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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1화

유지영은 최 부인을 돌려보낸 뒤 사람을 시켜 방온에게 주의를 주었다. 최씨 가문의 회유와 협박에 흔들려 분별력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그녀는 춘풍루의 인장을 챙겨 직접 춘풍루로 향했다.춘풍루의 지분 절반은 배현준의 소유였다. 그녀가 지분 절반이 적힌 문서를 보여준 것은 최씨 가문을 향한 경고였다.*은밀한 별실 안.유지영은 심복을 불러 전날 있었던 일을 물었다. 동 점주가 대답했다."소국공께서 먼저 손을 대신 것은 맞습니다. 허나 상처가 깊지 않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피를 토하며 의식을 잃었습니다. 저도 오늘에서야 허씨 가문과 이씨 가문이 합세하여 소국공을 고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상황이 무척 익숙했다.유지영은 허씨 가문이 무슨 수로 이 낭군을 설득해 기꺼이 매를 맞게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태의가 직접 살폈으니 상처를 꾸며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유지영은 장부를 넘기며 물었다."어제 다툼이 벌어졌을 때, 방 안에 누가 있었느냐?"동 점주는 명단을 적어 올렸다. 백여 개의 별실이 꽉 차 있었고, 경성의 내로라하는 가문 사람들은 거의 다 모여 있었다.유지영은 빼곡히 적힌 이름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동 점주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소국공께서는 어제 안씨 가문 소공자와 기씨 가문 넷째 공자의 초대를 받아 모란각에서 식사를 하셨습니다. 우연히 작약각 앞을 지나다가 이 낭군이 허 낭자를 들먹이며 방온 공자를 모욕하는 것을 들으셨습니다. 이에 소국공께서 노하여 연유를 따져 물으신 겁니다."유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안 공자와 기 공자도 합세하였느냐?"동 점주가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 모두 같이 싸웠습니다."유지영은 상황을 파악하고 다시 물었다."일이 터진 후 자초지종을 떠보러 온 자가 있었느냐?"동 점주는 최씨 가문이 사람을 보냈던 일을 고했다. 최씨 가문은 관리인과 일꾼 몇 명을 데려갔고, 여태 돌려보내지 않았다.동 점주가 말했다."최씨 가문은 사람을 물갈이할 작정인 듯합니다."유지영은 차갑게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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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2화

안씨 노부인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내 손자가 억울하게 휘말렸지만, 소국공의 죄를 벗겨주기 위해서라면 안씨 가문도 기꺼이 나설 수 있습니다. 현왕비 마마의 성의가 어느 정도인지에 달렸지요."안채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의자에 앉은 유지영은 소매 아래로 주먹을 꽉 쥐었다.그녀는 남의 위기를 이용해 잇속을 챙기는 자를 가장 혐오했다. 지금 안씨 노부인은 노골적으로 그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유지영은 미간을 좁히더니, 이내 실소를 터뜨렸다."노부인의 말씀을 저는 이해할 수 없군요. 오늘 저는 그저 댁의 소공자에게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자 왔을 뿐입니다. 당사자인 이상 언젠가는 조사를 받게 될 테니까요. 노부인께서 사람을 내어주지 않으시겠다면, 이만 관두지요."말을 마친 유지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발길을 돌렸다.안씨 노부인은 다급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현왕비 마마, 마마께서 태후 마마께 몇 마디 간청만 하시면 태후 마마께서 필시 소국공에게 사혼을 내려 주실 겁니다. 우리 안씨 가문의 여식 중 누구든 고르도록 해드리지요. 어떻습니까?"유지영은 대꾸조차 하지 않고 소매를 떨치며 밖으로 나섰다.그 뒷모습을 보며 안씨 노부인이 노발대발했다."오만방자하구나!"*한 시진 뒤.기씨 가문은 발칵 뒤집혔다. 넷째 공자의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자, 기씨 가문은 사방으로 의원을 구하다 못해 조령 장공주에게까지 매달렸다.태의들이 번갈아 진맥을 했으나 결과는 같았다. 심각한 내상이었다. 넷째 공자는 태의들 앞에서 피를 토하며, 자신에게 손을 댄 자는 이 낭군이라 단언했다.기씨 둘째 부인은 분을 참지 못하고 혼절했다가 깨어난 뒤 장공주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조령 장공주는 본래 기씨 가문에 빚이 있는 데다, 유영 군주도 기씨 가문의 며느리이니 모른 척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즉각 승낙했다.장공주는 곧장 마차를 준비해 입궁했다. 이 낭군이 함부로 입을 놀리고 사람을 때렸다며 폐하께 고발하고 기필코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다.여러 가문이 궁으로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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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3화

