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짐승 대공의 집착을 받은 사연:The Tale of the Beastly Archduke’s Obsessio: Chapter 41 - Chapter 50

268 Chapters

#41. 엇갈린 운명 속에 건넨 핏빛의 구원

바아르는 지금 라이신의 시선이 할 로드에게 향해 있는 것이 거슬렸다. 게다가 열린 라이신의 문 밖에 서 있던 할트바르트와 대공가 몇몇 기사들은 놀라서 빤히 이 장면을 보느라 숨을 죽이고 있었다.감히 지금 자신이 나타났는데 바쁘다니.“일단 친구 좀 살려놓고 설명하면 안 될까요?” “뭐?”오히려 라이신은 날 선 반응으로 대꾸하며 미간을 좁혔다. 바아르의 서슬 퍼런 기세에도 굴하지 않고, 할 로드의 환부에 얹은 손을 거두지 않은 채 다시 두 눈을 감았다. 오로지 치유에만 모든 감각을 집중시키겠다는 무언의 시위였다.“또 사람을 살리려고?” “네.” “안 돼! 당장 손 떼고 의원에게 맡겨!”바아르는 들끓는 화의 근원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정의할 수 없었다. 그저 낯선 사내의 몸에 닿아 있는 라이신의 하얀 손가락과 그 절박한 눈빛이 참을 수 없이 거슬릴 뿐이었다. 바아르는 침대 곁으로 성큼 다가서 라이신의 가느다란 손목을 거칠게 낚아챘다.“내 명을 거역하겠다는 건가? 의무실로 보내!” “대공가를 위해서 희생했지만! 소독도 제대로 안 해서 이곳으로 보낸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의원도 의무실도 못 믿겠어요! 이 지경이 되도록 다들 아무것도 안 했으니까요! 제가 치유해주지 않으면 할 로드는 조만간 죽게 된다고요!” “그러다 네가 또 쓰러지면! 그땐 어쩔 셈이지?” “괜찮아요! 전 금방 멀쩡해질 거예요!”바아르는 말 대신 라이신의 두 손목을 확 잡아끌어 올렸다. 억센 힘에 밀려 그 손이 할 로드의 가슴팍에서 허망하게 떨어져 나갔다.그 순간이었다. 라이신이 고개를 들어 바아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파란 눈동자에 그렁그렁하게 차오른 눈물이 호수처럼 반짝이며 바아르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너, 울어?”그 투명한 눈물을 마주한 순간, 바아르는 제 심장이 바닥으로 쿵 하고 내려앉는 듯한 기묘한 감각에 휩싸였다. 분노로 날뛰던 이성이 그 눈물 한 방울에 속절없이 녹아내렸다. *** 라이신은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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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선을 넘어선 파렴치한 자비

라이신은 치유를 하면서 고개를 돌려 바아르와 눈을 맞췄다.“각하, 누군가 그랬어요. 제 능력은 축복받은 거라고. 전 첩자도 아니고,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이 힘을 쓸 거예요. 그래서 전 지금 정말 행복해요.”진심 어린 미소가 라이신의 얼굴에 피어올랐다. “라이신, 대신 쓰러지면 각오해.”바아르의 거칠게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도 지금 라이신에게는 기분 좋은 속삭임처럼 들렸다.“네, 각하. 조심할게요.”식은땀을 흘리던 할 로드는 천천히 누워 손등으로 제 눈을 가렸다.“···라이신, 그럼 딱 절반만 치유해 줘. 너도나도 반반씩 행복하자.”라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손바닥에 온 기운을 집중했다. 방 안에는 다시 한번 밀도 높은 온기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시간이 흐를수록 공기는 더욱 농밀해졌다. 라이신의 숨이 조금씩 거칠어질 수록 할 로드의 상처는 점점 옅어져갔다.***바아르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이 마치 성스러운 명화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했다. 소드 마스터의 마력 주입이나 마법사의 포션과는 차원이 다른, 생명력을 직접 불어넣는 기적의 행위라니. 17살 소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의롭고 영민한 기운은 바아르를 끊임없이 놀라게 했다.하지만 경탄도 잠시, 바아르의 뱃속 깊은 곳에서 다시금 묘한 뒤틀림이 느껴졌다. 마수가 할퀸 끔찍한 상처가 라이신의 손길 아래 기적처럼 붙어가는 것을 보자, 견딜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다.앞으로 얼마나 이 녀석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제 힘을 쓰려 할까.라이신의 몸은 한계에 다다른 듯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럴수록 할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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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짐승 대공 각하의 억눌린 욕망

