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Kabanata 281 - Kabanata 290

358 Kabanata

제281화

“이혼한 지 반년 뒤에 임신한 거예요.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그럼 대체 누구 아이인데?”정우진은 질문을 던지고 나서야 자신의 말이 지나쳤음을 깨달았다.하지만 그럼에도 신시아의 대답을 기다렸다. 심장이 무언가에 세게 얻어맞은 듯 욱신거렸다.남자는 단념하지 못한 채 예상 밖의 질문을 하나 덧붙였다. 대체 누구 아이냐고 말이다...“대표님과는 상관없는 일이에요.”신시아는 그 말을 끝으로 문밖을 나섰다.그러나 발걸음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정우진이 쫓아와서 손목을 거칠게 낚아챘다.“대체 뭐가 두려운 거야?”“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신시아는 애써 침착한 척했다. 벽과 그의 가슴 사이에 갇힌 채 그녀가 되물었다.한편 정우진의 얇은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지금 자신이 뭘 하는 건지?전처이자 부하 직원에게 누구의 아이를 가졌느냐고 묻고 있다니!“하선재랑 엮이는 거 두고 볼 수만은 없어. 그놈은 내 원수나 마찬가지이고 넌 내 부하 직원이야. 이 아이가 누구의 씨인지 분명히 밝혀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당당하기 짝이 없는 그의 말투는 냉랭하고도 비아냥거림이 가득했다.신시아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몰아세우는 정우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어느새 그녀의 눈가가 붉게 달아올랐다. 가슴이 한없이 시리고 아릿해 왔다.적어도 정우진만큼은 자신을 이해해 줄 거라 믿었다.아무리 경솔한 사람이라도 어떻게 하선재와 그런 관계가 될 수 있단 말인가?다만 정우진 이 인간은 정작...“시아야.”문득 멀지 않은 곳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신시아가 그쪽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장건우가 떡하니 서 있었다.그는 서류 가방을 들고 퇴근길인 듯한 차림이었다.다소 머쓱한 기색이었지만 묵묵히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복도에는 세 사람만이 덩그러니 놓였다.정우진 역시 고개를 들어 장건우를 바라보았다. 가늘게 뜬 그의 눈매가 천천히 다가오는 장건우에게 고정되었다.“정 대표님.”장건우는 정우진을 향해 가볍게 목례했다.“또 뵙네요. 그나저나... 제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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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하지만 신시아는 그 부분에 대해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도와줘서 고마워. 그럼 우리 이제 서로 빚진 거 없는 거야.”장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안녕, 잘 가.”신시아는 곧장 몸을 돌렸다.택시에 올라타는 순간,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신경이 툭 하고 끊어졌다.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듯 좌석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기댄 채 안색이 창백하기 그지없었다.한 시간 뒤, 집 앞에서 때마침 도착한 김지원과 마주쳤다.차에서 내리던 신시아가 휘청거리자 김지원이 재빨리 달려와 그녀를 부축했다.“손이 왜 이렇게 차가워?”한여름의 더위에도 신시아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김지원의 얼굴에 짙은 걱정이 드리웠다.“무슨 일 있었어?”신시아는 택시 문을 닫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김지원의 손을 잡고서 집 안으로 들어섰다.방금 겪은 일에 대한 공포심이 그녀의 목소리마저 잠시 앗아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김지원이 따뜻한 물을 두 잔 따랐다.한참 후에야 겨우 안정을 되찾은 그녀는 오늘 있었던 일을 낱낱이 털어놓았다.