의정전 밖. 백관들은 조회에 참석할 때마다 꿇어앉은 세 사람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소문은 자연스레 궁 밖으로 퍼져나갔다.허씨와 이씨 가문은 인맥을 총동원해 함께 상소를 청하자고 하소연했다.하지만 건양제가 세 사람을 비호하지 말라 엄명을 내린 탓에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이씨 가문이 의원을 불러 소란을 피우자, 기씨 가문도 질세라 요란하게 의원을 찾아 나서며 장안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소동이 몇 차례 오가자, 이씨 가문도 내막을 간파했다."기씨 가문의 그 녀석이 고의로 우리를 물고 늘어진 게 틀림없어요."이씨 노부인은 분노에 숨을 헐떡이며 어떻게든 증인을 찾아야 한다고 난리를 피웠다.일에 소국공이 얽혀 있어서 대부분은 모른 척하며 입을 다물었다.연거푸 벽에 부딪히자 이씨 노부인도 방도가 없었다. 그녀는 사람을 시켜 허 부인을 불러들여 탁자를 내리치며 분통을 터뜨렸다."이제 어쩔 셈인가? 기씨 가문이 우리 이씨 가문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있네. 부인의 오라비는 의정전 밖에 닷새째 꿇어앉아 벌써 두 번이나 혼절했소. 그런데도 폐하께서 꿈쩍도 않으시니 대체 어찌 된 일이오!"허 부인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녀는 이씨 노부인에게 대강 둘러대고는 쫓기듯 허씨 저택으로 돌아왔다.허씨 노부인 역시 속이 타기는 매한가지였다. 사방에 서신을 보냈으나 아무런 회답이 없었다. 그녀는 숨을 들이마셨다."장공주부에 사람을 보내거라."그녀는 장공주와 적게나마 친분이 있었다.허 부인이 놀라 되물었다."어머님, 장공주께서는 기씨 가문을 돕고 계십니다. 게다가 얼마 전 현왕비가 유영 군주를 구해주기도 했는데, 어찌 우리를 돕겠습니까?"허나 허씨 노부인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돕고 안 돕고는 나중 문제다. 적어도 실마리는 얻을 수 있을 테니."마차가 준비되자, 허씨 노부인은 지팡이를 짚고 장공주부로 향했다. 한 시진을 기다렸으나 돌아온 것은 문전 박대였다."장공주 전하께서 몸이 좋지 않으시어 손님을 들이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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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4화

허씨 노부인은 안씨 노부인과도 제법 친분이 있었다.만약 누군가 안씨와 기씨 가문을 부추겨 소란을 피운 정황을 잡아낸다면, 그 또한 돌파구가 될 터였다.장공주부에서 그랬듯 안씨 노부인 역시 병을 핑계로 만나주지 않았다. 대신 안 대인이 나와 응대했다."제 자식의 부상이 기씨나 이씨 가문보다는 덜하다 하나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허씨 노부인께서도 오해를 살 일은 피하시지요.""안씨 노부인은 어찌 지내시오?"허씨 노부인이 물었다."병세는 좀 어떻소?"안 대인은 문 앞을 막아선 채 허씨 노부인을 안으로 들일 기색이 없었다. 그저 요양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작금의 상황에서 안씨 가문이 제 발등을 찍어 가며 허씨 가문을 도울 리 만무했다.연거푸 문전 박대를 당한 허씨 노부인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 대인에게 노부인이 푹 쉬게 해달라며 며칠 뒤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마차에 올랐다.하루 종일 사방이 꽉 막힌 듯했다.시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노부인, 차라리 현왕비 마마께 사정해 보는 것은 어떠신지요?"허씨 노부인이 고개를 저었다."이 일을 배후에서 판을 짠 것이 현왕비인데, 어찌 우리 편을 들겠느냐?"가보았자 헛수고일 뿐이었다.잠시 생각에 잠겼던 허씨 노부인이 시녀에게 지시했다."이씨 가문으로 가거라. 이씨 노부인에게 허지가 현왕비와 안면이 있으니, 허지를 현왕부로 보내 회포를 풀게 하라고 전해."이씨 노부인은 허씨 노부인의 제안을 그대로 따랐다. 그녀는 허지를 구슬려 현왕부로 가라 압박했다."이번 일은 서로 한 발씩 양보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 네가 현왕비에게 입궁하여 사정해 달라고 부탁해 보아라. 어찌 되었든 소국공은 현왕비의 오라비가 아니냐. 우리 이씨 가문에서도 소국공의 죄를 더는 묻지 않겠다고 전하거라."허지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거부감이 역력한 얼굴이었다.일이 이 지경이 된 것은 온전히 이씨 가문의 탓이었다. 무슨 염치로 유지영을 찾아가 사정하란 말인가."일이 터진 지 엿새째입니다. 현왕비 마마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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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5화

