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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1화

유지영은 류 부마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애초에 속내를 떠보기 위해 불렀을 뿐, 저 어린 소녀를 그에게 넘겨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이대로 증거를 지우고 발뺌하게 둔다면, 훗날 깨어난 유영을 무슨 낯으로 보겠는가.기씨 큰부인 역시 대강 눈치를 챘는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유지영은 서둘러 큰부인을 다독였다."큰부인께서는 먼저 돌아가 군주를 보살펴 주십시오. 유영 군주는 제 소중한 벗입니다. 이 아이는 제가 철저히 감시하여 진실을 밝혀내겠습니다.""현왕비 마마. 혹여 저 아이가 마마와 모종의 연관이라도 있는 겁니까?"류 부마가 돌연 입을 열더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유지영을 살폈다."얼마 전, 유영이가 현왕비 마마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두 분 사이에 언쟁이 오갔다 들었는데……."류 부마가 교묘하게 말끝을 흐리자,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유지영에게 쏠렸다.유지영은 그제야 류 부마에게서 왜 기시감이 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그는 죽은 당학과 같은 부류였다. 교묘한 말솜씨로 진실을 덮고 상황을 뒤집으려는 속셈이 똑같았다. 외조카가 외숙을 닮는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현왕비 마마, 이미 고귀한 신분이시거늘 어찌 유영이를 질투하십니까? 경성에서 누가 감히 마마를 건드리겠습니까. 유영이는 속이 깊지만 장공주께서 애지중지 키우신 탓에 세상의 험악함을 모릅니다. 지난 이 년 동안 늘 마마의 편이 돼주지 않았습니까."류 부마는 눈시울을 붉히며 하소연하듯 말을 이었다."혼인한 지 이 년 만에 어렵사리 가진 딸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던 참인데, 어찌 제 아이에게 이렇게까지 원한을 품으셨단 말입니까.""현왕께서 곁에 없다고 찾아가서 아량을 넓게 가지라고 말 한마디 한 것을 어찌 너그럽게 품어주지 못하시고 앙심을 품었습니까. 친부모의 사랑을 받는 유영이를 시기하여 이런 일을 꾸민 겁니까?"그는 마치 진짜로 그런 일이 있었다는 듯, 날카롭게 유지영을 추궁하며 모든 죄를 유지영에게 뒤집어씌웠다.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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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2화

기씨 큰부인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류 부마는 임강으로 보내진 지 이 년 만에, 한 달 전에야 돌아왔습니다. 저 소녀는 경성 사람도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 류 부마는 예전부터 적선을 베푸는 습관이 없었습니다.""류 부마는 우리 오라버니에게 압송되다시피 하여 경성으로 돌아왔는데, 어느 틈에 적선을 베풀었단 말입니까?"유지영의 가벼운 한마디에 류 부마는 얼굴이 화끈거렸다.첫 번째 거짓말이 까발려진 것이다."류 부마는 입으로는 딸을 걱정한다면서 정작 유영 군주가 괜찮은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묻지 않고 있습니다. 교묘한 말솜씨로 사람들을 선동하여 왕비인 나를 오해하게 만들고 있으니, 대체 무슨 속셈입니까?"유지영은 발로 류 부마의 명치를 걷어찼다"이 자를 결박하고 입을 틀어막아라. 당장 장공주부로 사람을 보내 소식을 전하거라."호위무사들이 다가가 류 부마를 제압하자 그는 다급히 반항했다."현왕비 마마, 지금 내 입을 막으려는 것입니까?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는 겁니까?""류 부마도 선한 자는 아니지. 장공주의 눈에 들어 처가 덕을 보는 주제에, 예전에 당씨 가문 일의 추문과도 깊게 연관되어 있었지 않나."군중 속에서 누군가 류 부마를 알아보고 옛날 이야기를 꺼냈다."내가 보기에도 류 부마는 어딘가 이상해.""저 부마, 임강에 일찌감치 살림을 차리고 첩을 여럿 두었다더군. 임강에서 온갖 지저분한 짓을 하다 적발되어 폐하의 명으로 경성으로 끌려온 것이라네. 아마도 현왕비 마마께 앙심을 품고 고의로 흑백을 뒤바꾸는 게지."순식간에 여론이 뒤집히고 적잖은 이들이 류 부마를 향해 손가락질했다.그의 밑바닥 과거까지 모조리 파헤쳐졌다.류 부마는 평정심을 잃고 몹시 분노하여 유지영을 노려보았다. 그녀를 저주하는 듯한 서늘하고 흉포한 눈빛은 방금 전 그 소녀와 똑같았다.유지영은 눈썹을 꿈틀했다."저 소녀를 데려오거라!"운청이 고개를 끄덕이고 명을 따랐다.유지영은 사람을 시켜 류 부마를 누르고 입을 막게 했다.소녀가 곧 끌려왔다."맑은 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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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3화