이야기를 듣던 김지원이 연신 숨을 들이켰다.“장건우 씨가 정말 제때 나타났네. 네가 예전에 그 사람 도와준 덕이지. 아니었으면 오늘 그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왔겠니?”신시아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여전히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정우진이 길을 막아서며 자신을 쏘아보던 그 칠흑 같은 눈동자, 그 안에서 마치 양육권 다툼을 할 때의 냉담함과 무자비함을 보는 것만 같았다.순간 신시아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나갔다.“됐어, 괜찮아. 이제 아무 일 없을 거야.”김지원은 그녀를 꼭 껴안고 나지막이 달랬다.“내가 예전에 빈이를 가질 때 함부로 아무 남자랑 사고 치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가 다 양육권 문제 때문이었어. 너도 임신은 사고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다행히 정우진이 그 애가 자기 애일 거라곤 꿈에도 상상 못 할 테니까...”그 말에 신시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임 비서님이 내가 우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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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내가 지난 세월 너희들에게 아주 잘해준 건 아니란 거 알아. 하지만 수많은 아이들을 거두며 너희도 돌봤으니 딱히 눈에 띄는 공로는 없어도 수고만큼은...”한채은의 하소연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지원이 날카롭게 말을 끊었다.“지금 감방 가고 싶다는 소릴 하는 거예요?”한채은은 말문이 턱 막혔다.“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오늘 당장 돈 내놓지 않으면 경찰서에 보낼 줄 알아요!”김지원은 조금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신시아 역시 더는 대화로 풀 여지가 없다는 단호한 표정이었다.“아니, 일단 내 말 좀 끝까지 들어봐!”한채은이 다급하게 말을 이어갔다.“너희 둘 다 경원 떠나면 다시는 돌아올 필요 없어. 각자 애들 잘 키우고 보육원에 더 이상 돈 보내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지금 이 돈 문제도 그냥 없던 일로 하면 안 될까?”김지원이 비웃음을 흘렸다.“당신이 하는 말은 단 한 글자도 못 믿겠어. 믿을 수가 있어야지, 원.”한채은이 벼랑 끝에 몰린 듯 소리쳤다.“각서라도 쓸게!”“그까짓 각서가 무슨 소용이 있다고.”김지원이 벌떡 일어나 물컵을 탁자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컵에서 튄 물방울이 식탁 위로 흩어졌고 맺힌 물방울들 사이로 그녀의 날 선 표정이 비쳤다.김지원 쪽에서 꿈쩍도 하지 않자 한채은은 절박한 눈빛으로 신시아를 쳐다보았다.“나랑 지원이는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그 돈은 반드시 돌려받아야겠어요. 앞으로 몇 년간의 생활비를 충당해야 한다고요.”신시아 역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우린 보육원 아이들을 외면할 생각 없어요. 그러니까 자꾸 우리를 궁지로 몰지 말아요.”한채은의 얼굴에 불쾌감이 스쳤다. 두 사람 모두 양보할 기미가 없자 그녀는 이판사판이라는 듯 행패를 부렸다.“나 돈 없어! 오늘이 아니라 평생 못 갚아. 그렇게 사람 하나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라면 어디 경찰에 신고하든 마음대로 해!”돈이 없다니?신시아와 김지원이 지난 세월 피땀 흘려 모은 돈을 이 짧은 시간에 모조리 탕진했단 말인가?“보육원 한 달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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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일단 비밀입니다. 서프라이즈를 기대하시죠. 어쨌든 이번에 제대로 승진하시게 됐어요.]임정현은 능청스럽게 말을 아꼈다.정우진의 비서라는 자리는 사내 직원들에게 이미 정점이나 다름없었다.