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Chapter 271 - Chapter 280

358 Chapters

제271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걸까. 신시아 배 속의 아이가 누구의 자식이든 그게 대체 정우진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꺼져.”정우진의 얇은 입술에서 단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임정현은 몸을 움찔하면서도 곧장 나가지 않고 덧붙였다.“회사에서 나가라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이 사무실에서 나가라는 말씀입니까?”“가서 알아보고 오라고.”정우진의 눈빛이 얼음처럼 차가워졌고 얼굴에는 희미한 분노가 서렸다.임정현은 고개를 돌려 사무실을 나섰다. 대표이사실을 벗어나자마자 그는 휴대폰을 꺼내 하선재에게 [OK] 라고 답장했다.그들이 신시아의 임신 사실을 캐고 있다는 걸 하선재는 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걸까?어쨌거나 방금 임정현이 대표이사실로 들어가기 직전, 하선재는 갑자기 그에게 문자를 보냈었다.신시아 배 속의 아이는 역시나 정우진의 아이였다.이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질 판이었다.하선재는 평소의 체면을 다 내려놓고 이 사실을 정우진이 알게 되었을 때 벌어질 끔찍한 파장을 임정현에게 조목조목 읊어댔다. 정우진에게 득이 될 게 단 한 가지도 없다는 논리였다.임정현은 그 말을 새겨들었다. 자신의 목숨줄이 걸린 문제이니까.정우진을 모시는 것은 호랑이를 모시는 것과 같아서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임정현의 목숨에 영향을 미쳤다.그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하선재에게 답장을 보낸 후, 임정현은 신시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몇 번 울리지도 않아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다시 걸었더니 신시아는 또다시 끊고서 메시지를 보내왔다.[죄송해요, 지금 바빠서요. 용건 있으시면 문자로 남겨주세요.]회사도 안 나가는 신시아가 도대체 뭘 하길래 이렇게 바쁜 걸까?임정현은 급히 사람을 시켜 조사했고 한채은과 얽힌 보육원 소동의 전말을 단번에 알아냈다.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다시금 발걸음을 옮겨 대표이사실 문을 두드렸다.“지금 신 비서님과 김지원 씨가 돈을 돌려받으려고 보육원에서 원장과 대치 중이라고 합니다.”정우진이 쥐고 있던 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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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2화

한채은이 벼랑 끝에 몰린 만큼 신시아의 심경 또한 복잡하게 일렁였다.그녀는 복잡한 눈빛으로 임정현을 바라보았다.한편 임정현은 평온한 얼굴로 그녀와 몇 초간 눈을 맞추더니 서류를 건넸다.“신 비서님, 서류 여기 있습니다. 대표님이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니 되도록 빨리 처리하고 나오시죠.”‘정우진이 직접 왔다고?’신시아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리고 눈가까지 미세하게 경련이 이는 듯했다.“알겠어요. 고마워요.”그녀는 무심코 서류를 받아 들고 임정현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배웅했다.옆에 있던 김지원은 임정현의 등에 구멍이라도 낼 기세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서류 여기 있으니까 직접 읽어봐요.”신시아가 한채은의 코앞에 서류를 툭 던졌다.“5분 줄 테니 잘 생각해 봐요.”한채은은 서류를 낚아채듯 받아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내용을 확인하는 그녀의 얼굴이 점점 흙빛으로 변해갔다.낱낱이 파헤쳐진 혐의들은 전부 사실이었고 변호사는 전문 지식을 동원해 그녀의 행위를 더욱 엄중한 죄목으로 옭아맸다.5분 후, 신시아와 김지원이 방에서 나왔다.“일단 이 4천만 원으로 그 팬분한테 빌린 돈 갚아.”신시아는 김지원을 다독이며 덧붙였다.“난 정 대표님이 왜 불렀는지 확인해 볼 테니까 그사이에 이 일부터 처리해.”한채은은 우선 4천만 원을 입금했고 나머지는 이틀 뒤에 돌려주기로 합의했다.김지원이 눈동자를 굴리며 보육원 입구에 세워진 롤스로이스를 곁눈질했다.“정우진이 왜 불렀대? 우리가... 아니, 네가 곤경에 처한 걸 어떻게 안 거야? 널 도와주는 건 대체 무슨 속셈이지?”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신시아가 대답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뿐이었다.“보나 병원 문제로 박도영 씨한테 도움을 청했는데 그분이 해결이 안 되니 정 대표님께 연결해주더라고.”하지만 따져보면 임보나의 병원 문제는 이미 다 끝난 일이다. 정우진이 굳이 여기까지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신시아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지만 복잡한 머릿속은 좀처럼 정리되지 않았다.“너 인사발령 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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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3화

