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폭주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정화자: Chapter 11 - Chapter 20

77 Chapters

012 - 공장 수색(3)

012코끝을 찌르는 소독약 냄새가 정신을 깨웠다. 감겼던 눈꺼풀 사이로 하얀 천장이 쏟아졌다. 익숙한 천장이었다. 준우는 습관적으로 옆을 살폈다. 역시나 재범과 채은, 그리고 혜진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반복되는 입원, 되풀이되는 풍경. 준우는 헛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누군가에게는 지긋지긋한 응급실의 연장이겠지만, 사선을 넘나든 뒤 마주하는 이들의 얼굴은 매번 기묘한 안도감을 주었다."다들... 괜찮아요?"잠긴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의자에 몸을 기대고 꾸벅꾸벅 졸던 채은이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켰고, 무릎 위에 서류판을 올려두고 있던 재범의 시선이 느릿하게 돌아왔다.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혜진도 그제야 준우에게 다가왔다.재범이 안경을 고쳐 쓰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우린 생채기 하나 없습니다. 준우 님이야말로 자기 몸 좀 돌보시지 그러셨습니까.""그러게요. 아직 온몸이 젖은 솜뭉치 같네요."준우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채은이 급히 다가와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거친 전투의 흔적이 남은 그녀의 손등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준우 씨, 그때 바로 정화 안 해줬으면 나 진짜 사고 쳤을 거예요. 고마워요, 정말로.""당연한 일을 한 건데요, 뭘. 우리 팀이잖아요."준우의 덤덤한 대답에 채은은 목이 메는지 괜히 손가락으로 눈가를 거칠게 문질렀다. 감정을 갈무리하려는 듯 고개를 푹 숙인 그녀를 대신해 혜진이 차분한 어조로 말을 보탰다."빠른 판단이었어요. 소환사를 제압하지 못했다면 정화고 뭐고 다 같이 끝났을 상황이었으니까요. 덕분에 살았습니다."혜진의 칭찬에 준우는 그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방 안의 공기는 여전히 무거웠다. 재범의 시선이 줄곧 제 손바닥 안의 스마트폰 액정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눈썹 사이를 깊게 파고든 주름이 심상치 않았다."무슨 일 있어? 표정이 왜 그래?"채은의 물음에도 재범은 즉답을 피했다. 대신 그는 굳은 표정으로 액정 화면을 준우 쪽으로 돌려 보여주었다. 그 뒤로 혜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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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 - 원하지 않은 휴식

015창백한 형광등 불빛이 감도는 병실 안, 공기는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계약서는 생각보다 허무할 정도로 쉽게 손에 들어왔다. 누군가 치밀하게 숨겨놓은 기밀이라기엔, 사본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거리낌 없이 뿌려질 만큼 관리가 허술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이 조항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듯했다.준우와 채은은 가까스로 초점을 되찾고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약기운이 가시지 않은 듯 얼굴색은 창백했지만, 눈빛만큼은 독기를 품고 있었다. 현수는 종이 더미를 넘기며 한 글자씩 곱씹듯 읽어 내려갔다. 시선이 멈춘 곳은 마지막 장 하단,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특약 사항이었다. 현수가 말없이 사본을 건네자 재범과 혜진의 미간이 동시에 좁아졌다. “교묘하네요.”재범이 낮게 읊조렸다. 가래가 끓는 듯 묵직한 목소리가 적막한 병실에 울렸다.“얼핏 보면 부작용에 대한 사후 관리 조항 같지만, 여길 보십시오. 독소 조항입니다.”혜진이 손가락으로 특정 문구를 짚었다.[폭주 발생 시, 대상자의 신체 및 능력 반응 데이터 일체를 연구 목적으로 회수할 수 있으며, 이에 수반되는 강제적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회수라니…….”준우가 마른 신음을 내뱉었다. 주먹을 꽉 쥔 탓에 손등의 핏줄이 불거졌다. “말이 좋아 회수지, 이건 그냥 사고가 터지길 기다렸다가 재료를 수거해가겠다는 뜻 아닙니까? 사람을 실험쥐 취급하고 있어요. 그 절박함을 이용해서.”준우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거친 숨을 내뱉었다.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거리에는 여전히 힘을 통제하지 못해 삶이 무너져가는 이들이 넘쳐난다. 그들에게 이 약은 구원줄이었겠지만, 실상은 스스로를 해부용 도마 위에 올리는 계약서였던 셈이다. 나머지 조항들이 지나치게 상식적이고 정중했기에, 그 이면에 숨겨진 비릿한 의도는 더욱 악의적으로 다가왔다.현수가 뒷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기며 헛웃음을 흘렸다.“경찰이 이걸 몰랐을 리 없죠. 보고도 눈을 감았거나, 아니면 눈을 감으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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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 - 이진성(1)