그런데 여기서 더 올라갈 곳이 있다고?“뭐야? 설마 회사를 통째로 넘겨주기라도 한대? 백영 그룹 대표라도 시켜주게?”김지원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지 웃음을 터뜨렸다.“그럼 우리 남은 평생 먹고사는 건 걱정 없겠는데!”신시아는 핀잔을 주듯 그녀를 흘겨보았다.“설령 진짜 준다고 해도 난 무서워서 못 받아. 애초에 그럴 이유도 없고.”백영 그룹은 단순히 회사 하나가 아니었다. 정씨 가문의 거대한 기반이자 수많은 이사회 임원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키는 기업이다.설령 그게 정우진 개인의 소유라 할지라도 신시아에게 줄 명분은 없었다.“백영 그룹에 상무 자리가 비었었나?”김지원이 무언가 생각난 듯 중얼거렸다.“혹시 너를 상무로 승진시키려는 거 아니야?”신시아는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그룹 내에 상무직이 비어 있는 건 맞지만 절대 불가능한 일이야. 본사 고위직은 다들 이사회와 연줄이 있는 사람들인데 나 같은 게 어떻게 끼겠어?”“아휴, 답답해!”김지원이 발을 동동 굴렀다.“그럼 생각 좀 해봐. 도대체 무슨 직책으로 올리려는 건지! 궁금해 죽겠네 정말...”신시아라고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도무지 가늠되지 않을 뿐이지...그도 그럴 것이 정우진은 늘 상식을 벗어나는 인물이었다.임신 사실이 들통났을 때 해고당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되레 승진이라니....늘 정갈하고 말끔하던 정우진의 사무실이 지금은 매캐한 담배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임정현이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훅 끼쳐오는 독한 연기 때문에 재빨리 입을 가리고 헛기침을 해댔다.겨우 숨을 가다듬은 그는 서둘러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끝까지 열어젖혔다.“대표님, 내일 아침에 조찬 회의가 있습니다. 일찍 들어가 쉬십시오.”퇴근 전, 임정현은 정례적인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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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임정현은 신시아와 장난을 칠 사람이 아니었다.제대로 승진하는 거라 했으니 적어도 나쁜 소식은 아닐 터였다.하지만 기다림의 시간은 여전히 신시아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이틀 뒤, 드디어 인사팀으로부터 메일이 도착했다. 새 직책에 따른 절차를 밟으러 회사로 오라는 내용이었다.아침 일찍 신시아는 단정한 오피스룩으로 갈아입고 회사로 향했다.가는 길에 인사팀 장유민에게 메시지를 보내 도대체 새 직책이 무엇인지 떠보았다.[곽 팀장님이 직접 챙기는 일이라 저 같은 직급은 알 수도 없어요. 아무튼 이번에 시아 씨 승진 얘기가 들리던데 진짜 제대로 전화위복이네요!][그때 그 스캔들은 시아 씨 잘못 아니라고 했잖아요. 듣자 하니 또 은유라 씨가 꾸민 짓이라면서요? 대표님도 아마 마음이 쓰여서 보상해주려는 거겠죠.]장유민의 답장을 확인한 신시아는 휴대폰을 껐다.보상? 그런 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30분 후, 김지원의 차가 백영 그룹 정문 앞에 멈춰 섰다.“딱 30분이야. 그 안에 안 나오면 그냥 확 쳐들어간다.”김지원은 휴대폰에 30분 타이머를 맞췄다. 신시아가 인사 절차를 마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한편 신시아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여기가 회사지 산적소굴이냐?”이에 김지원이 조금의 과장도 없이 진지하게 대꾸했다.“정우진 그 인간 제정신이 아니야.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서 불안하다고. 무슨 일 생기면 당장 전화해. 바로 구하러 갈 테니까.”신시아는 알겠다고 대답한 뒤 건물 안으로 발을 들였다.매끈한 바닥 위를 걷는 플랫 슈즈 소리가 규칙적으로 뛰는 그녀의 심장 소리와 함께 리듬을 맞추듯 울려 퍼졌다.“신 비서님!”문득 데스크에서 그녀를 발견한 직원이 놀란 듯 반가운 기색으로 인사를 건넸다.“다시 출근하시는 거예요?”신시아는 걸음을 늦추고 가볍게 목례했다.“인사 발령받으러 왔어요.”