바아르의 머릿속에는 온갖 상념이 폭풍처럼 스쳐 지나갔다. 칭칭 감긴 무명 붕대 위로 드러난 굴곡이 자꾸만 시야를 어지럽혔다.“······갈비뼈가 나갔나? 아니면······ 혹시, 그건 아니겠지.”바아르는 라이신 옆에 허리를 펴고 꼿꼿하게 앉아 팔짱을 꼈다. 아무리 마나가 충만하고 마력이 대단하다 한들, 인간의 마법력이 무한대일 수는 없었다. 세상 모든 것에는 등가교환의 이치가 있는 법. 제 몸을 깎아 남을 살리는 기적을 부리는 대가로, 저 붕대 속에 감춰진 것이 끔찍한 상처이거나 부서진 뼈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바아르는 다시 인상을 쓰고 침대 한편에 놓아둔 로브를 보더니, 이 아슬아슬한 간호를 마저 끝내야 한다는 사실에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가정 하나. ‘만약 이 녀석이 소년이 아니라면?’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부모도 없는 아이가 대공저 지하에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정녕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찰나의 의심이 온몸을 찌르르하게 울리는 묘한 감각으로 변하는 순간, 바아르의 손이 라이신의 바지춤에 닿았다. 천천히 바지를 내리자, 심장이 내려앉을 정도로 미끈하고 하얀 몸이 드러났다. 아무리 운동을 좋아하고 제대로 못 먹었다고 해도 사내의 몸이 이토록 가냘플 수는 없었다.자신이 17세였을 때는 이미 골격이 거대해져 성인 사내를 압도하는 근육을 지녔거늘, 녀석은 다리털 하나 없이 매끄러웠고 남성이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2차 성징의 흔적조차 부풀지 않아 보였다.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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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각하를 유혹한 나름의 사정

바아르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평생을 통틀어 손에 꼽을 만큼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매일 아침 관자놀이를 망치로 때리는 듯했던 그 지독한 두통도, 온 신경을 날카롭게 긁어대던 예민한 감각들도 오늘만큼은 호수처럼 고요하고 평온했다. 하지만 그 만족감과는 별개로, 현재 상황은 심각하게 정상 궤도를 이탈해 있었다.“짐승? 다정? 그리고······ 보고 싶었다?”바아르는 제 품 안에서 솜털처럼 가볍게 잠든 라이신의 이마를 가만히 짚어 보았다. 혹여 무리한 치유 탓에 열이라도 나는 건가 싶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뻗은 손길이었으나, 라이신의 안색은 그 어느 때보다 발그레하니 건강한 혈색이 돌고 있었다. 도망갈까 싶어 이불째 가둬두려 했던 것인데, 지금은 오히려 라이신이 그의 가슴팍을 파고들며 고양이처럼 안겨 있었다.“꿈을 꾸는 게 틀림없군. 현실의 내가 네게 다정할 리가 없지.”태어나서 누군가에게 ‘다정하다’는 말을 들은 건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제 제 행보만 보아도 폭군이나 다름없었는데. 제 몸 아까운 줄 모르고 남을 위해 생명력을 쏟아붓는 그 미련한 버릇은 분명히 고쳐놓겠노라 다짐했건만, 막상 눈앞의 고운 낯바닥을 마주하니 어찌 벌을 줄까 고민만 깊어질 뿐이었다.“음······ 각하······.”잠결에 라이신이 웅얼거리며 바아르의 로브 끝자락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꽉 쥐었다. 바아르는 몰려드는 달콤한 수마를 쫓으려 고개를 흔들다, 결국 라이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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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먹여 놓고 벌주려는 다정한 각하

