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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을 거슬러의 모든 챕터: 챕터 701 - 챕터 710

764 챕터

제701화

최씨 가문 대문 앞, 정군왕비는 꼿꼿하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등 뒤로 오가는 백성들이 손가락질을 해댔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최씨 가문의 현판을 올려다보았다. 아주 짧은 순간, 멍하니 초점이 없던 그녀의 눈빛에 일말의 망설임이 스쳤다."군왕비 마마, 노부인께서 드시라 하십니다."부관이 나와서 그녀에게 고했다.상념에서 깬 정군왕비는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문득 물었다."어머니 건강은 좀 어떠시냐?"부관은 멈칫하더니 대답했다."노부인께서는 요 며칠 기력이 많이 쇠하셨습니다. 의원이 하루 세 번이나 진맥을 보고, 탕약도 끊이지 않고 있는데 차도가 별로 없으십니다. 바깥의 소식을 들으신 뒤로는 며칠째 눈도 붙이지 못하셨습니다."말을 마친 부관은 정군왕비의 안색을 힐끗 살폈다. 배준형이 유국공을 때려죽이는 끔찍한 사고를 칠 줄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정군왕비는 부관의 시선을 무시한 채 저택 안으로 들어서서 곧장 최씨 노부인의 처소로 향했다. 수도 없이 드나들던 곳이라 길은 눈 감고도 훤했다.그녀가 온다는 소식에 안채의 하인들은 이미 모두 물러난 상태였다. 마당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눈 쌓인 바닥을 디딜 때마다 뽀드득거리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뺨을 매섭게 스치고 지나갔다.회랑에 서서 옷깃에 밴 한기를 털어낸 그녀는 곧장 방 안으로 들어섰다. 따뜻한 온기와 함께 짙은 향 내음, 그리고 쌉싸름한 탕약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콜록, 콜록……."최씨 노부인은 기침을 하며 고개를 들어 정군왕비를 바라보았다. 모녀 지간이건만, 지금은 마치 철천지원수를 보는 듯했다. 곁에 섰던 최 부인 역시 곁눈질로 정군왕비를 쏘아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에는 적의가 가득했다."어머니."정군왕비는 군왕비의 체면을 내려놓고 최씨 노부인의 곁으로 다가갔다.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났다."준형이는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제발 준형이를 살려주십시오. 제겐 그 아이 하나뿐입니다……."그녀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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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2화

조정이 변방에서 전쟁을 이어가는 한, 최씨 가문이 바칠 막대한 재물은 분명 요긴하게 쓰일 터였다. 폐하께서도 결코 그 공을 홀대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이 정군왕비의 계산이었다.쿵!최씨 노부인은 끝내 치밀어 오르는 숨을 삼키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다."어머니!"놀란 최 부인은 다급히 의원을 불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의원이 도착해 침을 놓자 노부인은 곧 의식을 되찾았다. 몸을 일으킨 그녀는 정군왕비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최 부인에게 명했다."마차를 대령하거라. 내 직접 입궁해야겠다."최 부인은 흠칫 놀라 만류하려 했다. 허나 시어머니의 눈가에 스친 싸늘한 독기를 보고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노부인이 결코 사리 분별을 못 할 이가 아님을 알았기에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 모습을 본 정군왕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옅은 미소를 띠며 노부인에게 다가갔다."감사합니다, 어머니. 이 은혜는 군왕부에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이번 생에 못 갚으면 다음 생에서라도 갚겠습니다."그러자 노부인은 정군왕비의 손을 덥석 잡았다."모녀지간에 그리 격식 차릴 필요가 뭐가 있겠느냐.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너도 나와 함께 입궁하자꾸나."정군왕비는 조금 의아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따랐다.그렇게 최씨 가문의 마차가 궁문에 도착했다. 두 사람이 회랑을 따라 걷는 동안, 오가는 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정군왕비에게 쏠렸다. 곳곳에서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군왕부 세자의 담력은 아주 하늘을 찌르더군.""죄를 지었으니 천벌을 받는 게 마땅하지."차가운 말들이 비수처럼 귓가에 꽂혔다. 정군왕비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애써 못 들은 척 걸음을 재촉했다.반 시진 남짓 걸었을 무렵, 마침내 의정전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황금빛 기와가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번쩍이고 있었다.노부인은 곁눈질로 정군왕비를 훑어보며 물었다."그래, 준형이 일은 어떻게 수습할 생각이냐?""그 일이라면 심려치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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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3화

