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폭주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정화자: Chapter 31 - Chapter 40

77 Chapters

032 - 훈련 센터 (1)

032지하철 전투 영상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0팀'이라는 생소한 명칭이 댓글창에 오르내렸고, 그 중심에 선 준우의 무심한 활약상이 퍼지자 여론의 기류가 바뀌었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집단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은 호기심으로, 다시 기묘한 호감으로 변모했다.관리청은 여론의 눈치를 살피느라 바빴다. 그들은 계산기를 두드린 끝에야 0팀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그러나 아주 조심스럽게 인정했다.채은이 태블릿에 뜬 공문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헛웃음을 흘렸다.“이거 봐.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그 깐깐한 양반들이 우리를 대놓고 인정하고 말이야.”운전대를 잡은 재범은 시선을 전방에 고정한 채 얕게 고개를 끄덕였다. 혜진 역시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응시하며 조용히 동조의 뜻을 표했다. 차 안의 공기는 평소보다 조금 더 무거웠다. 그들이 향하는 곳이 강원도 원주의 '능력자 훈련 센터'였기 때문이다.성심 길드의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그곳은 예비 각성자들의 요람이자 전쟁터였다. 앳된 티를 벗지 못한 고등학생들이 성심이라는 거대 타이틀을 따기 위해 매일같이 한계를 시험하는 장소.‘그런데 굳이 왜 우리일까.’준우는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의문을 삼켰다. 시스템상으로나 명분상으로나 성심 길드 소속의 정식 능력자들이 방문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그림이었다.준우의 생각은 지하철역에서 봤던 대원들의 무장을 생각했다. 동물이나 잡을 거 같은 마취총은 물론이고 투박하게 생긴 방탄/방검복들. 관리청의 의도는 뻔했다. 미성년자들이 모인 훈련 시설에 ‘정규군’의 살벌한 무력을 들이미는 모양새는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고가 터졌을 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 쉽고,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현장을 통제할 수 있는 소모품.그것이 현재 0팀이 가진 미묘한 위치였다.입안이 썼다. 기분이 유쾌할 리 없었지만, 준우는 가볍게 눈을 감으며 잡념을 털어냈다. 이유야 어찌 됐든 그곳엔 아직 제어 능력이 미숙한 아이들이 있다."다 왔어. 내릴 준비들 해."재범의 낮은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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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 - 훈련 센터(2)

033심장이 경종을 울렸다. 저 아이의 몸에서 김진서와 똑같은, 아니 그보다 더 짙고 불쾌한 마나의 악취가 풍기고 있었다.준우는 바짝 마른 입술을 축이며 학생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발밑의 나무 바닥이 유난히 단단하게 느껴지는 위압감 속에서, 그는 억지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학생, 잠깐만. 몸은 좀 어때요?”무심하게 돌아선 학생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10대 특유의 앳된 얼굴이었지만, 표정에는 생동감이 거세되어 있었다.“괜찮은데요? 왜요?”“아니, 그게…… 상태가 좀 이상해 보여서요. 폭주 증상이랑 비슷하기도 하고.”준우의 우려 섞인 말에 학생은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대꾸했다.“폭주하면 원래 아픈 거잖아요. 그런데 김진서 길드장님이 안 아프게 해준다고 하셨거든요. 전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준우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안 아프게 해준다’는 말은 구원이 아니라 기만처럼 들렸다. 그는 충혈된 눈을 꾹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시야가 일렁이며 현실 너머의 궤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그녀의 머리 꼭대기에 박힌 것은 이전의 실 가닥 같은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혈관처럼 요동치는 두꺼운 선이 뇌 수질 깊숙이 박혀 기괴한 파동을 내뿜고 있었다.‘도대체 애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회복제 중독에서 보이던 특유의 검푸른 탁기는 없었다. 오히려 너무 깨끗해서 이질적이었다. 학생의 입가에는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NPC처럼 매끄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깊은 늪처럼 공허했다.당장이라도 무언가 임계점을 넘겨 터져버릴 것 같은 불길함이 준우의 뒷덜미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준우는 떨리는 손끝바닥에 마나를 모았다.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은은한 백색광이 학생의 어깨 위로 조심스럽게 내려앉았다.“잠깐 실례할게요. 조금 따가울 수도 있어요.”정화의 빛이 학생의 신체를 훑으며 침투하기 시작했다. 기이잉—, 공기를 진동시키는 파열음과 함께 마나가 쏟아졌지만, 준우의 눈동자는 경악으로 흔들렸다.두꺼운 조종선은 요동조차 하지 않았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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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 - 성심 프로토콜(1)

