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Kapitel 1 – Kapitel 10

30 Kapitel

제1화

깊은 밤, 신시아가 갓 태어난 아기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드디어 엄마 되었어요. 우리 첫째랍니다!]피드를 올린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반년 전에 이혼한 전남편 정우진이 집 문을 두드렸다.문을 열자 정우진의 침울한 얼굴이 비좁은 방 안의 공기를 싸늘하게 식혔다.신시아는 문고리를 더 세게 잡았다.“무슨 일이에요?”남자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번쩍이는 새 구두가 낡은 복도식 아파트의 빛바랜 꽃무늬 장판 위를 밟자 그 위화감이 공기를 가르고 들어오는 듯했다.그가 이곳을 찾은 것이 처음은 아닌지라 망설임 없이 신시아의 침실로 직행했고 뒤따르던 그의 비서 임정현이 계약서 한 부를 그녀에게 건넸다.“오랜만입니다, 신 비서님. 이건 대표님 전담 변호사가 밤새 준비한 친권 합의서입니다.”신시아는 계약서를 받아서 펼쳐 보았다.[정씨 가문의 장손은 반드시 정씨 가문에서 양육해야 한다.]길고 긴 설명 속에서 이 문장만 비수처럼 박혀 들었다.예상대로 정우진은 친권을 다투려 하고 있었다.그도 그리 무정하지만은 않았다. 신시아가 아이를 만 세 살까지는 키울 수 있다고 적어놨으니까.물론 그녀가 원한다는 전제하에 성립되고 만약 원치 않으면 정우진은 지금 당장이라도 아이를 데려갈 기세였다.신시아는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지고 그 통증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멍하니 넋 놓고 있을 때 정우진이 안방에서 나왔다.“아이는?”2년 전 그와 결혼했을 때부터 신시아는 이 남자가 과묵하고 냉랭한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정우진은 나름 남자다운 면도 있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신시아와 관계를 맺은 후 책임을 지겠다며 결혼을 제안해왔다.신시아가 결혼을 승낙했던 이유는 6년이라는 짝사랑의 서사 때문이었다.다만 지금 이 순간까지 말을 아끼는 남자의 모습에 그녀는 가슴이 시렸다.‘정말 더 할 말이 없는 걸까?’임정현이 안쓰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분위기가 점점 싸늘해지자 눈치껏 문밖을 나섰다.비좁은 공간, 그리고 고요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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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신시아는 보육원 출신 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케이스였다. 우수한 성적 덕분에 국내 최고 대학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고 그곳에서 정우진을 만났다.수많은 부잣집 도련님들 사이에서 그는 단연 눈에 띄었다.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그녀의 시선을 단번에 장악한 사람이 바로 정우진이었다.신시아는 지난 2년간의 결혼 생활과 밤마다 나누었던 그 뜨겁던 순간들만으로 평생을 버틸 추억이라 치부하려 했다.그런데 하필 배 속에 아이가 생겨버렸다.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혈육을 차마 지울 수는 없었다.정우진이 아이를 빼앗아갈까 봐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론 그가 혹시 은유라의 눈치를 보느라 아이의 존재조차 부정하지 않을까 하는 요행을 바라기도 했다.그런데 결국...신시아는 한숨을 내쉬며 평평한 아랫배를 내려다보았다.정우진이 그날 밤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만반의 준비를 다 해야 한다.그가 모르는 곳에서 몰래 아이를 낳으면 괜찮지 않을까?설령 들킨다 해도 이번 일을 겪었으니 다음부턴 진짜 아이가 생겼다 해도 찾아오지 않겠지...연말, 백영 그룹의 연간 보고회 날.본사로 향하는 신시아의 손에는 연간 업무 보고서와 함께 사직서가 들려 있었다.그녀는 떠나기로 결심했다.경원에서, 그리고 정우진 곁에서 가능한 가장 먼 곳으로!회의 시간은 9시 10분, 하지만 9시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우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아까 들어올 때 봤는데 은유라 씨가 대표님 사무실에 있더라고요.”다른 지사 책임자가 나직이 말했다.“대표님 왜 늦으시나 했더니 은유라 씨 챙기느라 바쁜 모양이네요.”정우진은 늘 일 중심이었고 시간 약속에 엄격하기로 유명했다.하지만 은유라의 등장이 그의 그 철저했던 원칙마저 깨뜨려버렸다.신시아는 그제야 진정한 편애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그녀는 몸을 일으켜 회의실 창가로 다가갔다. 커튼을 살짝 걷어내고 틈새로 맞은편의 대표이사실을 훔쳐보았다.대표이사실의 커튼은 반쯤 닫혀 있었다. 온통 짙은 회색으로 정돈된 실내, 그 사이로 은은하게 비치는 선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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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은유라가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임정현은 한창 비행기 티켓을 예매 중이었다.“오빠는요? 비행기 티켓은 왜 예매해요?”“휴식실에 계세요. 