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메는 레인이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거슬리는 것인지 예민하게 구는 모습을 보며 가늘게 한숨을 내뱉었다. 다정한 말 한마디를 기대했건만, 무슨 제안을 해도 돌아오는 건 서늘한 정색뿐이었다.“에스, 자꾸 그 하인을 언급할 거야?”레인이 귀찮음과 분노가 섞인 차가운 목소리를 내뱉자, 에스메는 위축된 듯 어깨를 작게 웅크렸다.“···난 그 하인과 가까워지고··· 싶어.” “안 돼. 넌 대공가 그 누구와도 얽히면 안 되는 존재라는 거, 잊었어?”레인의 잔인한 진실에 에스메의 표정이 더욱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아처린의 그림자에 가려져 숨죽여 살아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가 새삼 뼈아프게 다가왔다.그때, 에스메의 곁으로 불현듯 낯선 그림자 하나가 길게 드리워졌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기사인 레인조차 기척을 느끼지 못한 듯, 흠칫 놀라며 옆으로 몸을 틀었다.“참, 너무하네.”언제 등장한 것일까. 그리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대화를 엿듣고 있었던 건가.“······라이신?”어느새 나타난 라이신이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며 맑은 눈동자를 반짝였다. “에스 친구분! 그렇게 상처 주는 말을 하면 안 되죠.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배려해야 하는 법이에요.”그리고 망설임 없이 에스메에게로 성큼 다가왔다.“언제··· 온 거지? 인기척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레인은 얼마나 경악했는지 입술을 뻥긋거리다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에스메 역시 어깨를 움찔거릴 만큼 라이신의 등장은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때, 라이신이 코를 킁킁거리며 공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내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입술이 서서히 벌어졌다.“어? 에스 친구분, 혹시··· 다치셨나요? 피 냄새가 나는데요?”“피 냄새?”그 말에 놀란 레인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라이신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감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후각이 남다른 것인지. 그때, 에스메는 놀라 몸을 돌렸다. 휠체어를 밀어주던 레인을 올려다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레인! 다쳤어?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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