운청은 일행을 내쫓고 안채로 돌아와 보고를 올렸다. 유지영은 잔뜩 화가 난 그녀의 모습에 가볍게 실소를 터뜨렸다."이 일은 허지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이씨 가문도 기함했고 허씨 가문도 다급해졌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 그만 화 풀렴.""마마, 애초에 마마께서는 허지에게 그리 마음을 쓰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마마가 아니었다면 정군왕의 첩실로 들어가 어디서 고생하고 있을지 모를 일 아닙니까."운청이 화가 난 것은, 허지가 그 얄팍한 친분을 내세워 사정하러 온 뻔뻔함 때문이었다.유지영은 딱히 언짢지 않았다. 허씨 노부인은 오늘 여러 가문을 전전하다 문전 박대를 당했으니 가만히 포기할 리 없었다. 그녀는 그쪽에서 반드시 허지를 보낼 것이라 예상했다.그런데 정말로 찾아온 것이다.유지영은 문득 방온이 어째서 그토록 파혼을 고집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마침 방온이 안채로 들어섰다."지영아, 큰형님이 나 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으니 굳이 사사로운 정을 봐줄 필요 없다."방온은 허지가 다녀갔다는 소식을 듣고, 행여 유지영이 마음을 약해질까 당부하러 온 길이었다.유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큰오라버니께서 이미 엿새나 고생하셨습니다. 두 집안에서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이 지경까지 왔는데 제가 어찌 마음이 약해지겠습니까?"이번 일은 유관성 한 사람만 얽힌 문제가 아니었다. 허씨 가문은 돌아가신 유국공까지 모욕했다.게다가 궁 안는 은밀히 유관성을 보살피는 이가 있을 터였다.건양제가 이미 어명을 내렸으니,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그만이었다.다시 이틀이 지났다.허 대인도 한계에 달했다. 두 다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에 그는 이를 꽉 깨물고 곁에 있는 유관성을 노려보았다."오누이의 정이 애틋하다더니 다 허울뿐이군요. 현왕비가 입궁해 태후 마마께 사정이라도 했으면, 소국공은 진작에 집으로 돌아갔을 텐데 말입니다."유관성은 눈썹을 까딱였다."허 귀비께서 입궁하신 지가 언젠데 폐하께 두 번 다시 사정하러 오지 않는 것을 보면, 대인 남매의 정이야말로 얄팍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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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6화

이 말은 다분히 유관성을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하지만 유관성의 표정은 차분했다.허 대인은 어떻게든 이 대인을 붙들고 끝내 잘못을 빌지 않았다. 그렇게 이틀을 더 버틴 끝에 이 대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번에는 전과 달랐다. 상 내관은 그저 무심하게 흘끗거릴 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태의조차 오지 않았다.허 대인은 상 내관을 바라보며 말했다."상 내관, 이 대인이 혼절했습니다.""허 대인, 소인도 똑똑히 보았습니다."상 내관은 고개를 돌리며 허 대인의 말을 외면했다.이 대인이 깨어난 것은 한밤중이었다. 안색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몸은 불덩이 같았다.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 했으나 번번이 무너져 내렸다. 몇 번을 바동거리던 그는 다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물…… 물 좀……."한참을 애원해도 거들떠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의정전의 일거수일투족은 허 귀비의 궁으로 전해졌다.얘기를 들은 허 귀비가 미간을 찌푸렸다."자녕궁과 현왕부 모두 잠잠하단 말이냐?"궁녀가 고개를 저었다."태후 마마께서는 오늘 오후 어화원으로 꽃구경을 다녀오셨습니다. 소인이 보기에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으시는 듯했습니다. 현왕비 마마 쪽도 아무런 동요가 없습니다."이번 소동에서 건양제의 의도가 무엇인지 눈치 빠른 이들은 진작에 간파했다. 허 귀비도 마찬가지였다.그녀가 여태껏 구명을 청하지 않은 것도 황제의 속내를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다만 유지영이 이토록 무던하게 참아낼 줄은 예상치 못했다."귀, 귀비 마마, 허 대인께서 혼절하셨습니다!"궁녀가 허둥지둥 달려와 아뢰었다.허 귀비는 심호흡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의정전으로 행차하겠다!"*그 시각, 의정전 밖에는 서늘한 밤바람이 불고 있었다. 허 귀비는 멀찍이서 바닥에 엎어지듯 쓰러져 있는 허 대인과 이 대인을 확인했다. 그 곁의 유관성만이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그녀가 유관성의 앞에 서서 서늘하게 내려다보았다."소국공, 아직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텐가?"유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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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7화

