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에서 열린 성대한 귀비 책봉식의 열기가 아직 궐 안을 맴도는 늦은 오전.따가운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바깥의 풍경과 달리, 두꺼운 발이 쳐진 내시부(內侍府) 깊은 곳, 상선의 집무실에는 한기마저 감도는 묵직한 적막이 내려앉아 있었다.어스름한 그늘 속에서, 하륜은 찻상 위에 놓인 작은 비단 주머니를 고요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초희의 속적삼 안감에서 거칠게 뜯어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주머니였다.하륜의 길고 창백한 손가락이 주머니를 열고 안에서 자그마한 옥병을 꺼내 들었다.병마개를 열자, 내실 안으로 기묘할 만치 싱그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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