017서울의 외곽, 간판조차 없는 건물의 지하 연구소. 낮은 웅성거림이 가득한 공기 속으로 날 선 대화가 섞여 들었다. 모니터 속에서는 준우가 움직이는 영상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결국, 저놈을 확보해야 한단 소리군.”연구원 한 명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화면 속 준우의 몸짓 하나하나를 뜯어보던 다른 연구원이 건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저 친구의 정화 능력만 있으면 약의 결함을 억제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소거할 수 있어. 이론상으론 완벽해지겠지.”“협력할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이는데. 난감하군.”“그럼 협력하게 만들어야지. 우리가 늘 하던 방식대로.”말이 끝남과 동시에 화면 속 준우의 얼굴 위로 붉은 타깃 마크가 덧씌워졌다.***정오의 태양이 아스팔트를 달구고 있었다. 준우는 오토바이 시트에 몸을 맡긴 채 신호를 기다렸다. 특별할 것 없는 평일 오후, 평소 가던 카페에서 커피나 한 잔 마실 생각이었다. 그때, 검회색 스타리아 한 대가 미끄러지듯 다가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준우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길눈이 어두운 운전자가 차선을 급하게 바꾸는 일은 흔했으니까. 하지만 차 뒷부분에서 들려오는 기계적인 마찰음은 결코 흔하지 않았다. 트렁크 문이 위로 치켜 올라가더니, 지면을 향해 금속제 올림판이 스르르 내려왔다. 본능적인 거부감이 뒷덜미를 훑었다. 준우가 핸들을 꺾어 차선을 이탈하려는 찰나, 차체 밑바닥에서 발사된 굵은 쇠사슬이 뱀처럼 날아와 오토바이의 앞바퀴를 옥죄었다.‘뭐야, 이건!’신호가 바뀌자마자 스타리아가 거칠게 급발진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사슬이 오토바이를 강제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끼이익, 비명을 지르는 타이어 마찰음 사이로 트렁크 안쪽에 매복한 사내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서너 명의 장정들이 서늘한 눈빛으로 준우를 겨누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차가 우회전을 하기 위해 속도를 줄이며 크게 휘청였다. 준우는 주저하지 않고 몸을 날렸다.둔탁한 소리와 함께 준우의 몸이 아스팔트 위를 볼품없이 굴렀다. 횡단보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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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 - 이진성(2)

018소독차 냄새가 밴 공기는 이제 폐 깊숙한 곳까지 익숙하게 스며들었다. 준우는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무심하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 정도면 집을 병실로 옮기는 게 아니라, 병실을 집으로 등기 이전해야 할 수준이었다. 창밖으로 저무는 노을이 병실 안쪽까지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병상 한편에는 재범과 채은, 혜진이 약속이라도 한 듯 나란히 앉아 저마다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맞은편, 현수만이 유일하게 노트북 화면의 푸르스름한 빛에 얼굴을 파묻은 채 손가락을 바삐 움직였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적인 박자로 정적을 깼다.“이름 하나로... 정말 좁혀질까요?”준우의 물음에 현수가 시선을 화면에 고정한 채 대답했다. “안 돼도 밑져야 본전이죠. 전에는 그 이름 석 자조차 몰랐던 거니까.”준우는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눈을 감았다. 기억의 실타래를 역으로 감아올렸다. 분명 복도에서 스치듯 본 명찰 위에는 세 글자가 선명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이름 위에 얹혀 있어야 할 얼굴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수채화 물감을 뿌려 뭉개버린 것처럼, 이목구비가 있어야 할 자리는 흐릿한 안개만 자욱했다. ‘눈매가 날카로웠나, 아니면 인상이 좋았나.’미간을 좁히며 기억의 파편을 긁어모아 봐도 손바닥 위로 남는 건 서늘한 공기뿐이었다. 결국 준우는 짧은 한숨과 함께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억지로 끄집어내려 할수록 머릿속 통증만 심해질 뿐이었다.그때, 현수가 가볍게 입가에 미소를 띠며 노트북을 준우의 무릎 위로 밀어 넣었다. “이것 좀 보시죠.”화면 안에는 '이진성'이라는 이름의 인사 기록 카드가 띄워져 있었다. 사진 속 남자는 지극히 평범했다. 어디서나 볼 법한 무색무취의 인상. 관리청 소속 연구원이라는 직함 외에는 특별한 프로젝트 참여 이력도, 눈에 띄는 성과도 기록되지 않은 '연구원 A' 그 자체였다.“관리청이 이걸 왜 안 지우고 놔뒀을까요? 흔적 지우기엔 도가 튼 인간들이.”준우의 의문 섞인 혼잣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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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 - 이진성(3)