상 내관은 허 귀비의 눈치를 살피다가 마지못해 내전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잠시 후 굳은 얼굴로 다시 걸어 나왔다."폐하의 어명이십니다. 허 귀비는 궁의 법도를 무시하고 윗사람을 거스른 죄로 품계를 비로 강등한다 하셨습니다!"그 말을 들은 허 귀비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허비 마마,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시지요."상 내관이 말했다.갑자기 바뀐 호칭에 그녀는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건양제에게 품계를 강등당한 것은 이번이 벌써 두 번째였다.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온몸이 떨렸다.그녀의 두 눈에 차가운 기운이 서렸다. 허비는 분노를 삭이며 소매를 떨치고 돌아섰다.회랑 아래에 정적이 감돌았다.상 내관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구경 중이던 유관성과 시선이 마주쳤다. 상 내관은 멋쩍은 듯 코끝을 매만지더니, 주위를 살피고는 슬그머니 등을 돌렸다.한편, 허 대인과 이 대인은 여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유관성은 말없이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내전의 문을 열고 들어가 용상에 앉아 있는 건양제에게 무릎을 꿇었다."폐하.""앉거라."건양제가 곁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그 위에는 푹신하고 두툼한 방석이 깔려 있었다."예."자리에 앉자 다과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특별히 달인 보양탕까지 내어졌다. 벌써 세 번째로 내전에 불려 들어와 누리는 호사였다.유관성이 속을 든든히 채우고 나자, 건양제가 미소를 띠며 손에 들고 있던 상소를 내려놓았다."짐을 원망하느냐?"유관성은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그대는 유국공부의 귀한 후계자이고 이제는 소국공이 되었지. 그런 이가 장장 여드레를 꿇어앉았으니…… 정녕 아무런 원망을 안 한단 말이냐?"건양제는 유관성의 눈빛에서 속내를 읽어내려 했다.하지만 유관성의 맑은 눈빛에는 원망도 분노도 서려 있지 않았다."폐하, 신은 양나라로 돌아와 가족을 찾고 족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건양제는 온화하게 웃었다."그럴 수는 없지. 그대의 부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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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8화

소 상궁은 허비가 올 줄 알았다는 듯 대문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허비의 앞을 막아섰다."태후 마마께서는 불경을 필사 중이시라 아무도 들이지 않으십니다. 허비 마마, 이만 돌아가시지요.""소 상궁, 본궁은 여기서 기다리겠네."허비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그렇게 세 시진이 지났다.다행히 서 태후는 허비에게 기회를 주었다. 허비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후궁에서 군왕의 총애를 받던 귀비의 자태는 온데간데없이 초라한 모습이었다."태후 마마를 뵙습니다."허비가는 무릎을 굽혀 예를 올렸다.서 태후는 담담히 시선을 던지고는 하던 일을 멈추었다."말해보거라."허비가 목소리를 낮추었다."과거 단귀인이 입궁했을 당시, 태후 마마께서 신첩에게 부탁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때 마마께선 신첩에게 빚을 하나 지셨지요. 신첩은 그 빚으로 마마께서 폐하께 사정해 주시기를 청합니다."이 년 전 일이 언급되자, 서 태후는 헛웃음을 지었다."허비, 지금 나를 협박하는 것이냐?""당치도 않습니다."허비는 시선을 내린 채 평온한 얼굴을 유지했다.한참 뒤, 서 태후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폐하께서 누구도 사정하지 말라 어명을 내리셨거늘, 허비는 나를 압박하여 폐하의 황명을 거역하게 하려는 것이냐?"허비는 고개를 들어 또박또박 대답했다."태후 마마의 말씀이라면 폐하께서도 들으실 겁니다."말투에는 다른 뜻이 숨어 있었다.남들은 알아듣지 못할 말이었으나 서 태후는 뜻을 알아차렸다. 입가에 머물던 미소를 거둔 서 태후가 손을 내저었다."소 상궁, 허비를 배웅하거라!"서 태후는 평생 누군가에게 협박받는 것을 가장 혐오했다. 오늘이라고 다를 바 없었고, 허비의 협박에 흔들릴 리는 더더욱 없었다.허비는 서 태후가 체념한 줄로만 알고 안도했다. 하지만 서 태후는 곧이어 말했다."허비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폐하께 전하거라!"허비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녀는 당황하며 물었다."태후 마마?"서 태후는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허비를 바라보다가 탁자를 짚고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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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9화