직원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시아가 몸을 돌리자마자 그 직원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소문을 퍼뜨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그 시각, 신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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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신 비서님... 아니, 신 상무님. 발령 때문에 오신 거죠?”정우진의 뒤를 따르던 임정현이 말을 건넸다. 신시아를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가 두 번 잘게 흔들렸다.첫 번째 흔들림은 승진을 축하하는 의미였고 두 번째는 신시아가 드디어 떠나는 것에 대한 안도감, 즉 위기가 해소되었다는 기쁨의 의미였다.하지만 신시아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몇 초 뒤, 엘리베이터 문이 저절로 닫혔다.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버튼을 눌러 다시 문을 열고 나왔다.“대표님, 임 비서님.”신시아는 정우진 앞에 서서 발령 통지서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제가...”“사무실 들어가서 얘기해.”정우진은 서류를 임정현에게 건네고 대표이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한편 서류를 받아 든 임정현이 신시아에게 눈짓을 보내며 낮게 속삭였다.“대표님 사인만 받으면 끝이에요. 바로 떠날 수 있다고요.”정우진은 분명 사인해 줄 터였다.신시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던 사무실은 그날의 흔적이 말끔히 지워진 채 다시 예전처럼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다.정우진은 책상에 기대어 펜을 들고 그녀를 기다렸다.“대표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예전 같았으면 이 자리가 제 분수에 맞든 아니든 기회가 왔을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정우진은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비록 여전히 위태로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아무것도 매듭짓지 못한 채로 떠날 수는 없었다.“율제시 책임자 건 말입니다. 원래 내정자는 한태경 이사님의 아드님 아니었나요?”백영 그룹 내에서 한태경이 가진 영향력은 상당했다.그의 아들은 실력이 좀 부족할지 몰라도 탄탄한 배경을 등에 업고 그 자리에 앉기엔 부족함이 없었다.“한태경이 얼마 전 율제시를 다녀왔더군. 나 몰래 아들을 데리고 상권 거물들을 만나고 다녔어.”정우진은 간결하게 설명했다.율제 지사의 상무직은 남부 지역 지사를 총괄하는 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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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사무실 책상 앞에 앉은 정우진의 얇은 눈꺼풀이 가늘게 떨렸지만 끝내 시선을 올리진 않았다.불과 십여 분 뒤, 회사 밖으로 나온 신시아는 김지원의 차에 올라탔다.“어때? 잘 해결됐어?”김지원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몸을 기울이며 간절한 눈빛으로 물었다.이에 신시아가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다 마무리했어.”“그래서 어디로 가는데?”김지원의 얼굴에 기대감이 폭발했다.“율제시.”대답을 들은 그녀는 입꼬리가 굳어지며 웃음기가 사라졌다.“율제? 거기에 지사가 있었나?”“이제 막 설립된 본사 급 회사야. 국내 남부 지역의 모든 지사를 총괄하는 곳이지.”신시아의 설명은 간결했다.“뭐라고?”귀청이 째질 듯한 비명이 김지원의 입에서 튀어나왔다.“그럼 너 이제 정우진이랑 동급이 된 거야?”신시아는 안전벨트를 매며 담담하게 말했다.“일단 가봐야 알겠지. 한 치 앞도 모르는데 뭘. 여기서 나가는 게 먼저야.”김지원은 몸을 바로 세우고 시동을 걸었다. 엔진 소리와 함께 차가 매끄럽게 도로를 치고 나갔다.“하긴! 경원을 떠나는 일이 계속 미뤄졌는데 드디어 확정됐네. 