남자는 늘 그대로여서, 그래서 더 읽기 어려웠다.조금만 더 표현해주면 좋겠는데, 아직 이 남자에겐 기대하기 어렵다.희수는 가볍게 보고를 올렸다.[나 일어났어] 07:00읽음 1.그냥 평소의 아침이었다.그런데 오늘은… 마음이 좀 이상했다.펜션에서 옆에 누워 자던 그 밤부터,그 남자의 눈빛이 자꾸 머리에 남았다.‘…아무것도 안 하던데요.’그 말이, 뭔가…심장을 괜히두근거리게 만들었다.“하… 뭐야 진짜… 왜 자꾸 생각나게 해…”그러다 결국—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희수는 숨을 들이쉬고자기조차 당황할 만큼 솔직한 메시지를 한 번에 쏟아냈다.[자기, 나 사실 어제부터 이상해.펜션에서 같이 잤던 거… 생각보다 계속 생각나.자기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는데,난 괜히 심장 뛰고, 그 말도 계속 재생되고…아무것도 안 한다고 했던 그 표정도 자꾸 떠오르고.이상해. 왜 이렇게 신경 쓰이지?]보내는 순간—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아씨 진짜 미쳤나 봐…”희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바로 삭제 버튼을 눌렀다.삭제.삭제.삭제.“삭제된 메시지입니다.”흔적만 남았다.내용은 사라지고, 남아있는 건 희수의 울렁거리는 가슴뿐.그리고 중요한 건—읽음 표시.그녀는 바로 자신이 조금 전 보냈던 루틴 메시지의 읽음 상태를 확인했다.읽음 1.그래.정상이다.재원은 이런 시간에 절대 보고하지 않는다.루틴 외 시간에는 휴대폰을 거의 안 본다.적어도 희수는 재원이 그런다고 생각했었다.그건, 두 사람이 연애한 내내 변하지 않은 패턴이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루틴에 희수도 적응 한지 오래였다.루틴으로 연애하는 사이.남들은 이해 하지 못하는 둘의 안정된 신호.다른 이들은 말한다."군대야?""보고는 무슨 보고.""나는 그런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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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T들의 감정선

가게 한켠에서 머리를 질끈 묶고 정리하던 희수는 재원의 루틴이 오늘은 단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 [12:30 / 15:40 / 18:00] 같이 칼같이 들어오던 보고였다.희수는 처음엔 “바빴겠지” 하고 넘겼다.하지만 점심시간도, 퇴근 시간도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자, 슬슬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왜 보고 안 해…?’예측할 수 없는 상황은 희수에게 불안감이라는 감정을 선물했다.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희수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고는, 진심을 담아 길게 메시지를 보냈다.[자기 늦어도 괜찮은데, 상황 정도는 말해줬으면 좋겠어.] 19:15[오늘은 왜 이렇게 연락이 끊겼는지… 나 혼자 계속 자기 루틴 시간 맞춰서 기다렸어.] 19:16[사람이니까 물론 변수 생길 수 있지. 그런데 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면 마음이 흔들려. 불안하고.] 19:17[갑자기 연락이 안 오니까 내가 어제 보낸 메시지 때문인가? 하는 생각까지 드네.] 19:18답이 올 때까지 휴대폰만 멍하니 바라봤다. 초조함은 희수에게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었다.잠시 후, 재원의 답은 희수의 마음을 정확하게 관통했다.[일하다 바빴는데 왜 그렇게 예민해?] 19:25[일이 먼저지 너한테 메시지 보내는게 먼저겠니?] 19:26“...예민?”희수는 이마를 짚었다. ‘예민한 게 아니라, 명확한 정보가 없어서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 봐 확인하려는 건데? 이걸 왜 감정적이라고 치부하는 거지?’ 논리적으로 맞는 말을 예민하다고 잘라버리는 재원에게 또 한 번 기분이 상했다.그녀는 참지 않고 다시 메시지를 눌렀다. 억눌렀던 감정적인 논리가 폭발했다.[나는 감정적이어서가 아니라, 자기랑 나 사이의 소통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기다렸던 거야.] 19:30[자기는 항상 정확하게 말하잖아. 근데 오늘은 아니었으니까… 당연히 상황 파악을 해야지.] 19:31[내가 왜 이렇게까지 반응하는지, 자기는 단 한 번도 내 입장에서 생각해 주지 않는 것 같아서 더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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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테스트 1