지사에 급한 일이 생겨 대표님께서 급히 출국하셔야 합니다.”임정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은유라가 가방에서 여권을 꺼냈다.“내 것도 같이 예매해줘요. 따라갈 테니까.”“네?”임정현이 당황한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이에 은유라는 당연하다는 식으로 대꾸했다.“왜요? 우진 오빠한테 직접 확인이라도 받으라고요?”지난 반년, 정우진이 가는 곳엔 늘 은유라가 있었다.임정현은 씁쓸하게 그녀의 여권을 받아 들었다.사무실 한쪽에 뜯겨진 봉투가 보였는데 정우진이 안에 든 물건을 이미 가져간 모양이었다.은유라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잠시 후, 정우진이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서류 가방을 든 채 밖으로 나왔다.그는 신시아가 남긴 사직서를 읽지도 않고 대충 침대 옆에 두었다가 짐을 정리하던 와중에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신시아는 인터넷으로 임신 중 주의사항을 검색하다가 뜬금없는 금융 뉴스 알림창을 보게 되었다. 정우진의 출국 소식이었다.연말 회사 업무가 한창인 시기에 은유라를 데리고 해외라니.매체들은 그들이 결혼 준비를 위해 예식장을 둘러보러 간 것이라며 연일 떠들썩했다.지난 반년 동안 그들에 관한 스캔들이 끊임없이 쏟아졌지만 신시아는 단 한 번도 기사를 클릭해 본 적이 없었다.그녀는 필사적으로 현실에서 도피하고 있었다.반년을 도망쳤으나 한 달 전 정우진을 마주했을 때 끝내 그를 밀어내지 못하고 다시 침대를 공유하고 말았다.이제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떠날 사람인데 차라리 일찍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고 하루라도 빨리 단념하는 게 나을 테니까.그녀는 기사를 클릭하고 사진을 확대했다.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핑크색 캐리어를 끌고 있었다. 팔꿈치에는 여자의 핸드백까지 걸친 채였다.그가 서 있는 곳은 여자 화장실 앞, 딱 봐도 은유라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모두가 짐작할 수 있었다.백영 그룹의 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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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거실에 있던 몇 사람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위층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정우진의 어머니 기현주가 다급하게 계단을 내려왔다.쉰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그녀의 몸매는 30대처럼 완벽하게 관리되어 있었다.그녀는 빨간 숄 하나만 어깨에 걸친 채 영하 10도에 달하는 바깥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님을 맞으러 나섰다.눈이 부시던 헤드라이트가 꺼지자 신시아는 비로소 정우진과 함께 차에서 내리는 은유라를 똑똑히 보게 됐다.평소 신시아 앞에서는 고고하게 거리만 두던 기현주가 은유라에게는 제 팔짱을 흔쾌히 내어주고 있었다.정우진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트렁크에서 쇼핑백 몇 개를 꺼내더니 두 여자의 인사치레가 끝나기를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그 모든 광경이 신시아의 눈에는 못내 따갑게 박혔다.그녀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갑자기 바늘방석에 앉은 듯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상대가 새 연인을 데리고 온 마당에 그녀가 계속 여기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하지만 이제 와 자리를 피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꼼짝없이 정면으로 마주쳐야 할 판이었다.“우진이가 잘 안 챙겨줬니? 왜 이렇게 말랐어?”기현주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얘한테 ‘구박’이라도 받아서 살이 빠진 거면 내가 무슨 면목으로 너희 집안 사람들을 마주하겠어?”또각거리는 구두 소리와 함께 은유라의 애교 섞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엄마는 제가 우진 오빠 일을 방해할까 봐 걱정이지, 살이 빠졌는지는 관심도 없으실걸요? 어머님, 우리 어릴 때 산부인과에서 바뀐 거 아니에요? 두 분 다 자기 자식보다 서로의 자식만 더 챙기시잖아요!”기현주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은유라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즐겁게 이어지던 두 여자의 대화는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뚝 끊겼다.쇼핑백을 들고 뒤따라 들어오던 정우진 역시 신시아를 보자 걸음을 멈추고 미간을 구겼다.그들의 등장과 동시에 거실을 채우고 있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산산조각이 났다.정확히 말하자면 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깨뜨린 사람은 오롯이 신시아 한 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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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신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패딩 자락을 끌어당겨 아직 평평한 배를 가렸다.