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폭주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정화자: Chapter 41 - Chapter 50

77 Chapters

041 - 끊긴 사람

041부평역 인근의 지하 카페는 사방이 콘크리트로 마감되어 있어 가뜩이나 낮은 목소리들이 벽을 타고 웅웅 울렸다. 구석진 테이블에 앉은 여자의 손가락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 표면에 맺힌 물방울을 의미 없이 문지르고 있었다. 0팀이 시위대 연락망을 이 잡듯 뒤져 간신히 연결된 번호였다. 통화 버튼을 누를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으나, 여자는 예상외로 순순히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여자의 얼굴은 며칠 전 현장에서 보았을 때보다 혈색이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눈 밑에 짙게 가라앉은 그늘과 굳은 어깨는 여전한 피로를 증명했다.최준우와 가볍게 눈이 마주치자마자 여자는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그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준우 님. 준우 님이 손을 써주지 않으셨다면…… 제가 무슨 꼴을 당했을지 상상도 하기 싫어요.”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준우는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손을 가볍게 뒤로 물리며 물었다.“폭주 진압 이후에 성심 측에서 따로 취하는 조치가 있습니까?”“대외적으로는 격리 치료라고 하는데…….”여자는 말끝을 흐리며 카페 입구 쪽을 힐끗 돌아보았다. 아무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낮은 속삭임이 이어졌다.“완전히 낫지 않은 폭주자들을 데려다가 무슨 실험을 한다는 소문이 돌아요. 증거가 없어서 다들 쉬쉬할 뿐이지.”“그 소문 때문에 시위에 참여하신 겁니까?”“그것도 그렇고, 애초에 성심이 각성자들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비정상적이니까요. 특히 강화형이나 변이형처럼 외적으로 무섭게 생긴 부류는 인간 취급도 안 해요.”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현수와 준우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또다시 짙은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심증은 차고 넘치는데 손에 잡히는 물증이 없었다. 민간 거대 기업인 성심을 상대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이라도 벌이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관리청이나 경찰조차 몸을 사리는 판국에, 지금의 0팀이 강제로 문을 열어젖힐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현수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본론으로 궤도를 틀었다. 형사 시절의 버릇이 묻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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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 - 수술

042준우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숨을 골랐다.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감각이 무거웠다. 선 자체를 통째로 정화하려던 시도는 이번에도 단단한 벽에 부딪혔다. 곪을 대로 곪아 터지기 직전인 상처를 만지는 기분이었다.‘너무 깊어.’오랜 시간 오염에 노출된 탓에, 검푸른 선들은 이미 사내의 능력핵 가장자리까지 파고들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 억지로 정화의 힘을 밀어 넣었다가는 사내의 근간인 능력핵마저 산산조각 날 게 뻔했다.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불구가 되거나, 혹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거나.준우는 욱신거리는 미간을 짚으며 침대 위로 한 무릎을 올렸다.“잠시 좀 실례할게요.”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사내가 멍한 눈으로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준우는 시선을 돌려 방 한구석에 굳은 채 서 있는 0팀원들을 바라보았다.“좀 걸릴 테니까, 다들 거기 앉아 있어.”지시라기보다는 권유에 가까운 어조였지만,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공기 때문인지 팀원들은 군말 없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옷자락이 쓸리는 거친 소리만이 좁은 방 안을 채웠다.다시 사내의 목덜미로 시선이 향했다. 심호흡을 할 때마다 폐부 깊숙이 서늘한 마나의 잔향이 밀려들었다. 살갗 아래로 징그럽게 얽혀 있는 검푸른 오염선과 위태롭게 빛을 잃어가던 하얀 정상선. 둘은 이미 한 몸처럼 꼬여 있었다.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굳은살이 박인 준우의 손가락 끝이 허공의 궤적을 더듬다,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검푸른 선 하나를 단단히 쥐었다.그리고, 그대로 잡아 뽑았다.[툭]무언가 끊어지는 명확한 파열음과 함께, 사내의 목덜미에서 뜯겨 나간 마나선이 허공에서 바스라졌다. 서늘한 바람이 일며 검은 가루들이 재처럼 흩날렸다. 사내의 안색이 미세하게 편안해지는 것이 보였다.‘...다행이네. 정화가 안 되면 솎아내면 그만이지.’안도감도 잠시, 핏줄을 타고 역류하는 고통이 전신을 강타했다. 준우는 턱을 악물며 손을 움직였다.[툭, 툭, 툭툭]선을 뜯어내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방 안의 공기는 무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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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 - 오산(1)