정군왕비는 원망 섞인 눈으로 최씨 노부인을 바라보았다."어머니, 어째서 제게 이러십니까?""최씨 가문은 그동안 널 박대하지 않았다. 헌데 넌 가문을 벼랑 끝으로 내몰려 하니, 나 역시 모녀의 정을 끊어낼 수밖에 없다."최씨 노부인의 눈빛에는 한 치의 온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배준형이 사람을 죽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마땅히 목숨으로 죗값을 치러야지."애초에 노부인은 선처를 구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정군왕비가 내세운 그깟 협박 따위, 황제가 책임을 묻는다 해도 약간의 처벌을 받을 뿐 멸문지화를 당할 일은 아니었다. 덮어두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눈감아줄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최씨 가문이 나서서 정군왕부에 돌을 던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이용당할 생각도 없었다."최씨 노부인이 대의를 위해 혈육의 정을 끊어내고 옳고 그름을 명확히 하니 짐도 마음이 놓이는군. 지난 세월 최씨 가문이 조정을 위해 세운 공이 결코 적지 않지."황제가 눈짓을 보내자, 상 내관이 허리를 굽히고 다가가 노부인을 부축해 일으켰다.황제는 시선을 돌려 정군왕비를 굽어보며 무겁게 명했다."당장 정군왕을 입궁토록 하라!"사색이 된 정군왕비는 바닥에 거듭 이마를 찧었다."폐하, 준형이는 억울합니다. 그 아이가 유국공을 만난 것은 사실이나 결코 사람을 해치지는 않았습니다. 모두 유국공이 설계한 함정입니다! 준형이는 폐하께서도 곁에서 자라는 걸 지켜봐온 폐하의 조카가 아닙니까. 제발 죽이지는 말아 주십시오."절박한 통곡 소리가 전각 안을 울렸다.황제는 역정이 난 듯 언성을 높였다."함부로 인주로 내려가 파혼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군량을 빼돌린 것도 모함을 당한 것이라 했지. 사사로이 병사를 두고 훈련시킨 것도 억울하다 하였고, 선왕조의 보물을 몰래 파내어 사욕을 채운 것도 핍박을 받은 탓이라 우겼다! 그 많은 과오를 저질러 놓고도 진정 짐의 눈을 속일 수 있을 줄 알았더냐!"차가운 호통에 정군왕비는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입을 벙긋거리며 무언가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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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4화

놀란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어마마마께서 어쩐 일로 여기까지 걸음하셨습니까?"서 태후는 굳은 얼굴로 정군왕을 흘겨보았다."정군왕의 변명을 들으러 왔습니다. 정군왕, 어제 배준형이 유국공과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건지 계속 말해보거라."낮게 깔린 목소리에는 묘한 호기심마저 배어 있었다.서 태후는 의자에 앉으며 손을 저어 황제를 다시 앉히고는, 줄곧 정군왕을 응시했다. 경고의 뜻이 다분한 눈빛이었다. 그 기세에 눌린 정군왕은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뒷말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정군왕, 왜 말이 없느냐?"서 태후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연달아 다그쳤다.정군왕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머릿속으로 득실을 따져보던 그는 결국 그 비밀을 완전히 묻어두기로 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얼버무렸다."그, 그저 작은 실랑이가 있었을 뿐, 큰일은 아니었습니다."서 태후는 입꼬리를 올려 차갑게 비웃고는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는 황제를 향해 말했다."황상, 현왕비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정군왕이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이토록 끔찍한 화를 불렀으니, 아비 된 자로서 책임이 막중하지요."잠시 말을 멈춘 태후는 다시 입을 열었다."어젯밤 숙태비가 이 소식을 듣고 자녕궁 밖에서 꼬박 밤을 새워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배준형 짐승만도 못한 놈의 죗값을 대신 빌겠다면서요."숙태비 얘기가 나오자 정군왕은 충격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애원했다."태후 마마, 연로하신 제 어머니께서는 이 큰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어머니를 용서해 주십시오."서 태후는 그의 애원을 무시한 채 황제에게 말을 이었다."정군왕 부부의 부부의 연을 끊고, 화친이 코앞이니, 최윤은 자녕궁으로 보내 예법을 배우게 하십시오."최윤은 정군왕비의 이름이었다.정군왕비는 경악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황제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즉시 어명을 내려 두 사람을 이혼시키고 최윤의 이름을 황실 족보에서 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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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5화