유지영은 몸을 돌려 기씨 큰부인에게 말했다."이 일은 꽤나 복잡한 사건이니, 모든 것은 장공주 전하께서 돌아오시면 결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유지영이 류 부마를 감시하는 것은 기씨 큰부인에게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어쨌든 류 부마는 유영 군주의 아버지고 두 가문은 사돈지간이기도 했다. 기씨 가문에서 처벌을 가볍게 하든 무겁게 하든 유영 군주에게 설명하기 난처했다."현왕비 마마의 뜻에 따르겠습니다."기씨 큰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손을 저어 주위 사람들을 물렸다.구경하던 백성들도 흩어졌다.유지영은 류 부마 일행을 이끌고 현왕부로 돌아왔다. 그녀는 그들을 꽁꽁 묶어 가두었다. 오늘은 참으로 류 부마 때문에 분통이 터지는 날이었다."먼저 저 소녀부터 심문하여 죄를 묻되, 목숨은 살려두거라."유지영의 당부에 호위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류 부마에 관해서는 아직 조령 장공주의 의중을 알 수 없어 섣불리 손을 댈 수 없었다. 유지영은 사람을 시켜 수면제를 끓여오게 한 뒤 강제로 먹여 기절시켰다."매일 한 사발씩 먹여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해라."저런 교활하고 말솜씨 좋은 자가 깨어 있으면 또 무슨 속임수를 쓸지 모르니 의식을 잃게 두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기씨 가문에 사람을 심어 두고, 유영 군주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든 즉시 내게 와서 보고하거라."그녀는 안심하지 못해 거듭 당부했다.시녀가 명을 받고 나갔다.그녀는 밖을 한 번 내다보고는, 호위무사에게 저 소녀의 정체를 자세히 조사하라 지시했다."류 부마가 혼수상태가 되면 손목에 상처를 낸 뒤 저 소녀 앞에 던져두어라. 류 부마도 유영 군주와 같은 독에 당했다고 전해라."모든 지시를 마친 후 그녀는 초조하게 기다렸다.기씨 가문에서 곧 소식이 왔다. 유영 군주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의식이 없었고 궁의 태의 여럿이 불려와 치료 중이라고 했다.서 태후까지 소식을 듣고 북명대사를 보냈다."군주께서는 중독되신 것이 맞습니다. 다행히 그 자리에서 심맥을 보호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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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4화

유영 군주는 창백한 얼굴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유지영의 손을 꼭 쥐었다."현왕비, 참으로 고맙습니다.""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유지영은 고개를 저으며 푹 쉬고 신경 쓰지 마시라고 거듭 당부했다.유지영의 위로에 유영 군주의 감정이 차츰 안정되었다.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으나 금세 피곤한 기색을 내비쳤다."푹 쉬십시오. 며칠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유지영은 일어나 유영 군주의 이불을 덮어주었다.마당을 떠나 길을 걷다 기씨 큰부인과 마주쳤다. 기씨 큰부인 역시 유지영에게 감사를 표했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의원이 말하길, 이미 손발도 자라난 사내아이였다고 합니다."유지영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몸을 잘 회복하시면 훗날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기장훈은 기씨 큰부인의 외아들이었고, 이 아이 역시 오랫동안 기다려온 장손이었다. 이렇게 황망하게 잃었으니 기씨 큰부인으로서도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하지만 하필 이 일은 장공주부와 얽혀 있었다.기씨 가문은 이 억울함을 삼켜야만 했다. 기씨 큰부인의 안 좋은 기색을 살핀 유지영이 말했다."장공주 전하께서 그냥 넘어가지 않으실 겁니다. 세상 빛도 보지 못한 외손주를 위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실 겁니다."기씨 큰부인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기씨 가문을 나서는 유지영의 마음은 착잡했다. 마차에 오르려던 순간 머릿속에 번뜩 생각이 스치며 미간이 찌푸려졌다."왕비 마마?"그녀의 이상을 눈치챈 운청이 걱정하며 다가왔다.유지영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유영 군주가 찔린 후, 내가 류 부마를 모셔 오라 했을 때 류 부마는 어디 있었느냐?"어쩌면 그녀가 아주 중요한 사실을 놓쳤을지도 몰른다.운청이 지체 없이 대답했다."공교롭게도 장공주부로 가던 길에 류 부마를 만났습니다. 보아하니 류 부마도 주수루 방향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미리 연락을 취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당시 운청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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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5화