몇천만 원, 신시아가 지난 몇 년간 피땀 흘려 모은 전 재산을 정우진은 고작 ‘사소한 일’이라고 치부하는 걸까?그렇다면 임신은 그에게 ‘큰일’이 될 수 있을까?남자의 언짢은 기색이 파도처럼 밀려왔다.마치 한채은이 앗아간 돈이 정우진의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신시아는 입술 안쪽을 가볍게 깨물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인사발령은 꽤 큰일이죠. 대표님, 생각 다 마치셨나요?”“아주 떠나고 싶어 안달이야?”정우진이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게다가 무조건 떠난다는 태도까지 보이네?”차 안에는 적막이 내려앉았다.그의 말이 너무나 직접적이고 단호해서 신시아는 부정조차 할 수 없었다.“더 이상 여기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신시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결심만은 단호했다.“그리고 저는 이미 대표님과 은유라 씨한테 충분히 폐 끼쳐드렸다고 생각하는 바예요.”최근 은유라의 움직임이 잦아들긴 했다.하지만 폭풍 전야의 고요란 그런 법이다.신시아는 은유라의 눈엣가시이니 때가 되면 반드시 뽑아내기 마련이다.그러니 이곳에 계속 머무는 건 눈치 없는 처사였다.핑곗거리야 수없이 많지만 단 하나, 임신은 결코 말할 수 없었다.정우진은 아직도 그녀가 정말 임신했는지 의심하고 있었다.이 여자의 속내를 파헤칠 길이 없으니까.굳이 숨기지 않아도 될 일을 숨긴다는 것은 필시 구린 구석이 있다는 뜻이었다.“시아야,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없니?”정우진이 에둘러 압박을 가했다.“내가 눈에 거슬리는 건 절대 못 참는 성격인 거 알지?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 거야.”신시아의 목구멍이 꽉 막힌 듯 조여왔다. 마치 솜뭉치를 가득 집어넣은 것처럼 숨이 막혔다.그녀는 정우진을 빤히 응시했다. 맑고 투명하던 눈동자가 남자의 깊은 눈빛에 물들어 서서히 흔들렸다.“제가...”설마 이 남자가 뭔가 눈치챈 걸까?신시아는 이 순간이 올 것을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피할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양육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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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4화

“아니.”이게 벌써 몇 번째 똑같은 질문일까? 김지원은 한결같이 물었었고 그때마다 신시아도 늘 같은 대답이었다.“아직.”김지원은 알겠다며 짐짓 안타까운 척했지만, 이제는 거의 일상이 된 대답이라 익숙해졌다.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김지원이 볼 때 신시아가 경원을 벗어나는 일은 고난도 라운드를 통과해 마침내 미션을 클리어하는 모바일 게임과도 같았다.온갖 고초를 겪고 이제 다 왔나 싶으면 또 다음 라운드가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끝은 나겠지, 어쩌면 내일 좋은 소식이 들려오고 모레면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거란 바람으로 버티는 일상이었다.“돈은 돌려줬어?”신시아는 더 이상 정우진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남자를 제대로 파악한 적이 없었다.별안간 김지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돈을 보내줬는데 안 받았어. 대신 밥 사겠다고 하더라.”신시아가 눈살을 찌푸렸다.“그럼 만나자는 거잖아?”“응.”김지원도 머리가 아팠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썼다.“뭐, 날 그렇게 쉽게 믿고 돈을 빌려준 사람이잖아. 사기꾼일지도 모르는데 따지지도 않고 말이야. 성격도 시원시원하던데 그냥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거겠지.”신시아가 되물었다.“그래서 알겠다고 했어?”이에 김지원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요즘 너무 바빠서 안 된다고 했어. 그러니까 안 바쁠 때 보자고 하더라.”정확한 약속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상대가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이상 그와의 만남은 피할 수 없었다.“방법 찾아서 꼭 돈을 돌려줘. 가능하면 만나지 말고.”신시아는 김지원이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김지원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응, 알아. 한채은 쪽은 내가 계속 지켜볼게. 우리 둘이 세상 험한 꼴 다 겪으며 살아남았는데 고작 한채은 따위한테 발목을 잡히다니. 정말 제대로 된 뒤통수지.”그녀는 한채은에게 완전히 실망했다.한바탕 두들겨 패주고 싶다는 것은 오롯이 돈 때문만이 아니었다.돈도 중요했지만 임보나가 더 큰 비중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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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5화

