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Chapter 61 - Chapter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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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마침 그때 허서령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신발장 앞에서 슬리퍼를 갈아신었다.지강산이 허서령을 돌아보자 윤성이 재빨리 베란다 유리문을 열었다.“허서령, 와서 강산 씨한테 말해. 우리 사이에 성관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허서령은 숨이 턱 막혔다. 장바구니를 든 손이 느슨해지면서 물건이 모두 바닥에 쏟아졌다.지강산이 허서령의 반응을 전부 눈에 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공기마저 희박해진 것 같았다.허서령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윤성이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건 알았지만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친한 친구마저 팔 줄은 몰랐다.화가 난 나머지 허서령은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막혔다.“윤성아,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지금 이러는 건 무슨 뜻이야?”윤성이 지강산을 돌아봤다.“봐요. 서령이도 인정했잖아요.”잔뜩 찌푸려졌던 지강산의 미간이 서서히 풀렸다.5년 동안 가슴에 꽂혔던 독화살이 이 순간에 뽑히고 다시 살아난 것만 같았다.윤성이 또다시 허서령에게 소리쳤다.“그리고 너 허영심 때문에, 돈 때문에 강산 씨를 떠났잖아. 강산 씨한테 미안한 짓을 한 건 너야. 나까지 끌어들이지 마.”그러고는 서둘러 유리문을 닫았다. 허서령이 끝까지 반박할까 봐 두려워서였다.윤성이 지강산을 향해 미소 지었다.“이제 내 말 믿을 수 있겠어요? 난 강산 씨를 배신한 적이 없어요. 강산 씨가 서령이랑 헤어지게 된 건 전적으로 서령이의 선택이니까 나한테 화풀이하지 말아요.”수많은 생각이 교차하여 마음이 혼란스러워진 지강산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겉으론 잔잔해 보여도 마음속의 파도가 심하게 일렁거리고 있었다.윤성이 그의 옆에 서서 그와 함께 있는 이 순간을 즐겼다.그때 지강산이 불쑥 물었다.“윤성 씨네 집 재산이 대략 얼마 정도예요?”윤성의 얼굴이 순간 굳어버렸다.그가 온갖 이간질을 해댔음에도 불구하고 지강산의 귀에는 허서령이 육체적으로 바람피운 것이 아니라 그저 허영심이 많고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한 여자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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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됐어. 나도 그때 헤어지려고 윤성이보다 거짓말을 더 많이 했잖아.’윤성을 이용했기에 무사히 헤어질 수 있었다.솔직히 말해 윤성과 지강산의 우정 또한 허서령 때문에 깨진 것이었다. 하여 윤성이 지금 그녀를 팔아 지강산과의 관계를 되돌리려 하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헤어지겠다는 허서령의 목적은 진작에 달성되었다.지금 윤성이 그녀 아버지가 감옥에 간 사실을 폭로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배려한 것이었다.허서령에게는 끼어들 자격도, 안 된다고 말할 자격도 없었다.허서령이 바닥의 봉투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 식재료를 냉장고에 넣었다. 그리고 남은 생활용품을 들고 다시 나왔다.거실을 지나칠 때 그들이 여전히 베란다에서 얘기하고 있었다. 문득 마음이 불안해졌다.전에 윤성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어떤 남성들은 전 연인에게 너무 깊은 상처를 받으면 더 이상 여자를 믿지 않고 여자에게 극도로 반감을 가지며 심지어 성적 취향마저 자연스럽게 뒤바뀐다고 말이다.윤성이 만약 지강산을 유혹하려 한다면 분명 친구의 신분으로 먼저 굳건한 감정을 쌓고 서서히 그의 생활과 그의 마인드에 스며든 다음 마지막에 육체에까지 침투할 것이다.허서령은 생각할수록 더욱 불안해졌다. 봉투를 꽉 쥔 채 한참을 망설이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무작정 달려갔다.그녀가 유리문을 벌컥 열자 지강산과 윤성이 소리를 듣고 그녀를 돌아봤다.마음이 조마조마했던 허서령이 용기를 내어 말했다.“강산 씨, 내 방 화장실 수돗물이 안 나와요. 좀 고쳐줄 수 있어요?”지강산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함께 산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허서령이 그에게 무언가를 부탁한 게 처음이었다.“알았어.”지강산이 허서령을 스쳐지나 거실로 들어섰다가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가 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자마자 윤성이 아랫입술을 깨물고 허서령을 불쾌하게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서령아, 공평하게 경쟁하기로 해놓고 이렇게 비겁한 수를 써?”“수돗물이 진짜 안 나와. 이게 무슨 비겁한 수야?”허서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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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허서령이 제 발 저린 듯 지강산의 시선을 피하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몰래 손을 들어 물을 틀었다.