가서 짐부터 싸자. 언제 출발해?”“임 비서가 이틀 뒤 항공권으로 끊어놨어. 네 것도 같이 예매해 달라고 했으니까 나중에 돈 보내드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같이 떠나.”이틀이라는 시간은 꽤 빠듯했다. 어쨌든 멀리 떠나는 일이었으니 경원에서의 뒷마무리도 만만치 않았다.두 사람은 일단 임보나의 학교에 들렀다. 다행히 임보나는 일상을 완전히 회복한 상태였다.김지원은 그동안 한채은이 보육원 돈을 어디에 썼는지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대신 보육원을 자주 찾는 봉사자에게 사례하고 한채은의 일거수일투족을 계속 감시해 달라고 부탁해 두었다.게다가 이미 짐을 다 싸서 율제시로 부쳐버린 상태였다.“아, 진짜 아쉽네. 지금 일하시는 시터 이모님은 경원을 못 떠나신다니 율제로 가면 다시 구하는 수밖에 없겠다. 그렇게 되면 나 당분간은 일하기 힘들겠는데.”짐을 정리하던 신시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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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한밤중에 잠은 안 자고 뭔 난리야?”박도영은 잠옷 바람 그대로 집 앞에 대기 중이던 정우진의 차에 올라탔다.“안전벨트.”정우진의 입술이 짧게 떨어졌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거칠게 액셀을 밟았다.박도영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안전벨트를 당겨 맸다.“어디 가는데?”“가보면 알아.”정우진은 마디가 선명한 손으로 운전대를 단단히 움켜쥐었다.곧이어 차가 현란한 네온사인이 번지는 도로 위를 미친 듯이 내달렸다.한 시간 뒤, 도착한 곳은 경원 시내의 중심가에 위치한 슈퍼 마이애미 클럽이었다.휘황찬란한 조명이 홀을 뒤덮었고 입구부터 퇴폐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정우진과 박도영은 2층의 한 VIP룸으로 들어섰다. 아래층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리였다.유리창을 닫자 고막을 찢을 듯 울리던 음악 소리가 거짓말처럼 차단되었다.“야, 이런 곳에 올 거면 최소한 말은 해줘야지. 옷이라도 갈아입게.”박도영은 와인색 실크 잠옷 차림이었다. 입구의 경비원들은 막지 않았지만,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오히려 튀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이야말로 괴물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마셔.”정우진이 테이블 위에 놓인 도수 높은 술을 턱짓으로 가리켰다.“귀국 축하주라고 해둘게.”박도영은 할 말을 잃었다.이걸 환영주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누군가에 대한 송별주라고 해야 할지...참, 그러고 보니 ‘누군가’가 지금 여기에 없으니 정말로 박도영을 위한 환영주가 된 셈이었다.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했다.“나 돌아온 지 꽤 됐고 우리 밥도 같이 먹었잖아.”“잔말 말고.”정우진이 보드카 한 병을 통째로 집어 박도영에게 던졌다.이에 박도영은 본능적으로 병을 받아 들었다. 거절할 분위기가 아니라는 걸 직감한 그는 뚜껑을 따고 잔을 채웠다.한 모금 들이키기도 전에 정우진의 나지막한 질문이 룸 안을 파고들었다.“너희 교수님 실력은 국내외 통틀어서 업계 최고라고 할 수 있어?”어두운 룸 안, 정우진의 머리 위로 핀 조명 하나가 위태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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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정우진은 술잔을 들어 올렸다. 마디가 굵고 단단한 손가락이 잔의 표면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목울대가 낮게 울렁였지만, 그는 끝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젖히고 잔을 비워냈다.고요만이 감도는 룸 안, 별안간 문밖에서 소란스러운 말소리가 들려왔다.“어쨌든 이번 건으로 정우진은 제 무덤 판 꼴이지. 이사회에서도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고 은씨 가문 쪽 반응도 싸늘해. 