034성심 길드가 내놓은 ‘성심 프로토콜’의 발표 현장은 겉보기에 완벽한 구원책처럼 보였다. 화면 속 김진서는 세련된 미소와 절제된 몸짓으로 대중을 휘어잡고 있었다.“이제 폭주는 불가항력적인 재앙이 아닙니다. 관리 가능한 영역이죠.”그의 등 뒤로 거대한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능력자의 바이탈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위험 수치를 시각화하는 화려한 인터페이스. 관리청의 고질적인 늑장 대응에 신물이 났던 시민들에게 ‘민간 주도의 빠른 대응망’이라는 키워드는 복음이나 다름없었다. 객석을 가득 채운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뜨렸고, 중계 화면 아래로는 성심 길드의 실행력을 찬양하는 댓글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준우는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스마트폰 액정을 응시했다. 화면 너머 열기는 뜨거웠으나 준우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김진서가 말하는 ‘임시 격리’는 곧 ‘샘플 채집’을 의미할 것이고, ‘안정화 치료’라는 명목 아래 투여될 회복제는 폭주를 억제하는 게 아니라 길드의 통제 아래 놓이게 할 ‘도화선’일 게 뻔했다. 시민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치는 저 팔찌는, 사실상 성심 길드가 언제든 터뜨릴 수 있는 기폭 장치를 스스로 손목에 차는 꼴이었다.“인천 송도입니다. 이미 인프라가 구축된 계획도시인 만큼, 관제 센터를 통한 밀착 관리가 용이하니까요.”질의응답에 답하는 김진서의 목소리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손목에 감긴 검은색 팔찌를 들어 보였다. 매끄러운 곡선 위로 푸른 LED가 점멸했다.‘관리가 아니라 사육이겠지.’준우는 찌릿하게 올라오는 불쾌감에 미간을 찌푸렸다. 송도라는 폐쇄적인 지형을 실험장으로 삼아, 그 안의 능력자들을 표준화된 병기로 가공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저 팔찌가 보급되는 순간, 송도의 모든 능력자는 성심 길드의 데이터베이스 안에서 살아있는 부품으로 전락할 터였다.그때, 화면 상단에 알림창이 떴다. 재범이었다.[서재범: 성심에서 우리 쪽에도 참관 요청 보냈네. 직접 가서 확인할 기회 같은데, 다들 어때?]단톡방은 이미 가겠다는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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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 - 성심 프로토콜(2)

035손목에 감긴 붉은 밴드가 비명 같은 진동을 토해냈지만, 남자는 굳어 있었다. 공포에 질려 밭은 숨을 몰아쉬는 그의 눈동자는 초점이 풀린 채 허공을 배회했다. 위협이라기엔 지나치게 유약했고, 폭주자라기엔 처량할 정도로 위축된 모습이었다.“피곤하고 불안해 보이긴 하는데…….”준우는 0팀원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아직은 관찰 단계다. 섣불리 개입했다가 일을 키우기보다,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을 포착해 움직이는 것이 효율적이었다.정적을 깬 것은 기계음이었다. 성심 길드 로고가 박힌 드론이 확성기를 매단 채 상공을 점유했다. 뒤이어 길드 소속 대원들이 일사분란하게 거리의 간격을 좁혀왔다.“거기, 멈춰! 현재 폭주 위험도 91%. 즉시 투항해라.”금속성의 경고가 거리의 공기를 얼어붙게 했다. 대원들은 숙련된 동작으로 반원을 그리며 남자를 압박했다. 한쪽은 경찰봉을 짧게 쥐어 잡았고, 다른 한쪽은 이미 약실에 억제탄을 장전한 채였다.“히이익!”남자의 입에서 짐승 같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본능적으로 대원들 사이의 빈틈을 밀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주극은 채 열 걸음을 넘기지 못했다. 공기를 가르는 파찰음과 함께 발사된 그물탄이 남자의 등 뒤를 덮쳤다. 아스팔트 바닥 위로 거칠게 나동그라진 남자가 그물 속에서 파닥거렸다.준우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저항 의사가 거세된 이를 다루는 방식치고는 지나치게 물리적이었다. 그는 참지 못하고 가장 가까운 대원에게 성큼 다가갔다.“이보세요. 꼭 그물총까지 쏴야 합니까? 상대는 무기도 없는데.”“폭주 이후엔 늦습니다. 방해하지 말고 물러나시죠.”날 선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 상황을 주시하던 선임급 대원이 준우의 앞을 막아서며 낮게 읊조렸다.“성심 매뉴얼에 따른 정당한 집행입니다. 외부인은 신경 끄시죠.”친절을 가장한 차단이었다. 이곳은 성심의 구역이었고, 여기서 더 날을 세우는 것은 0팀의 입지만 좁힐 뿐이었다. 준우가 입술을 깨물며 발을 뒤로 뺀 찰나, 공기를 찢는 괴성이 터져 나왔다.“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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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 - 성심 프로토콜(4)