바아르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비스듬히 까딱였다. 금방이라도 피식, 하고 낮게 터져 나올 것 같은 웃음을 억누르기 위해 그는 짐짓 입매를 일자로 굳히며 서늘한 목소리를 뱉어냈다.“죄는 인정하나?” “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럼, 죽을 건가?” “······네?”라이신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침대 위에 나른하게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는 바아르의 눈빛이 워낙 고요해서 진담인지 농담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라이신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정말······ 저를 죽이실 겁니까?” “죽을죄라며.” “······그렇다고 뭐 이리 단칼에. 허망하게 죽기에는 좀······ 아까운데요?” “아까워?” “이왕이면 큰일을 하거나 사람을 구하다 죽으면 몰라도, 여기서 제 목숨이 끝나는 건······ 조금 아쉽기는 하네요.”엉뚱하면서도 당돌한 대답에 바아르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자꾸만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겨우 감정을 추스른 그가 다시 꼿꼿하게 고개를 들어 턱을 치켜들었다.“넌 내 명을 어겼어. 그런데 잠자면서 유혹까지 했지. 어떤 벌을 내려야 할까?”바아르의 낮은 저음이 라이신의 귓가를 천천히 훑었다. 라이신은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키면서도 주변을 살폈다.‘가만, 여자인 걸 들킨 건 아니잖아? 그럼 이야기가 다르지. 일단 옷부터 갈아입자!’다행히 가슴을 동여맨 붕대는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바닥에 떨어진 건 겉옷뿐이었고, 바아르의 화는 정체 탄로보다는 그의 명령을 어긴 부분에 집중되어 있었다.“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각하!”라이신은 바아르를 등지고 잽싸게 바지를 낚아채 입었다. 로브를 살짝 젖히는 찰나의 순간에도 상의를 꿰어 입는 그녀의 손놀림은 그야말로 ‘신의 손’이라 불릴 만큼 전광석화 같았다.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은 라이신은 바아르가 입혀주었던 실크 로브를 정갈하게 접어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벌써 다 입었나?” “네!”그때, 대공 침실의 문이 조심스럽게 두드려졌다. 들어오라는 바아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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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우아한 하인이 가야할 길

라이신의 식사 예법은 단순히 우아한 수준을 넘어, 제국 사교계의 정점에 서 있는 어느 영주나 부인보다도 정갈하고 기품이 넘쳤다. 바아르는 그 이질적인 광경을 지켜보며 생경한 당혹감에 휩싸였다. 도대체 하인의 몸에 어떻게 이런 몸짓이 밸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그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라이신이 무심결에 뱉은 기묘한 한마디였다.“이번 생애? 처음?”바아르의 날카로운 추궁에 라이신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격하게 흔들렸다. 아차 하는 표정이 스치더니, 이내 당황한 기색을 지우려 애써 장황하고도 어설픈 부연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하하! 아, 네! 그러니까 제 말은······ 평생 통틀어 처음이라는 소리죠! 물론 아주 가끔, 고기가 든 감자 수프 같은 건 주방 하녀 아주머니들이 남았다고 나눠주실 때가 있었거든요. 그럴 때 어깨너머로 식재료 구경도 좀 해보고······.”바아르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팔짱을 낀 채, 설명을 더 해보라는 듯 턱끝으로 고갯짓을 보냈다.“그래? 고작 어깨너머로 본 게 다라고?” “그럼요! 주방 구경을 워낙 자주 다니다 보니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정도는 빛깔만 봐도 척하면 척이죠. 다 하녀분들이 친절하게 가르쳐주신 덕분입니다.”라이신이 식은땀을 닦으며 해맑게 웃어 보이자, 바아르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넘겨짚었다. 하긴, 무거운 식자재를 옮기는 건 대개 하인들의 몫이니 눈썰미가 좋은 녀석이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터였다.다시 식사를 이어가는 라이신을 보며 바아르는 묘한 궁금증이 일었다. 싹싹한 성격으로 하녀들과도 잘 지내고,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총명함까지.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구심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결국 바아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 위에 놓여있던 묵직한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그리고는 마치 시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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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각하의 시선이 머무는 곳