043 공용 주차장의 낡은 시멘트 바닥 위로 0팀의 차량이 멈춰 섰다. 차 문이 닫히는 묵직한 소음 뒤로 오산 시내의 한산한 공기가 밀려들었다. 세이프티넷 실험 도시라는 거창한 명칭에 걸맞지 않게, 눈앞에 펼쳐진 거리는 기묘할 정도로 차분했다. 골목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늘어선 상가들 사이로 이질적인 구조물이 시선에 걸렸다. 주변 건물들의 어깨 밑으로 푹 꺼진 채 자리 잡은 통제 센터였다. 숨바꼭질을 하듯 빌딩 숲 사이에 은밀하게 박혀 있는 구조는 이전 도시들과 다를 바 없었다. 순찰을 도는 제복 경찰들이 간간이 보였지만, 무거운 진압 장비를 갖춘 대능력자 특수 기동대는 아니었다. 그저 일상적인 방범 활동처럼 보였다. 혜진의 걸음이 느려졌다. 초점을 정교하게 맞추듯 그녀의 눈동자가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행인들의 걸음걸이, 호흡의 깊이, 미세한 근육의 떨림까지 혜진의 시야 속에서 데이터로 분해되었다. 일반인과 능력자를 가려내는 작업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혜진의 미간이 좁아졌다. 거리를 지나는 능력자들은 언뜻 평범해 보였다. 특별한 아우라도, 위협적인 기운도 풍기지 않는 무색무취의 상태. 그러나 결정적인 위화감이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표류하고 있었다. 영혼의 일부를 어디론가 빼앗긴 것 같은, 묘하게 얼이 빠진 낯빛들.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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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 - 동두천(2)

046 한 명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방에서 쿨럭이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서너 명의 헌터들이 거의 동시에 바닥으로 무너졌다. 사지가 가볍게 떨리는, 전형적인 역류 초기 증상이었다. “일시적인 거부 반응입니다! 현장 통제하세요, 순서대로 이송합니다!” 성심 길드 측 마크를 단 의료진들이 거칠게 제복을 펄럭이며 달려들었다. 그들은 익숙하다는 듯 쓰러진 이들을 부축해 안쪽 격리 접종장으로 밀어 넣었지만, 그 조급한 손길과 달리 환자들의 상태는 비정상적일 만큼 기괴했다. 불을 다루는 원소계 헌터는 제 손끝에서 일어나는 불꽃을 보며 마치 도살장을 마주한 것처럼 비명을 질렀고, 신체 강화계 헌터는 외상이 전혀 없음에도 뼈가 으스러진 듯한 통증을 호소하며 안면근육을 일그러트렸다. 가장 끔찍한 건 치유계 능력자였다. 옆 사람의 찢어진 상처가 그대로 그의 피부 위로 핏줄을 터뜨리며 재현되고 있었다. 여기에 정신계 헌터의 폭주로 흘러나온 불안정한 파장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대기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격리실의 중량 셔터가 거친 기계음을 내며 닫히기 시작했다. 0팀원들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 준우의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닫히는 틈새를 미끄러지듯 통과해 격리실 안으로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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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8 - 족쇄