대체 무슨 수로 수습할지 두고 볼 거야.”이어지는 하선재의 비릿한 웃음소리가 복도를 타고 흘러들어왔다.“다들 기다려 봐. 진짜 재미있는 건 이제부터니까. 그 인간 비서 말이야...”발소리는 점점 멀어졌고 그 뒤로 하선재가 무엇을 더 지껄였는지 들리지 않았다.정우진이 신시아를 상무 자리에 앉힌 일은 업계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최고급 안줏거리가 되었다.박도영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그는 하선재가 내뱉은 말을 곱씹고 있었다.“하선재 요새 꽤 얌전하더니.”정우진의 눈빛이 탁하게 가라앉았다.“맞선 보느라 바빠서 딴짓할 여유가 없거든.”박도영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이후 두 사람은 말없이 술잔만 주고받았다.마지막에는 박도영이 비틀거리며 소파에 고꾸라졌고 정우진은 그의 팔을 부축하여 클럽 밖으로 나왔다.길가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을 때, 마침 하선재가 재벌 2세 몇 명을 대동하고 클럽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술을 꽤 마신 듯 몇몇 사람들에게 부축을 받으면서도 몸을 가누지 못해 휘청거리는 하선재였다.술에 취해 풀려버린 두 눈동자가 정우진을 본 순간 훨씬 맑아졌다.그는 자신을 부축하던 사람들을 밀치고 비틀거리며 정우진에게 다가갔다.일행들이 말리려 했지만 하선재가 거칠게 뿌리쳤다.“정, 정우진!”하선재는 비틀거리며 다가오더니 정우진보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삿대질을 해댔다.“너 왜 이렇게 비틀거려? 나 보니까 무서워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겠어?”그의 일행인 재벌 2세들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다들 눈꼴시어서 못 보겠다는 듯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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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깊은 밤, 신시아는 아직 잠들지 못했다.내일이면 새 회사로 첫 출근하는 날, 오늘 김지원과 빈이를 데리고 겨우 율제시에 도착해 둥지를 틀었다.온종일 집을 정리하고 김지원이 빈이를 재우러 들어간 사이, 그녀는 지사 관련 자료와 부서원들의 이력서를 훑으며 업무 파악에 매진했다.경원을 떠나기 전, 하선재는 줄기차게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 한채은에 대해 해명하려 했다.이에 그녀는 모든 연락을 무시했다.조금 전 전화도 막 잠든 빈이가 깰까 봐 급히 받았을 뿐이다.하선재의 술 취한 목소리에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정우진’이라는 이름에 그녀의 손가락이 멈칫했다.“하 대표님, 많이 취하셨네요.”하선재가 꺽 하고 술 냄새 섞인 트림을 내뱉었다.“취중 진담이라고 하잖아. 나 진짜 잘못했어. 제발 부탁이야. 날 외면하지 말아줘. 난 너랑... 너랑 친구 하고 싶단 말이야!”신시아는 술주정뱅이와 더 이상 실랑이를 할 기분이 아니었다.“그래요, 친구 해요. 지금 많이 취했으니 얼른 집에 가서 쉬어요.”“너 지금 분명히 말했다? 친구로서 충고 하나 하는데 네 라이벌은 은유라 뿐만이 아니야. 죽일 놈의 게이가 한 명 더 있어. 박도영 알지? 걔 정우진 좋아하는 것 같더라. 아까도 정우진이 그 자식 위한답시고 날 걷어차더라니까? 하! 정우진도 설마 걔한테 홀려서 게이 되는 건 아니겠지?”하선재의 말은 뒤죽박죽이었지만 맥락은 충분히 읽혔다.만약 신시아가 박도영의 사정을 미리 알지 못했더라면 무슨 소린가 싶었을 터였다.그녀는 휴대폰을 옆에 내려놓고 소리를 최소로 줄인 채 계속해서 자료를 살폈다.수화기 너머로 하선재의 웅얼거림이 희미하게 이어졌다.얼마나 지났을까? 전화기 너머의 소음이 끊겼지만, 통화는 종료되지 않았다.신시아는 통화를 종료하고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그제야 전화를 끊고 몸을 일으켜 방으로 향했다.회사가 제공한 숙소는 복층 구조의 투 룸이었다. 그녀는 1층을 썼고 김지원과 아들 빈이가 2층을 사용했다.두 모자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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