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기를 품은 앙큼한 그녀[The Boss and His Sly Baby-Mama]: Chapter 41 - Chapter 47

47 Chapters

#41. [첫날밤을 기억하는 어느 포식자]

대한 종합병원 3층, 소독약 냄새가 섞인 건조한 공기 사이로 낯설고도 압도적인 선율이 균열을 만들었다.작은 카페테리아 옆 구석, 오랫동안 정물처럼 놓여있던 하얀색 그랜드 피아노가 제 주인을 만난 듯 비로소 울부짖기 시작한 것이다.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그러나 결코 흔치 않은 유려한 음색이 1층 로비까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일요일의 정적을 깨우는 연주는 지나가던 이들의 발걸음을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첫번째는 경신의 작곡한 곡이 이어져 이번에는 누구나 귀에 익숙한 클래식 곡이 연주되었다.쇼팽의 ‘Fantaisie – Impromptu’. 본제인 ‘즉흥곡’보다 부제인 ‘환상’이 더 어울리는 선율이 병원 곳곳의 해묵은 고통을 어루만졌다.이미 일주일 동안 안경 없는 맨얼굴에 익숙해진 경신은, 고무줄을 잃어버려 제멋대로 흘러내리는 갈색 머리카락을 쓸어 넘길 생각도 못한 채 피아노 삼매경에 빠졌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과거의 '천재 음악가' 그대로였다. 수십 년간 피아노 외길만을 걸어온 거장의 혼이 빙의된 듯, 그녀의 손끝은 쇼팽이 악보에 숨겨둔 미세한 기교와 처절한 감성까지 고스란히 길어 올렸다. 왼손이 6연음을 고르게 깔아주는 동안 오른손이 8개의 음이 연주되는 복합적인 리듬은 마치 어긋난 운명을 조율하는 과정 같았다. 손바닥의 통증은 오히려 감각의 날을 더 예리하게 세워줄 뿐이었다. 16분음표는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했고, 엇박자의 미학은 서정성을 더해 청중의 심장을 조여왔다. 아, 이렇게 행복할 수가. 경신은 원래 이렇게 건반 위에서만 온전히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오직 음악을 통해 세상을 위로하고, 자신의 마음을 선율로 녹여내는 존재.마지막 왼손의 G와 C음이 낮고 묵직하게 마침표를 찍자, 정적 끝에 파도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휠체어를 탄 환자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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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그녀의 심연을 집착하는 그 남자]

태하의 직감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불길한 예감은 예리한 칼날처럼 심장을 긋고 지나갔다. 쇼팽이 작곡한 피아노곡의 연주가 끝나고 다른 곡이 울려 퍼지자 온몸에 소름이 돋아 뛰어가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과거, 그녀가 수줍게 들려주었던 미완성 선율의 편린. 그것이 비로소 완성을 넘어 신성한 경지까지 닿아 있었다. 경신이 확실했다. 기억이 돌아왔나? 태하는 너무 심장이 터질 듯 갑갑해져 왔다. ‘그럼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가?’ 어쩐지. 저 하늘의 신은 자신에게만 늘 가혹했다. 그럼 그렇지. 이리 달콤한 순간을 오래 줄 리가 없지. 꿈꾸는 것처럼 한 시간 아니 1분 1초도 너무 대단해서 순간순간 믿어지지 않았는데. 역시 자신은 다시 어둡고 긴 터널 속으로 홀로 경신의 뒷모습을 보며 들어가야 하는 건가 생각하자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태하는 병원 에스컬레이터를 뛰어가듯 올라탔고, 음악이 점점 크게 들리자 제 심장도 더 거세게 뛰는 것을 느꼈다. “젠장!” 거친 욕설이 이 사이로 새어 나왔다. 통제되지 않는 분노가 태하의 눈동자를 암적색으로 물들였다.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는 사람들 뒤에는 수수한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새로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쓴 현수와 비슷한 캐주얼한 차림의 도윤까지 있었다. 저 인간들이 왜 여기에 있지? 경신은 저들이 있는 줄도 모르고 피아노에서 무아지경에 빠져 연주하고 있었다. 피아노의 연주가 절정으로 치닫는 그 순간 현수와 도윤이 점점 그녀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다. ***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린 듯. 마술피리 소리에 홀려 따라가는 아이처럼. 악마의 유혹에 못 이겨 제 영혼까지 내어 줄 듯 시선을 빼앗긴 천사처럼. 정신없이 경신은 피아노를 쳤다. 얼마나 제 음악에 홀려 버린 걸까? 자신의 선율에 영혼을 녹여 버려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행복해, 너무 행복해. 즐거워, 정말 즐거워. 하지만, 하지만. 선을 넘어 버린 걸까? 어쩌나 멈출 수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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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엇갈린 화음이 빚어낸 파국]