“했어요 출근. 올해는 유독 추위를 타네요. 나이를 먹었나 봐요.”그녀는 자리에 앉으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제 노트북이 필요하신가요? 그럼 차에서 가져올게요.”“내 거 써.”정우진이 노트북을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잠금 화면에 남녀의 뒷모습이 담긴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띄워져 있었다.신시아는 한눈에 알아봤다. 남자는 정우진이고 여자의 실루엣을 보아 은유라와 닮아 있었다.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곧장 파일을 열어 기계적으로 회의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업무에 있어서만큼은 두 사람의 호흡이 여전히 완벽했다.정우진의 눈짓 한 번에 그녀는 어떤 항목을 강조하고 중점적으로 살펴야 할지 즉각 알아챘다.또한 그가 가벼운 손짓을 하면 보고를 끊고 다음 순서로 넘겼다.반년의 공백이 무색할 만큼 찰떡궁합이었다.어느새 정우진의 미간에 잡혔던 주름이 서서히 펴졌다.그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업무가 아닌 신시아에게로 향했다.딱딱한 오피스룩을 벗어던진 그녀의 얼굴은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웠다. 젊고 화사한 그 미모는 새삼 압도적이었다.한때 얇은 이불을 꽉 쥐고 있던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실내 열기 때문인지 패딩을 벗지 않은 그녀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붉게 상기된 뺨 위로 길고 짙은 속눈썹이 깜빡거렸다.신시아는 첫눈에도 예쁘지만, 자세히 볼수록 더 빠져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어느덧 정우진은 넋을 잃고 그녀를 쳐다보았다.화면 너머 상대방의 보고가 끝났음에도 남자는 미동조차 없었다.키보드를 두드리던 신시아는 의아한 듯 고개를 들었다가 그와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쳤다.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서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마지막 몇 자까지 타자를 마친 후 그녀는 옷매무새를 다듬었다.“더우면 벗어. 회의 길어질 테니까.”그녀의 작은 움직임을 눈치챈 정우진이 한 마디 툭 내뱉고는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다만 신시아는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는지 좀처럼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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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정다슬은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현주가 방을 나가자마자 그 뒷모습을 향해 입을 삐죽거렸다....한편, 은유라의 손을 잡고 주방으로 향하던 정우진과 서로 밀착해 앉아 있던 두 사람의 잔상이 신시아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차라리 보지나 말걸...’돌아오는 길에서 신시아는 찬 밤바람을 맞으며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허기진 배를 달래려 편의점에서 따뜻한 죽 한 그릇을 먹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이어진 며칠 동안 정우진과 은유라의 결혼 임박 뉴스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정작 신시아를 초조하게 만든 것은 사직서에 대한 아무런 피드백이 없다는 점이었다.평소 친분이 있던 인사팀 장유민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장유민은 그녀의 사직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인사팀장 보조인 장유민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건 정우진이 아직 결재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신시아는 곧장 차를 몰아 백영 그룹 본사로 향했다.운이 나쁘게도 정우진은 회의 중이었다.비서실 직원은 회의실에서 기다리라고 안내했지만 30분쯤 지났을 때 나타난 건 정우진이 아닌 은유라였다.시즌 한정판 명품 백을 걸치고 화사한 미소를 띤 그녀는 이미 ‘안주인’이라도 된 양 비서실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대표이사실로 들어가려던 은유라의 시선이 응접실의 신시아에게 꽂혔다.그녀는 비서 주하영을 불러 낮게 속삭였다.“저 여자 뭐죠?”“신 이사님이요? 대표님 뵈러 왔는데 예약 없이 오셔서 일단 기다리시라고 했어요.”주하영이 아부하듯 입꼬리를 씩 올렸다.손톱 끝을 매만지던 은유라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녀는 주하영에게 조용히 무언가를 속삭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주하영이 응접실로 들어섰다.“신 이사님, 대표님께서 시간이 안 나신다니 이만 돌아가 보세요.”