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귀비는 고개를 들어 건양제를 바라보았다. 계례를 치르던 날, 그를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 그는 여러 황자 중에서 특출난 편이 아니었으나, 허 귀비는 첫눈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오랜 세월이 흐르며 건양제는 한층 더 침착해졌고, 속내를 감출 줄 아는 지혜로운 군주로 변모했다.두 사람 사이에는 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거리감이 존재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녀는 단 한 번도 건양제의 마음에 닿지 못했다. 게다가 지난 몇 달간 이어진 냉랭함은 허 귀비를 더욱 초조하게 했다."폐하, 신첩이 경솔한 말을 한 것은 사실이나, 신첩의 마음은 언제나 폐하를 향해 있습니다."허 귀비의 뺨을 타고 두 줄기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청초한 눈망울이 애절하게 빛나며 가련함을 자아냈다.건양제가 허리를 굽히더니 손으로 허 귀비의 턱을 잡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허 귀비는 어쩔 수 없이 건양제와 시선을 마주해야 했다.시선이 얽힌 순간, 건양제의 눈에 서린 혐오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귀비의 마음에 언제나 짐이 있다고? 헌데 어찌하여 사사로이 정군왕과 긴밀히 교류한 것이냐?"건양제는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추궁했다.두려움에 떨던 허 귀비의 눈동자에 당황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허연."건양제의 손아귀에 점차 힘이 들어갔다."네가 정녕 바라는 것도 욕심도 없다면, 어찌 태후를 찾아가 황사를 달라고 청한 것이냐?""어제 짐은 이미 주의를 주었거늘, 어째서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것이냐?"턱이 붉게 짓눌린 허 귀비는 고통에 미간을 찌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폐하, 태후 마마께서는 후궁의 주인이시고 폐하께서도 늘 마마의 말씀을 따르시지 않습니까. 하여 신첩이 감히 태후 마마께 청을 올린 것입니다. 입궁한 지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황사를 바라는 것이 어찌 잘못입니까?"허 귀비는 스스로에게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다.이토록 넓은 후궁에 황사가 단 한 명도 없는데, 뒤에 숨겨진 내막이 없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터였다.건양제는 차갑게 코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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