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제가 할게요.”현신은 오기를 부리듯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 지독한 재앙 앞에서 제풀에 겁을 집어먹은 탓에, 옷깃을 쥔 손끝에는 가냘픈 떨림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거구의 맹수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가련한 초식동물의 형국이었다.느닷없는 도발이 마음에 들었는지, 엘에프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호선을 그렸다. 그는 순순히 고개를 숙여 거리를 좁혀 주었다. 신이 공들여 빚어낸 듯 오만하고 아름다운 이목구비가 코앞까지 밀고 들어왔다. 숨결이 섞이는 거리 속에서, 그의 짙은 보랏빛 눈동자가 덫처럼 현신을 옭아넸다.“에스, 지금 보니 영락없는 여자네.”현신은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엘에프의 깊은 눈동자에 비친 자신은 차마 눈 뜨고 봐줄 수 없을 만큼 겁에 질려 엉망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잔혹한 포식자는 현신의 절망을 유예해 줄 생각이 없었다. 엘에프의 커다란 손이 현신의 가냘픈 목덜미를 슬쩍 감싸 쥐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그 표정, 더는 못 참겠는데.” “잠시만요!”결국 한 발짝 물러선 현신이 엘에프의 옷깃을 다급히 내팽개치듯 놓아 버렸다. 그러고는 와인이 놓인 객실 바(Bar)로 도망치듯 걸어가, 손에 잡히는 와인 하나를 꺼냈다.‘아, 이거 내가 계영 님께 드리려던 술인데······.’애달픈 오기로 와인잔을 채워 단숨에 들이켠 현신이 고개를 휙 돌렸다. 엘에프는 수트 주머니에 한 손을 찔러 넣은 채 비스듬히 벽에 기대어, 어이가 없다는 듯 황당함이 섞인 나른한 얼굴로 자신을 감상하고 있었다.“에스, 지독한 애주가였군.”단숨에 비워낸 두 잔의 독한 와인 탓에 취기가 서서히 머릿속을 헤집었다. 시야가 아찔하게 흔들리고 발끝이 붕 뜨는 기분이었다.하지만 현신을 사로잡은 엘에프의 보랏빛 안광만큼은 위험하게 번뜩였다. 현신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으로 그를 향해 발걸음을 거칠게 내디뎠다. 그 순간, 엘에프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오만한 심사가 틀어진 탓이었다. 아무리 밀어내도 다가오는 여자들을 거느리던 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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