정군왕부가 적몰되었다. 대문에 걸려 있던 현판이 바닥으로 떨어져 두 동강이 났다. 경조판사는 봉인한 상자들을 마차에 싣고 품목을 적어 내려갔다. 압수된 재물들은 줄을 지어 황궁으로 압송되었다.밖에서 구경하던 백성들은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멀쩡하던 군왕부가 세자 하나 잘못 둔 탓에 저 꼴이 났으니, 그야말로 자업자득이지.""쯧쯧,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기세등등하여 만인의 칭송을 받던 곳이 이리될 줄 누가 알았겠나……."구경꾼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배정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그는 여전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했다. 그래, 정군왕부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폐하께서 현왕비가 대옥에 갇힌 죄인 배준형을 만나볼 수 있도록 윤허하셨다더군."그 말에 배정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아들 배준형을 향한 안타까움 같은 감정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남은 것은 지독한 분노와 원망뿐이었다. 배준형 그놈만 아니었더라면 군왕부가 이렇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돌연 마차 한 대가 배정의 눈앞에 멈춰 섰다.휘장이 걷히고 임국공이 얼굴을 드러냈다. 혈색이 도는 얼굴은 병색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느긋하게 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선제께서 과거의 정왕부가 지금 이 꼴로 전락한 것을 아신다면, 폐하께 보위를 물려주신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으셨을 테지."임국공의 무심한 말에 배정은 경악하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선제께서는 자네가 무슨 죄를 짓든 목숨만은 살려두라 유언을 남기셨네. 허나 자네가 선제의 뜻을 저버린 게야."조급해진 배정은 황급히 마차 바퀴 앞을 막아섰다."임국공, 그게 대체 무슨 뜻이오. 똑바로 말을 해보시오!"임국공은 목소리를 낮춰 은밀히 속삭였다."전하, 너무 서두르셨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셨다면 폐하께서 전하께 황위를 물려주셨을 텐데, 어찌 그리 무모하게…… 쯧!"짧은 탄식과 함께 휘장이 다시 내려가고 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배정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왈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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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6화

유지영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온몸에 기력이 하나도 없고, 의식은 당장이라도 깊은 연못 속으로 가라앉을 듯 아득하기만 했다.조원금이 내민 약사발을 받아 든 그녀는 단숨에 들이켰다. 쓴 약을 넘기면서도 미간 한번 찌푸리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른 유지영은 이불을 걷어냈다."이틀 뒤면 배준형의 처형 날입니다. 그 전에 반드시 만나서 확인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조원금은 굳이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뒤따르던 운청이 두툼한 망토를 가져와 유지영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깊은 밤을 틈타 그녀는 대옥으로 향했다.컴컴한 감옥 안은 죄수들의 비명 소리와 코를 찌르는 악취가 뒤섞여 구역질을 불러일으켰다. 유지영은 옥졸의 안내를 받아 가장 안쪽 감방에 다다랐다.그곳에는 목에 무거운 쇠고랑을 차고, 자해를 막기 위해 손발이 쇠사슬로 꽁꽁 묶인 사내가 있었다.발소리에 고개를 든 배준형은 유지영을 보자 오히려 옅은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왔구나."유지영은 손을 저어 옥졸을 물렸다.창살 너머로 배준형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빛은 처음엔 잔잔한 호수 같았으나, 이내 집어삼킬 듯한 분노로 일렁였다."지영아, 다음 생에는 내가 반드시 널 부인으로 맞이하마."배준형이 입을 열었다. 이번 판은 불공평했고 억울했지만, 이대로 끝났음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이번 생은 내가 너에게 진 빚이 많아.""네가 배현준에게 시집간 것도 원망하지 않는다.""지영아."자신만의 감상에 젖어 늘어놓는 헛소리를 듣고 있던 유지영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더 이상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화로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쇠인두를 집어 들고 창살 사이로 손을 뻗어 배준형의 몸에 사정없이 지져댔다.치이익.살이 타들어 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피고름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악!"배준형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으나, 유지영은 멈추지 않았다.한 번, 두 번, 그리고 수없이 반복했다.배준형의 상반신은 성한 곳이 없었다. 시뻘건 화상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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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7화