태하의 심연에서는 당장이라도 피가 거꾸로 솟구칠 듯한 격동이 일었다. 당장이라도 눈앞의 불청객들을 거칠게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사방에 깔린 수많은 시선이 그의 이성을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도윤이나 현수를 배려해서가 아니었다. 오직 제 품에 안겨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경신, 그녀의 안위를 위해서였다.“태하 님은 참 한결같은 직진남이네. 우린 정말 곡 때문에 온 거야. 진정하라고.”“도윤 씨, 지금은 그런 가벼운 농담을 던질 때가 아닌 것 같네요. 전 먼저 실례하겠습니다.”현수는 공기 중에 감도는 살벌한 기운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는지 몸을 움찔거렸다. 태하의 눈 밖에 났다가는 제 커리어가 순식간에 공중분해 될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못했다면 그건 바보나 다름 없기에. 그녀는 서둘러 인사만 남긴 채 뒷걸음질을 쳤다. 복도를 벗어나는 내내 힐끔거리며 태하의 눈치를 살피던 현수는 이내 한달음에 시야에서 사라졌다.그러나 도윤은 달랐다. 그는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느릿하게 다가왔다.“태하 님아. 이제 알 것 같아.”“난 인내심이 그리 넉넉한 사람이 아니야. 어서 물러나지 그래?”“내가 무언가 대단한 걸 알아낸 것 같거든. 하하! 이거 아주 확실해!”도윤의 시선이 피아노 의자 옆까지 파고들어 경신에게 고정되었다. 태하의 인내심이 임계점에 다다른 순간, 단단하게 굳어 있던 그의 팔 안쪽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졌다.“······음.”잠겨 있던 경신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천천히 열렸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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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숨결이 닿을 듯 밀착되어]

경신은 어쩌다 이번 생애에는 태하와 이토록 가까워져 버린 것인지, 그 좁혀진 거리감이 두렵기까지 했다. 당장이라도 그의 품에서 벗어나 멀어져야 한다고 머릿속으로는 생각했지만, 몸은 어느새 본능적으로 그의 단단한 목덜미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고급스러우면서도 남자다운 시원한 체취가 경신의 폐부 깊숙이 스며들자 묘한 설렘이 전신을 훑었다. 게다가 얇은 옷가지 너머로 상체가 그에게 빈틈없이 밀착된 탓에, 아랫배가 조여들 듯 팽팽한 긴장감이 밀려왔다. 태하의 강인한 완력이 실린 손은 경신의 몸을 안정감 있게 받쳐 품 안에 가두었고, 덕분에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은 이제 제로가 되어버렸다.서로의 뜨거운 숨결이 얼굴에 고스란히 닿았다. 가슴과 가슴이 맞닿아 심장조차 하나로 합쳐져 뛰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태하 역시 경신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못하게 옭아매듯, 그 집요한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하며 묵직하게 발걸음을 옮겼다.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어느새 VIP 병동에 다다르자, 경신은 몽롱하던 정신을 가다듬고 현실을 자각하며 먼저 고개를 돌렸다.“태하 씨, 이제 내려주세요. 나 이제 정말 괜찮아요.”“다 왔어.”“저··· 오늘··· 걱정 끼쳐서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태하가 돌연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경신을 빤히 바라보며 깊은 시선을 던졌다. 경신은 혹여 자신이 말실수를 했나 싶어 방금 뱉은 말들을 다급히 곱씹었다.“뭐가?”발걸음을 멈춘 태하는 더는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경신의 몸을 자신에게 더 바짝 끌어당겼다. 지금 태하가 보여주는 태도는 다정함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사람을 자꾸만 착각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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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그녀가 닿기를 기다리는 폭군]

일요일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병실 안을 채웠다.잠시 스쳐 간 부끄러움은 반가움에 씻겨 내려갔다. 경신은 한규련과 송화야의 깜짝 방문이 못내 기뻐서, 평소보다 한껏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태하는 먼 길을 와준 규련과 화야를 위해 고급 일식 도시락을 주문해 점심을 대접했다. 그는 늘 그랬듯 지극정성이었다. 직접 물수건으로 경신의 손을 닦아주는 것은 물론, 생선 살을 발라 하나하나 입에 넣어주는 '식사 수발'을 기꺼이 자처했다.“나 락교랑 생강은 싫다니까요.”누가 보든 말든, 경신은 락교를 쏙 골라내며 투정 섞인 만행을 부렸다. 태하는 그 철없는 투정마저 달게 받아내며 묵묵히 그녀의 식사를 도왔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규련과 화야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파들거린다는 사실을, 경신 본인만 까맣게 모르는 듯했다.식사를 마친 태하와 규련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화야가 선물로 사 온 사과를 깎으며 입을 열었다.“보살님, 기숙사에 왜 안 오시나 했더니··· 으리으리한 VIP 병실에서 아주 알콩달콩 소꿉놀이 중이셨군요?” “화야, 잠깐 짚고 넘어갈 게 있어. 난 사람 구하다 다쳐서 정당하게 치료 중인 거야.”화야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서슬 퍼런 칼날로 사과 껍질을 능숙하게 도려내며, 그녀는 경신의 속을 벅벅 긁어대기 시작했다.“세상에나, 남녀 사이 모른다더니. 역시 보살님은 난 분이세요. 원수도 단번에 내 편으로 만드시고. 와아.” “화야, 이건 오해야.” “반찬 투정에, 공주님 놀이라니. 세상 핑크빛 기류는 여기 다 모여 있네요.”화야의 냉철한 지적에 경신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하지만 태하의 호의만큼은 확실히 정의해야 했기에 경신은 다급히 한마디를 보탰다.“그건 그냥, 그가 목숨을 구해준 게 고마워서 보답하는 거라니까?” “과연 고맙기만 한 걸까요? 보살님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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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이 여자에게만 향하는 나만의 시간]