0481층 로비, 관리청 본부. 이틀 뒤, 준우는 관리청 본부로 호출되었다.유리 천장 너머로 쏟아지는 인공 광선이 거대한 로비를 무미건조하게 비추고 있었다. 0팀 전원은 대리석 바닥을 울리는 자신들의 발소리를 들으며 안쪽으로 걸었다. 그러나 안내원이 방향을 튼 곳은 화려한 중앙 홀이 아닌, 복도 구석의 외진 통로였다. 캐비닛과 화물용 박스가 아무렇게나 쌓인, 퀴퀴한 먼지 냄새가 나는 자재 창고 앞이었다.채은이 걸음을 멈추며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안정성 심사를 이런 구석데기에서 해?”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창고의 낡은 철문으로 향했다. 동조하는 침묵이 흐르는 사이, 문이 무겁게 열리며 정장을 입은 사내 하나가 걸어 나왔다. 사내의 시선은 0팀의 다른 이들을 생략한 채, 오직 준우에게만 멎었다.“최준우 주무관님만 들어오십시오. 나머지 분들은 여기 대기해 주시면 됩니다.”사내가 가리킨 곳은 도색이 벗겨진 철제 긴 의자였다. 로비의 세련된 대리석과는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는, 마치 처분만을 기다리는 폐가구 같은 몰골이었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번졌지만, 상대는 관리청 본부였다.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일개 현장직들이 할 수 있는 반발은 그리 많지 않았다. 0팀은 삐걱거리는 의자에 몸을 묻었고, 준우는 가볍게 목례를 한 뒤 문 안으로 발을 디뎠다.창고 내부의 공기는 바깥보다 훨씬 서늘했다. 가구라곤 방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철제 의자 하나, 그리고 그 전면에 배치된 길쭉한 테이블이 전부였다. 1대 다수의 면접이라기보단, 피의자를 압박하기 위한 취조실의 구조에 가까웠다.‘...정공법은 아니겠군.’준우는 침을 삼키며 의자로 걸어갔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숨기기 위해 허벅지 위에 주먹을 쥐어 고정했다. 차가운 철제 시트의 감촉이 바지를 뚫고 생생하게 전해졌다. 테이블 너머, 어둠 속에 묻힌 심사위원들의 얼굴은 조명등의 역광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맨 왼쪽에 앉은 사내가 서류를 뒤적이며 건조한 음성을 뱉었다.“그럼 지금부터 최준우 주무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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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 - 해체

050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0팀의 해체 명령이 적힌 공식 문서는 관리청의 직인이 찍힌 채 탁자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카페 안의 소음은 저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아득했고, 다섯 사람이 모인 테이블 위에는 오직 서늘한 침묵만이 맴돌았다. 누구 하나 먼저 찻잔에 손을 대지 않았다.각자의 주머니에서, 혹은 가방 안에서 부스럭거리며 흘러나온 통지서들이 탁자 위로 낮게 깔렸다.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재범이었다. 평소보다 한 옥타브는 낮아진, 물기를 머금은 목소리였다.“방어대응팀으로 복귀하란다.”그 시선을 피하듯 채은이 고개를 숙였다. 손가락 끝으로 통지서의 모서리를 의미 없이 만지작거리던 그녀가 낮게 읊조렸다.“나도. 다시 기동타격팀이야.”혜진은 실소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짧게 차며 자신의 통지서를 툭 던졌다. 종이가 테이블 위를 미끄러져 재범의 통지서 위에 겹쳤다.“원래 있던 장거리 지원팀으로 가라는 게 말이나 돼? 사람을 무슨 쓰고 버리는 부품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현수는 아예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묻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초조한 듯 허공을 헤매던 그의 시선이 마침내 바닥으로 떨어졌다.“경찰청 쪽 분위기도 안 좋아. 내부 징계 위원회 회부 건으로 말이 나오는 모양이야.”팀원들의 절망이 차례로 테이블 위에 쌓이는 동안, 준우는 그 중심에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묵직한 구속구의 감촉이 생생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저 허연 종이들을 전부 찢어발기고, 어디도 가지 말라고, 내 곁에 그냥 남아달라고 떼라도 쓰고 싶었다. 억지를 부려서라도 이 작은 울타리를 지키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쯤은 준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더 고집을 부렸다간, 저들이 서 있는 위태로운 절벽 끝을 제 손으로 떠미는 꼴이 될 터였다. 자신 하나 망가지는 것은 진작에 각오한 일이었지만, 저들이 다치는 것만큼은 죽어도 볼 수 없었다. 제 몸이 깎여 나가고 능력이 바닥을 드러내도, 팀원들을 향한 공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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