아파서 못 만난 그날 밤, 희수는 침대에 누워 차가운 방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 결국 휴대폰을 들었다. 열감에 몽롱한 정신 속에서도 옅은 서운함이 가슴을 파고들었다.[나 좀 허전해… 자기는?] 22:15그냥, 듣고 싶었다. '나도.' 이 한마디면 그녀의 마음은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돌아온 건 그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의 대답.[평상시죠] 22:20"...와, 진짜 시멘트다."희수는 그 단단한 말투에 얇게 쌓아두었던 감정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서운함이 한꺼번에 몰려와 숨이 턱 막혔다. 그녀는 결국 짧은 메시지를 보내고 잠들었다.[나 그냥 잘게.] 22:22침대에 몸을 묻고 이불을 뒤집어쓰자, 생각보다 잠이 잘 왔다. 열감 때문인지, 아니면 밀려오는 서러움 때문인지. 어쨌든 그날 밤, 희수는 열두 시간 넘게 폭잠을 자버렸다.다음날 아침.희수는 퉁퉁 부은 얼굴로 휴대폰을 눌렀다. 여전히 남아 있는 몸살 기운이 그녀를 나른하게 만들었다.[나 일어났어] 10:00몇 분 뒤. 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12시간이나 잤네요? ㅋ] 10:05"...이게 웃겨?"희수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평소라면 바로 "아니, 안 웃겨! 흥! 내가 얼마나 서운했는 줄 알아?!" 하고 말했을 텐데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서운함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그리고—그 뒤로 연락이 아예. 안 왔다.점심 루틴도, 오후 루틴도 없었다.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재원의 연락이 뚝 끊긴 것이다.희수는 잠깐 텅 비는 느낌을 받았다. 싸늘한 공허감이 그녀의 마음을 스쳤다. 머릿속 계산기가 자동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뇌는 비상 상황에 놓였다.'아… 혹시…나 말실수했다고 테스트 하는 건가?내 반응을 보는 건가?'재원은 그런 가능성이 1도 없는, 늘 예측 가능한 남자였다. 그러나 오늘은, 뭔가 느낌이 달랐다. 평소와 다른 패턴. 희수는 입술을 꽉 물었다."...좋아. 그럼 나도 테스트한다."희수는 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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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테스트 2

어제에 이어 이어진 주도권 싸움은 여전히 계속 되었다.점심에도,[밥먹고 쉰다] 12:31저녁에도,[집도착] 19:05퇴근 후에도.그들은 오직 '보고'만 주고받았다. 마치 무미건조한 통신처럼.그런데…참으면 참을수록 이상했다.희수가 말을 안 붙였는데도, 오늘 하루 종일 휴대폰만 보면 심장이 자꾸 빨리 뛰었다. 그녀의 감정 시스템은 이미 격동하고 있었다.왜냐면—'이게… 내가 흔들리는 걸 재원이 눈치 챌까 봐?'그게 제일 무서웠다.그런데 하필, 밤이 되자 재원은 평소보다 더 짧은 두 줄만 보냈다.[집도착] 21:00[씻고 쉰다] 21:01평소보다 더 건조했다. 더 감정이 없는 듯했다.'아… 이 사람도 테스트 하는 게 맞다.이건 100%다… 내가 먼저 무너지나 보려고 그러는 거 맞다…'희수는 피곤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이불 속에서 뒤척이다가 결국 다짐했다."...참아. 오늘까지만 참자."그리고 눈을 감았다. 간절한 마음으로 잠이 오기를 빌었다.그날 저녁. 늦은 밤이었다.희수는 이제 막 잠에 들려고 이불을 끌어올렸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그때, 현관에서 갑자기 띠—링. 23:00초인종이 울렸다."