지강산이 허서령의 움직임을 모두 지켜봤다.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손에 든 샤워기에서 나오던 물이 갑자기 끊기더니 머리 위 대형 샤워기에서 폭우처럼 물이 쏟아져 내렸다. 차가운 물줄기가 그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차가운 물벼락에 지강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미처 피하지 못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고 말았다.서둘러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샤워기를 잠근 다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허서령을 쳐다봤다.허서령은 미안했지만 이렇게라도 그를 붙잡는 것이 다른 꿍꿍이를 품은 윤성과 함께 있는 것보다 백배는 나으리라 생각했다.지강산이 샤워기를 제자리에 끼워 넣었다. 차가운 물에 젖어 좀 추웠다. 머리카락과 몸이 흠뻑 젖었는데도 지강산은 조금도 화내지 않았다.허서령이 일부러 그랬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지강산이 젖은 겉옷을 벗어 물기를 털어낸 뒤 손으로 젖은 머리를 털었다.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간 바람에 옷이 젖어 조금 추웠다.“샤워기도 멀쩡해. 고칠 필요 없어.”지강산이 겉옷을 챙겨 들고 나가려 했다.“우선 방으로 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어야겠어.”허서령이 황급히 돌아서서 지강산의 팔을 꽉 붙잡았다.지강산이 흠칫 놀라더니 의아함이 서린 눈으로 긴장하고 걱정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시선을 아래로 옮겨 그의 팔을 꽉 잡고 있는 하얀 손에 고정했다.함께 산 지 이렇게 오래되었지만 허서령이 그에게 먼저 도움을 청한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이 도움은 명백한 핑계에 불과했지만 말이다.또한 먼저 스킨십한 것도 처음이었다.“무슨 일 있어?”지강산의 목소리가 유난히 부드럽고 상냥했다.허서령이 망설이다가 긴장한 얼굴로 답했다.“그냥 내 욕실에서 씻어요.”지강산이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눈빛에 한 줄기 의아함이 감돌았다.허서령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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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허서령이 방에서 나오자 윤성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얼굴에 나타났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강산 씨는?”허서령이 방 문을 꽉 닫고 그에게 다가갔다.“배관 고치는 중이니까 너 먼저 가.”“기다릴 거야.”윤성이 다시 소파에 앉아 소파 등받이에 양팔을 걸쳤다. 그러고는 여유롭게 다리를 꼬며 비싼 명품 운동화를 까딱거렸다.“아직 강산 씨한테 할 말이 많거든.”“당장 안 끝나.”허서령이 윤성의 앞에 서서 손목을 잡아끌었다.“가. 할 말 있으면 다음에 해.”윤성이 팔을 거칠게 빼냈다.“안 급해. 오늘 시간 많으니까 여기서 점심도 먹고 저녁도 먹고 야식까지 먹고 갈 거야.”기가 막힌 허서령이 허리에 손을 얹고 차가운 눈빛으로 윤성을 쏘아보았다.윤성이 입꼬리를 올리며 승리를 확신하면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허서령과 심인혜, 그리고 윤성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 서로를 너무나 잘 알았다.세 사람의 성격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허서령은 독했고 심인혜는 화끈했으며 윤성은 독설을 지녔다. 그 누구 하나 만만한 사람이 없었다.허서령이 화를 억누르며 1인용 소파에 앉았다.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고 차분한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그 사람한테서 떨어져.”윤성의 눈빛도 진지하게 변했다.“그렇게는 못 해.”허서령이 몸을 기울여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강산 씨네 집에서 강산 씨가 남자를 만나는 걸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야.”윤성이 꼬았던 다리를 풀고 무릎 위에 팔꿈치를 올린 채 허서령 쪽으로 다가갔다.“강산 씨의 가족, 직장, 미래 모두 범죄자의 딸과 엮이는 걸 허락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만 알아, 난.”윤성의 말이 촘촘한 독화살이 되어 허서령에게 날아들었다. 단어 하나하나가 그녀의 가장 아픈 상처를 정확히 파고들었다.독이 묻은 고통이 온몸으로 퍼져 나가 그녀의 오장육부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듯했다.너무 아팠다. 숨이 막힐 정도로.윤성은 어디가 가장 아픈지, 어떻게 찔러야 가장 고통스러운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허서령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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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지강산이 의아해하던 그때 허서령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지강산을 혼냈다.