라이신은 할 로드를 발견한 순간, 하마터면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달려 나갈 뻔한 것을 겨우 참아냈다. 어제 제 온 힘을 쏟아부어 치유하긴 했으나, 과연 그 상흔이 말끔히 가셨을지 아침부터 내내 마음이 쓰였던 탓이다.‘다행이다, 정말 멀쩡해 보여······!’기사들 틈에 섞여 있는 할 로드는 더할 나위 없이 강건하고 늠름한 자태였다. 마수를 홀로 처단한 공을 인정받아 당당히 그 자리에 선 그를 보니, 라이신은 마치 제 일인 양 가슴 한구석이 뿌듯함으로 차올랐다.하지만 감동도 잠시, 전직 장교 출신인 라이신의 시선에 비친 대공가의 기사들은 낙제점이나 다름없었다. 이토록 청명한 날씨에 자율 훈련에 매진하는 자 하나 없고, 연병장이 저리도 드넓건만 구슬땀을 흘리며 달리는 병사조차 보이지 않았다. 늘어질 대로 늘어진 기강이라니. 훗날 전쟁이라도 발발한다면, 바아르라는 압도적인 존재가 없는 한 패배는 불을 보듯 뻔했다.‘그러니 할 로드 같은 기사 종자가 목숨을 걸고 마수를 처리하는 지경까지 왔겠지.’전문가의 눈으로 본 기사단의 실태에 속불이 터져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할 로드만은 달랐기에 다시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그를 응시했다. 그는 라이신과 마찬가지로 활동성 좋은 갈색 튜닉에 검은 바지를 입고, 허리에는 묵직한 목검을 차고 있었다. 대공가의 수습 기사들이 훈련 시 갖춰 입는 정식 복장이었다.라이신은 한껏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할 로드와 눈을 맞췄다. 그러나 정작 할 로드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라이신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노골적으로 훑어 내리고 있었다. 그 시선이 제법 날카로웠지만, 라이신은 그저 ‘걱정돼서 저러나 보다’ 싶어 방긋 웃어 보일 뿐이었다.바아르는 먼저 성큼성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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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나를 증명해야 할 영광의 시간

천천히 고개를 돌린 라이신은 자신을 가로막은 거대한 벽이 다름 아닌 검은 제복에 핏빛 붉은 망토를 두른 바아르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둘이 여기서······ 꽤 다정해 보이는군.”낮게 가라앉은 바아르의 음성이 라이신의 귓가를 서늘하게 긁고 지나갔다. 마치 차가운 얼음 송곳이 피부 위를 스치는 듯한 위압감에 라이신의 전신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대공 각하. 라이신은 기사가 될 아이가 아닙니다.”“그건 내가 판단해.”그림자처럼 짙은 그의 존재감이 좁은 모퉁이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바아르는 심기가 몹시 불편한 듯, 할 로드를 향해 맹수와 같은 안광을 한 차례 쏘아붙인 뒤 다시 라이신을 내려다보았다. “각하, 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그의 눈동자 속에는 위험한 불길이 일렁이고 있었다.“라이신. 다시 안으로 들어갈 필요 없다.”“네? 그게 무슨······.”“바로 연병장으로 가. 실력을 좀 봐야겠다.”잠깐, 훈련이라고 하지 않았나? 갑자기 무슨 실력을 본다는 말인가. 그 앞에 할 로드가 막아 서며 소리쳤다.“각하!”“명령이다. 너는 눈 앞에서 사라져.”예상치 못한 전개에 라이신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바아르의 명령은 지엄했고, 거부할 권리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일이 점점 걷잡을 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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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빛나는 무대를 찬란하게 즐기다