신시아가 고개를 들었다.“대표님 회의는 아직 안 끝난 거로 아는데 그게 정말 대표님 말씀인가요?”주하영은 당황해 말문이 막혔다.이 상황이 누구의 장난질인지 단번에 눈치챈 신시아는 계속 말을 이었다.“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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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신시아가 발걸음을 멈췄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하더니 이내 얼굴이 굳어졌다.“왜 그래요?”이에 임정현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대표님께 직접 본인 불러 달라고 신청한 거 아니었어요?”신시아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저 사직서 내러 온 거예요.”임정현이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네? 갑자기 왜요?”“개인적인 이유예요.”그녀는 딱 잘라 말하고는 덧붙였다.“혹시 인사 발령 취소할 수 있을까요?”“그것 또한 대표님 허락을 받아야죠.”임정현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신시아는 차오르는 무기력함에 미간을 짚었다.“연말이라 한창 바쁠 때잖아요. 사표 얘기는 연휴 지나고 다시 하고 일단 가서 짐 정리부터 해요. 오자마자 바로 할 일이 생겼네요. 은유라 씨가 오후에 들어올 때 밀크티 한 잔 사다 달래요.”“알겠어요.”임정현의 권유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짐 챙기러 지사로 향했다.오후 한 시, 신시아는 정확히 비서실 자리에 앉았다.짐을 다 정리하고 밀크티 한 잔을 들고서 대표이사실로 향했다.오후의 햇살이 짙게 내리쬐는 사무실 안, 흰 셔츠 차림의 정우진이 앉아 있었다.잘생긴 얼굴에 날렵한 턱선까지, 남자는 차가운 위엄과 귀족적인 기운을 내뿜었다.한편 은유라는 휴게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탁자 위에는 온갖 주전부리가 널브러졌다.신시아가 들어서자 정우진은 힐끗 쳐다볼 뿐 다시 일에 몰두했다.그녀는 은유라에게 다가갔다.“은유라 씨, 주문하신 음료입니다.”“놔두세요.”은유라가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밀크티를 내려놓고 신시아는 곧장 사무실을 나섰다.자리로 돌아가 물건들을 정리하기도 전에 내선 전화가 울렸다.받아보니 정우진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그녀는 수중의 물건을 내려놓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문을 열고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정우진이었다.그는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려 은유라 쪽을 보라는 듯 턱짓했다.신시아는 그 시선을 따라가다가 은유라의 불만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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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연회장.정우진이 발길을 옮기는 곳마다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그는 몇몇 상계 원로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틈틈이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정중히 응대했다.“우진 오빠.”은유라가 그에게 다가와 팔짱을 꼈다.정우진의 팔이 아주 잠깐 뻣뻣하게 굳었다가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부드럽게 풀렸다.“마침 잘 왔어. 인사해, 이분은 전 회장님이야.”은유라는 정우진의 팔에 살며시 몸을 기댄 채 그가 소개하는 상대에게 우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전 회장님, 안녕하세요. 아버님께 익히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이에요.”“허허, 유라 양이 이렇게 컸나. 어릴 때 내가 안아주기도 했는데 말이야.”전 회장과 은유라가 덕담을 주고받는 사이 정우진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주변을 훑었다.신시아가 보이지 않자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오빠.”이때 은유라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속삭였다.“사람들이 자꾸 우리 언제 결혼하냐고 물어봐.”어느새 대화의 주제는 그쪽으로 흐르고 있었다.정우진은 입꼬리를 올렸지만 희미한 눈웃음만 지을 따름이었다.“곧 하겠죠. 그때 꼭 와서 축하해 주세요.”주변 사람들이 환호하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비즈니스 파티였지만 정계와 재계의 정점에 선 정우진의 사생활이 언급되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최고조로 달아올랐다.그때, 뭇사람들 속에서 누군가 외쳤다.“정 대표님, 저기 오는 분 신 비서님 맞나요?”탄성과 의아함이 섞인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사람들의 입에서 짧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신시아였다.그녀가 입은 검은색 드레스는 화려함 대신 절제된 우아함이 흘렀다.은유라가 골라준 그 촌스러운 드레스에서 문제가 되었던 알록달록한 리본을 전부 떼어내고 너무 벌어진 재봉선은 과감히 정리해 등을 시원하게 드러냈다.