한참 뒤, 유지영은 붉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그리 하세요."이내 뼈를 깎는 듯한 처절한 비명 소리가 대옥을 갈랐다. 유지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바로 등 뒤에서 참혹한 비명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일말의 동요도 없이 고요했다.돌아간 아버지를 생각하면, 이깟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유지영!"배준형은 눈앞의 여인을 뼛속 깊이 저주하며 악을 썼다."다음 생이 있다면, 반드시 널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다!""아직 기뻐하긴 일러, 네년의 최후도 절대……."유지영은 손을 저어 옥졸들을 전부 물렸다. 사방에 아무도 남지 않자,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옥졸이 하반신에 대충 덮어둔 옷가지 사이로 핏물이 흘러내려 바닥에 고여 있었다.그녀는 배준형의 처참한 꼴을 감상하며, 그가 쏟아내는 비명과 욕설을 조용히 경청했다. 그래야만 가슴속에 들끓는 분노를 조금이나마 진정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마침내 귓가가 잠잠해졌다.기력이 다한 배준형의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두 눈만큼은 여전히 그녀를 똑바로 쏘아보고 있었다.유지영은 차가운 비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이연령이 어째서 잡혀갔다고 생각해? 내가 그 입에서 알아낸 사실이 네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지. 이제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모두 제거했으니, 내 부군은 네가 걷고자 했던 길을 걸으며 만인의 존경을 받을 것이다. 반면 너는 대옥의 죄수로 전락하여 다가올 내세조차 없겠지.""이, 이 독한 것!"배준형은 격분하여 발악하다가 상처가 터지는 바람에 고통스러운 숨을 삼켰다.유지영은 창밖으로 동이 터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내일 거리에서 장살이 집행될 때, 반드시 배웅을 가마."감방을 나서기 전, 운청은 배준형의 입안으로 단약 한 알을 밀어 넣었다.그러자 조금전까지 악을 쓰던 배준형은 입만 뻐금거릴 뿐, 제대로 된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짐승처럼 앓는 소리를 내며 입가로 피를 흘릴 뿐이었다.감옥을 나섰을 때는 이미 날이 완전히 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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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8화

하늘이 점차 밝아오고 있었다. 유지영은 방석에 꿇어앉아 향을 피운 뒤 위패를 향해 절을 올렸다."아버지, 이제 가서 배준형이 죽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오겠습니다!"향을 올린 그녀는 호위를 불러 매섭게 명했다."모두에게 전하라. 오늘 처형이 집행 될 거리를 철저히 지켜, 절대 죄수를 빼돌리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삼백 명의 친위대는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유지영은 옅은 색 소복으로 갈아입은 뒤 두툼한 망토를 두르고, 면사로 얼굴을 가린 채 거리로 향했다.거리는 이미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빽빽한 인파 속, 한가운데 마련된 처형대만이 덩그러니 비어 있었다.한 시진쯤 지났을 무렵, 경조판사가 병사들을 이끌고 배준형을 압송해 왔다.단상 위로 내동댕이쳐진 배준형은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채 무릎이 꿇렸다. 안색이 잿빛으로 질려 있었으나, 온몸이 겹겹이 옷으로 감싸인 탓에 옷 아래 감춰진 끔찍한 상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오시까지는 아직 두 시진이 남아 있었다.찬 바람을 맞으며 꿇어앉아 있던 배준형은 창백해진 입술로 힘겹게 고개를 들어 인파 속을 훑었다."정세자는 참으로 어리석은 짓을 했지.""세자는 무슨, 이제 저놈은 그저 대역죄인일 뿐이야.""유국공을 해쳤으니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시원찮지."군중 속에는 생전 유국공의 은혜를 입은 백성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배준형을 향해 썩은 채소와 달걀을 집어 던지며 코앞에서 욕설을 퍼부었다.경조판사는 그 광경을 뻔히 보면서도 모른 척 눈을 감아주었다.방금 전까지 귀공자의 태가 남아 있던 배준형의 꼴은 순식간에 처참하게 변했다. 머리카락에 들러붙은 생달걀이 뺨을 타고 질척하게 흘러내렸다. 화려한 비단옷마저 오물로 얼룩졌다. 배준형은 손을 들어 얼굴에 묻은 오물을 훔쳐냈다. 그의 눈빛에는 지독한 독기가 서려 있었다.유지영은 인파 속에 섞여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허공에서 시선이 얽힌 순간, 배준형의 움직임이 멎었다. 독기 서렸던 그의 눈동자는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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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9화