시녀가 달려와 손바닥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닦아주려 했으나 조령 장공주는 차갑게 거절했다."장공주 전하……."조령 장공주는 고개를 젖히고 크게 웃었다."모두를 속이고 그런 앙큼한 짓을 벌이다니! 내가 그 몹쓸 핏줄을 십여 년간이나 편애했다니!"생각할수록 화가 치밀고 피를 토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부마를 끌고 오거라."그녀가 차갑게 명했다.잠시 후 류 부마가 끌려왔다. 이틀을 혼수상태로 보낸 그는 눈을 뜨자마자 서늘한 조령 장공주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의 동공이 수축하며 당혹감이 스쳤다."전하?"조령 장공주는 허리를 굽혀 자리에 앉으며 담담하게 류 부마를 보았다."본궁이 살아서 돌아온 것이 의외인가 보지?""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전하. 우리가 부부의 연을 맺고 다정히 지낸 세월이 얼만데, 내가 어찌 부인이 잘못되기를 바라겠습니까."류 부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우리 장공주부는 본래 화목했습니다. 그러나 부인이 현왕비를 만난 후부터 모든 게 변했지요."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현왕부는 이제 제 뜻에 따르는 자는 살리고 거스르는 자는 죽이려 드니……."쉴 새 없이 핑계를 대며 자신이 억울한 피해자인 양 가증스럽게 굴고 있었다.조령 장공주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눈치챘는지 류 부마는 무릎을 꿇었다."옥이의 어미를 거둔 것은 분명 제 잘못입니다. 허나 그녀는 저에게 은혜를 베푼 이였습니다. 여러 해 동안 돌보아주긴 했으나 남녀 간의 정은 없었습니다. 제 마음에는 오직 장공주 전하뿐입니다.""옥이가 세상 물정을 몰라 유영이를 다치게 했으니, 전하께서 때리시든 죽이시든 아무 말 않겠습니다."류 부마는 애통한 얼굴로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았다.류 부마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니 과연 당학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똑같은 궤변이었다.자신의 계획이 실패했음에도 세 치 혀로 책임을 남에게 넘기고 끊임없이 약한 척 동정을 구하며 용서를 빌었다.그녀가 어찌 이리 어리석었단 말인가.류 부마에게 이십 년 가까이 철저히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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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6화

조령 장공주는 류 부마를 서늘하게 내려다보았다. 사내의 눈에는 당혹감과 놀라움, 그리고 깊숙이 숨겨져 있던 원망이 보였다. 과거 그녀는 장공주의 신분으로 신분이 미천한 류 부마와 혼인했다. 수많은 이들이 만류했지만, 그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그동안 류 부마는 그녀에게 순종적이었다.부부의 금슬은 제법 좋은 편이었다.류 부마는 당씨 가문의 첩이 된 누이를 때때로 가엾게 여겼다. 조령 장공주는 그런 부군을 위해 당씨 가문을 압박하며 당학을 다방면으로 돌보아 주었다.경성의 수재 당학은 문무를 겸비한 인재라며 장안의 이목을 끌었다.첩실 류씨마저 그 덕을 보아, 정실이 아님에도 당씨 가문에서 정실 부인 이상의 대우를 누렸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조령 장공주는 스스로 뺨을 치고 싶을 만큼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통감했다."전하……."평정심을 잃은 류 부마는 애처로운 얼굴로 조령 장공주를 불렀다.그는 과거의 인연을 구구절절 읊어대기 시작했다.조령 장공주는 그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간밤에 당학의 관을 무덤에서 파냈다. 그리고 네 피를 그의 유골에 떨어뜨렸지. 결과가 어땠을 것 같으냐?"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에 류 부마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는 황급히 시선을 내려 천으로 감싸인 자신의 손목을 확인했다. 몽롱했던 간밤, 누군가 손목을 그어 피를 받아 가던 감각이 비로소 떠올랐다.류 부마는 그제야 사태를 깨달았다.다음 순간, 바닥에 주저앉은 류 부마는 고개를 들어 조령 장공주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전전긍긍하며 비위를 맞추던 기색은 자취를 감추고, 오히려 기묘할 정도로 차분해진 얼굴이었다."아들을 원한 것이 그리 큰 죄입니까? 전하, 저는 장장 이십 년을 당신 앞에서 납작 엎드려 살았습니다. 그 정성을 봐서라도 저를 이리 대하실 수는 없습니다."그는 변명 한마디 없이 자신의 죄를 순순히 인정했다.조령 장공주는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식었다. 그녀라고 아이를 낳기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유영을 낳을 당시 심한 출혈로 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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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7화