결혼 준비며 드레스며 정우진은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은유라더러 다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그가 일 때문에 바쁘다면 참을 수 있겠지만 정작 이 남자는 신시아의 일에 신경 쓸 틈이 있었다.“만약 내가 결혼을 앞당기고 싶다고 하면?”정우진이 무심하게 답했다.“그럼 그냥 생각만 해.”은유라는 말문이 턱 막혔다.남자는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고는 손을 휘휘 저어 눈앞의 자욱한 연기를 걷어냈다.“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이만 들어가 봐.”그는 울먹이느라 붉게 충혈된 은유라의 눈을 보며 위로했다.곧이어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이 남자...은유라는 입술을 꽉 깨물고 그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사라지는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봐야 했다.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병실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병실 안, 손연경은 침대에 앉아 안색이 꽤 좋아 보였다.그녀는 붉은색 염주 팔찌를 기현주에게 보여주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얼마 전에 산에 가서 애들 결혼 문제로 기도를 올렸는데 스님께서 조금 불길하다고 하시지 뭐예요. 이걸 사서 지니고 있으면 액운을 눌러준다고 하셨는데... 아무래도 결혼식을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나도 마음이 놓이죠.”기현주가 염주를 보며 물었다.“얼마 주고 샀는데요?”“440만 원이요.”손연경이 대답했다.“앞으로 이런 뻔한 사기는 좀 그만 당해요.”기현주의 얼굴이 단번에 굳었다.이에 손연경은 주눅이 든 듯 덧붙였다.“내가 원래 의심이 많잖아요. 그 스님 말을 들으니까 너무 무서워서 그랬어요. 약혼식 때도 사고가 났는데 결혼식에는... 혹시 문제가 생기진 않겠죠?”차라리 말이나 말지! 약혼식 얘기가 나오자 기현주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그 일은 따지고 보면 은유라가 자초한 일 아니던가?“아이고, 됐어요. 우진이가 약속한 일을 언제 번복한 적 있었나요? 결혼 날짜도 정해졌으니 제발 좀 적당히 해요. 앞으로 또 이런 일로 소란 피우면 나도 더는 뒷수습 못 합니다.”기현주는 말을 마치고는 병실로 들어서는 은유라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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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6화

“엄마, 나 우진 오빠 정말 좋아해요. 집안이나 본인 조건이나 누구보다 완벽하잖아요. 무조건 오빠랑 결혼할 거예요!”‘무조건’이라는 세 글자에 은유라의 목소리가 유난히 힘이 들어가 있었고 그 어느 때 보다 또렷했다.하지만 손연경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너무 위험해. 만약 이 사실을 결혼 전에 정씨 가문에 들킨다면 너랑 우진의 혼사는 그대로 끝장이야. 게다가 결혼하고 나서도 우진이한테 어떻게 설명할 건데?”“걱정 마세요. 우진 오빠만 알면 돼요. 결혼 후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고요.”은유라는 손연경의 손을 꽉 붙잡았다.“제가 그래서 기다리기 싫다는 거예요.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두렵다고요, 엄마.”손연경의 머릿속이 윙윙거렸다. 그 문제는 자신의 병보다도 더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었다.“엄마한테 시간 좀 줘...”그녀는 눈앞이 캄캄해지면서도 애써 가슴을 쓸어내렸다.한참 후에야 손연경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은유라의 손을 토닥였다.“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어. 아무런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네가 정씨 가문 안주인 자리를 굳히는 건 확정된 거나 다름없어. 엄마 말 잘 듣고 나중에...”...기현주가 미리 문자를 보낸 덕에 정우진은 병원 밖에서 그녀를 기다렸다.기현주는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 문이 완전히 닫히기도 전에 그녀의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요즘 너 왜 그래? 결혼이 코앞인데 유라와의 관계가 오히려 더 안 좋아진 것 같잖아. 애를 불안하게 만들어서 자꾸만 일을 벌이고 있어.”정우진은 시동을 걸고 마디가 선명한 손으로 핸들을 돌리며 붐비는 도로에 합류했다.“그건 걔가 너무 앞서 생각해서 그런 거예요.”“네 성격이 워낙 차가우니 유라가 불안감을 느끼는 건 당연해. 결혼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좀 잘해줘.”기현주는 더 이상 예전처럼 은유라를 감싸주지 않았다.이들이 만나고 약혼하고 결혼 날짜를 정하기까지 끊임없이 벌어진 사건들은 정씨 가문의 명성과 백영 그룹의 이익을 훼손했고 정우진에게도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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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7화