“다 큰 어른이 자기 몸을 지켜야 한다는 것도 몰라요? 씻고 나왔으면 옷부터 입어야죠.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다가 누가 눈여겨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지강산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면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가 덮어준 이불의 온기를 느끼며 그 위에 희미하게 남은 그녀 특유의 향을 천천히 들이마셨다.그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집이 안 추워. 옷이 옆방에 있어서 가지러 가던 참이었어.”그제야 허서령은 지강산에게 옷을 챙겨주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분명 그녀의 실수였다. 하지만 윤성이 지강산의 몸을 봤다는 사실이 괜히 신경 쓰여 마음이 불편했다. 그녀의 말투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그럼 나 부르지 그랬어요. 내가 가져다줬을 텐데.”지강산이 천천히 한 걸음 다가가자 허서령과 거의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허서령이 침을 삼키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하니 너무나 잘생겼고 뜨겁게 스치는 숨결마저 선명하게 느껴졌다.문득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만약 5년 전이었다면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지강산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망설임 없이 입을 맞췄을 것이다.부드럽고 다정하게.허서령이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지강산에게서 풍기는 바디워시 향이 코끝을 파고들며 잔잔하던 마음을 간지럽혔다.지강산이 침을 꿀꺽 삼키고 낮고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전 여친은 질리도록 봤고 집에 다른 사람도 없는데 내가 뭘 무서워해야 해?”“윤성이 있잖아요.”지강산이 코웃음을 쳤다.“윤성 씨는 남자잖아.”허서령이 입을 달싹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됐어요.”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이불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으며 말했다.“여기 있어요. 내가 옷 가져올게요.”막 방을 나서려던 그때 지강산이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이불을 덮은 채 뒤에서 허서령을 끌어안았다.예상치 못한 포옹에 허서령의 몸이 순식간에 이불 속에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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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농담 아니고 진심이야.”허서령의 마음에 서늘한 바람이 스쳤다. 사실 그녀 역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아직도 지강산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강산과 함께할 자격이 없었다.허서령이 힘겹게 물었다.“나 미워하는 거 아니었어요?”“응. 미워해. 계속 미워하고 있었어.”지강산의 목소리에 설명하기 어려운 고통이 섞여 있었다.“그러니까 다시 내 곁으로 와. 네 손으로 직접 내 안에 남아 있는 미움을 하나씩 다 뽑아줘. 사람을 미워하는 거 생각보다 너무 괴롭더라...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허서령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지강산의 고통이 곧 그녀의 고통이었다.한 여자를 5년 동안 미워한다는 게, 잊지도, 놓지도 못한 채 버틴다는 게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허서령은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래도 함께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사랑하고 있다는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허서령 역시 괴로웠고 달리 방법이 없었다.아버지의 사건을 다시 뒤집기 위해 모든 걸 걸었다. 그 일을 해결해야만 그녀도 지강산과 어울리는 희망이 조금이라도 생긴다고 믿었다.“난 강산 씨랑 함께할 수 없어요.”허서령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너 돈 좋아하잖아. 제산에 내 명의로 된 집이 있어. 100억이야, 그 집.”조급해진 지강산이 그녀를 몰아붙였다.“그게 싫으면 차든 집이든 뭐든 좋아. 지금 당장 가서 사줄게.”그 말들이 허서령의 가슴에 바늘처럼 꽂혔다.지강산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따뜻했고 생각이 올곧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를 배신했던 여자를 잡기 위해 돈까지 꺼냈다.허서령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 점점 나약해지는 것 같았다.지강산이 이럴수록 그녀는 더 무너졌다.그녀 같은 여자가 대체 뭐라고 5년 동안이나 미워하고도 아직도 놓지 못한단 말인가?대체 어떤 감정이기에 허서령을 그렇게 미워하면서도 여전히 다시 시작하고 싶어 하는 걸까?