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신은 가슴속 울분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선택 하나하나가 소중한 이들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되뇌며, 그녀는 떨리는 마음을 다잡았다.“선배, 데이트 계속해요.”현신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뜻밖에도 담담했다. 도망칠 수 없다면, 이 독배를 기꺼이 마시겠다는 결연함이었다.“역시. 오늘의 목적을 잊지 않았군.”엘에프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그 말 속에 숨은 의미를 단번에 짚어냈다. 진심으로 기분이 좋은지, 그는 잠시 웃음을 지우고 덤덤한 모습으로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마치 오랜만의 자유를 만끽하는 아이처럼 가벼웠다. 현신의 손을 꼭 잡고 걷던 엘에프는 찬란하게 부서지는 물결에 비친 햇살을 감상하기도 하고, 그 위를 유유히 노니는 오리들에게까지 시선을 두었다. 그는 산책하는 내내 현신에게 그동안 무슨 미션을 했느냐고 물었고, 현신은 자신이 했던 일들에 관해 최대한 자세히 설명을 이어 나갔다.엘에프가 던지는 질문들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현신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정직하게 대답했다. 한 치의 거짓도 섞지 않았다. 어차피 엉뚱하게 둘러댔다가는 그 순간 호숫가에 처박히고도 남을 수모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녀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럽게, 그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도록 조곤조곤 대답을 이어갔다.“지난 몇 주간은 미션은 안 했나 보군.” “그럴 몸이 아니었어요.” “얼굴은 보기 좋네. 혹시 나에게 할 말 없어?”엘에프의 물음에 현신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어젯밤 베개맡을 맴돌던 그의 고뇌 어린 숨소리, 그리고 지난 2년간 쌓인 침묵의 무게가 혀끝에서 맴돌았다. 엘에프는 이미 다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현신은 숨김없이 전부 털어놓았다.“지난번에도 말씀드리고, 헤르만 선배께도 설명드렸지만······ 제게는 짊어져야 할 책임이 있어요.” “음. 그래?” “제가 이탈리아에 남았다면 어땠을까요?”순간 엘에프의 눈동자 농도가 짙어졌다. 현
최신 업데이트 : 2026-05-17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