찬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자, 유지영은 면사를 벗었다. 백옥처럼 하얀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배준형은 역시나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유지영은 소리 없이 입술만 달싹여 세 글자를 내뱉었다."두렵지?"지독한 조롱이자 멸시였다.한줌의 자존심이라도 남은 자라면 차라리 단칼에 죽기를 바랄 터였다. 저런 끔찍한 몰골로 연명하는 것은 죽는 것만 못한 치욕이었다.배준형의 두 눈이 커다랗게 요동쳤다. 파르르 떨리던 얇은 입술을 헤집고 끝내 짐승 같은 절규가 터져 나왔지만, 단약 탓에 혀가 굳어 그저 기괴한 신음소리밖에 나지 않았다.그 순간, 배준형은 애써 붙잡고 있던 마지막 자존심마저 모조리 무너졌다. 그의 가장 끔찍한 밑바닥이 만천하에 까발려졌다.사람들은 똑똑히 보았다. 한때 고고하고 우아했던 정세자는 온데간데없고, 눈앞에는 그저 흉측하고 처참한 몰골의 짐승만 남아 있었다."저, 저 자가 정세자라고?""어휴, 꼴이 저게 뭐야. 끔찍하군.""완전 괴물이 따로 없잖아."군중의 노골적인 조소가 배준형의 귓가에 들려왔다. 마치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그는 흠칫하며 굳어버렸다.발작하던 이성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그는 억지로 입을 꾹 다문 채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더는 무언가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 꼴을 보며 유지영은 코웃음을 쳤다.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과 삶 사이에서 극심한 갈등에 시달리며 속을 끓이는 배준형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죽자니 억울하고, 살자니 가망이 없는 지옥이었다."마마."어느새 다가온 운청이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구경꾼들 틈에 수상한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죄수를 빼돌리려는 무리인 듯합니다."유지영은 놀라지 않았다. 배준형 역시 전생의 기억을 안고 회귀한 자였다. 일찌감치 심복들을 길러두었을 터이니, 오늘같이 형이 집행되는 날 가만히 방관할 리 없었다.그가 눈앞에서 확실히 숨을 거두기 전까지는 절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처형을 알리는 징소리가 울렸다. 오시가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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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0화

유지영은 고개를 저었다."배준형은 너무 편하게 죽었어. 너희들 세 식구는 곧 저승에서 다시 상봉하게 될 것이야."배준형이 또 무슨 꿍꿍이를 부릴지 염려하지만 않았다면, 단숨에 목숨을 끊는 대신 곁에 두고 천천히 고문했을 것이다.도사들이 처형대에 올라 배준형을 위한 진을 펼쳤다. 그가 다시는 환생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만드는 주술이었다.이로써 그녀와 배준형 사이의 질긴 악연은 완전히 끝을 맺었다.국공부로 돌아오는 길, 배정은 금군에게 질질 끌려와 대문 밖 계단에 다시 꿇어앉았다. 빈소를 지키는 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연달아 받은 자극을 견디지 못한 탓인지, 배정은 쉴 새 없이 입을 나불거리며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정말로 미친 게 아닐 수도 있으니, 철저히 감시하거라."유지영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명했다. 운청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배정이 진짜로 미쳤든 미친 척을 하는 것이든, 유지영은 그를 쉽게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오시가 막 지났을 무렵.최윤은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뛰었다. 며칠째 뜬눈으로 밤을 새운 그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문이 열리고 소 상궁이 들어오더니 배준형의 유품인 옥패 하나를 건넸다."죄인 배준형의 형 집행이 무사히 끝났다. 태후 마마께서는 모자 정을 헤아리시어 마지막 유품을 가져다주라 명하셨어."옥패에는 배준형의 형 자가 새겨져 있었다.최윤의 창백한 얼굴은 짙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옥패를 받아 든 그녀는 참지 못하고 오열했다."태후 마마께서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는 것은 허락한다 하셨다."소 상궁의 말에 최윤은 기를 쓰고 바닥을 기듯 일어났다. 소 상궁은 직접 최윤을 이끌고 배준형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판자 위에는 흰 천이 덮여 있었다. 천을 들추고 시신을 확인한 순간, 최윤은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실신해 버렸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자녕궁의 편전이었다.그녀는 목놓아 통곡하다가 혼절하기를 반복했다. 깨어나면 다시 울부짖는짓을 반복했다.내전에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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