어...? 누구...?"희수는 잠이 확 달아났다. 머리도 못 말린 채 헐레벌떡 문 앞으로 갔다. 심장이 쿵쾅거렸다.문을 열자—재원이 서 있었다.그의 표정은 평소와 같았다. 차갑고, 감정 없는, 익숙한 얼굴.근데. 그의 눈빛만은 평소와 달랐다.답답함 + 짜증 + 당황 + 걱정... 이상한 조합이었다.그리고 그는 들어오자마자 말했다."너 왜 이래.""...뭐가?""왜 조용하냐고.""...그냥... 나도 루틴 보고만 하려고..." 희수는 말끝을 흐렸다. 그의 표정을 제대로 마주 볼 수 없었다.재원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그의 시선이 그녀를 꿰뚫는 듯했다."희수.""...왜.""내가 말을 해야 알아요?""...뭘.""평소랑 다르면 말해야지."희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의 말에 반박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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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안정감의 동상이몽

​[이 연애는… 너무 조용해서 불안합니다.]​평화로웠다. 지나치게 평화로웠다.희수는 조수석 창가에 머리를 기대며 멍하니 생각했다.​휴대폰에는 재원의 루틴 보고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쌓여 있었다.아침 기상, 출근, 점심, 퇴근, 그리고 지금 데이트까지.모든 것이 약속된 대로, 입력된 값대로 돌아갔다.​그런데 희수는 문득 가슴 한구석이 허전했다.​희수에게 연애란 ‘연결’이었다.서로 감정을 확인하고, 표현하고, 반응하는 티키타카. 그 뜨끈한 온도가 있어야 “아, 우리가 사랑하고 있구나”라고 안심하는 타입이다.​반면, 옆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는 재원은 달랐다.그에게 연애란 ‘안정’이었다.감정 기복 없이, 루틴을 깨지 않고, 서로가 그 자리에 있는 것. 그 조용한 상태가 곧 사랑이었다.​그래서 지금 이 상황.재원은 “완벽하게 안정적이다”라고 느끼고 있었고,희수는 “이게 연애 맞나? 우리 그냥… 파트너인가?”라고 느끼고 있었다.​이것은 ‘동상이몽’이었다.​“콜록.”​희수가 작게 기침을 했다.건조한 차 안 공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재원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히터 온도를 1도 올리고, 뒷좌석에 있던 담요를 툭 꺼내 희수 무릎에 던져주었다.​“얇게 입지 말라고 했잖아.”​걱정(“괜찮아?”)이 아니었다. 통제(“왜 얇게 입어”)였다.​“아니, 그냥 사레들린 거야.”“물 마셔. 찬 거 말고 미지근한 거.”​재원은 컵홀더에 있던 미지근한 물병 뚜껑까지 따서 건넸다.그의 눈은 여전히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희수는 물을 받아 마시며 묘한 기분을 느꼈다.말투는 시멘트인데, 행동은 수석 간호사급이다.​‘이 사람… 나한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내 건강을 ‘관리’하는 데 온 신경을 쓰고 있구나.’​재원에게 사랑은 ‘감정 교류’가 아니라 ‘생존 관리’였다.아프지 않게, 위험하지 않게, 내 영역 안의 사람을 지키는 것.그게 곰 같은 이 남자의 방식이었다.​차가 신호 대기에 걸렸다.정적이 흘렀다. 희수는 이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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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곰 사용 설명서

​​희수는 비장한 표정으로 휴대폰 메모장을 켰다.화면에는 지난밤 그녀가 밤새 정리한 ‘재원 대응 매뉴얼 v.3.0’이 띄워져 있었다.​[폴더명: ❤️ J (웬수)][주제: 곰(ISTJ)과 절대 싸우지 않는 공식]​반박 금지 (시비 걸면 웃어 넘기기)​질문 금지 (상태만 보고하기)​통제 금지 (풀어주면 알아서 기어온다)​“좋아. 입력 완료.”​희수는 거울을 보며 파이팅을 외쳤다.이제 감정 소모는 끝났다. 오늘부터 나는 그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운영’하겠다.이건 연애가 아니라, 고성능 AI를 다루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오후 1:00. 