037시민위원회와의 면담은 대화라기보다 진흙탕 속을 걷는 일에 가까웠다. 회의실을 나서는 준우의 어깨가 눈에 띄게 가라앉아 있었다.“형, 슬슬 갈까.”낮게 가라앉은 준우의 목소리에 재범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뒤를 따르는 혜진과 채은, 현수의 얼굴에도 짙은 그늘이 져 있었다. 다섯 사람의 발걸음은 늪을 걷듯 무거웠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그들의 피로와는 무관하게, 프로토콜 구역의 오후는 지독할 정도로 평화로웠다. 교복을 입고 재잘거리며 지나가는 학생들, 양손 가득 장바구니를 든 노인, 그 옆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세단들까지. 그러나 그 평온한 일상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은 수백 미터 높이로 솟구친 직육면체의 유리 타워들이었다. 햇빛을 받아 서늘하게 반짝이는 외벽들은 거대한 거울처럼 도시를 비추며 묘한 압박감을 안겼다. 철저하게 통제되고 계산된 계획도시의 정수. 그 인공적인 풍경이 오히려 이질감을 더했다.“오늘은 일찍 가서 좀 자야겠어.”준우가 마른세수를 하며 중얼거리자, 옆에서 걷던 혜진이 동조하듯 한숨을 섞어 말했다.“그러는 게 좋겠어. 다들 한계야.”“난 카페라도 들러서 단것 좀 먹어야지, 안 되겠다.”채은이 관자놀이를 누르며 주머니를 뒤적였다. 묵묵히 바닥만 보며 걷던 현수가 준우의 옆으로 바짝 다가선 것은 그때였다.“그런데 준우야, 아까는 왜 그렇게까지 나서지 말라고 한 거야?”준우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현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저들이 움직이는 방식을 확인하고 싶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여기서 더 행동하면 성심 쪽에서 무슨 짓을 더 꾸밀지 알 수 없으니까. 솔직히 불안해.”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준우에게 쏠렸다. 혜진이 다가와 준우의 어깨를 지시하듯 꾹 눌렀다.“너무 혼자 짊어지려고 하지 마. 전에도 말했잖아, 책임은 같이 지는 거라고. 필요하면 언제든 우리가 앞장설 테니까 넌 뒤만 봐.”준우는 혜진의 눈을 마주했다. 기묘한 십자 형태의 눈동자는 마치 사람의 속내를 꿰뚫어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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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8 - 성심 프로토콜(5)

038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지는 회견장 단상 위, 마이크 앞에 선 김진서의 표정은 수려하면서도 단호했다. 송도동 사태가 수습된 지 정확히 하루가 지난 시점이었다. 그녀는 시선을 정면으로 고정한 채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우선 0팀이 송도동에서 보여준 헌신과 활약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만약 그 자리에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마주해야 했던 피해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을 겁니다.”가벼운 칭찬으로 시작된 말이었으나, 이어진 대목에서 그녀의 본색이 드러났다. 김진서는 서류를 가볍게 톡톡 치며 좌중을 압도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러나 언제까지고 이런 기적적인 우연에 시민들의 안전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0팀과 같은 비공식 정화자 팀이 ‘성심 프로토콜’이라는 체계적인 시스템 안으로 들어온다면, 더 많은 생명을, 더 확실하게 살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할 말만 마친 김진서는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듯 미련 없이 돌아섰다. 잔잔한 호수에 커다란 바위를 던져 넣은 것 같은 파문이 장내를 휩쓸었다. 수많은 취재진의 속사포 같은 질문이 등 뒤로 쏟아졌지만, 그녀는 이미 회견장 뒤편의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춘 뒤였다.그녀가 던진 메시지는 순식간에 여론을 집어삼켰다. 방송과 인터넷 커뮤니티는 온통 성심과 0팀의 이야기로 도배되었다. 시스템의 안정성을 맹신하는 대중은 성심의 독점적 지위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김진서의 제안에는 빠르게 설득당했다. 통제되지 않는 이능력자 집단보다는 거대 길드의 관리하에 두는 것이 안전하다는 막연한 안도감이 여론의 주류를 형성해 나갔다.같은 시각, 부천의 한적한 카페 구석 자리. 노트북 화면을 메운 격앙된 반응들을 지켜보던 0팀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재범이 들고 있던 머그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저 시스템 안에 속하는 순간, 우리가 왜 움직이기 시작했는지 그 본질마저 흐려질 텐데.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는군.”화면에서 시선을 뗀 현수가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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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 - 인터뷰