참으로 기묘한 일이었다.조회대에 앉아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바아르의 혈관 속에는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뜨거운 피가 들끓고 있었다. 목검을 쥐고 휘두르는 라이신의 손놀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능숙했고, 유연하게 휘어지는 몸동작은 정예 기사 못지않게 민첩했다.바아르 역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영민한 머리를 가진 라이신이니, 몸을 쓰는 법 또한 금세 터득할 것이라 믿었다. 그저 훈련받은 종자들과 적당히 합을 겨루며, 수많은 군사 앞에서 그녀의 담력을 시험해 볼 심산으로 벌인 판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치를 아득히 뛰어넘었다.“300번, 250번, 200번······ 50번, 10번, 9번!”세이바로가 쉴 새 없이 종자들을 호출했지만, 결과는 매번 같았다. 라이신의 앞을 가로막은 소년들은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펼쳐보지 못한 채, 서슬 퍼런 기세에 눌려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갔다. 라이신의 몸놀림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마치 수천 번의 실전을 치러본 노련한 전사처럼, 상대의 허점을 단숨에 파고들어 단 일격에 승부를 결정지었다. 바아르는 라이신이 내뿜는 그 생경하고도 고결한 패기에 전율했다.‘라이신, 너는 가공되지 않은 최상급의 원석이었군.’이대로 잘 먹이고 재워 기본기를 닦게 한 뒤, 정식 기사 수업을 받게 한다면 얼마나 더 찬란하게 빛날까. 바아르는 벅차오르는 희열에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낮은 웃음을 흘렸다. 그때, 스무 명의 종자를 가뿐히 제압한 라이신이 차분하게 호흡을 고르며 다음 상대를 기다렸다.“세상에, 저 아이······ 검을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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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대공가를 집어 삼킨 해맑은 라이신

캔돔 대공가 연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저택 앞 나무 그늘.싱그러운 잎사귀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 아래, 길 소르도 공작은 두 손을 맞잡은 채 연신 황홀한 탄성을 내뱉고 있었다.“에밋 경, 저것 좀 보게. 우리 귀염둥이가 저렇게나 앙큼할 줄이야. 진즉에 바아르 몰래 보쌈해 가서 내 실험실에 가둬두고 이리저리 관찰 좀 할 것을······.”“각하, 그것은 범죄입니다.”“얼굴도 저리 사랑스러운데 마법에 검술까지? 오늘 밤에 몰래 데려갈까? 옷도 아주 가벼운 것으로 갈아입히고, 저 고생한 몸을 구석구석 살살 만져주면서 치료도 해주고······.”“생각만으로도 범죄입니다, 각하.”길 소르도는 미하엘과 차를 마시러 왔다가 연병장이 들끓는다는 소식에 호기심 삼아 나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라이신이 첫 번째 종자를 쓰러뜨리는 순간부터 이미 그 자리에 뿌리라도 내린 듯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그녀에게 매료되어 있었다.그때, 저 멀리서 미하엘이 하녀 마리나를 대동하고 다가왔다. 노란 프릴 드레스에 순백의 양산을 든 그녀의 얼굴에는 호기심과 불만이 공존하고 있었다.“길 소르도 공작 각하! 어디 가셨나 했더니 여기 계셨군요?”“아이고! 깜짝이야!”“뭐 죄라도 지으셨어요? 왜 그리 놀라세요. 음흉한 시선으로 뭘 그렇게 넋 놓고 보시는 거예요?”미하엘이 뾰루퉁한 얼굴로 곁에 다가섰으나, 길 소르도는 대답 대신 라이신을 향해 홀린 듯 목을 길게 뺐다.“공녀, 저 귀염이가 예전에 공녀의 학습 도우미를 했었다는 게 사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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