데이트 시작]​재원의 차에 타자마자,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재원이 희수의 얼굴을 힐끗 보더니, 특유의 그 무심하고 툭 던지는 말투로 공격해왔다.​“어제 뭐 했길래 얼굴이 이래? 라면 먹고 잤냐?”“...”“12시간을 잤다며. 얼굴이 아주 퉁퉁 부었네. 눈 못 뜨는 거 아냐? ㅋ”​[위기 감지: Rule ④ 시비·투덜 모드]​평소의 희수라면 즉시 발끈했을 타이밍이다.‘말을 왜 그렇게 해? 여자친구한테 퉁퉁 부었다니!’​하지만 오늘의 희수는 달랐다.그녀는 마음속으로 ‘반박 금지’ 버튼을 눌렀다.그리고 해사하게 웃으며 대꾸했다.​“그러게~ 거울 보고 나도 놀랐네. 어제 진짜 피곤했나 봐요. 덕분에 완전 꿀잠 잤어.😊”​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던 재원의 말문이 턱 막혔다. 반작용이 없으니 튕겨 나갈 힘도 잃은 것이다.​“…그래. 잠이 보약이지. 많이 자라.”​재원은 순순히 꼬리를 내리고 운전대를 잡았다.상황 종료. 소요 시간 10초.​희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와… 이게 먹히네?’​[오후 2:30. 파스타 집]​식사가 나왔지만, 재원은 말이 없었다.포크질만 묵묵히 할 뿐,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위기 감지: Rule ② 침묵 모드]​불안형인 희수의 본능이 꿈틀거렸다.‘왜 말이 없어? 기분 안 좋아? 나한테 뭐 서운한 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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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사고(事故)와 사고(思考)의 차이

​평온했던 오후의 루틴이 깨진 건 한순간이었다.‘쾅!’ 하는 굉음과 함께 희수의 차가 빗길 위에서 휘청였다.​앞차의 급정거. 피할 새도 없는 추돌.에어백이 터지고, 무릎에 둔탁한 통증이 밀려왔다.​희수는 흔들리는 시야를 잡으며 생각했다.‘...아, 망했다.’​보통의 사람이라면 울음을 터뜨리거나 패닉에 빠져 전화를 걸었겠지만, 희수는 달랐다. 그녀의 뇌는 감정보다 ‘상황 정리’를 먼저 처리하고 있었다.​보험사 호출.​렉카 연락.​그리고... 재원에게 보고.​희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쥐었다. 아픈 티를 내서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덤덤하게, 정보 위주로.​[나 사고 났어.][지금 병원 가는 중이야.][많이 안 다쳤어. 걱정하지 마.]​전송 버튼을 누르자마자, 재원에게서 답장이 날아왔다.‘괜찮아?’ 같은 위로의 말은 없었다.​[사진.][뭐야.][어쩌다 사고 났는데.]​재원의 문장은 짧고 날카로웠다.하지만 희수는 그 말투를 보자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아… 지금 이 남자, 완전 겁먹었네.’​희수는 찌그러진 차 사진과 퉁퉁 부은 무릎 사진을 찍어 보냈다.​그러자 재원의 ‘방어 기제’가 발동했다. 걱정이 ‘지적’과 ‘분석’의 형태로 튀어나온 것이다.​[미리 브레이크 등 떴으면 계속 조심해서 가야지.][과속했나.][비 오는데 규정 속도가 아니라 더 줄여서 가야 되는데.]​희수는 욱했다. 아파 죽겠는데, 놀라 죽겠는데. 위로는커녕 취조라니.​‘이 사람은... 진짜 로봇인가?’​하지만 희수는 감정을 꾹 눌러 담았다. 지금 싸울 때가 아니었다.​[아냐 과속 안 했어 ㅠㅠ 규정 속도 지켰는데 앞차가 갑자기 멈췄어.][많이 아팠는데 진통제 맞아서 이제 덜 아파.][배터리 없어서 연락 안 될 수도 있어. 걱정 마.]​희수는 ‘나 괜찮아’를 반복하며 그를 안심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 시각, 재원의 속마음은 정반대로 타들어가고 있었다.​‘사진 보니까 차가 반파됐는데 몸이 괜찮다고?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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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걱정은 명령어로 온다