039화면 속 성심 길드의 진압 과정은 물 흐르듯 매끄러웠다.불길을 뿜으며 날뛰던 폭주자를 사방에서 에워싼 대원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억제제를 주입했다.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나 있던 투박한 구속구는 간데없고, 세련된 디자인의 신형 구속구가 폭주자의 사지를 부드럽게 결박했다. 그사이 다른 대원들은 시민들을 안전선 밖으로 신속하게 대피시켰다.사망자 제로. 폭주자 생존.완벽한 결과였다. 모니터 하단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창은 이미 성심 길드를 찬양하는 글자로 터져 나가고 있었다. 화면 속 시민들 역시 안도 섞인 미소를 지으며 대원들에게 손을 흔들었고, 몇몇은 가슴이 벅찬 듯 기립 박수를 보냈다.늘 성심의 행보를 날카롭게 주시하던 준우 역시 이번만큼은 묵묵히 화면을 응원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군더더기 없는 대처였다. 하지만 대원 한 명이 카메라 앞을 가렸다가 비킨 찰나, 준우의 미간이 잘게 좁혀졌다.“잠깐, 혜진아. 영상 좀 멈춰봐. 방금 그 부분.”화면이 뚝 멈췄다. 마우스 커서가 가리킨 곳은 구속구에 묶인 채 고개를 떨군 폭주자의 얼굴이었다. 혜진이 모니터 앞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숨을 들이켰다.“저 폭주자 눈빛 왜 저래?”“그렇지. 그냥 초점이 없는 수준이 아니야.”준우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읊조렸다.“살려둔 게 아니라, 그냥 강제로 꺼버린 거지.”화면을 최대 크기로 확대하자, 폭주자의 덜덜 떨리는 목덜미가 드러났다. 살갗 아래로 기괴하게 가닥 치며 뻗어 나간 검푸른 마나의 줄기들. 전보다 빛은 흐려졌지만, 그것이 누구의 마력인지는 똑똑히 알 수 있었다. 김진서의 인형 조종선이었다. 폭주자는 통제된 게 아니었다. 김진서의 정교한 손짓 아래 숨만 쉬는 시체로 움직였을 뿐이다.대중에게 이런 이면이 보일 리 없었다. 5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영상 속에서 그 무시무시한 폭주를 진압했다는 결과만이 중요했다. ‘프로토콜 구역’이라는 최첨단 타이틀에 걸맞은, 지극히 빠르고 효율적인 시스템의 승리. 동물원 우리를 연상케 하던 과거의 끔찍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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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 - 시위중 폭주

040질의응답이 끝나자마자 넥타이부터 풀어 헤쳤다. 와이셔츠 깃을 느슨하게 열고 나서야 겨우 숨통이 트였다. 구겨진 천 조각을 주머니에 쑤셔 넣는 손길마다 진득한 피로가 묻어났다. 카메라 플래시와 기자들의 악착같은 질문 공세에 시달린 얼굴들은 하나같이 흙빛이었다.약속이라도 한 듯 찾아 들어간 인근 카페는 한산했다. 얼음이 가득 찬 유리잔 표면으로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채은은 빨대를 입에 물고 몇 모금 빨아들이지도 못하고는, 이내 툭 소리가 나도록 탁자에 이마를 내렸다.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테이블 위로 흩어졌다.“요즘은 진짜…… 폭주자 사냥하고 기자회견 하려고 출근하는 것 같아.”웅얼거리는 목소리에는 물기가 축축하게 배어 있었다. 재범과 혜진은 대꾸할 기운조차 없는지 턱을 괸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편하게 두 다리 뻗고 쉬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을 더듬으려 해도 머릿속이 뿌옇기만 했다. 각성자 특유의 강인한 신체적 회복력이 없었다면, 이들 중 누구 하나는 진즉 응급실 침대 신세를 지고 있었을 터였다.채은이 고개만 살짝 돌려 맞은편의 현수를 바라보았다. 흐트러짐 없는 영민한 눈동자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지경이었다.“현수 언니는 대체 이런 일정을 어떻게 버텨요? 비결이라도 있어?”“비결이랄 게 있나.”현수가 미지근한 음료를 모금 삼키며 무덤덤하게 답했다.“이동하는 차 뒷좌석에서 기절하고, 퇴근하자마자 침대에 다이빙하는 거지. 인간의 생존 본능을 믿어 봐.”“리스펙합니다, 정말.”채은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이마를 파묻었다. 그렇게 정적과 얼음 녹는 소리만이 테이블을 채우던 찰나였다. 둔탁한 감각이 준우의 오른쪽 어깨를 툭, 건드렸다.척수 반사였다. 준우의 고개가 순식간에 돌아갔다. 허리춤으로 가려던 손을 간신히 억누르는 짧은 찰나, 온몸의 근육이 단단하게 굳어졌다. 직업병이 만든 서슬 퍼런 살기가 튀어나갈 뻔했으나, 시선 끝에 걸린 형상을 확인하고는 가까스로 가라앉았다. 수수한 교복 차림의 여고생 두 명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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