그 후 조령 장공주는 사람을 시켜 류 부마의 시신을 난장터에 내다 버리게 했다. 부마의 물건 또한 모조리 찾아내 불태웠다.모든 일이 끝난 후, 그녀는 기씨 큰 부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유영은 본궁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여식이네. 이번 일에 억울하게 휘말렸으니, 본궁이 유영을 공주부로 데려와 직접 돌보고 싶네."거절할 여지가 없는 장공주의 말에 기씨 큰 부인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기씨 큰 부인을 배웅한 조령 장공주는 사람을 시켜 현왕부에 후한 예물을 보내 감사의 뜻을 표했다.*오월 초, 배현준이 소식을 전해왔다. 북신의 상황이 모두 안정되었으며, 머지않아 군대를 이끌고 경성으로 개선한다는 내용이었다.유지영은 그 소식을 들은 후로 내내 얼굴에서 웃음꽃을 지우지 못했다.운청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날짜를 헤아려 보니, 빠르면 팔월에는 전하를 뵐 수 있겠습니다. 우리 꼬마 세자께서도 드디어 아버지를 뵙게 생겼네요."유지영은 뜰에 나와 신이를 안고 따스한 햇볕을 쬐었다. 신이는 맑고 투명한 두 눈을 깜빡거렸다. 아이는 팔랑거리는 나비를 눈으로 좇으며 이따금 방긋방긋 웃음을 터뜨렸다.배현준을 기다리는 동안 유지영의 일상은 평온했다. 낮에는 신이와 시간을 보내고, 밤이 되면 불경을 필사했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이 되면 그녀는 직접 필사한 불경을 불당에 올렸다.유관성과 방온은 이따금 현왕부를 찾아와 유지영의 안부를 물었다. 그들은 올 때마다 신이를 위해 신기하고 진귀한 장난감들을 챙겨 왔다.운청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마마, 허 낭자께서…… 내일 혼례를 올리신다고 합니다."유지영은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허지는 참으로 훌륭한 처자였지만, 안타깝게도 방온과는 연분이 닿지 않았다. 유지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부디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할 텐데."이튿날, 허씨 가문은 성대하게 혼례를 치렀다. 가문의 여식을 화려하게 시집보내는 만큼 장안이 떠들썩할 정도로 번화했다.현왕부에도 초청장이 당도했다. 유지영은 상중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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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8화

어느덧 날이 어둑해졌다.유지영은 배진과 잠시 장난을 치다가 운청의 귀띔에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녀는 아들의 뽀얗고 보드라운 볼을 쓰다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마차에 오르자 운청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마마, 혹시 육씨 노부인께서 무언가를 눈치채신 것은 아닐까요?"유지영은 입술을 가볍게 축이고는 대답했다."처음 만났을 때 노부인께서 내 얼굴을 보신 순간부터 어느 정도 짐작은 했어. 영원히 숨길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산기슭에서 마주쳤을 때, 육씨 노부인과 육 부인이 지었던 놀란 표정은 결코 꾸며낸 것이 아니었다.이윽고 마차가 육씨 저택 문 앞에 멈춰 섰다. 저택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한 상인이 이사를 가며 남겨둔 집이라 그런지 뜰 안에는 쓸쓸한 기색이 다소 남아 있었으나, 안팎으로는 티끌 하나 없이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회랑 아래로 늘어선 등불들이 환하게 주변을 밝혔다. 유지영이 채 회랑에 들어서기도 전에, 육 부인이 직접 마중을 나와 다정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오늘 바람이 찹니다. 오시는 길에 고생하지는 않으셨는지요?"유지영은 망토를 여미며 가볍게 고개를 젓고는 육 부인의 뒤를 따라 대청으로 들어섰다.방 안은 대낮처럼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 향로에서는 은은한 향이 피어올라 기분 좋은 내음이 감돌았다. 안채로 들어서자 한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곧이어 두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육씨 노부인이 걸어 나왔다. 혈색을 보아하니 산기슭에서 만났을 때보다 기력이 많이 쇠한 듯했다.허나 두 눈빛만큼은 여전히 맑게 빛나며 다정하게 유지영을 향해 있었다."현…… 현왕비 마마."노부인이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려 하자, 유지영이 황급히 그녀를 만류했다."노부인, 예를 거두고 편히 앉으시지요."그때 육 부인이 손을 저어 주위에 있던 시종들을 모두 물리고는 직접 차를 올렸다. 육씨 노부인은 유지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마치 그녀의 얼굴 너머로 다른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애틋한 눈빛이었다.유지영은 육씨 노부인과 마주 앉아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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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9화

