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외면 사건’ 이후, 며칠이 지났다.표면적으로는 다시 평화로운 루틴이 돌아왔다.[기상] 06:11[출근 준비] 06:12하지만 희수의 마음속에는 아직 잔여물이 남아 있었다.친구들에게 하소연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예상대로였다.“야, 그거 완전 나쁜 놈 아니야?”“지인한테 숨기는 거? 빼박이지. 어장관리 아니야?”“희수야, 너 가스라이팅 당하는 거 같아.”친구들의 말은 논리적이었다.사생활 숨김, 차가운 말투, 감정 회피.전형적인 ‘나쁜 남자’의 체크리스트와 일치했다.희수도 흔들리지 않은 건 아니었다.‘진짜 그런가? 내가 콩깍지가 씌어서 합리화하는 건가?’그때, 현관 벨 소리가 울렸다.저녁 7시. 재원이었다.“문 열어.”예고도 없이 찾아온 그는, 양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족발, 보쌈 같은 데이트용 배달 음식이 아니었다.대형 마트 장바구니.그 안에는 우유, 칼슘 두유, 멸치볶음, 그리고 도가니탕 팩이 가득했다.“...이게 다 뭐야?”재원은 대답 대신 희수의 다리부터 스캔했다.“보조기 찼나.”“찼지.”“부기는 좀 빠졌네.”그는 신발을 벗고 들어와 익숙하게 냉장고를 열고 사 온 것들을 채워 넣었다.정리는 칼각이었다. 유통기한 순서대로, 희수가 꺼내기 쉬운 칸에.“뼈 붙는 데 좋은 거다. 챙겨 먹어라.”“아니, 나 혼자 이걸 어떻게 다 먹어...”“먹어야 낫는다. 안 먹으면 안 낫는다.”그는 냉장고 정리를 끝내고 소파에 앉았다.그리고 희수에게 물 한 잔과 약 봉투를 내밀었다.“약 먹어.”희수는 약을 받아먹으며 그를 빤히 쳐다봤다.친구들이 말한 ‘나쁜 남자’의 모습과,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의 행동을 대조해 보았다.‘나쁜 남자들은... 책임 회피하고, 맘대로 구속하고, 감정적으로 휘두른다는데.’지금 이 남자는?1. 책임감: “안 먹으면 안 낫는다”며 바리바리 장을 봐왔다.2. 구속: “보조기 차라”, “돌아다니지 마라”고 잔소리하지만, 그건 내 안전 때문이다.3. 감정: 휘두르기는커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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