“비켜.”정우진이 얇은 입술을 가볍게 열며 두 글자를 툭 내뱉었다. 그 한마디에 짓눌린 위압감이 정다슬을 덮쳐왔다.그녀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알겠다고 대답한 후 문을 열어주었다.방안은 온통 연분홍색으로 가득했는데 정우진의 점잖고 노련한 분위기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모습이었다.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안으로 들어가 침대 끝 소파에 앉았다.“말해봐. 며칠째 출근 안 하는 이유가 뭐야.”“할머니한테 못 들었어?”정다슬이 되물었다.“네 입으로 직접 듣고 싶어.”정우진은 다리를 꼬고 앉아 양손을 깍지 낀 채 자연스럽게 무릎 위에 올렸다.손끝을 천천히 돌리는 그의 모습에는 빈틈없는 엄격함이 서려 있었다.정다슬이 인상을 찌푸렸다.“부서 팀장이 나 좋다고 쫓아다니길래 거절했더니 대놓고 괴롭히잖아. 오빠, 나 부서 좀 옮겨주면 안 돼?”권미희에게는 차마 하지 못한 말이었다.그 사실을 알았다면 권미희는 당장 회사로 쳐들어가 팀장의 멱살을 잡고 주제 파악 좀 하라고 윽박지를 게 뻔하니까.그렇게 되면 자신의 신분이 탄로 날 테고 회사에서 2년 정도 ‘언더커버’ 놀이를 하려던 계획도 끝장날 터였다.“알았어.”정우진은 부서 이동에 대한 확답을 피했다.“그 팀장 처리해 놓을 테니 정리되는 대로 다시 출근해.”정다슬의 두 눈이 반짝였다.“역시 빽이 있으니까 좋네! 언제쯤 처리할 거야? 나 내일 바로 출근하면 돼?”“서두를 거 없어.”정우진이 잠시 말을 끊었다가 덧붙였다.“출근한 뒤로 제대로 쉬지도 못했잖아. 집에서 이틀 정도 더 놀아.”“?”정다슬이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뭔가 이상했다. 평소 자신을 부려먹기만 하던 인간인데 선뜻 이틀이나 쉬라고 권하다니?“시아가 인사발령을 신청했어. 며칠 뒤면 떠날 거야. 시간 내서 한번 만나봐.”정우진이 의미심장한 투로 말했다.한편 정다슬은 이미 그 소식을 전해 들은 터였다.“안 그래도 시아 언니 만나보고 싶었어. 오빠한테 폐 끼칠까 봐 망설인 거야.”“무슨 폐를 끼쳐?”정우진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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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8화

신시아의 호흡이 턱 멎었다. 젓가락을 쥔 손끝이 가늘게 떨리더니 결국 식탁 위로 힘없이 떨어졌다.그릇에 부딪히며 나는 청아한 소리가 마치 신시아의 심장 위로 내리꽂히듯 평온했던 심박수를 단번에 흐트러뜨렸다.“방금 뭐라고 했어요?”“아, 사실은 할머니랑 나랑 언니가 임신한 거 진작 알고 있어요.”정다슬은 제 입을 톡톡 두드리며 또 말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리고... 그 아이가 하선재 씨 아이란 것도 알아요. 할머니가 언니를 양손녀로 삼으려고 한 건 언니가 하씨 가문에 들어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려고 그런 거예요...”신시아의 머릿속이 윙윙거렸다.임신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녀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자신 같은 평범한 여자가 거대한 배경을 가진 정씨 가문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경원을 떠나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만이 아이를 무사히 낳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이곳에 머무는 것 자체가 계획 밖의 일이었고 정체가 탄로 나는 건 시간문제였다.하지만 권미희와 정다슬이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니.그것도 아이의 아버지를 하선재라고 오해하고 있을 줄이야.그녀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보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인지 갈피를 잡으려 애썼다.정다슬은 신시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을 보더니 다급하게 말했다.“걱정 말아요. 이 일은 나랑 할머니만 알고 있어요. 할아버지도 모르셔요. 할머니가 혹시라도 소문이 나서 언니가 곤란해질까 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거든요.”“우진 씨도 몰라요?”신시아는 말을 내뱉는 것조차 힘겨웠다. 목이 바짝 타들어 가는 것도 참으면서 간신히 물었다.이에 정다슬이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 오빠랑 하선재 씨 앙숙이잖아요. 오빠가 알면 언니만 더 피곤해지지 않겠어요?”정다슬의 말에 신시아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자신을 위해 조용히 움직여준 권미희와 정다슬의 마음 씀씀이에 울컥하고 만 것이다.“그런데 언니는 왜 또 지사로 발령받고 싶어 하는 거예요?”정다슬은 이해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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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9화