잘록한 허리 라인과 그 위로 드러난 아름다운 쇄골, 살며시 비치는 뽀얀 살결은 그녀가 가진 차분한 분위기 속에 감출 수 없는 설렘을 더해주었다.드레스가 훼손된 상태였지만 큰 브랜드에서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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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술자리에서 마주칠 때마다 하선재는 어떻게든 정우진에게 시비를 걸려고 들었다.하지만 그의 상대가 될 리 만무하다는 걸 잘 알기에 비겁하게도 정우진의 주변 사람들을 건드리는 차선책을 택했다.예를 들자면 신시아처럼...신시아는 방향을 틀어 후문으로 빠져나가려 했다.이를 눈치챈 하선재가 응대하던 사람들을 밀쳐내고 쏜살같이 그녀를 따라왔다.신시아가 연회장을 막 빠져나왔을 때, 그는 좁은 구석에서 그녀를 가로막았다.“어머 이게 누구야? 신시아 씨? 난 또 잘못 봤나 했네.”정우진은 말수가 적고 냉철한 편이다. 잘생긴 외모에 훤칠한 몸매까지 갖춰 완벽 그 자체였다.그에 반해 하선재는 이목구비가 화려하고 잘생겼지만, 말끝마다 헛소리를 늘어놓는 게 딱 주먹을 부르는 스타일이었다.“어라? 찬밥 신세 된 거 아니었어? 왜 또다시 돌아왔대?”신시아는 정우진의 유능한 조수였기에 재계 인사들은 그녀를 익히 알고 있었다.반년 전, 그녀가 갑작스럽게 지사 이사로 발령 났을 때만 해도 말이 많았다. 명목상으론 승진이었지만 실상은 좌천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사내에선 그녀가 무슨 큰 사고라도 쳤길래 저런 식으로 내쳐졌냐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업무상 필요해서요.”신시아는 질문에 짧게 답하고 그를 지나치려 했다.“하 대표님,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이때 하선재가 팔꿈치를 벽에 기댄 채 그녀의 길을 막았다.“너희 정 대표가 너무 바빠서 인사할 틈이 없네. 네가 대신 술 한 잔 따라봐.”그는 신시아가 들고 있던 온수 한 잔을 낚아채고는 그 자리에 있던 레드 와인을 들이밀었다.“원샷이야.”경원에서 정씨 가문 다음가는 재력인 하씨 가문이었기에 하선재는 이곳에서도 웬만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예전 같았으면 신시아도 그의 체면을 봐서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 마셨을 것이다.하지만 오늘은 달랐다.“하 대표님, 제가 몸이 안 좋아서 약 먹는 중이라 술은 마시면 안 돼요.”이런 변명은 하선재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얼굴이 홍조를 띠고 있는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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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정 대표, 이제 안 되겠는데.”하선재가 두 손을 활짝 펴 보이며 정우진에게 다가가 눈웃음을 지었다.“신 비서가 당신한테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아.”정우진은 훤칠한 몸을 벽에 기댄 채 손가락 사이에서 느릿하게 타들어 가는 담배 끝을 응시했다.그의 시선이 신시아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창밖의 음울한 하늘로 향했다.“꺼져.”얇은 입술 사이로 퉁명스러운 말을 내뱉는 남자, 그럼에도 하선재의 미소는 옅어지지 않았다.정우진의 어깨에 올린 손을 떼어내고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항복하는 시늉을 했다.“알았어, 알았다고! 정 대표 카리스마 여전해. 그럼 두 분 이야기 나누세요.”그는 신시아에게 일부러 환한 미소를 던졌다.“괜찮아. 겁먹을 거 없어. 하늘이 무너져도 내가 받쳐주잖아.”하선재는 뻔히 구경꾼 행세를 하며 일이 아무리 커져도 상관없다는 식이었다.한편 정우진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으나 소용돌이처럼 깊은 눈빛은 이미 그의 불쾌감을 숨기지 못했다.복도는 순식간에 정적에 잠겼다. 신시아는 정우진으로부터 3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섰다.그녀는 정우진이 담배 한 개비를 다 태우는 동안 묵묵히 지켜보았다. 옅은 담배 연기가 그의 수려한 이목구비를 부드럽게 휘감았다.“대표님.”신시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저는 단지 하 대표님의 귀찮은 시중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 명함을 받았을 뿐입니다.”정우진은 마지막으로 담배를 깊게 빨아올리고 꽁초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이어서 눈썹을 살짝 치키며 담담하게 쏘아붙였다.“그래?”신시아의 맑은 눈동자에 미묘한 의혹이 스쳤다. 그가 이토록 건조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으니까.이건 반신반의하는 태도일까?“네.”그녀는 고개만 끄덕일 뿐 더 이상 해명하지 않았다.“정 대표님!”연회장 안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다.“은유라 씨가 찾으십니다!”정우진이 몸을 곧추세웠다. 빳빳하게 잘 다려진 정장이 그의 몸에 완벽하게 달라붙었다.그는 몸을 돌려 연회장으로 들어섰다.신시아가 뭐라 더 말하려고 그의 뒤를 따라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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