​수술 후 2주.희수의 무릎에는 철심이 박혔고, 다리에는 투박한 보조기가 채워졌다.​퇴원 후 집에서 요양하는 동안에도, 재원의 루틴은 한 치의 오차 없이 돌아갔다. 아니, 오히려 더 정교해졌다.​[기상] 06:12[밥 먹어라] 07:00 (추가됨)[약 먹었나] 07:30 (추가됨)[출근해서 일하는중] 07:30​재원은 출근 보고 사이에 희수의 ‘생존 루틴’을 끼워 넣었다. 감정적인 위로"많이 아프지?ㅠㅠ"는 없었다. 오직 입력된 값(식사, 약)이 제대로 실행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관리자만 있을 뿐이었다.​희수는 그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꼬박꼬박 챙겨주는 그 건조함이 든든했다.​문제는, 오늘 발생했다.​오늘은 실밥을 뽑고 중간 엑스레이를 찍어 '통깁스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날이었다.수술했던 대학병원은 차로 40분 거리였다. 예약도 힘들고 대기 시간만 1시간이 넘는다.​희수의 머릿속에서 특유의 효율 계산기가 돌아갔다.​‘왕복 1시간 반 + 대기 1시간 = 총 2시간 반 소요.’‘집 앞 정형외과 = 도보 5분 + 실밥 뽑는 건 1분 컷 = 총 30분 소요.’​답은 명확했다. 그냥 실밥만 뽑고 사진만 찍는 건데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었다.희수는 재원에게 ‘효율적인 변경 사항’을 보고했다.​[나 오늘 병원 가야 되는데] 10:30[그냥 집 앞 정형외과 가서 실밥 뽑고 사진 찍으려고] 10:30[대학병원은 너무 멀고 사람 많아서 비효율적이야] 10:31​당연히 [ㅇㅇ 잘 다녀와] 정도의 답을 예상했다.하지만 1분 뒤, 휴대폰 진동이 길게 울렸다.​[집 앞? 뭔 집 앞?] 10:32[왜 다른 병원 가는데?] 10:32​재원의 반응은 날카로웠다. 평소의 무심함은 온데간데없었다.​희수는 당황해서 타자를 쳤다.​[아니 그냥 실밥만 뽑는 건데 뭐 어때서][가깝잖아 편하고. 엑스레이도 거기가 더 빨리 찍어줘.]​그러자 재원의 메시지가 폭격처럼 쏟아졌다.​[이상한 행동 하지 마라.][수술한 데로 가야지 왜 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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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공유되지 않은 영역

무릎 수술 후 회복기.희수의 일상은 보조기와 함께 느리게 굴러갔고, 재원의 루틴은 여전히 시계태엽처럼 정확하게 돌아갔다.[퇴근] 18:00[집 도착] 18:40그런데 오늘, 그 규칙적인 패턴에 낯선 변수가 끼어들었다.[오늘 사적인 볼일 있어서 좀 늦는다] 19:00희수는 메시지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사적인 볼일?’평소라면 ‘회식’이라거나 ‘친구 만남’이라고 명확히 주어를 밝혔을 텐데. ‘사적인’이라는 모호한 단어가 희수의 호기심과 불안 회로를 동시에 건드렸다.희수는 최대한 가볍게, 농담을 섞어 떠보았다.[사적인 볼일? 오호~ 데이트라도 가나~? ㅎㅎ] 19:02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리고 날카로웠다.[어처구니.] 19:03[그건 니가 알아서 판단하시구요.] 19:03희수는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와… 벽 치는 거 봐라.’그냥 아니라고 하면 될 걸, 굳이 ‘니가 판단해라’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방어막을 세운다.이건 재원 특유의 ‘영역 표시’였다.여기서부터는 내 구역이니, 너라도 함부로 넘어오지 말라는 경고.평소의 희수라면 “말을 왜 그렇게 해?”라고 따졌겠지만, 그녀는 이제 ‘재원 사용법’을 알고 있었다.지금 그를 파고들면, 그는 더 깊은 동굴로 숨어버릴 것이다.희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감정을 배제한 채 ‘최적의 답안’을 입력했다.[언젠간 사적인 볼일도 말해주는 날이 오겠지 뭐..ㅎㅎ] 19:05[오늘 퇴근 잘하시구 볼일도 잘보셔요~ 집 도착하면 연락주시구요😊] 19:06통제 0%.압박 0%.대신 ‘집 도착하면 연락해’라는 루틴 복귀 신호만 남겼다.재원은 말이 없었다. 읽음 표시만 사라졌다.밤 11시.재원에게서 전화가 왔다.“여보세요.”다소 가라앉은 목소리.“어, 자기야. 볼일 잘 봤어?”희수는 아무렇지 않게, 밝게 받았다.“...어.”잠시 침묵이 흘렀다. 재원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뜸을 들이다가, 툭 하고 무겁게 내뱉었다.“난.”“응?”“죽을 때까지 사적인 건 공유 안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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