정다슬조차 신시아가 정우진을 피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지금 당장 회사로 나와. 아직 늦지 않았어. 안 그러면 이번 달 보너스는 전부 삭감될 줄 알아.”정우진은 이 말만 내뱉고 전화를 끊었다.“엥? 오빠가 먼저 이틀 쉬라며!”그녀는 다급하게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었다. 속으론 정우진을 원망하면서 곧게 회사로 달려갔다.한편, 통화를 마친 정우진은 셔츠 단추를 몇 개 풀었다.어두컴컴한 컴퓨터 화면에는 팽팽하게 긴장된 그의 얼굴 윤곽이 비쳤다.혀끝으로 뺨 안쪽을 밀어 올리며 생각에 잠긴 남자, 잘생긴 얼굴 위로 긴장감이 서렸고 그 이면에는 깊은 의구심이 일렁였다.얼마나 지났을까? 정우진이 침묵을 깨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시아 스스로 임신 사실을 인정하게 만들어.”“내가 의사지, 요술램프 지니니?”몇 초간의 침묵 끝에 상대방이 말했다.하지만 정우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덧붙였다.“가능한 한 빨리.”...이 관계는 마치 얇은 창호지처럼 굳이 뚫으려 애쓰지 않아도 작은 바람에 금세 찢겨 나갈 듯 위태로웠다.신시아의 불안한 마음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정다슬과의 식사를 마치고 김지원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현관에 발을 들이자마자 김지원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잔말 말고 보나 당장 학교로 돌려보내요!”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김지원이 고개를 돌렸다. 신시아와 시선이 마주치자 입 모양으로 ‘한채은’이라고 말했다.신시아는 가방을 내려놓고 조용히 다가가 그녀 옆에 앉았다.“알았어요. 증명서 문제는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내일 아침까지 보내줄 테니까 그때까지 돈 준비해 둬요.”한채은이 뭐라 대꾸했는지 김지원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통화가 끝나자 신시아가 물었다.“무슨 일이야?”“돈 문제 때문에 전화했더니 자꾸 말 돌리는 거야.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보나가 학교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데 절차상 병원에서 떼어주는 건강진단서가 필요하대.”학교 측에서는 현재 임보나가 불치병에 걸렸다고 판단해 복학을 막고 있는 상황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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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0화

도망치듯 자리를 뜬 박도영과 책상 위에 놓인 건강진단서.그랬다. 이 모든 건 신시아를 위해 미리 짜놓은 함정이자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세운 아찔한 만남이었다.절대 우연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이미 계획된 만남이라면 정우진도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고 있을 터...신시아는 임정현에게 정우진과 하룻밤을 보낸 사실이 들킬까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 점심때 정다슬 때문에 또 한바탕 휘청였다.불과 몇 시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었다.그녀는 정우진이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될 날이 올 거라곤 예상했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닥쳐오니 당황스러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정우진은 의자를 끌어와 다리를 살짝 벌린 채 나른한 자세로 앉아서 그녀를 바라보았다.남자의 옅은 갈색 눈동자가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나한테 할 얘기 없어?”이전까지는 그저 의심에 불과했다. 신시아가 임신 사실을 일부러 숨기고 있다는 막연한 의구심 말이다.하지만 지금은 이 여자가 자신을 철저히 속였다는 걸 확신했다.정우진의 준수한 얼굴 위로 ‘설명해’라는 무언의 압박이 짙게 배어 나왔다.“대표님.”신시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심호흡하며 감정을 추슬렀다.“어머, 대표님도 박 선생님 찾아오셨나 봐요? 제가 선생님께 작은 부탁을 드렸는데 이제 다 끝났어요. 다른 용무 없으시면 먼저 가보겠습니다.”“신시아!”정우진이 성까지 붙여가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드물었다.그것도 이토록 심각한 어조로 말이다.팽팽해진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그녀는 숨쉬기조차 힘들어졌다.그녀의 불안함을 느낀 듯 배 속의 아기가 맹렬하게 배를 걷어찼다.“아기는...”“대표님.”신시아는 그의 추궁을 서둘러 끊었다.“제가 일부러 임신 사실을 숨긴 건 아니에요. 그저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마땅한 기회를 찾지 못했을 뿐이에요.”그녀는 마치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정우진이 눈치채지 못한 탓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남자는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그래서 내 탓이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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