열흘째 되던 날, 허 대인이 깊은 혼절에 빠져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허씨 노부인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그녀는 다급히 사람을 시켜 마차를 대령하게 한 뒤 현왕부로 향했다.아침부터 날이 저물 때까지 기다렸으나 현왕부에서는 끝내 그녀를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허씨 노부인은 이대로 발길을 돌릴 수 없어, 아예 사람을 보내 허지를 불러오게 했다.이씨 가문은 본디 허씨 가문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기에, 허지는 금세 현왕부로 실려 왔다."네 아비와 시아버지의 목숨이 현왕비에게 달렸다. 당장 문 앞에 꿇어앉거라. 현왕비가 만나주지 않으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허씨 노부인이 호통을 쳤다.허지는 제 귀를 의심했다."할머니, 지금 현왕비를 협박해 뜻을 굽히게 만들겠다는 겁니까?"허씨 노부인은 허지를 차갑게 노려보았다."무슨 헛소리냐! 네 고모는 궁에서 강등당해 도움을 청할 곳도 없다. 헌데 딸인 네가 아비의 생사를 모른 척하겠다는 게냐?"허씨 노부인은 애초에 허지에게 인내심이 없었다. 심지어 이 모든 사달을 허지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허씨 가문과 이씨 가문이 이 지경이 된 것은 전부 너 때문이다!"쏟아지는 비난에 허지는 입술을 꾹 깨물고 주먹을 쥐었다. 문득 대나무 숲 밖에서 방온에게 털어놓았던 일들이 떠올랐다.그는 가는 길이 다르면 뜻을 함께할 수 없고, 각자 책임져야 할 것들이 있다고 했다.당시 허지는 그 말에 온전히 동의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보니 확실히 그녀의 잘못이 맞았다. 허씨 가문은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골칫거리였다.허지는 싸늘한 눈빛으로 허씨 노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현왕비는 남의 말에 쉽게 흔들릴 분이 아닙니다. 저와는 고작 몇 번 안면을 튼 것이 전부라 마마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되든 안 되든 부딪혀 봐야 알 것 아니냐."허씨 노부인은 기어코 허지에게 사정하게 만들 작정이었다.두 시녀가 양쪽에서 허지를 부축해 마차에서 끌어내렸다. 그들은 허지를 억지로 현왕부 문 앞까지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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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0화

유지영은 더 이상 말싸움을 할 마음이 없었다. 그녀는 경조 판서를 향해 말했다."대인, 나는 허씨 가문에 서신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 저들이 기어코 현왕부 앞에 꿇어앉아 버티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대인께서 증인이 되어 주십시오. 이 일은 내가 책임질 수 없습니다."말을 마친 유지영은 몸을 돌려 저택으로 들어갔다.할 말은 다 했다. 저들이 어찌 나오든 그녀가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허지에 대해서는 그녀도 마음 한구석에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허지가 스스로 허씨 가문을 끊어내지 못하고 끌려다니고 있으니, 유지영으로서도 어쩔 방도가 없었다.*반 시진 뒤.운청이 돌아와 보고했다."마마, 허씨 노부인이 허 낭자를 데리고 돌아갔습니다."또다시 하룻밤이 지났다.이씨 노부인은 궁문 앞에 꿇어앉아 잘못을 빌었다. 죄상이 적힌 문서를 받쳐 든 그녀의 모습을, 조회를 오가는 백관들이 힐끔거렸다.어사가 이 일을 조정에 보고했다."폐하, 이씨 가문이 잘못을 뉘우치고 있습니다. 춘풍루에서의 다툼 또한 자신들의 과실을 인정하고 소국공의 허물을 더는 묻지 않겠다고 하옵니다. 부디 폐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한 사람이 입을 열자 재빨리 동조하는 이들이 나타났다."폐하, 이 일은 양측 모두에게 잘못이 있습니다. 이씨 가문이 죄를 청하였으니 부디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폐하, 성은을 베풀어 주시옵소서!"백관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사정했다.그 모습을 본 건양제가 크게 손을 내저었다."명색이 조정의 중신이라는 자들이 하찮은 일로 다툼을 벌여 조정을 들썩이게 만들다니 참으로 우스운 노릇이군!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세 사람 모두 장형 스무 대에 처하고 율법을 열 번씩 필사하도록 하라!""폐하, 원흉인 이씨 가문 장남이 중상을 입었다고는 하나 모든 사달이 그로 인해 빚어졌으니, 마땅히 엄벌을 내려야 합니다."건양제가 코웃음을 쳤다."이 낭군이라는 자는 과거에 급제하여 글재주가 제법 좋다고 기억한다. 그런 자가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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