어느덧 유월이 되었다. 창밖에서는 매미 울음소리가 요란했다. 배진은 문틀을 짚고 제법 오래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고개를 든 채, 뜰에서 긴 장대를 들고 매미를 쫓는 시녀들을 바라보았다.운민이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배진의 곁을 지켰다.안채에서 장부를 정리하던 유지영은 고개를 들어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가에도 절로 옅은 미소가 번졌다.*중순 무렵, 최 부인이 뵙기를 청하며 여러 차례 사람을 보냈다. 유지영은 그때마다 바쁘다는 핑계로 돌려보냈다. 이미 한번 배신을 겪은 이상, 경계심을 늦출 수는 없었다.운청이 주저하며 보고를 올렸다."최 소저는 암자에서 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허나 최씨 노부인께서 소저를 본가로 데려와 요양시키는 것을 완강히 반대하고 계십니다. 아마도 마마께서 직접 나서서 노부인을 설득해 주시기를 바라는 눈치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허 낭자는 회임을 했다고 합니다."몇 달 만에 다시 듣는 허지의 소식에 유지영은 작게 숨을 내쉬었다."잘된 일이네."하지만 운청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유지영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무슨 일이냐?""간밤에 허 낭자의 부군이 소국공께 흠씬 두들겨 맞았습니다. 그 일로 허 낭자가 크게 놀랐는데, 밤새 고생한 끝에 간신히 아이를 보전했다 합니다. 오늘 아침 일찍, 허씨 가문이 이씨 가문과 합세하여 소국공을 관아에 고발했습니다."소식을 들은 유지영의 안색이 차갑게 굳었다."어찌하여 지금에서야 보고하는 것이냐?"운청이 곤란한 기색으로 답했다."소국공께서 직접 사람을 보내 마마께는 절대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유지영은 하던 일을 멈추었다. 현왕부와 허씨 가문은 겉으로 척을 지지는 않았으나 이미 왕래를 끊은 지 오래였다. 하필 이 시점에 벌어진 일에 유지영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큰오라버니는 매사에 신중하고 인내심이 강해 먼저 말썽을 일으킬 분이 아니다. 어찌하여 아무 까닭 없이 이 낭군을 폭행했단 말이냐?"운청이 조심스레 말했다."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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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0화

유지영은 여전히 담담한 미소를 지은 채,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최씨 가문이 춘풍루라는 거대한 상권을 내놓을 정도라면 바라는 바가 필시 막대할 터였다.수년간 가문을 이끌어온 최 부인은 사람의 심리를 조종하는 데 능했다. 유지영은 결코 그녀에게 틈을 보일 수 없었다.유지영은 말없이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곁에 앉은 최 부인 역시 끈기 있게 기다렸다. 유지영이 먼저 연유를 캐묻기를 바라는 눈치였다.하지만 유지영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침내 최 부인이 조금씩 초조해질 무렵, 홍주가 비단 상자를 받쳐 들고 다가와 공손히 올렸다.유지영은 의아한 기색을 내비쳤다."마마, 누군가 마마께 전해 달라며 두고 간 것입니다."홍주가 아뢰었다.비단 상자를 열자 그 안에서 문서가 나왔다. 다름 아닌 춘풍루의 나머지 지분 절반이 명시된 문서였다.가까이 앉아 있던 최 부인도 그 안의 물건을 똑똑히 보았다. 그녀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과거 춘풍루는 최씨 가문과 무명의 동업자가 합작하여 세운 곳이었다. 당시 최씨 가문은 막대한 은자를 대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그런데 뜻밖에도 춘풍루는 불과 이 년 만에 경성 제일의 주루로 우뚝 섰다. 초반에는 왈패들의 행패가 끊이지 않았으나, 배후의 주인이 나서서 번번이 상황을 평정했다.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최 부인조차 그 은밀한 동업자의 정체를 여태 알지 못했다.상자 안에는 반쪽짜리 옥패와 인장 하나가 함께 놓여 있었다. 결코 위조할 수 없는 춘풍루의 확고한 표식이었다.최 부인은 한참 만에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비단 상자를 가리키며 몹시 놀란 얼굴로 물었다."현왕비 마마께서는 이 배후의 주인이 누구신지 아시는 겁니까?"달칵.유지영이 상자 뚜껑을 덮었다. 그녀는 최 부인을 스윽 바라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큰오라버니께서 개선하셨을 때, 태후 마마께서 폐하께 직접 당부하셨습니다. 큰오라버니의 혼사는 태후 마마께서 친히 주관하시겠다고 말이지요. 이미 출가한 누이가 어찌 가문의 적장자 혼사에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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