허서령이 가슴 깊이 스며드는 아픔을 꾹꾹 눌러 담으며 최대한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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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눈물이 멈춘 뒤 허서령이 힘없이 바닥에 엎드렸다. 차가운 기운이 옷을 뚫고 살 속까지 파고들어가 마음속의 답답한 응어리를 조금씩 흩어지게 했다.시간이 1분 1초 흘렀다. 온 오전을 다 써서야 겨우 감정을 추슬렀다.허서령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 이불을 주워 침대 위에 던져놓고 머리를 대충 정리한 뒤 방을 나섰다.거실로 나오자 윤성이 아직도 가지 않고 소파에 누워 게임을 하고 있었다.잠시 멈춰 선 허서령이 저도 모르게 지강산의 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이 꽁꽁 닫혀 있었다.윤성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힐끗 봤다가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며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곧이어 느릿느릿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그만 봐. 강산 씨 네 방에서 나오고 나서 자기 방에 들어가 옷 갈아입고 바로 나갔어. 어디 가냐고 물었는데 대답도 안 하더라. 기분이 많이 안 좋은 것 같던데.”허서령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1인용 소파에 앉았다.“두 사람 싸웠어?”윤성이 다시 허서령을 올려다봤다. 그녀의 눈이 붉고 부은 걸 보고는 게임도 하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울었어?”허서령이 옆에 있던 쿠션을 끌어안고 몸을 옆으로 기울이며 눈을 감았다.“아니.”“꽤 심하게 다퉜나 보네.”윤성이 발을 뻗어 그녀의 종아리를 툭 찼다.“지강산 카톡 좀 알려줘. 내가 위로 좀 해주게.”허서령이 기운 없이 대꾸했다.“강산 씨도 갔는데 넌 왜 아직도 안 가?”“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려고.”“안 돌아올 거야.”그가 긴장한 기색으로 물었다.“본인이 그렇게 말했어?”허서령은 그가 언제 돌아올지 알지 못했다. 그저 윤성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응.”윤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게임을 종료하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그럼 나가자. 내가 점심 사줄게.”“먹기 싫어.”그녀가 몸을 반대쪽으로 돌리며 다리를 끌어안고 쿠션으로 얼굴을 가렸다.“벌써 한 시 다 됐는데 배 안 고파?”“안 고파.”정말 배가 고프지 않았다. 마음이 엉망이라 입맛도 없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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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대략 사흘쯤 지났을 때 허서령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지강산의 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침대 위에 이불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세면도구도 그대로였다. 옷장 안에 옷들이 색깔과 종류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방이 지강산처럼 깔끔하고 따뜻했으며 은은한 향까지 배어 있었다.또 며칠이 지났다. 지강산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진 지강산 때문에 허서령은 마음이 점점 공허해졌다.지강산은 분명 허서령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또다시 그를 잃은 기분이 들어 하루 종일 정신이 멍하고 마음이 무거웠다.일에 몰두하면 잠시 잊을 수 있었지만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면 모든 게 차갑게 느껴졌다. 집 안 공기조차 온기가 없는 듯했다.지강산이 냉장고에 두고 간 채소가 다 시들어버렸다. 버리기 아까웠던 허서령은 라면에 넣어 먹었다.저도 모르게 지강산의 카톡을 자꾸 열어보면서도 어디 있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물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그렇게 대략 열흘쯤 지나 월세를 내는 날이 되었다.해 질 녘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휴대폰을 꺼내 지강산에게 40만 원을 송금했다.한참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씁쓸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고 지하철 난간에 기댔다.그때 음성 통화가 와서 확인해 봤더니 심인혜였다. 허서령이 이어폰을 꺼내 착용한 후 나지막하게 말했다.“무슨 일이야?”“서령아, 나와. 같이 술 마시자.”“싫어. 너무 피곤해. 집에 가서 쉬고 싶어.”“나와. 다들 진짜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저녁도 먹고 술도 조금 마시면서 축하 좀 하자.”“누가 돌아왔는데?”“우리 남편이랑 지강산 씨. 몰랐어? 열흘 동안 출장 갔었어. 위성 데이터에 문제가 생겨서 울심에서 강인으로 엔지니어 몇 명 보내서 유지 보수했다고 하더라. 일은 순조롭게 끝났대. 그러니까 축하해야지.”“몰랐어, 난.”허서령의 마음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내려간 것 같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출장 간 거였구나. 떠난 게 아니라.’