019산길을 수 차례 돌아 들어간 끝에야 차가 멈춰 섰다. 사방이 가파른 능선으로 가로막혀 지도상으론 그저 험지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은밀한 은거지나 비밀 시설을 예상했던 것과 달리, 정면에는 'OOO 연구원'이라는 투박한 현판이 대놓고 걸려 있었다. 오히려 너무 당당해서 더 이질적인 광경이었다.차 문을 열고 내리던 채은이 미간을 좁혔다. 건물 외벽은 이미 세월에 깎여 나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그녀의 감각은 전혀 다른 신호를 읽어내고 있었다.“이상해. 왜 아직도 전력이 흐르고 있지?”“전력?”혜진이 되물으며 저격총 대신 기동성이 좋은 DMR을 고쳐 쥐었다. 채은은 건물 심장부에서 뻗어 나오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맥동을 짚어내듯 허공을 노려보았다.“겉은 폐허인데, 내부 전압은 풀가동 중이야. 마치 누가 방금 전까지 기계를 돌린 것처럼.”긴장감이 서늘하게 깔렸다. 재범이 묵직한 방패를 앞세워 자리를 잡았고, 현수와 준우는 리볼버의 실린더를 확인하며 뒤를 받쳤다. 채은의 손에도 이미 SMG가 들려 있었다. 잠긴 입구의 경첩을 총탄으로 날려버린 뒤, 그들은 삐걱거리는 문을 밀고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채은의 말대로였다. 천장의 형광등은 수명을 다해 가면서도 깜빡이며 희미한 빛을 뱉어내고 있었다. 1층의 풍경은 기묘할 정도로 평범했다. 서류 더미가 쌓인 책상들과 캐비닛, 얼핏 보면 흔한 파출소 사무실 같았다. 하지만 복도 끝에 자리한 감옥 형태의 구금실 벽면에는 마나가 타버린 검은 흔적들이 흉측하게 눌어붙어 있었다.준우는 구금실 안쪽을 살피다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할 가치가 있다는 신호였다.“저쪽에 엘리베이터가 있네요.”채은이 버튼을 눌러보았지만, 건물 깊은 곳에서 '덜컹!' 하는 비명 같은 기계음이 들려올 뿐이었다.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불길한 소음이었다.“재범 형도 있으니 계단으로 가죠. 저건 언제 멈출지 모르겠네요.”일행은 비상구로 발길을 돌렸다. 의외로 계단실은 건물 외관에 비해 말끔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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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 - 성심 길드(1)

020대한민국에서 '성심'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길드명을 넘어선 하나의 브랜드였다. 업계 2위부터 5위까지의 전력을 전부 끌어모아 산술적으로 합쳐야 겨우 대등한 척이라도 해볼 수 있는 압도적 체급. 길드원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고, 대중은 성심의 로고가 박힌 방벽 안에서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다.그 거대한 피라미드의 정점에 김진서가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길드장이자, 능력자 인권 개선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매스컴은 그녀를 '얼음의 여왕' 혹은 '국민 영웅'이라 박제했다. 결정화된 냉기를 흩뿌리는 그녀의 섬세한 능력은 잔혹한 전장조차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둔갑시키는 마력이 있었다. 카메라 셔터 소리는 그녀의 일상이었고, 공익 광고와 관리청 자문 위원이라는 타이틀은 그녀의 신성불가침 영역을 더욱 공고히 다져놓았다.한번은 저녁 뉴스 생방송에 출연한 그녀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나긋하게 읊조린 적이 있다.“능력자의 폭주는 통제 가능한 영역입니다.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 철저히 관리되어야 할 현상일 뿐이죠.”그때 그녀가 지어 보인 서늘하면서도 인자한 미소는 당일 뉴스 시청률을 평소의 두 배 가까이 끌어올렸다. 사람들은 그 미소에 홀려 폭주라는 단어가 가진 근원적인 공포를 망각했다.하지만 지금, 그 우아한 신화가 현수의 손바닥 위에서 바스러지고 있었다.현수는 거칠게 마른세수를 했다. 손바닥과 얼굴 사이의 마찰음이 서늘한 정적 속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그런 여자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진서가 그 약을 직접 수령했다고? 도대체 일이 어디서부터 꼬인 거야……."방 안의 공기는 납처럼 무거웠다. 누구도 선뜻 입을 떼지 못했다. 그들의 타겟은 부패한 관리청장이나 뒤가 구린 관료 정도일 거라 짐작했지, 전 세계적인 선망을 받는 성상(聖像)이 스스로 '폭주 관리제'를 투여했을 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탓이다.대중의 눈이 많을수록 발걸음은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김진서는 그 무수한 시선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장 위험한 도박판에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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