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과 결혼했을 때 읽었던 맹세문과 달랐다. 그때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남편에게 순종하고, 후사를 위해 노력하며, 투기하지 않고 가장의 결정을 따르며 가정을 일구어 내는 안사람의 역할을 해내고 남편의 기쁨을 위해 종사할 것을 맹세합니다. 문장 하나 하나가 그녀의 의지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저 레이루나가 환하게 웃고 있어서 맹세문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 저가 또 하자품이라서, 규격외의 인간이라서 그런다고만 생각했다."루시?"어느새 그게 눈물로 고여있을 줄은 몰랐다. 루시아는 자신이 남편에게 그토록 바랐던 게 존중이었다는 걸 결혼식장에 들어와서야 처음으로 들어서 알았다. 그리고 그게 부부 사이에 가능하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았다. 처음이 참으로 많은 날이었다.***에이든은 루시아의 결혼 멩세문을 직접 고쳤다. 순종이니 남편을 잘 따르니 하는 수동적인 이야기는 전부 도려내고, 그가 아는 루시아가 원할 것들을 적어나갔다. 그가 아는 그녀라면 '사랑'을 바랄 것이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사랑없는 결혼을 했으니까 말이다. 정작 그가 당연하다고 생각해 적은 존중, 그 기본 조건으로 루시의 마음이 충분했다는 것을 안 건 아주 나중의 일이었다.루시아는 조금 오래 울고, 맹세문을 천천히 읽어나갔다. 마주 잡은 에이든의 손이 따뜻했고, 전해오는 여전히 뜨거운 그의 체온으로 감정의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사랑하고 사랑할 것입니다."어느덧 식순이 거의 다 끝나가고에이든이 루시아에게 한걸음 다가갔다. 루시아는 장난꾸러기 디디에게 키스를 하는 게 별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오만을 다시 생각해야 했다.다정한 파란 눈이 의아한 빛을 띄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 안에 뜨거운 열정에 함부로 제 속을 들켰다가는 알 수 없지만 아주 큰 일이 날 것같았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벽안이 그녀를 내려다보았고, 고개가 서서히 다가왔다.내내 실처럼 쓰다듬었던 연갈색 머리카락이 쏟아져 내려왔다. 시야가 가려졌다고 생각했던 순간, 그가 제 뒤통수를
Last Updated : 2026-05-25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