“둘이 그냥 룸메이트니까 모를 수도 있지.”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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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허서령이 어색하게 말했다.“카톡으로 말했잖아. 기다리지 말고 먼저 먹으라고.”심인혜가 허서령을 자리에 앉혔다.“우리끼리라 나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강산 씨가 사람 다 모일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더라고.”허서령이 자리에 앉자마자 그 말을 들었다. 긴장감이 몰려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지강산에게 시선을 돌렸다.지강산이 윤성과 백시욱 사이에 앉아 있었고 그녀와 지강산 사이에 백시욱과 심인혜가 앉아 있었다.원형 테이블에서 정면을 마주해 앉은 자리라 고개를 살짝만 들어도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지난번 서로 불편하게 헤어진 후로 열흘이 지났다. 허서령은 그동안 매일 마음이 무거웠고 하루하루 힘들게 보냈다.지강산이 출장 간 줄도 모르고 온종일 혼자 생각하며 답답해했다.지금 지강산과 은하수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듯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은하수는 그녀가 만든 것이었다.윤성이 종업원을 불렀다.“누나, 음식 올려 주세요.”종업원이 응답하고 떠났다.심인혜가 작은 접시에 담긴 목이버섯 무침을 허서령의 앞에 놓았다.“배고프지? 우선 이거라도 좀 먹어.”허서령이 젓가락을 들고 집으려던 그때 심인혜가 말했다.“이거 강산 씨가 주문한 거야. 우리 다 별로 안 좋아하거든. 네가 목이버섯 무침 제일 좋아하잖아. 네가 다 먹어.”젓가락을 든 허서령이 잠시 멈칫했다. 평온한 겉모습 아래 마음속에서는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목이버섯을 집어 입에 넣었다. 약간 매콤하고 아삭하면서 목이버섯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정말 맛있었다.지강산이 이렇게 행동할수록 허서령은 더욱더 죄책감을 느꼈다.백시욱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서령 씨, 윤성 씨한테서 들었는데 서령 씨랑 강산이가 같은 대학교를 다녔다면서요?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고.”허서령이 흠칫 놀랐다. 심인혜도 뒤늦게 반응하고 한마디 말했다.“그래. 서령아. 너 대학교 때부터 강산 씨를 알고 지냈으면서 처음 만났을 때 왜 모르는 사람인 척했어? 그리고 그때 두 사람...”허서령이 긴장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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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백시욱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결혼 전에 있던 그 모임에서 유하가 서령 씨를 쓰레기라도 욕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구나. 강산이가 정말 서령 씨한테 차였었어.”윤성을 돌아보는 지강산의 눈빛이 차갑기 그지없었고 말투에 불쾌함이 묻어났다.“엄청 우쭐거리네요?”윤성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태연하게 말했다.“난 서령이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우쭐거릴 게 뭐가 있다고요. 난 인혜가 더 좋아요.”그 한마디에 백시욱의 얼굴이 확 어두워지더니 분노와 두려움, 긴장과 당혹이 뒤섞인 표정으로 윤성에게 소리쳤다.“이봐요. 우리 와이프랑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죽마고우라면서요. 그런데 왜 갑자기 인혜를 탐내는 거예요?”“농담이에요, 농담.”윤성이 건들거리며 웃었다.“초조해하기는. 인혜는 그냥 친동생 같은 애예요. 시욱 씨랑 빼앗을 생각 없습니다.”백시욱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윤성의 외모가 깔끔하고 준수했다. 게다가 집에 돈까지 많아 진짜로 뺏으려 한다면 백시욱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윤성이 지강산에게 몸을 살짝 기울이며 귓가에 속삭였다.“우리도 연적이 아니잖아요. 나한테 좀 잘해주면 안 돼요?”허서령이 심인혜의 손을 잡고 들어오다가 마침 이 장면을 목격했다.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맞은편의 그들을 쳐다봤다.심인혜는 지강산과 윤성에게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지강산이 윤성과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숨결까지 느껴졌다. 순간 구역질이 다 밀려왔다.그가 팔꿈치를 들어 윤성의 이마를 밀어내면서 짜증을 냈다.“좀 떨어져 앉아요.”그때 종업원이 음식을 들고 들어왔다.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들이었다. 담백하고 신선하며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렸다.식재료는 주로 물고기, 새우, 닭, 소고기, 청경채, 유기농 채소 등이었고 각종 뚝배기 요리, 제철 재료를 넣은 솥밥도 있었다.지강산이 허서령과 사귈 때 그녀의 입맛에 맞추느라 요리를 많이 배웠다.지금은 허서령이 좋아하는 음식이면 그도 맛있게 먹었다. 입맛이 그녀 따라 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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