한규련은 지금 제 눈앞에서 펼쳐진 상황과 태하의 입에서 나온 말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느라 무던히도 애를 써야 했다. 기억을 잃기 전의 경신은 대체 왜 이토록 순애보가 대단한 남자의 사랑으로부터 기를 쓰고 멀어지려 했던 것일까.“건물주님이 과거에··· 너무 뜨겁게 직진으로 밀고 나가시는 바람에 경 보살이 겁을 먹고 멀어지려 했다는 뜻입니까?”“핸드폰 번호까지 바꾸고, 내게서 도망쳤습니다.”규련의 마른침이 놀란 목울대를 꿀렁거리며 넘어갔다. 어찌 이리도 안타깝고 지독한 엇갈림이란 말인가. 하긴, 규련이 보기에도 태하는 너무나 압도적이고 완벽한 사내였다. 상대적으로 평범했던 경신은 그 거대한 존재감 앞에서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은 때로 공포가 되기도 하니까.“···그런 일이 있었군요. 휴···.”규련의 깊은 탄식을 배경 삼아 태하는 그제야 제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혀끝을 감도는 쌉싸름한 맛이 아침보다 훨씬 깊고 쓰게 느껴졌다.“괜찮습니다. 난 시간이 아주 많으니까요.”심각해진 규련의 표정을 읽은 태하가 나직이 덧붙였지만, 그 말투에 서린 쓸쓸함은 숨길 수가 없었다.‘건물주님. 어쩌면 그녀는 이번에도 도망갈지 모릅니다. 그녀에게는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의 시간이 없거든요.’규련은 타들어 가는 속을 달래려 커피잔을 들었다. 맛도 느끼지 못한 채, 그는 얼음이 채 녹기도 전인 커피를 꿀꺽꿀꺽 전부 비워버렸다.***4월의 첫날. 잔인하리만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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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당신과 나의 거리, 제로]

대한 종합병원 로비 앞, 환자 보호자들을 위해 마련된 임시 정차 구역에 은밀하게 깜빡이를 켠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그 안에는 봉선규와 마호가 마치 첩보 작전을 수행하는 스파이처럼 매의 눈으로 태하와 경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티키타카를 감상하는 그들의 입가엔 이른바 '엄마 미소'가 잔잔하게 번졌다.“태하가 저렇게 부드러운 표정을 짓다니. 내 안구에 습기가 차는 것 같군.”“하하, 사장님. 이 기세라면 저 둘, 이번에는 확실히 잘될 것 같습니다.”세상에서 가장 차갑고 황량한 바람만이 불 것 같던 태하였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그를 지켜봐 온 두 사람에게 지금의 변화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태하는 여전히 타인에겐 단 1cm의 틈도 내어주지 않는 얼음성 같았지만,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그의 모든 시선은 오직 경신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이게 다 봉 실장 덕이야. 자네가 경신 양의 바뀐 번호를 알아낸 게 결정적이었어.”“에이, 사장님. 그건 경신 양이 서류 부탁하면서 직접 적어주고 간 거라 제가 한 건 별로 없죠. 오히려 사장님이 오작교 역할을 제대로 하셨는걸요?”“그런가? 하하, 그럼 우리 둘의 완벽한 합작품이라고 해두지.”호탕하게 웃으면서도 두 사람의 눈빛 한구석엔 깊은 우려가 서려 있었다. 과거의 태하는 경신에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마치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마음을 쏟아 냈었다. 제삼자가 보기에도 숨이 막힐 듯한 그 집요한 애정에 결국 경신은 도망치듯 자취를 감췄었다.그 바람에 끈 떨어진 연처럼 위태로워졌던 태하를 지켜보며, 마호는 지난겨울 몇 번이나 심장을 졸여야 했던가.“남녀 사이는 정말 알 수가 없잖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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