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창백한 형광등 불빛이 감도는 병실 안, 공기는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계약서는 생각보다 허무할 정도로 쉽게 손에 들어왔다. 누군가 치밀하게 숨겨놓은 기밀이라기엔, 사본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거리낌 없이 뿌려질 만큼 관리가 허술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이 조항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듯했다.준우와 채은은 가까스로 초점을 되찾고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약기운이 가시지 않은 듯 얼굴색은 창백했지만, 눈빛만큼은 독기를 품고 있었다. 현수는 종이 더미를 넘기며 한 글자씩 곱씹듯 읽어 내려갔다. 시선이 멈춘 곳은 마지막 장 하단,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특약 사항이었다. 현수가 말없이 사본을 건네자 재범과 혜진의 미간이 동시에 좁아졌다. “교묘하네요.”재범이 낮게 읊조렸다. 가래가 끓는 듯 묵직한 목소리가 적막한 병실에 울렸다.“얼핏 보면 부작용에 대한 사후 관리 조항 같지만, 여길 보십시오. 독소 조항입니다.”혜진이 손가락으로 특정 문구를 짚었다.[폭주 발생 시, 대상자의 신체 및 능력 반응 데이터 일체를 연구 목적으로 회수할 수 있으며, 이에 수반되는 강제적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회수라니…….”준우가 마른 신음을 내뱉었다. 주먹을 꽉 쥔 탓에 손등의 핏줄이 불거졌다. “말이 좋아 회수지, 이건 그냥 사고가 터지길 기다렸다가 재료를 수거해가겠다는 뜻 아닙니까? 사람을 실험쥐 취급하고 있어요. 그 절박함을 이용해서.”준우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거친 숨을 내뱉었다.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거리에는 여전히 힘을 통제하지 못해 삶이 무너져가는 이들이 넘쳐난다. 그들에게 이 약은 구원줄이었겠지만, 실상은 스스로를 해부용 도마 위에 올리는 계약서였던 셈이다. 나머지 조항들이 지나치게 상식적이고 정중했기에, 그 이면에 숨겨진 비릿한 의도는 더욱 악의적으로 다가왔다.현수가 뒷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기며 헛웃음을 흘렸다.“경찰이 이걸 몰랐을 리 없죠. 보고도 눈을 감았거나, 아니면 눈을 감으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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